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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7. 월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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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80년대 초 민주화 운동의 중심축이었던 김영삼의 민주화추진 협의회, 줄여서 민추협에 참여했다. 경상도 사람이지만1980년 광주를 체험하고 민주화 투쟁을 해야겠다면서 무작정 김영삼을 찾아갈 정도의 열정이었다. 그리고는 YS 에게서 직접 미행 따돌리는 법 등 민주 투사로 사는 법부터 배웠다.

 

그렇게1985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가 됐고 87년 대선에서는 통일민주당 선거대책본부 재정 국장을 역임했다. 1951년 생이니 30대 중반에 하던 사업을 버리고 서슬퍼런 5공 치하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 상도동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젊은 인재였던 거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지난 2005년에는 민추협동지회 회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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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의 한 컷. 당시 통일민주당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총재와 고문 자격으로 함께 만들었다.

오늘의 주인공도 실은 이 사진 속에 있다. 정답은 아래에.

 

 

그랬던 이 분은 30년이 지난 14일에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적화 통일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당시 무능하고 부패했던 우리 정치권을 뒤집어 혁명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5.16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라.”

 

“만약 실패했다면 역사의 죄인이 됐겠지만 그러나 우리나라가 정말 잘 됐지 않느냐.”

 

“물론 우리 국민이 좀 억압을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북한 경제를 따라 잡아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과연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을 잘못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장처럼 이승만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어야 할 정권인가. 이제 역사를 재평가 할 시점이 왔다.

 

교학사 교과서도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교과서보다는 긍정적 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교과서

 

 

글타. 그의 이름은 김무성이다. (정답: 사진 속 김영삼 뒤에 뒤, 한쪽 눈만 보이는 자가 그이)

 

 

 


머 이재오나 김문수도 있고, 민주화 운동하고 노동운동했던 이들이 수구로 돌아선 예는 그리 적지 않다. 이들도 간간히 박정희 등과 관련해서 나름의 개드립을 쳐 왔지만 이번 김무성의 경우는 무게가 좀 다르다. 왜.

 

그건 그가 이 나라의 역사관이 본격적으로 뒤집어지기 시작한 현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가히 역(逆)민주화 시대 세습 정권의 최고 실세라 할 만하다. 일부에서는 ㅂㄱㄴ 경선 패배 후 엠비 정권 하에서 원내대표 맡은 걸 근거로 그를 비박계로 분류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김무성은 아주 현실적인 계산 하에서 엠비 정권에 참여해 ㅂㄱㄴ를 통한 정권 재창출의 틀을 다진 사람이다.

 

그래서 현역 정치인 중 정치력으로는 따를 사람이 없다는 평을 듣고, 이런 바탕하에 차기 당권은 물론 대권 주자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기억들 하시겠지만 얼마전 철도파업 상황에서도 그의 위력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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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며 항전의 결의를 드러냈던 철도노조는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설립 조건으로 싱겁게 파업을 철회했고, 그 협상의 중심에는 실세 김무성이 있었다.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민주화 운동 배경을 전면 부정함은 물론, 우리가 극복해 온 민주주의의 성과마저 전부 뒤집는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더 무서운 점은 이전에 나온 이넘저넘의 이런저런 말들에 비해 이번 그의 언사는 훨씬 구체적이고 종합적이라는 점이다. 박정희, 이승만은 물론 교학사 교과서 옹호를 통해 일제강점기까지도 우리의 ‘긍정적’인 역사에 도매금으로 포함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우원이 굳이 그런 김무성을 걍 욕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봤자 입 아프고 열분들도 뉴스 봐서 다 아는 이야기다. 다만, 기왕 말 나온 김에 김무성 등이 설파하는 저런 주장들이 왜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를 함 짚고 넘어갔으면 싶은 거다. 혹시라도 계속 듣다 보면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의심하는 넘들이 나올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 참에 이와 관련된 기본 개념과 사실에 대해 전반적으로 접근을 함 해 보자꾸나. 주변에 저런 소리 하는 넘들하고 말싸움이 붙어도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하는 법.

 


 

 

편의상 앞에 열거된 순서대로 이야기를 하자.

 


1) 당시 무능하고 부패했던 우리 정치권을 뒤집어 혁명을 했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는 당시 정권이 정말 무능하고 부패했었는지, 두 번째는 박정희가 한 그것이 과연 혁명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다.

