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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4. 금요일

Athom







                   


“그녀를 위한 식탁”은


알고나 먹자 <요리 편>의 부제입니다.



지난 기사


[그녀를 위한 식탁 <1> 크리스마스 파뤼]

[그녀를 위한 식탁 <2> 닭죽과 생치침채]

[그녀를 위한 식탁 <3> Prologue, 그녀를 만나다]



알고나 먹자 <식재료 편> 바로가기










그녀는 거실 다른 쪽 끄트머리에 있는 자크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뒤쫓았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잠시 힘을 주었다.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 프랑수아즈 사강 <한 달 후, 일 년 후>중 -




결혼의 실패는 거대하고 다양한 찌꺼기들을 남긴다.


거대한 냉장고

손으로 깎고 다듬어 만들었던 원목식탁과 의자

퀸 사이즈 침대

장롱

소파

다양한 가구

카페트

세탁기

컴퓨터

TV

화분

진공청소기

책장과 계절마다 바꿔 걸었던 커튼

오븐겸용전자레인지

밥솥

다양한 조리도구들

다양하고 무수한 식기와 접시들


꽤 커다란 집에서 신혼을 준비했었다. 집이 넓어 무엇을 들여도 집은 휑해 보였다. 그 휑해 보이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들이고, 들이고 또 들여 물건으로 공간을 채우려는 욕심이 가득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욕심만큼 열심히 일을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그 사람과 나의 밥을 벌었다. 밥을 벌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집을 가득 채우겠다는 욕심은 종종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사람을 보지 않고 밥과 물건에 눈이 먼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했고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일만 하는 날이 늘어갔다. 너와 나의 밥을 벌겠다는 욕심은 ‘너’에게 파쇼적이었다.


‘나의 행동은 모두 옳고 나는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는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밥을 권하는 모든 이에게 친절했고 한 사람의 불만에 무심했다. 빈 공간이, 허황했던 마음이 아늑하게 느껴질 무렵 한 여자는 짐을 싸들고 사라졌다.


“모든 사람에 대한 친절은 한 사람에겐 모욕이에요.”


아....


후.회.했.다.


이제 더 이상 밥으로 밥을 벌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 틀어박혔다. 한동안 그 집을 떠나지 못했다. 떠나보려 멀리 멀리 돌아다녔지만 다시 돌아오는 곳은 그 집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1년 반의 시간이 지나갔다.


술, 낚시. ‘노느니 염불’은 가사를 탕진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낮에는 낚시, 밤에는 술로 시작했다. 낚시가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낮에도 낚시, 밤에도 낚시로 이어졌다. 고기가 잡히지 않아 술을 마셨다. 시간이 지나자 낮에도 낚시와 술, 밤에도 낚시와 술로 변질되어갔다. 낚시터에서 며칠씩 술 마시고 뒹굴다가도 결국 기어들어오는 곳은 그 집이었다. 모아둔 돈을 다 쓰고 죽어도 서운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죽진 않고 통장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놀았다. 전세담보대출금으로 술을 사고 지렁이와 떡밥을 샀다.


새벽풍경.jpg

가사는 탕진해도  이런 아침을 보기도 한다;;;



며칠 밤을 낚시터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와 스무 시간쯤 잠을 자고 일어났을까. 집이 너무 더러워 보였다. 반면에 머리와 통장 잔고는 깨끗해졌다는 생각이 들던 아침이었다. 청소를 하고 물걸레로 방바닥을 닦는데 어느 바람에 흘러나왔는지 기다란 머리카락 몇 올이 물걸레에 묻어났다.


1년도 더 지났는데 여전히 여기 그러고 있는가.


‘에라. 잡것...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방 하나와 주방, 화장실, 벽장, 창이 좋아 해가 잘 드는 집을 찾아 이사를 준비했다. 큰 집에 끝없이 들였던 물건들은 버려야만 했다. 군청에서 나온 폐가구 수집 차량이 두 번 다녀가서야 그 물건들을 모두 버릴 수 있었다.


직접 만든 원목 식탁은 버리고 의자만 남겼다. 소파를 들일 장소는 없었다. 버렸다. 이사 갈 집에 벽장이 있으니 장롱도 버렸다. 앉은뱅이 6인용 식탁도, 볼썽사납게 커다란 가재도구들과 탁자와 이런저런 가구들과 생활용품들도 버렸다. 책장과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도,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해 이고 지고 이사 온 물건이 작은 집 안에 가득 들어찼다.


무엇이 이리도 많은가.


이사 와서 또 버렸다.


TV를 버리고 컴퓨터는 친구에게 줬다. 침대는 매트리스만 남기고 버렸다. 커다란 컴퓨터 책상도 버리고 작은 소반에 노트북만 남겼다. 모아두었던 주간지와 월간지들을 들고 고물상에 갔더니 5만 원 정도의 폐지 값을 쳐줬다. 그 돈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술을 마셨다.


지금도 여전히 버리고 있다.


이제는 룰을 정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버리겠다고. 이 룰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버려야 하므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도 깊이 고민하게 되고 버려야 할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된다. 물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한 뒤 트럭운전을 시작했다. 역마살은 팔자다. 그리 좋을 수 없었다. 2년간 전국을 떠돌았다. 집은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와 쉬고 가는 곳이 되었다. 집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니 편안했다. 손에 웅켜 쥐려 했던 모든 것이 길 위에 피고 지는 계절과 같다는 것을 운전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산과 들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트럭.jpg

고사도 지냈다 ;;;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 전, 그렇게 떠돌던 것을 보다 못해 이제 그만 떠돌고 밥벌이나 하라며 인쇄소로 불러들인 사람은 오랜 인연의 선배였다.


이제 더 이상 밥으로 밥을 벌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5년이 지나 낯선 여자가 밥을 달라고 청해왔다.


평소 나의 밥상은 이런 식이다.


