이게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그 “박탈감을 느끼는 노점상”에겐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가 박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만 가지곤
선동이 될 리가 없다. 하나가 더 필요하다. 786이 무슬림의 세계장악 음모라고 선동하던 자들은 무슬림의 수비학(?)에 맞서는 미얀마 불자들의 수비학(?)을 등판시킨다.
바로 969라는 숫자다. 9는 붓다를, 6은 그의 가르침인 법륜 혹은 부처의 가르침을, 마지막 9는 붓다의 제자, 곧
승려를 가리킨단다. 그래서 미얀마의 불자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상점에 969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신심이 있는 불자들이라면 969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가게만 찾아야 한다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걸 선동하고 돌아다닌 것은
다름아닌 미얀마의 승려들이었다. (관련기사1. 링크 / 관련기사 2. 링크)
우리 눈엔 길에서 “도를 믿으십니까?”라는 분들이 하는 소리랑 비슷하다. 그런데 이 운동이 시작했던 2001년, 이
어마무식한 선동을 벌이던 땡중들의 지역기반과는 3300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하는 짓은 비슷했던 얼간이들의 초대형 사고가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연결해서 믿게 만들었다. 바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들이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탱크를 끌고 가 바미얀 석불을 날려버렸던 것이다. 탈레반의 이 어리석기 그지 없는 행위는 불자가 주류인
국가들에 엄청난 반 이슬람 감정을 일으켰다. “도를 믿으십니까?”수준의 사발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969운동이 시작된 2001년 9월 11일 이후에만 라카인주의 시트웨(Sittwe)에서만 200명의 무슬림들이 죽었고 열 한 곳의 모스크들이 파괴되었다. 이 폭동의 주도자는 2003년 체포되어 ‘증오선동’의 혐의로 25년형을 선고 받았다. 군부독재자들의 눈에도 끔찍했던 게다. 바로 이 폭동을 주도했던 이가 위라투(Wirathu, 1968년 7월 10일~)다. (관련기사 링크)
위라투, 2013년 7월 1일자 타임지 커버의 주인공 되시겠다.
2007년, 스님들이 길거리로 나왔던, 이른바 샤프론 혁명은 미얀마의 군부 독재 정권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우리식 우리가 간다고 하는 김정은식 무대뽀 독재정권도 자신보다 더 영향력을 가지는 스님들이 나서면 정권 유지가 더 이상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알짜 25%의 권력만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짝퉁 민정 헌법을 내어놓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신 그들은 스님들을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우누가 처음 시도했었던
미얀마식 불교 민족주의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한다. 이 모든 일들을 진행할 그들의 대리자가 필요했는데, 마침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자신들의 품 속에 있었던 것이다.
2003년 체포되었던 위라투는 샤프란 혁명을 일으켰던 스님들과 함께 2011년에 석방된다. 감옥에서 8년간 있었으면 면벽 수도라도 좀 하고 중생을 어떻게 계도할 것인가 고민하셨으면 좋았겠지만, 야차가 그런 걸 할 리가 없잖는가. 나오자 마자 미얀마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무슬림 마을들을 말 그대로 지도에서 지우고 돌아다닌다. 2007년
샤프란 혁명의 감동을 전했던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기자는 같은 스님들이 벌이고 다니는 학살에, 보면서도 이게 현실인지 믿을 수 없다는 기사를 전했다. (관련기사 링크)
더불어 오갈 곳 없는 스님들을 회유하기 시작한다.
2015년 Al jazeera Genocide Agenda (링크)
이렇게 조직된 스님들은 무슬림 사냥에 앞장서면서 동시에 군부독재자들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2015년 Al jazeera Genocide Agenda (링크)
미얀마의 군부는 위라투를 이용해 민간에 정권을 넘기기 전에 아주 철저하게 밑바닥 공사를 했던 것이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스님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자신들의 행동대원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스님들이 앞장섰던 무슬림 사냥은 사실 중세 마녀사냥의 그것과 정확하게 닮았다.
"마을 근처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이 세계 지배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자."와 "마을 근처에 살고 있는 마녀들이 우리를 못살게 하고 있다.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자."가 뭐가 차이가 나는가?
무엇보다 닮은 점은 이런 살육의 광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원흉들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애초 미얀마인들이 가난한 것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자연환경을 군부와 군부와 가까운 재벌들이 모조리 빨아서 흥청망청하고 그 찌꺼기만 미얀마 서민들에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것의 문제가 무슬림이라는 선동이 먹히고 있다면, 실제 현실을 고쳐보자고 할 사람들의 눈이 군부와 재벌에게 향하겠는가? 사실 중세에도 그랬잖는가? 지도층이 마녀로 기소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마녀
사냥이 한참 흥하던 그 시절은 중세의 모순이 모두 터져나오던 시절 아닌가?