 

일단 첫 번째부터. 박정희가 ‘뒤집은’ 제 2공화국은 1960년 7월 29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채 1년이 지속되지 못했던 정권이다.(글타, 생각보다 더 짧다.) 그럼 그 1년 동안 이승만 정권을 능가하는 초유의 부정과 무능, 부패가 이 땅에 창궐했었단 말인데,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했을까.

 

당시 우리는 3.15 부정선거를 통해 그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대통령제 대신 의원내각제를 새로 도입했었다. 새 시스템이 어느 정도라도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당근 시간이 필요하고, 일정 기간 약간의 혼란과 의견 대립은 있을 수 밖에 없다. 머 그런 상태가 몇년 계속돼서 실제로 나라가 파탄 상태에 놓였다면 모르겠지만, 1년도 참고 기다리지 못한 건 좋게 봐줘도 군인 특유의 일사불란에 대한 조급함일 뿐이다. 나쁘게 본다면 물론 무식한 권력욕이고.

 

사실 2공화국 때는 민주적인 제도가 많이 도입됐었다. 교직원 조합과 노조가 설립됐고 최초로 평화 통일론이 대두됐으며 지방자치제는 물론 사법부의 선출제도도 준비되고 있었다는 점, 알고들 계시냐. 이 모든 선진적인 제도들이 5.16에 의해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일부나마 다시 시행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했다. 나아가 박정희가 그토록 자랑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조차 실은 이때 이미 준비됐던 거였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초기의 경제 관료들은 대부분 장면 정부의 인물들이었다.

 

둘째로 혁명 운운. 이거야 말로 진정한 개드립인데, 박정희가 벌인 일은 국제 정치의 기준으로 전형적인 쿠데타고 이 점은 해석의 여지조차 없는 상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혁명은 민중(국민, 시민 등 머라고 불러도 좋다.)의 참여가 절대적인 전제이기 때문이다.

 

열분들도 잘 알다시피 5.16은 철저한 군부대의 작전이었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장교 250명과 일반 병사 3,500명이 동원됐고, 민간인이라고는 예비역 몇 명이 가담했을 뿐이다. 당시 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체제를 뒤집어야 된다는 국민의 목소리도 높지 않았고, 5.16으로 만들어진 체제에 국민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바도 없다. 이런데 혁명은 무슨 개뿔?

 

모든 단어와 용어에는 그 말이 가진 역사성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힘있는 자들이 혁명이라고 부른다고 쿠데타가 혁명이 되는 거면 개가 호랑이고 뱀이 용이다.

 


2) 박 전 대통령이 5.16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라. / 만약 실패했다면 역사의 죄인이 됐겠지만 그러나 우리나라가 정말 잘 됐지 않느냐.

 

높으신 양반이 굳이 생각해 보라길래, 우원도 박정희가 5.16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울나라가 어떻게 됐을까 함 생각해 봤다.

 

모르겠다.

 

대체 누가 그 답을 안다는 걸까? 혼란을 틈타 적화통일 됐을 거라고들 하던데, 그건 어떻게 아는데? 그런 일의 가능성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없진 않겠지만, 당시 객관적인 정황은 사실 별로 그런 쪽이 아니었다. 4.19 이후 미국이 울나라 상황을 예민하게 모니터링할 때라 되려 북한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안보상의 문제는 하극상과 월권으로 군대를 함부로 움직인 쿠데타 세력이 초래했다. 그건 전두환의 12.12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김무성은 5.16 덕에 우리가 ‘정말 잘 됐다’고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단정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앞서도 말했듯이 2공화국은 너무 단명해서 어떤 가능성이 있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나라를 정말 말아먹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단 말씀이다. 근데 도대체 뭐하고 비교를 해서 더 잘 되고 안 되고를 판단할 수 있냐?

 

또 지금 우리 상태가 정말 잘 돼 있긴 한 건지도 잘은 모르겠다. 아 물론 그 때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된 건 분명하다. 60년대 초 비슷한 상황에 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서도 지금 우리는 확실히 더 부자다. 근데 한편으로 이상한 건 이 문제 관련된 저쪽 사람들의 절라 단선적인 관점이다. 저 양반들 중에도 개인적으로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꽤 있을텐데, 왜 국가관에는 그게 전혀 적용이 안되는 걸까? 그 둘이 그렇게 다른 거냐.