밥상 1.jpg

이렇거나



밥상2.jpg

잘 해야 조기 몇 마리



밥상3.jpg

끽해야 청국장이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은 국에 김치에···, 뭐 그 정도다.


혼자 사는 노인네 집에 연락 없이 들를 때 보이는 어미의 밥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의 밥상은 미니멀리즘적으로 변모한다. 노인네들은 그것을 잘 안다.


처음 혼자가 되었을 때 문득문득 욱하는 심정으로 냉장고에 있는 모든 반찬을 꺼내고 갖가지 요리를 만들어 차린 밥상 앞에 앉으면 그보다 더 허무할 데가 없다. 겨우 국에 밥 말아 먹고, 만든 반찬 몇 점 집어먹으면 배가 부른다.


씨발.


그 상에 차려진 음식을 일주일간 먹고 나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지만 적어도 스무 번은 그 짓을 더 하고 나서야 밥상이 간소해진다. 멍청해 보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 가는 수순인가보다.


그렇게 간소화되고 최소화된 집과 살림살이였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서 밥을 먹일 만한 살림살이는 아니었다. 혼자 먹는 작은 소반. 그 소반 위에 노트북. 소반 옆에 덜렁. 매트리스 하나. 이 작은 집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냉장고.


주방.jpg



그래도 말이다. 이런 것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20년 지기 친구나 종종 들락거리며 빤쓰 입고 영화 보던 집이지만 나의 어떤 추레한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지금의 나를, 지나온 시간의 내가 뭉치고 뭉쳐져 만들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지난 시간의 찌꺼기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전혀 망설여 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보시게요······. 맛난 거 준비해 둘게요.”


망설여지는 것은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그녀는 전주에 다녀간 이후 결혼을 잠시 미뤘을 뿐 파혼을 선언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단지 변방에서 만난 한 사람이 기억에 남아 다시 찾고 싶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녀의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녀를 탓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녀에게 남자가 10명이 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넙치>에 등장하는 ‘아우아’같은 여신일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전에 보지 못한 무한한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그렇다고 가슴이 세 개 달린 것은 아님!;;;) 그러니 그녀가 집에 찾아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나의 태도였다. 그녀에 대한 나의 태도가 아닌, 나에 대한 나의 태도 즉, 내가 나를 어떻게 컨트롤 할 것인가가 숙제로 남았다.


내가 여전히 소유욕과 파쇼적 태도를 지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자로 남아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늪의 바닥으로 떨어져 나의 가장 더럽고 추잡한 몰골을 마주하고 나서야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녀와 언젠가 나눴던 대화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추잡한 경험을 하지 않고서도 자신을 찾게 된 사람들이 있을 테죠?”


“그런 사람들을 성인이라 부르죠.”


“붓다, 공자, 예수, 노자··· 이런 사람들은 혼돈의 시간을 겪지 않고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그래서 단호할지도...”



성인들은 그러해서 죄지은 자에게 죄지었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죄지은 것이 너무 많아 일반적으로 죄라 불리는 것들이 죄로 보이지 않고 안쓰러울 따름이다. 언젠가 그 죄를 감내해야할 늪의 바닥으로 떨어져 자신의 본 모습을 대면해야 할 것이므로. 그런 면에서 그녀도 늪의 바닥을 딛고 올라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서 내 앞에 서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바닥에서 고통 받고 난 이후에 겨우 가면을 벗은 사람처럼 허영도, 가식도, 사람에 대한 욕심도 없어보였다.


“도시락 싸서 소풍가잘까, 금산사로 절 구경가잘까, 바다라도 구경하러 가잘까, 좀 유치하긴 하지만 동물원에 놀러가잘까”


나는 그녀에게 물으며 나에게도 물었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웃음 뿐이었다. 그녀를 만나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더럽게 어색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 던진 말이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당일이 되어서야 그녀는 이 질문에 대답을 했다.


어쩌면 모든 질문의 대답은 그녀를 만난 당일과 다음 날, 그녀가 기차를 타고 떠날 때에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그녀가 돌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묻고 또 묻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오기 전에 얻을 수 있는 대답은 내가 평소에 먹던 밥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밥상을 차리자는 것이었다. 또한 밥상 앞에서 가장 진솔한 나를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럽고 추잡한 나도 결국에는 나이므로. 그것을 감당 할 수 있다면 또 다시 찾아오고 ‘감당 못하면 꺼져’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여러 번 조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꿋꿋하게 삶을 살아내는 조제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아마도 서로가 나름의 방식으로 조제를 타자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에게 조제의 밥상을 차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순전한 코스프레라기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이라면 조제의 밥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오기 며칠 전은 <알고나 먹자> 추석 음식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전주 남부시장 새벽장에 삼색 나물로 쓸 만한 재료들이 풍성했었다. 취재를 하며 고사리와 시금치를 구입했고 젓갈집에 들러 명란젓을 구입했다. 조제에는 나오지 않지만 간단한 아침식사로 오차즈께가 어울릴 것 같아 명란젓을 구입한 것이다. 싱싱한 삼치가 눈에 들어 삼치 한 마리를 사들었고 진흙에서 막 뽑아낸 연근이 싱싱해 보여 연근도 한 뿌리 사들었다. 조제에 나오는 된장미역국은 심심해 보인다. 그래서 된장국에 두부 몇 조각을 더하기 위해 두부 한 모도 사 들었다. 장을 보고 나서 오후에 한 선배의 도라지 밭에 가 보았다. 튼실한 도라지가 땅에 박혀 있었다. 그것도 서너 뿌리 뽑아와 다듬어 두었다. 도라지는 시금치, 고사리와 함께 삼색나물로 밥상을 차리면 입맛을 살려줄 것이다. 집에 있는 몇 가지의 재료들을 더하면 조제의 밥상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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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오기로 한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무리 간단한 ‘조제의 밥상’이라지만 뚝딱 만들어지는 음식은 흔하지 않다.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도라지는 껍질을 벗기고 배를 갈라 물에 담가 둬야 쓴물이 빠진다. 쌉쌀한 맛을 좋아하면 그대로 조리해도 되지만 식성이 어떤지 몰라 쓴맛이 어느 정도 빠지도록 1시간만 물에 담가두기로 했다. 고사리와 시금치는 잘 씻어 물을 빼뒀다. 삼치는 세장뜨기를 하고 중간 중간 박힌 가시를 핀셋으로 빼낸 뒤 소금을 뿌려 채반에 말려 두었다.


