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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텅 빈 거리에서) 이라며, 공중전화 기본요금이 20원이던 시절(필자가 돌잔치도 못 했을 시절)에 데뷔한 윤종신. 이때만 해도 윤종신이 이름 그대로 종-신할지는 누구도 몰랐다. 알 사람은 다 안다. 그의 음악사에는 묵직한 든든함을 주는 '근본'이란 게 결여되어 있음을.


윤종신은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아이디어로 편곡을 구성해 낼 수 있는 재기발랄함을 지녔다. 라디오에서 선배 작사가들의 작사법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주류의 가사법을 관통하면서도, '몰랐었어'(너의 결혼식)로 시작하는 도치법으로 기존 개념을 파괴한다. <월간 윤종신>으로 음악 외길을 걷는 것 같지만, 등용하는 뮤지션들은 하나 같이 핫한 사람들이다. 아, 물론 미스틱 소속 신인들을 빼면. 미스틱은 3대 기획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메인스트림에 끼지 못하지만, 윤종신이 방송계 포지션을 적극 활용한 덕에 이름을 내비치고 있다. 어떤 인간도 한 가지의 장르로 규정할 수는 없는 존재이나, 일종의 경향성이란 것을 가지게 마련인데 윤종신은 '기회주의적'이란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널뛰기적 성향이 있다. 독특한 그의 위치만큼이나 독특한 캐릭터다.


윤종신 케릭터의 아리까리함은 그 특유의 뻔뻔함에서 나온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김동률, 015B, 유희열이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띌 때(곡을 줄 때 토이의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어떻게든 에둘러 거절하곤 했다. 유희열이 그토록 친한 김장훈에게 <난 남자다>를 준 것 외에 이렇다 할 곡이 없는 것도 좋은 예이다), 그는 주저함이 없다. 본인이 예능에서 수시로 말하듯, 편의점에서 상품을 팔듯 곡을 판다. 거기에 깐깐한 뮤지션의 독고다이나 외골 기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음악 여정에 뻔뻔함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많다. 컨디션 악화된 김연우를 대신해 유스케에 나와선 "저도 노래 곧잘 해요"라며 <이별 택시>를 부른다거나(심지어 음원으로 만들었다), 본인 정규 앨범의 수록곡인 <내일 할 일>을 "이 곡은 역시 시경이한테 갔어야 해." 라며 기꺼이 '발라드 그 자체' 성시경에게 선사하고, 아이유의 <첫 이별 그 날밤>을 중년의 아저씨 버전으로 다시 부르질 않나, 영화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면서 <환생>의 코믹한 버전인 <매우 느끼한 환생>을, 그것도 편곡자 유희열과 함께 부르는 만행을 일삼는다. 음악 감독은 소위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작업인 동시에 그 타이틀로 일종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인데, 윤종신은 '권위 그딴 게 뭐야 걸리적거리게' 스러운 결과물을 내놓는다. <매우 느끼한 환생>은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ost인데, 아무리 감독이 무명이라지만 영화 감독보다 음악 감독의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은 무슨 배짱인지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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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윤종신을 설명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이다. <출국>, <난치병>이 수록된 하림 2집이 망할까 봐 '탁영(탁한 영혼)'이란 가명을 써서 참여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예능 이미지가 음악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윤종신은 이것을 순수한, 예술적인, 완고한, 품위 있는 음악으로 극복하기보다 <영계백숙>이나 <바래바래>를 쓰면서 뻔뻔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오 투나잇 그녀가 날 본 것 같아
오 디제이 내 심장박동에
리듬이 못 따라와 주잖아
에블바래 집중바래 집중바래
모두다 집중바래
에블바래 몰입바래 몰입바래
한없이 몰입바래

 

샤이니 노래 가사와 자웅을 겨룰만한 이 괴랄함. 이 곡은 한 네티즌에게 "개그맨이면 개그맨답게 예능이나 하세요."란 평가를 받았는데, 윤종신은 또 그걸 받아서 감사하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윤종신은 자신이 부른 <바래바래>를 지극히 토이남스러운 곡, <빈 고백>과 함께 앨범에 수록한다. 비록 정규앨범은 아니지만, 어떤 트랙을 어떻게 배치하고, 앨범의 컨셉에 맞는 트랙들을 수록하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고전적인 음악 예술 관점이 있다. 윤종신은 그 체제에는 순응하면서 결정적인 지점에서 엇나가는, 마치 딱히 노는 애도 아닌데 담배 피고 술 먹고 할 건 다 하면서 공부도 하는 아이 같은 일을 일삼는다.