 

글고 이 ‘잘된 것’의 기준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1인당 GDP는 또 얼마나 사기냐는 거다. 작년 기준으로 23,000불이라고 하는데 이러면 4인 가족 기준으로 거의 10만불 수입이 있어야 된다. 다시 말해 애들 둘 빼면 부부가 합쳐 1억을 벌어야 여기에 부합된다는 소리다. 그럼 열분들 중에 지금 이만큼 수입 올리고 있는 사람 손좀 들어봐라.

 

글타. 열분들이 믿고 있는 그 잘난 GDP 는 소수 부자와 재벌들이 벌어들이는 엄청난 돈의 그림자일 뿐이다. 열분들의 현실이 아니라구.

 

재미삼아 물가 상승분하고 함 비교해 보자. 2공화국 때인 1960년 짜장면 한 그릇은 20원이었다. 지금은 적어도 4천 원으로 200배 상승했다. 같은 시기 울나라 일인당 GDP는 출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00불이 좀 안 됐다. 거기에 200배를 곱하면 2만불.

 

…음?

 

머 오해하진 말자. 이건 좀 기묘한 예고, 우원 어릴 때하고 비교하면 지금 엄청 잘 살게 된 건 사실이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아니다. 다만 위정자들이 광고하고 우리가 신화로 받들듯이 그렇게 엄청나기만 하냐면, 과장된 면도 없지는 않다는 거다. 우리 GDP가 수백 배 오른 건 사실이지만 1960년대 초에는 세계 최부국인 미국의 GDP 도 2천 몇백 불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70년대말까지 1달러는 500원이 채 안됐었다.

 

그리하여 1960년의 울나라 일인당 GDP를 2,000년의 미국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1,110 달러 정도가 되는데, 이건 그해 100개국 중 46위다. 한편 박정희 정권이 끝나는 1979년에는 3,321 달러로 3배 정도 올랐는데 순위는 127개국 중 49위다. 조사대상 국가가 100개에서 127개로 늘어났으니 실제로 떨어진 건 아니겠지만,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신화와 기적 만큼의 모양새까지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렇듯 울나라 경제발전의 신화 속에는 과장, 환율, 돈 가치 변화, 세월 등이 합쳐 만들어내는 환상이 어느정도 존재하는 거다. 이건 아마 첨 아셨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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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미국 달러 기준으로 환산한 박정희 집권 기간의 성적표.

출처는 여기.



돈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그럼 지금 우리는 60년대보다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경제 외에 나아진 것들도 많다. 하지만 그게 과연 박정희와 5.16에 빚을 지고 있는 건지는 회의적이며 인권과 민주주의 등 되려 방해받은 부분도 많다. 그리고 나아진 면들만 생각하더라도, 50년이라는 시간 자체의 힘을 감안해야 된다. 그렇게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5.16 무렵인 1960년대 초에 흑인은 참정권도 없었는데 지금은 자그마치 대통령이다. 세월이 사람들을 깨어나게 한 결과고 이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요컨대 5.16이 없었다면 지금 어떤 세상이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리고 어쩌면 지금보다 GDP는 좀 낮은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만, ‘잘 되고 못 되고’의 문제는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말씀이다. 총체적인 행복감이나 사회적 만족도의 측면에서라면 얼/마/든/지 더 잘 됐을 수 있다.



3) 물론 우리 국민이 좀 억압을 당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경제가 북한 경제를 따라 잡아서 오늘날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아 제발. 의도가 뭐던 간에 환멸 느껴지게 이런 소리 좀 하지 말자. 뒤에 ‘경제가 북한 경제를 따라잡아서’ 운운하는 소리는 앞에서 한 이야기들에 다 포함되니 넘어가고, 이 문장에서 우원은 두 단어를 문제삼는다. ‘물론’ 하고 ‘좀’이다.

 

여기서의 물론은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뜻으로 쓰였다. 아래의 예제를 보자.

 


물론 천연루비 7개를 써야 했지만 적외선 굴절기를 완성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야.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적외선 굴절기를 완성한 거다. 천연루비 7개를 쓴 건 거기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고, 비싼 보석임에도 불구하고 적외선 굴절기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그만인 사소한 것일 뿐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위 김성모, 아니 김무성의 발언은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국민이 받은 억압은 사소한 문제일 뿐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에다가 ‘좀’까지 넣어서 그 억압의 양과 질도 실은 별거 아니었다는 뜻마저 들어가 있다. 이게 민주공화국의 위정자이자 차기 여당의 당권주자, 나아가 대권주자가 될 지도 모를 사람의 인식 수준이다. 가히 가공할 현실이 아닐 수 없다.