삼치3.jpg



조제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야채절임이다. 미소에 박아 두어야 제 맛이 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소금에 절인 오이와 당근을 만들었다. 오이는 칼집을 내 자바라를 만들고 당근은 얇게 저민 뒤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이고 간이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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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은 껍질을 벗기고 썰어 물에 담가 두었다. 녹말이 있는 감자나 고구마, 연근 등에 열을 가해 조리할 때는 물에 담가 겉 표면의 녹말을 제거해야만 달라붙지 않게 조리를 할 수 있다. 된장국을 끓일 미역을 물에 담가 두고 밥솥에 쌀을 앉혀 두니 오후가 되었다.


연근3.jpg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문장에서도, 어느 영화의 장면에서도 보지 못한 낯선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서울에서 나에게 밥을 얻어먹자고 내려오고 있는 그 사람은 나의 무엇을 믿고 밥을 먹여주고 잠을 재워달라고 청한 것일까.’



“주말이라 버스타고 내려가요. 20시 20분 도착 예정이에요.”


“아... 네. 그. 그럼 터미널에서 기다릴께요.”



그녀. 뭔가 시간과 관계된 일을 하는 것일까. 그녀는 시간을 표기 할 때 24시간 표기 단위를 사용한다. 20시 혹은 21시 몇 분 어디서....와 같은 표현들은 낯설었지만 어쩐지. 조금.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뭔들...;;;;)


서울에서 전주는 버스로 2시간 40분이 걸린다. 그녀는 버스가 출발할 때 문자를 보내왔다.


‘다시 만나는 구나’



“저녁은 지난번에 갔던 맥주집에 가서 황태구이에 맥주 먹어요. 간단히 요기는 하고 갑니다.”



그녀는 전일슈퍼에서 먹었던 황태구이를 몇 번 이야기 했었다. 바삭바삭하게 구워낸 황태구이가 그녀의 입맛이 맞았던 모양이다.



“황태 같은 음식을 좋아하세요?”


“못 먹는 것 없이 뭐든 다 잘 먹는데 담백한 음식이 좋긴 해요. 물론 고기도 좋아합니다.”



내 꼴리는 대로 준비한 음식이었지만 그녀의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을 준비한 것 같아 막막막 뿌듯해졌다.



“남자는 쿨한 체 하는 종이지 쿨한 종은 아니다.”



김규항 선생이 며칠 전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 말. 딱맞다. ;;;;


저녁밥은 집에서 먹지 않을 것이므로 나물만 만들어 두고 집을 나서기로 결정했다. 우선 시금치를 끓는 물에 데치고 찬물에 헹궈 꼭 짠 뒤 진간장, 들기름, 참깨를 넣고 무쳤다. 시금치는 달고 고소한 맛이 있고 잡내가 없는 야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양념을 넣지 않고 무치는 것이 좋다.


웍.JPG

웍, 이미지 출처 링크



도라지는 웍에 해바라기씨 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은 뒤 물 두 스푼과 소금을 넣고 뚜껑을 덮어 스팀으로 익기를 기다리면 요리가 끝난다.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해 들기름을 조금 두르고 뒤적여 그릇에 담아냈다.


고사리는 약간의 누릿한 냄새가 나므로 달군 팬에 들기름을 둘러 볶으면서 향신즙을 조금 넣어 잡내를 잡고 쌀가루 푼물을 넣어 걸쭉하게 볶아줬다. 보통 들깨가루를 사용하는데 들깨가 집에 없어 찹쌀가루를 이용했다. 간은 국간장으로 해주고 파를 다져넣어 마무리 했다.


3색 나물이 완성되었다.


삼색나물.jpg



야채절임도 간간하게 소금기가 배어 아삭하고 맛이 좋았다. 물기를 꼭 짜 그릇에 담아두면 된다. 나머지 음식은 먹을 때 만들면 되겠다.


음식준비가 얼추 마무리 되었으니 청소를 해야겠다. 손님이다. 그것도 여자. 큼큼. 이불도 털고, 침대 시트도 갈아 끼우고 청소기도 돌리고 바닥도 물걸레질하고 창틀의 먼지도 털어냈다. 한 낮의 해는 무척이나 뜨거워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준비했지만 저녁이 되자 선선한 바람이 방안으로 불어왔다. 무릇 백로다웠다.


뜨거운 언니가 물었던가.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뭐냐고.


사랑하는 것은 기다리면서 가슴이 뛰고, 애가 닳고, 떠나보내며 무너져 내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애써 웃으며 손 흔드는 것이라면, 좋아하는 것은 “집 주소 갈쳐 줄게. 택시타고 와.”라거나 “멀리 안 나간다.”가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다.

주말이라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했다. 나는 혹시나 그녀가 탄 버스가 미리 도착해 낯선 터미널에서 기다리고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15분 미리 나가 있었다. 수많은 버스들이 터미널 안으로 속속 들어섰지만 그녀가 탄 버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지만 그녀가 탄 버스는 애수게 오지 않았다. 전주 터미널은 담배라도 마음 놓고 피울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서너 대의 담배를 피운 것 같다. 도착 예정시각이 15분이 지나서야 버스는 도착했고 어쩐지 낯설고 부끄러워져서 꺼벙하게 웃고만 서있었다. 어헝~



“오래 기다렸어요?”



롱스커트에 짧은 자켓을 입은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서 내려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앗. 손.손.