그렇다고 정규 앨범이 근본에 충만한 것도 아니다. 윤종신이 <슈가맨>에 나왔을 때, 작사가 김이나가 "편곡을 윤종신 님이 했어요?"라고 놀리는 장면이 있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농담인데, 윤종신은 이를 "이순신 장군이 지휘를 하듯" 이란 드립을 치며 받았다. 결과물은 역시 자신의 곡을 재탕해서 버무렸다. 이렇게 그가 혼자의 힘으로 곡의 시작과 완성을 유려하게 해내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은,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만 처음 앨범을 만든, 4집 <공존>에서 대뽀록났다. <공존>은 무근본 그 자체인 앨범이다. 무근본이 아주 흘러넘치다 못해 익사할 수준이다. 편곡 작법을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디어만 가지고 녹음실로 들어가고, 참여한 연주자들에게 '이런저런 느낌으로 해주세요'라며 디렉팅한 결과물이 타이틀곡 <부디>다. 다소 묘한 것은 이 거칠고 투박하며 엉성한 세션으로 채워진 노래가, 사운드를 빠방하게 채운 리메이크 버전보다 낫다는 점이다. 어쨌든 구구절절한 눈물 타령으로 범벅된 <부디>의 다음 트랙이, 괴작 <내 사랑 못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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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구축한 시스템 역시 뻔뻔하다. '음악 노예'로 농담처럼 말하는, 자신은 스케치와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편곡자가 완성하는 시스템은 일종의 하청업체 시스템이면서, 한편으론 도제 시스템이기도 하다. 유사한 대부분 시스템이 그렇듯 철저한 갑을관계로 변질되기 쉽지만, 윤종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포지션은 "이젠 창작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을 알았다."는 그의 말처럼, 음원 시장의 독과점 형태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취할 수 있는 묘한 지점에 걸쳐 있다. 이익을 내야 하는 사장의 마인드에 충실하면서, 자신과 소속 아티스트들의 창작을 충분히 지원하는 기묘한 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윤종신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지만, 또 윤종신의 개인기만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비슷하게 굴러가는 유희열의 안테나뮤직이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과는 정반대의 회사, 미스틱의 이미지도 역시 그렇다.

 

민서의 <좋아>는, 나열한 윤종신의 뻔뻔함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참 재밌다. 첫 번째, 완성도의 뻔뻔함. 윤종신이 <좋니>를 부른 시점에서 사실 곡은 완성되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상대 여성의 감정이 아련함일까, 혹은 지긋지긋함일까 추측하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 결과물 그 이상의 감정을 di양산해내는 완성을 이미 이뤄냈다. 그러나 굳이,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안 했을, 그것도 '그 사랑은 지긋지긋했어. 난 지금 행복해.'라며 찌질남에게 빅엿을 멕이는 확인사살 답가로 여타의 다른 감정이 끼어들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원곡의 완성도를 해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https://youtu.be/GSzF4rF1-q8

 