지금까지 위라투를 이용하는 군부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다. 그는 군부에서 제공하는 돈과 군부에서 제공하는 여러가지 권력들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스님들을 회유했고 그 회유한 스님들과 함께 미얀마 애국 연맹(Patriotic Association of Myanmar, 버마어로 줄여서 마바타라고 불리는 조직)을 2014년에 만들었다. 단체의 목적은 버마의 소승불교(본 필자가 불자긴 해도 워낙 불교교리에 무식해서 Theravada Buddhism는 소승불교라고 밖엔 번역을 못한다. 다르게 번역하는 방법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달
아주시기 바란다)와 불교 민족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란다.
좀 깨지 않는가? 불교도가 80%인 국가에서 소승불교와 불교 민족주의를 수호한다고?
이 분들, 2차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카톨릭 사제들과 비슷한 분들이다. 2014년 마바타가 만들어진 후 가장
노력했던 것은 [민족과 종교 보호법(Protection of Race and Religion)]이라는 제목의 인종 말살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요 내용은,
1) 무슬림 가정은 한 자녀 이상 출산할 수 없는 산하제한을 한다는 것,
2) 불교도인 여성이 타 종교 남성과 결혼할 경우 반드시 정부에 등록해야 하며
3) 미얀마인이 개종을 원할 경우, 지자체에 면담요청서를 제출하고 90일간 그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현행 미얀마 국적법은 자국민을 삼등분한다. 그래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된다. 앞선
편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로힝야 여성의 권리가 쉽게 박탈되던 장면 기억하시는가? 등록된 이들은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이 법은 2015년 9월 24일 미얀마 하원을 통과해 정식 입법이 되었고, 국제사회의 규탄에도 미얀마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국제연합 인권최고대표 사무소는 이에 대해 경고하는 성명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 링크)
즉, 군부는 2011년 이전부터 내적 모순에 대한 불만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고 자신들이 영원히 나라 등골에 구멍
뚫고 먹고 살 수 있도록 스님들을 포섭해 무슬림을 공격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2017년인 올해는 그렇게
짠 계획의 성과를 수확하는 해였던 것이다.
하나 더. 미얀마는 천연가스가 꽤 많은 나라다. 대부분은 중국계 회사들이 개발하고 있는데, 딱 한 곳만 인도계 회사가 개발중이다. 인도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로힝야족 학살에 대해 지역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미얀마
편을 드는 나라다. 그런데 그 회사가 어디에서 시추하고 있는지 아시는가? 로힝야족이 살고 있던 라카인 주다. 여기에 조만간 가스 생산시설이 들어선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6. 그럼 군부는 그렇다 치고, 아웅산 수찌의 입장은 도대체 뭔가?
미얀마 2008년 헌법에서 국가의 공권력은 모두 군부가 갖고 있었다. 경찰력과 군, 국경수비대까지. 그리고 로힝야족 학살은 군부의 지원을 받는 미얀마 땡중들이 주도하고 있다. 아웅산 수찌의 심복이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이걸 막을 방법이 없다.
즉, 본인의 정치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수찌는 가택연금되었던 시절에도 소수민족과 관련해선 군부와 딱히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의 살육에 앞장서고 있는 이들은 승적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이 야차든 말든간에.
반복하지만 미얀마의 초대총리 우누는 아웅산 수찌의 아버지, 아웅산의 사람이었다. 전체 인구의 38%가 넘는 소수민족이 독립을 요구하자 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이용했던 것이 불교였다. 나중엔 국교로까지 지정했을 정도.
그렇게 불교 우대정책을 펼쳐온 입장에서, 또한 국가의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살육을 멈출려면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
뭐 이 상황이 영화 속의 한 장면이고 아웅산 수찌가 그 이름 값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난 9월 19일에 했던 “모두가
살육을 멈춰야 한다”고 한 TV연설의 배경은 라카인주의 시트웨였을 것이다. 물론 로힝야 거주지역 방향에서 총알
몇 발 날아왔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이야기고.
이건 아웅산 수찌가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제로 죽지 않는 이상, 군부가 벌이는 이 학살극을 수찌의 힘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는 이야기다. 일반의 믿음과 달리 수찌는 정치력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순전히 군부 맘이다.
그럼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든 미얀마 군부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다? 세상 일이 한 쪽 일방의 맘대로 되는 일이 있는가? 50만 이상의 난민을 한꺼번에 만들었는데 그 업이 안 돌아갈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