“아하...;;;아니효... 오래 기다리긴효~오. 쫌 전에 왔어요.”



“남자는 쿨한 체 하는 종이지 쿨한 종은 아니다.” 끙;;;


우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만났다 하면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듯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그러나 평소에는 전화 통화 한 번 하지 않고 2, 3일에 한두 번씩 문자메시지만 주고 받는다. 거의 매일 이메일 한 통씩을 주고 받으며 하루의 일과와 서로의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한다지만 겨우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면서 오늘 아침에 헤어진 오누이마냥 스스럼도 없고 특별히 말조심하는 것도 없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처음 악수를 나눌 때까지는 그 상황이 낯설었지만 그녀의 환한 얼굴과 다부진 말투, 스스럼없는 태도는 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냈고 대화의 맥을 잃지 않으려는 서로의 노력들이 더해져 즐겁고 유쾌한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전일슈퍼에서 북어와 갑오징어를 시켜 여러 병의 맥주를 마시고 난 시간은 새벽 1시에 가까워 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많이 나눴을까. 현실계를 벗어난 무수한 관념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시와 노래와 영화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질 때, 슬며시 롱스커트를 꼬고 앉으며 드러났던 하얀 종아리. 손가락의 움직임, 귓불의 귀걸이, 반짝이는 목걸리, 커스틴 던스트를 닮은 입술, 그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재잘거림, 차가운 맥주의 뜨거운 취기.


‘왜 이제야 만났을까요.’ 속으로 물으니 ‘지금의 우리가 아니었다면 서로 만날 수 없었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맥주 있어요. 집에 가서 더 마셔요.”



먹던 갑오징어가 남아 포장해서 집으로 왔다. 나물 몇 가지와 시골집에서 따온 풋사과 몇 알을 안주로 내 오는 동안 그녀는 방안을 서성이며 집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손님 온다고 청소도 한거에요?”


“아이~ 당연하죠. 손님오는데;;”



그녀는 술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뻔뻔하죠. 놀아 달라. 밥 달라. 재워 달라.”


“뻔뻔하긴요. 좋아서 하는 건데요. 내키지 않았으면 벌써 그만뒀을 일이에요.”


“밥 달라고 하는 나나, 그런다고 넙죽. ‘네. 오세요.’ 하는 당신이나...ㅋㅋㅋ”


“그죠. 웃기죠. 사실. 이 상황이 전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더욱더 비정상적으로 느껴져요.”



그녀는 코를 살짝 찡긋 하며 술상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뭐에요?”



풋사과.jpg



“풋사과에요.”


“사과가 왜 이래요?”


“시골집에 농약도 안 주고 거름도 안 주고 그냥 내버려 둔 사과나무가 몇 그루 있어요. 볼썽사납긴 한데 맛은 그럭저럭 괜찮아요.”



내가 사과 하나를 껍질째 먹어보이자 그녀도 한 알을 야금야금 갉아 먹으며 신기해하는 표정이 숨 막히게 귀여웠다.


‘저것을 어찌까’


수다는 새벽 세 시까지 이어졌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두 사람 모두 피곤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러다 또 밤새겠어요. 자고 일어나서 내일 마저 이야기해요.”



그녀가 먼저 털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마쳤다.



“거기 침대에서 주무세요. 저는 이쪽에서...”



설거지를 마친 나는 그녀에게 이부자리를 펴주고 양치질을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대바늘 어디 없나.... 거울의 나를 보며 그랬다.


‘그래야 마땅하다.’


양치질을 하고 방에 들어와 내 자리에 누웠을 때 그녀가 말했다.


“방바닥.... 등 배기지 않아요?”


“아.... 그르게요. 등이 쫌...” 


하며 곧장 침대로 들어가 그녀를 등 뒤에서 안았다.


착한 늑대란 없다. 눈치코치 없는 것들이나 이 상황에서 버팅기며 돌바닥을 고수하는 거다. 이와 같은 상황판단은 0.1초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화장실에서 다짐했는데...”


“무슨 다짐요?”


“그래야 마땅하다. 라구요.”


“이렇게 하는 것이요? ㅋㅋㅋㅋ”


“그.그르게요. 이렇게 하는 것은 시나리오에 없던건데...;;;”


“등 배겨요. 편하게 침대에서 주무세요.”



‘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


나는 그녀를 등 뒤에서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키스를 해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몸을 찾아 헤매다 잠이 들었다. 어색하지도 낯설지도 그렇다고 지독하게 탐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피부가 닿는 것이 편안할 만큼 밤공기는 선선했다. 그녀의 몸은 따뜻했고 나는 다음 날 아침까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 9시쯤 눈이 떠졌을까. 남쪽 하늘로 열려 있는 창문으로 따가운 햇살이 내리 쪼였다. 모든 아침의 햇살을 사랑해 줄 수 있지만 오늘만은 사랑해 줄 수가 없구나. 빼꼼이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맑은 날이었다.


내가 뒤척이자 그녀도 잠이 깼는지 내 손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 그녀는 어느 새벽엔가 일어나 옷을 입고 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나는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그녀의 살을 쓰다듬었다. 말랑거리는 가슴과 부드러운 배의 굴곡을 어루만지며 자연스럽게 그녀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른데 말이져. 5년 가까이 그러고 보내셨다는 분이 콘돔은 언제 준비하신 게에요?”


“;;;;;;;;;;;;;;;아....그게 말이죠. 제가...음... 쩌금 불순하긴 해요. 호호혹시나 해서...미리...하하하하;;;;”


“아.... 착한늑대 코스프레하신 거로군요. 그냥 바닥에서 잘 생각도 아니셨구만.”