두 번째, 가사의 뻔뻔함. 윤종신의 만든 대부분의 곡은 남성 화자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았었다. '너의 새 남자친구 얘길 들었지. 나 제대하기 얼마 전(오래전 그날)', '전철 안에 예쁜 여자들 이제는 쳐다보지 않아요(환생)', '너의 온도 너의 촉감 머리결과 너의 귀는 듣지 않고 만지고 싶어(고요)', '너 이젠 그의 곁을 떠나가지 마. 그때가 넌 예쁘지(몬스터)' 등, 이별한 남자의 사소한 감정들을 포착, 서사로 풀어내는 능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반면 박정현, 박지윤, 김예림, 장필순, 정인 등 여성 뮤지션과의 결과물은 훌륭했지만, 여성 화자의 시선에 오롯이 충실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그런데 루싸이트 토끼와 작업한 <사라진 소녀>에서 "내가 엄마가 되면"이라 하더니, <좋아>에서 완연한 '전 여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충실해서 다소 섬뜩했고, 섬뜩함이 지나니 불편했으며, 불편함이 지나니 자괴감이 밀려 올라왔다. <좋니>에서 한창 이별뽕에 취해있던 남자는 <좋아>를 들으면 어느새 자신이 홍상수 영화의 남주가 되어 있다는 것에 깜놀한다. 제목이 <좋니>였기에 망정이지, <자니?>였다면 멘탈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답가가 <잔다> 이 모든 것은 윤종신이 자신의 곡이지만,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는 뻔뻔함을 보인 덕이었다.

 

세 번째, 비즈니스적인 뻔뻔함. 민서의 <좋아>는 라퓨마의 제작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졸라게 뜬금없다. 돌이켜보면, <좋니>가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유튜버들의 수많은 2차 창작물이 쏟아질 때 이미 여자 버전 답가가 나왔다. 원창작물 -> 서브컬쳐 2차 창작물 -> 메인스트림 원창작물로 이어지는 묘한 관계인데, 서브컬쳐에서 다시 메인으로 넘어갈 때 비즈니스가 개입했다. 윤종신은 창작과 사업의 줄타기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다. 민서의 <좋아>가 그저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았다면, 민서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순수하고 청초한 이미지에 꽤 큰 타격이 갔을 것이다. 윤종신은 비지니스의 영역은 자신이 다 끌어안았고, 민서는 굵직한 신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미 뽕 뽑은 노래로 또 뽕을 뽑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올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뻔뻔하게 잘만 그래왔던 윤종신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또 민서라는 신인의 목소리로 식상함이 사라졌다. 

 

이렇듯 윤종신의 영혼을 가득 끌어모은 뽐뿌질은, 민서의 인기가요 1위의 결과물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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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요 라이브는 시원하게 말아먹었....공중파라 너무 떨었나 보다.


업계 사람들 입장에선 윤종신의 종횡무진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느 분야가 안 그러겠냐만 방송계의 밥그릇 싸움은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윤종신이 자기 식구를 챙겨주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생겨날 수도 있다. 예컨대 <좋니>의 답가를 만들지 않았다면, 여자 버전을 부른 유튜버가 언젠가 그 노래의 리메이크 버전을 음원으로 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윤종신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예의상 유튜버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라도 한마디 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엄연히 제3의 회사가 개입한 만큼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윤종신은 그가 가장 원하는 창작을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 했다. 일종의 처절한 생존투쟁이다. 결국 많은 아티스트들이 껄끄러워하고 겸연쩍어하며 불편해서 금기로 여겼던 것들을 그는 재능 + 뻔뻔함으로 돌파해왔다. 그 결과 윤종신은 자신을 특유의 위치를 세울 수 있었다. 눈앞에 놓인 위기를 그때그때 돌파하며 사상누각으로 세워진 시스템. 그의 행보는 흡사 한국의 현대사와 닮았다.

 

앞으로도 윤종신의 음악은 이어질 것이다. 다만 그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후배들에게 뻔뻔하지 않고도 자기 재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근본 없는' 윤종신이 후배의 근본을 만들어 주는 것만큼 훌륭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나는 윤종신이 그 특유의 뻔뻔함으로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꿈을 접게 하는 구조를 바꿔, '근본'을 만들어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하여 인기 가요에서 1위를 한 소속 가수가 사장님에게 감사를 표하기보단, 자신이 가진 재능에 당당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뱀발. <좋아>로 멘탈이 나간 사람이 있다면, 윤종신의 <9月>을 들으며 정신승리하자. 내가 그랬단 얘기는 아니고...☞☜


https://youtu.be/kn2GWoKrux8

 


 


빵꾼


편집: 딴지일보 cocoa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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