 

 

4) 과연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을 잘못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장처럼 이승만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어야 할 정권인가. 이제 역사를 재평가 할 시점이 왔다.

 

이승만 정권이 초기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독재의 획책과 3.15 부정선거에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일들은 이승만이라는 사람 및 그 정권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길게 쓸 수는 없지만 알려진 행적만으로도 그가 일제감정기 독립운동세력을 대표하거나 해방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충분한 자격과 인성을 가진 사람인지 의문이 있는 건 분명하다.

 

허나 우원이 신경 쓰이는 건 좀 다른 각도다. 김무성의 저 말 속에는 건국 대통령으로서 이승만 복권의 의지가 보이는데, 지금 분위기상 그렇게 가면 단지 건국 관련에만 해당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이승만을 살리려면 4.19를 건드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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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정미홍은 3.15 부정선거를 ‘작은 실수’라고 불렀다.

그럼 거기에 항거한 4.19는 뭐가 되는 걸까?

최루탄이 눈에 박혀 죽은 김주열과 경찰의 발포로 죽은 사람들은 뭐가 되고?

 

 

결국 그가 말하는 이승만 재평가는 5.16을 혁명으로 격상하는 것도 모자라 4.19를 폭동 비슷한 걸로 격하시키자는 말이 된다. 지금은 함의된 정도지만 이런 식이면 조만간 구체적 표현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서세원이나 정미홍, 변희재 따위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김무성은 실세다. 진짜 힘을 가진 자다. 그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에이그 하면서 혀만 차고 있을 수는 없는 거다.

 

 

5) 교학사 교과서도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교과서 보다는 긍정적 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교과서다.

 

‘긍정적 사관’이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지칭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교학사 교과서 문제의 상당 부분은 친일 관련이다. 만약 그가 일제강점부터 시작해서 이승만을 관통해 박정희까지 모두 긍정적인 역사라고 보고 있다면 이건 참 무서운 일이다.

 

이런 역사관은 수구우익 특유의 시각으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주류가 한 일은 전부 잘 한 일’이라는 관점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깊이 빠진 사람의 눈에는 그 주류가 왕이든 일본 제국주의든 미국정부든 독재자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별 다를 바 없다. 힘을 가진 자가 곧 법이며 그 힘을 인정하고 그들이 만든 질서를 현실에서든 역사에서든 받아들이는 것이 ‘긍정적’ 자세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그 힘에 문제제기하고 항거하는 자들은 불평분자, 혼란 야기자, 나아가 빨갱이, 반역자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건 전형적인 파시스트의 세계관이고, 김무성의 발언들 전체를 관통하는 사상도 바로 이런 파시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때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그가, 아니 울 나라 우익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따로 연구할 문제지만 우리는 일단 그들이 하는 소리가 얼마나 공허하고 그릇된 건지, 어느정도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이건 좌와 우, 혹은 ‘다름’의 문제가 아니다. 왕과 종교의 절대적 권위에서 시작해서, 넓은 의미에서의 봉건적, 전체주의적 세계관은 인류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무엇이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자꾸 그리 회귀할려는 속성을 갖기 때문에 헌법과 권력 분산 등 온갖 시스템에서부터 시민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그걸 견제하고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거고, 이게 어느 선 이상 구현된 세상이 바로 근대 사회다. 따라서 지구상의 모든 ‘선진국’들은 이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다.

 

 

분명히 말하지만, 다름이나 이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등은 시대를 풍미(…)한 독재자였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이렇게 노골적인 이야기는 대놓고 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심지어 자기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진의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 말만 놓고 본다면 적어도 죽은 후 역사 속에서 인정받을 욕심은 없었던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제 후세 사람들이 일어나(그의 유지를 저버린 채) 무능한 따님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한때 독재에 항거해 싸웠다는 자들이 나서서 그의 무덤을 꽃으로 단장하고 있다.

 

불현듯 드는 생각이다. 과연 이승만이나 박정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그렇게 가는 걸 원할까? 특히 저들이 주장하듯 그들이 실은 괜찮은 사람들이었다면 말이다. GDP가 3만불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 나라가 다시 자신들이 통치하던 시대의 정신적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걸 구천에서라도 보고 싶을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어쩐지 아닐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무성 의원과 그 비슷한 분들께 한마디 하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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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시간에는 <사회의 품격> 2편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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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