“;;;;;;;; 아하하하하. 그렇다고 수도승처럼 지낸 건 아닐 테죠. 5년인데. 잠깐이라도 만난 사람이 없었겠어요. ;;;;”


“하긴. 그렇죠. 무튼, 남자답네요. ㅋㅋㅋㅋㅋ”



햇살이 침대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로 비쳐 드는 햇살을 손으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햇살은 계속 밀려 들어왔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쑥색 머플러를 압정으로 고정시켜 커튼을 만들었다. 그녀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카락을 뒤집어쓰고 잠들었고 나는 아침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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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어야죠. 밥 먹으러 왔는데....”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웃으며 물었다.



“아침은 뭐에요?”


“조제의 밥상. 후훗.”


“조제....흠... 기대되는데요.”


“좀 더 자고 있어요. 밥 되면 깨울게요.”



그녀가 잠든 사이에 나는 딸그닥 딸그닥 아침밥을 준비했다.


불려놓은 쌀을 밥솥에 안치고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다시 물에 불려 놓은 미역을 넣고 끓이다 미소를 풀어 넣고 오랫동안 끓였다. 계란을 풀어 계란찜을 준비했다. 본래 조제의 밥상에는 계란말이가 나오지만 밥이 되는 밥솥에 바지락젓국으로 맛을 낸 계란찜을 쪄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계란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역국도 끓고 밥도 되어간다. 계란에 물과 바지락젓국을 넣고 파를 다져넣은 뒤 향신즙을 조금 넣어 밥이 되어가는 밥솥을 열고 밥 위에 계란 그릇을 얹었다.


‘부드러운 계란찜이 되거라.’


어제 만들어 놓았던 나물을 접시에 담고 김치를 썰어 접시에 담았다. 국은 불을 줄여 뭉근한 불에 미역이 무르게 익기를 기다렸다. 냉장고에 감장아찌가 남아 있어 그것도 몇 조각 접시에 담았다. 오이와 당근을 썰어 접시에 담고 다 끓은 미역국에 두부를 썰어 넣고 불을 껐다. 밥도 다 되었고 계란찜도 잘 되었다.


밥솥의 계란찜.jpg



사진에 보이는 밥상은 최근에 재연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기 전까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녀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그녀를 위한 식탁의 연재를 결정했기 때문에 이전의 음식들은 사진에 남아있지 않다. 그 때는 밥상도 작았고 사진에서 보이는 그릇들도 없었다. 그녀가 없는 날에 그녀를 위한 식탁을 재연해 내는 일은 고역이다. 편지와 문자메세지 등을 바탕으로 그날의 식탁을 최대한 똑같이 재연하려 노력했다. 밥상과 그릇을 마련하게 되는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다. 이 이야기들도 나름 흥미로운 면이 있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밥상을 차렸다. 반찬을 하나씩 밥상에 올리고 국과 밥을 퍼서 밥상으로 옮겼다. 기분 좋게 잠이 깨지도록 만드는 것은 음악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장 좋은 것 같다. 맛있는 밥 냄새는 기분 좋게 눈이 떠지도록 만든다.


아침 1.jpg


아침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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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슬며시 이불을 내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밥 다 됐어요?”


“응. 다 됐어요. 지금 일어날래요?”


“네. 밥 먹어요.”



그녀는 이불을 걷어내고 밥상 앞에 앉았다. 그 순간 어쩐지 조금은 슬펐다. 어떤 이유에서 슬픈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밥상 앞에 앉아 잠시 밥상을 들여다보던 짧은 시간동안 슬퍼졌었지만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고 이런 저런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슬픔을 밀어내 멀리 사라지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밥 위에 이런 저런 반찬들을 집어 올려 주었다. 그녀는 특히 쌉쌀한 도라지나물을 좋아했다. 쌉쌀한 도라지나물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와~ 이거 쌉쌀한 게 정말 맛있어요.”라며 미소 지을 때 너무나도 예뻐 보여 그녀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다가 여기서 밥을 먹게 되었을까요?”


“그러게요. 운명을 믿진 않지만 이 밥상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맛들이 담겨져 있네요.”


“앞으로 당신을 만나는 날엔 김치에 밥만 내주더라도 내 손으로 차린 밥을 내어 드리죠.”


“이럴 날이 또 있을까요......이런 날이 또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만을 위한 밥상.... 근사해요.”



밥 위에서 쪄낸 계란찜은 부드러웠다. 바지락젓이 잘 삭아 비린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감칠맛을 더해 진한 맛을 내는 계란찜이 되었다. 미역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익어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갔고 국물은 개운했다. 부드럽게 입에서 씹히는 두부의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시금치나물은 달았고 고사리나물은 푹 물러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아삭한 야채 절임은 입맛을 살리기에 그만이었다. 그녀와 나는 아침밥이자 첫 번째 그녀를 위한 밥상을 반찬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 치웠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고마워요. 믿어줘서.”


“제가 고맙죠. 이렇게 뻔뻔한 부탁이 어디 있겠어요.”


“손이 참 작아요. 내 손이 너무 큰 건가?”


“크긴 크네요. 그 손. 발도 무지무지 크고. ㅎㅎㅎ”



우리는 서로의 발바닥을 맞대보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의 발은 내 손바닥보다 작았다.



“내 검지손가락 잡아 봐요.”



그녀는 내 검지손가락을 작은 손으로 꼭 잡았다.



“어릴 때 아빠 손이 무지무지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아빠도 없고 내 손이 얼마나 큰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내 손이 아빠 손 만 해진 것 같아요. 내가 아빠 검지손가락을 잡았을 때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내 검지손가락을 꼭 잡고 웃고 있었고 나는 내 검지손가락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느낌을 짐작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렇게 이상한 딸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손에 커피 한 잔을 들려주고 설거지를 마쳤다. 그녀는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머플러가 그녀 옆에서 팔랑거렸고 그녀의 머리카락도 나플거렸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보았다. 작은 어깨였지만 항상 바른 자세로 허리와 어깨를 펴고 있어서 여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멀리 기린봉을 바라보며 나지막해 말했다.



“항상 이렇게 이 집에서 만나면 좋겠어요. 언젠가 서로 조금 지겨워지면 그 때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소풍도 갈 수 있을 거에요.”


“그 날이 올까요?”


“그 날이 오겠죠. 무엇이든 익숙해지는 시간은 오기 마련이니까요.”



나는 그녀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받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다시 물었다.



“우리가 싸우게 되는 날도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싸우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쩐지 그럴 것 같아요.”



나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헤어질까요?”


“아마도 서로에게 눈곱만큼의 부담이라도 된다 여겨지면 단호하게 떠날 테죠. 당신도 그럴 것 같고 나도 그럴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촉이 좋아요. 내 스스로가 상대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아주 빨리 눈치 채는 스타일들인 것 같아요. 아마도 내가 당신에게 부담이 된다 여겨지면 내가 먼저 떠날 거에요.”


“그래요.”



하늘도 맑았고 공기도 상쾌했다. 산과 들로 떠나는 소풍이 아니어도 소풍을 나온 기분이 들었다.



“소풍 안가도 소풍 온 기분인데요.”


“저에겐 지금이 소풍인데요.”



나는 진심으로 바랬다. 언제든 소풍을 오듯, 마실을 다녀가듯 즐겁게 이곳에 머물다 돌아 가시기를.



“서로가 지겨워지기 전까진 이 집에서 벗어나지 말아요.”



그녀는 멀리 산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Filipe Melo · Ana Cláudia // Spiegel im spiegel (Arvo Pärt)



영화 <게리>의 두 사람이 떠올라 노트북을 열고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을 틀었다. 그녀는 이 음악이 좋다고 했다. 빗방울이 피부에 똑똑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이 음악을 들으며 그녀의 등과 엉덩이와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짚어보았다.


얼마 전 사진이 필요해 남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이 작은 방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밥을 해 먹이고 수다를 떨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서로에게 시를 읽어주고 사랑을 나누다 시간이 다 되면 그녀를 돌려보낸다. 아직까지는 이 공간에서의 만남이 지루하지 않다. 그녀의 말대로 언젠가 조금 나른하고 지루해지면 소풍을 다녀오면 될 테지.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사랑을 나누다 다시 잠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뒹굴거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이 세상에 또 있던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두시가 조금 넘었을까.



“출출하지 않아요?”


“아직 그렇진 않은데...”


“오차즈께?”


“오차즈께.... 아... 오차즈께 씨스타즈!?”


“응. 오차즈께 씨스타즈 ㅋㅋㅋㅋ”


“그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제의 밥상과 심야식당의 크로스오버. 점심밥은 차에 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오차즈께에 삼치구이 한 조각과 연근조림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려 뒀던 연근을 끓는 물에 삶아 내서 조림장에 조리고 말려 뒀던 삼치를 가스불에 구웠다.


가스불에 구이를 할 때 사용하는 이 석쇠는 무척 유용하다. 기름에 튀기지 않아도 훌륭한 구이를 만들 수 있으니 사용들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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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은 너무 쫀득한 것보다 아삭한 것이 좋아 오래 익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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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중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이 선물한 녹차가 남아 있었다. 그 여학생 참 재밌었는데... 케이터링회사에 다닐 때 그 회사에서 운영하는 한 대학의 기숙사식당 조리 책임도 겸하고 있었다. 중국유학생들이 많았던 학교였다. 어느 날 제육볶음을 배식하는데 여학생이 나를 보고 ‘탕’,‘탕’ 그러는 거다.



“탕?”


“쓰, 탕”


“더 줘요? 더?”


“아니...음... 탕...물...”


“탕물?... 아... 국물?”


“네네. 국물.”



보통 배식을 하면서 국물은 남기고 고기를 주로 올려 줬었는데 중국학생들은 걸쭉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을 좋아 하는 것 같았다. 여학생에게 국물을 떠 주자 다른 학생들도 국물을 달라고 찾아왔다. 그래서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유학생에게 걸쭉한 국물이 들어간 요리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그것을 좋아하지만 그동안은 중국학생들을 너무 무시해서 구걸하지 않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뒤로 내가 없을 때에도 음식을 할 때 자작하게 국물을 많이 잡아 중국 학생들에게 떠 주라는 당부를 했고 유학생들은 그것이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또한 토요일, 일요일에는 기숙사에 남아 있는 학생이 대부분 중국학생들 이어서 마파두부와 같은 걸쭉한 탕요리를 해 주도록 당부했는데 그것도 고마워했었다. 한 학기가 마무리 되고 방학하는 날 그 여학생과 여러 명의 학생들이 찾아와 녹차와 보이차, 잘 모르는 중국술 한 병을 들이밀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돌아갔다. 그 국물이 뭐라고. 멀리 타국으로 떠나오면 그런 사소한 것에 감동하나보다.


그 국물 값으로 받은 녹차가 조금 남아 있었다. 뜨겁게 물을 끓여 녹차를 우려냈다. 그릇에 밥을 담고 녹차를 부어 담았다. 그 위에 명란젓 한 조각을 올렸다. 삼치구이. 연근조림, 마늘쫑장아찌와 함께 오차즈께를 밥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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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빠가 물 말아 먹는 거 무지 좋아했는데. 어릴 때는 왜 밥을 저렇게 먹나 싶었는데 나이드니 입맛 없을 때 물 말아 먹는 것 만한 게 없더라구요.”


나는 명란젓 껍질을 발라 그녀의 밥 위에 올려 줬고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숭늉이나 보리차 같은 걸루 물 말아 먹잖아요. 한 번도 녹차에 말아 먹어 본 적은 없는데 생각보다 맛있다~ 명란젓하고도 잘 어울리고. 오차즈께 시스타즈. 고년들이 뭘 아는구만...


“ㅋㅋㅋ 고년들...”



나는 그녀의 밥숟가락 위에 연근조림도 하나 올려 주었다.



“연근조림이... 아삭해요??”


“아삭한 게 좋아요? 쫄깃한 게 좋아요?”


“아삭한 연근조림은 처음 먹어봐요. 쫄깃한 것도 좋은데 약간 찐득한 느낌이 있잖아요. 근데 이렇게 아삭하게 만드니까 찐득하지도 않고 식감이 참 좋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오물오물 씹는 작은 입만 보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지...


삼치구이를 간장에 찍어 입어 넣어 줬다.



“앗. 이건 쫌 비리다.”


“그럼. 다시”



나는 삼치살을 떼어 간장에 푹 담가 그녀 입에 넣어줬다.



“음... 쫌 전보다 훨 나은데요. 간장 향이 좋다. 생강?”


“네. 생강. 장에 나갔다가 구강이 보여서 샀어요. 비린 맛에는 역시 생강이죠.”


“그래도 뒷맛은 역시 비리네요. ㅎㅎ;;;”


“그쵸. 아무래도 삼치가 워낙 비린 생선이라. 이건 내가 먹을게요.”



나는 삼치에 밥을 먹었고 그녀는 연근조림에 밥을 먹었다. 그녀는 충주호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절대 깡촌녀였다.



“민물고기는 비리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바닷고기 중에 몇몇은 비려서 먹기 곤란한 게 있어요. 보통 서울사람들은 민물고기를 비리다고 하던데.”


“어렸을 때 입맛이 평생가긴 하나 봐요. 저는 입맛 없을 때 비~릿한 황새기젓 같은 게 있으면 밥이 잘 넘어가거든요. 반면 민물새우탕 같은 건 비려서 싫어해요.”


“저런.... 민물새우탕... 맛난데...;;;”



이렇게 서로의 어린시절 음식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두 시간. 세 시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고향 음식이야기, 초 중시절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갔다.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에 드러누워 뒹굴거리고 주전부리에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는 시간들이, 시간들이, 시간들이.... 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는 시계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아쉬워했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닌 것이 분명했지만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았고 사랑인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올 날을 기약하지 못했지만 지금 최선을 다해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저는 내일을 기약해 줄 수 없어요. 그렇지만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 보내려고 노력해요.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 줄 수 없지만 다시 만난다면 그 날을 당신과 가장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에요. 미안하지만 미안하다고는 말 안할래요.”



자명한 말로 들렸고 그녀가 무조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돌아가는 그녀의 등 뒤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무심하게 그 자리에 서 있으면 그녀는 떠날 것이고 그 자리에 서 있으면 그녀는 다시 돌아 올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한밤중이겠어요. 배 안고파도 한 술 뜨고 가세요.”


“또? ㅎㅎㅎ”


“나물 남은 거에 밥 비벼 먹게요. ㅋㅋㅋ 계란은 반숙 완숙?”


“저는 무조건 완숙. ㅋㅋㅋ”



심심한 콩나물국을 끓이고 남은 나물과 계란후라이, 고추장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녀는 밥을 준비하는 동안 머리를 감고 처음 입고 왔던 옷을 차려입고 앉아 있었다.


비빔밥 1.jpg


비빔밥 2.jpg



“반바지랑 티셔츠는 여기 둘께요.”


“음..... 네.......”



비빔밥을 먹고 그녀의 손에 들려 보낼 몇 가지를 챙겨 담았다. 도라지 몇 뿌리와 구강 한 주먹. 햇대추 몇 알을 담아 차로 끓여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명란젓 한 통도 남아 있어 쇼핑백에 담았다. 못난 풋사과도 두 알 담았다. 엄마가 가을걷이한 참깨가 넉넉해 그것도 한 통 담았다. 그녀의 손에 이것저것을 담은 쇼핑백을 들려 전주역으로 향했다.


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고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미소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전주역 대합실에서 악수를 나누고 힘 빠지는 다리를 겨우 버티며 잘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돌아서 플랫폼으로 향하다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잠시 후 사라졌다. 언제 오든 여기로 다시 올 것이므로 나는 돌아서서 전주역을 빠져나왔다.


그 주의 금요일. 벙커에서 걸신이라 불러다오 추석특집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시골집에 농사일이 많아 갈 수 없다고 이야기 했지만... 흠흠;; 엄마 미안. 서울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벙커원 매니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방송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

엄마, 강헌쌤, 이종한 횽 ;;; 저는 팔불출입니다. 네. 쩝 ;;;





레시피



된장미역국


멸치 혹은 가스오부시 다시물

미역 한주먹

적미소 2T

두부1/2모

국간장


마른 미역은 2시간 이상 물에 불려준다. 끓는 다시물에 불려 놓은 미역을 넣고 한 소큼 끓고 나면 된장을 풀어준다. 된장을 풀고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미역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20분간 끓인다.


간이 싱거우면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두부를 작은 크기로 썰어 국에 넣고 불을 끈다.


뱀빨


정통 미소장국을 끓일 경우 가스오브시나 가스오브시 간장이 적당하지만 멸치와 국간장으로 맛을 내는 것도 좋다. 된장미역국은 국내에선 생소한데 생각보다 맛이 매우 좋다. 개운한 미역국물과 된장이 만나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맛을 낸다. 된장냄새가 싫다면 향신즙을 넣어주면 된장냄새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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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찜


계란 2알

바지락 젓국 2T

물 1/2컵

다진 파

향신즙


계란을 풀고 바지락 젓국, 물, 향신즙을 넣고 다시 저어 준다. 계란을 저으면 거품이 생긴다. 거품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다진 파를 올린다. 밥이 되기 2분쯤 전에 밥솥을 열고 계란물을 넣고 밥이 뜸 들때까지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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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빨


일식계란찜에는 가스오브시 육수를 넣어 맛을 내지만 바지락젓국만으로도 진한 감칠맛을 낼 수 있다. 일식에서 꽃어묵과 쑥갓을 얹어 색과 모양을 내지만 맛은 파를 넣은 것이 더 좋다. 요즘은 보온 밥솥보다 압력솥이 많아 이처럼 계란찜을 할 수 없다. 뚜껑 열었다가는 뚜껑 열린다. 찜솥이 있다면 찜솥에 올려 3분 끓이고 10분 뜸을 들이면 부드러운 계란찜이 되고 찜솥이 없다면 냄비 바닥에 삼발이를 올리고 중탕을 하는 방법도 있다. 중탕을 할 때 물이 보글보글 끓게 되면 계란 그릇이 넘어질 수 있으므로 약한 불에서 조리해야 한다.


계란찜은 너무 오래 익히면 수분과 단백질이 분리되어 계란이 뒤집어 지거나 사이사이에 구멍이 생긴다. 시간을 정확히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이 자바라


가장 기본적인 카빙이다. 기본적이지만 비주얼이 훌륭하다. 손님들이 꽃당근은 안 먹어도 자바라 오이는 잘 먹는다.


사진처럼 젓가락 두 개 사이에 오이를 끼우고 사선으로 칼집을 내 준다. 칼집이 끝까지 들어갔으면 뒤집어 칼집을 넣어준다. 대각선 방향이 엮이기 때문에 오이가 끊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오이 절임하듯 소금을 뿌려주고 간간히 굴려주면 오이자바리 절임이 된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냉국이나 샐러드, 가니시용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오이자바라 레시피.jpg




연근조림


연근 500g

식초 2T

조림장

간장1/3컵, 찹쌀엿 1/3컵, 청주1/3 컵, 매실액 2T, 쯔유 2T, 생강즙 1t


연근의 껍질을 벗겨 썰고 물에 담가 녹말을 제거해 준다. 끓는 물에 식초 2T를 넣고 10분간 삶아 준다. 연근이 삶아지는 동안 분량의 조림장 재료를 넣고 끓여준다.


연근이 삶아지면 조림장에 연근을 건져 넣고 약한 불에 졸여준다. 중간 중간 조림장을 끼얹어 주면서 국물이 졸아들기를 기다린다.


연근조림 (2).jpg



뱀빨


식초를 넣어 연근을 삶으면 떫은 맛이 나지 않는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연근조림을 만들고자 한다면 삶는 시간을 20분~30분간 늘려주면 된다. 쯔유는 우동이나 메밀국수 국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농축액인데 가다랑어 향이 좋아 대놓고 사용하는 불량식품중 하나다. 이것이 싫다면 육수를 사용하는 것이 좋고 간장의 양을 조금 늘리면 된다. 


조림을 할 때 간장이 졸아들면서 좋지 않은 냄새를 낸다. 이 냄새를 잡아주는 데는 생강즙이 좋다. 간장 누린내를 좋아하는 식성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식성이라면 생강즙을 빼시라 ;;;;;




삼치구이


삼치 한 마리

소금


삼치포를 뜨기 곤란하면 삼치필레를 구입하면 된다. 삼치 필레의 옆줄에도 잔가시들이 박혀 있다. 옆줄을 손가락으로 슥 밀어보면 오돌톨톨한 가시가 느껴진다. 그 가시들을 핀셋으로 잡아당기면 빠진다. 광어나 서대, 갈치 같은 넓적한 생선 외의 거의 모든 생선은 옆줄에 가시가 있다. 이것 때문에 목걸리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예쁜 여친 목걸려서 캑캑거리는 꼴 가슴 아플 것 같으면 정성들여 가시를 제거하시라. 


소금은 식성에 맞게 뿌려주면 되는데 굵은소금 한 줌 정도면 적당히 간이 밴다. 앞뒤로 소금간을 해 줄 필요는 없고 살 쪽에만 소금간을 하면 배어들게 되어 있다. 채반에 잘 펴서 바람 잘 드는 곳에 한나절 정도 말리면 꾸들꾸들해진다. 대구나 명태도 이렇게 손질해 구이를 할 수 있다.


꾸들꾸들하게 마른 생선은 연근조림의 조림장으로 조림이 가능하다. 연근조림과 같은 방법으로 조림을 하면되는데 생선을 조릴 때는 향신즘과 생강즙을 조금 더 많이 넣어주는 것이 좋다.


그녀가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잖아? 그러면 소금을 뿌리기 전에 생강즙과 레몬즙을 섞어 생선살에 발라주면 비린내가 한결 가벼워진다. 비린내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차차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삼치레시피.jpg




냉콩나물국


콩나물200g

물 6컵

소금 2t

향신즙 1t


콩나물을 깨끗이 씻는다. 끓는 물에(반드시 끓는 물에) 콩나물을 넣고 뚜껑을(반드시 뚜껑을)덮는다. 올라오는 김 냄새를 맡아 본다. 비린내가 나지 않고 고소한 냄새가 나면 뚜껑을 열고 소금과 향신즙을 넣고 휘 저어준다.


불을 끈다. 차갑게 식힌다.


콩나물국.jpg



뱀빨


개운하고 깔끔한 냉콩나물국을 끓이는 것은 매우 간단하지만 의외로 어렵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 가지 것을 지키지 않으면 비린내가 난다. '끓는 물'과 '뚜껑'을 지키라. 너무 오래 끓이면 콩나물이 흐물거려서 맛을 버린다. 짧게 끓여라. 뜨거운 콩나물국은 아무리 마셔 봐도 맛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소금을 많이 넣게 된다. 차가워지면 소태국이 된다. 물 여섯 컵에 소금 2티스푼은 맥시멈이다. 이보다 더 넣으면 짜진다. 끓는 콩나물국에 소금 2t를 넣고 맛을 보면 그렇게 싱거울 수가 없지만 식고 나면 개운하고 삼삼한 맛이 일품이다. 뜨거운 음식은 짠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 뜨거운 짬뽕이 짜다? 졸 짠 거다. 









Athom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