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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8. 화요일

춘심애비








뜬금 없는 얘기로 시작한다. 필자는 요 몇 달간 기사를 거의 못 썼다. 더딴지 원고도 매번 마감을 넘겨 라스트 미닛 직전에야 겨우겨우 마쳤고, 딴지일보 마빡 기사는 손도 못 댄 나머지, 매일 밤마다 팔 8개 달린 죽돌 부편집장이 못박힌 각목 8개를 들고서, 우사인볼트 등에 업혀 나를 죽이겠다고 추격해 오는 서스펜스를 느끼곤 한다.


왜 였을까. 일주일에 두세 개씩 써재끼고, 흥이 나면 아침에 터진 사건 점심시간에 기사 써서 오후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왜 이렇게 절필이라도 한 듯 가만히 있었을까. 물론 개인적인 일도 많았고, 본업의 업무가 넘쳐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아는 사람은 알 듯 핑계일 뿐이다. 애당초 내 글이 자료조사에 시간을 쏟는 류의 기사도 아닐 뿐더러, 탈고도 제대로 안해서 편집자들 고생시키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인데, 시간은 핑계조차 안되는 거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뭘 써야할지 몰랐다. 세상이 너무 미쳐 돌아가서 할 말을 잃었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몰랐었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글도, 아니면 이렇게 생각한다는 글도 쓸 수가 없었다. 늘 생각의 결론이 없었기에. 생각한 결과가 없으니 쓸 수 있는 글이 없었다.


그리고는 멘션을 받았다.




나는 ‘죽지 않는 춘심애비’가 아니기 때문에, 이젠 정말 죽겠다 싶었다.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생각해 봤다. 왜 나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제는 알았다. 그 이유가 뭐였는지.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나라의 정치 구도는, 1년동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당과 정부권력기관이 부정을 저지른다. 그러면 민주당이 들고 일어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뜨겁게 분노하고 그 부정을 바로잡으려 한다. 이내 민주당은 삽질을 하고, 그런 민주당을 까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민주당 까는 사람들이 싸운다. 한창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 즈음 여당과 정부권력기관은 공안이슈를 들고 나온다. 그러면 그 공안이슈에 대한 여론이 대립한다. 한창 여론이 대립하면 여당과 정부권력기관은 두 번째 부정을 저지른다. 민주당이 이걸 물면, 두 번째 공안이슈가 나온다.


이렇게 부정과 공안이슈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정상적으로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되면 주요 정치세력은 늘 똑같은 태도로 1년 내내 일관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민주당 일부는 계속 싸우고, 일부는 계속 삽질하고, 또 다른 일부는 계속 팀킬을 한다. 통진당은 ‘유신의 재림’이라는 태도로, 안철수는 ‘이 모든 건 국민이 바라는 게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지지자들의 일부는 진보당을 역시 빨갱이라며 싸우고, 일부는 김한길 꺼지라고 하고, 또 일부는 김한길 흔들지 말라고 하고, 일부는 안철수 지지자와 싸운다. 그러다 어디서 ‘노빠’라는 말이 나오면 거기 가서 싸운다.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이 모두가 빨갱이라고 까면서도 동시에 TV조선을 통해 김정은 마누라가 얼마나 이쁜지 관심을 갖는다.


1년 내내. 마치 사진처럼, 지난 1년의 어느 시점에 들이대도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 모든 걸 1년동안 멈춰있게 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또 한번의 순환반복이다. 누군가가 민주당의 무능 때문이라고 한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일부는 김한길 때문이라 하고, 또 일부는 안철수의 흔들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일부는 통진당이 빨갱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끼리 또 한번 싸우는 동안, 정부여당의 부정은 한 번 더 벌어지고, 이 얘기는 끝나지 않은 채 그 부정에 대해 한 번 더 끓어오르면, 또 한 번의 공안이슈가 터지고, 이에 대한 논쟁이 반복되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부정과 공안이슈가 하나씩 더 쌓인다.


이 모든 일이 반복되는 1년동안, 승리한 건 아무도 없다. 이번 정권은 1년간 제대로 된 칭찬 한번 받아본 적 없이 애써 뽑은 사람 잘라내는 일만 반복해 왔고, 그나마 집중한 해외순방도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민주당은 존재감 없이 기회를 스스로에 대한 위기로 전환시키는 마이더스의 손이 됐으며, 통진당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손발이 묶였고, 안철수는 더 이상 새롭지 않아졌다. 어떤 부정과 공안이슈도 정상적으로 해결이 안됐기에, 각각의 지지자들도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재미를 본 건 오직, 부정을 저지른 각각의 당사자들 뿐이다.


아마 이 기사가 올라가면, 내 멘션통이나 기사의 댓글로 각각의 지지자들이 이 기사가 좆같다며 욕을 할 거다. 골자는, 내가 지지하는 세력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다른 세력이 다 망쳐버린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지지하는 세력은 잘못이 없다고 말이다. 욕댓글이나 욕멘션 받는 건 이제 익숙하니까 맘대로들 하시라지만, 이거 하난 기억하시라. 그 자체가, 이 순환의 일부다. 이 1년간 한치의 변화도 없이 반복돼온 구도에는, 당신의 그런 항변도 포함돼 있다.


(출처 : 사진 공동 취재단)



이석기 의원은 결국 내란음모죄로 1심에서 12년 징역 선고를 받았다. 나는 이것이 돌아온 유신의 시퍼런 칼날이 법원마저도 뒤흔든 결과인지, 대학시절 접한 변태사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한 남자의 처참한 말로의 시작인지, 그 둘 다 아니고 그저 정치적 해프닝인지, 모두 다 아니고 그냥 이 나라의 법원이 판결을 좆같이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 재판의 시작부터 판결까지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국정원이 개입됐으며, 그 증거라는 것들이 언론을 통해 돌아다녔고, 그 내용들에 왜곡이나 변경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하나가 낱낱이 보도됐으며, 심지어 TV조선은 어디서 구했는지 문제가 된 회동 영상을 보도한다고 난리다. 재판 자체가 하나의 정당을 해산시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이 서로를 옭아매는 도구로 이 재판을 사용한다.


결국 김용판 재판, NLL 문건 관련된 새누리당 인사들의 국가기밀문서 유출 재판으로부터 시작해 이석기 재판에 이르러, 대한민국 법원은 앞서 말한 지난 1년간의 변함없는 정치구도의 한 축으로 완연히 자리매김했다. 같은 1년이 또 반복된다면, 그 답 안 나오는 순환에,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법원까지 가세하는 셈이 된다. 말하자면, 3권 분립 개나 줘버리는 꼬라지가, 자칫하면 한치의 변화도 없이 또 그대로 반복될 거란 얘기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 프로레슬링의 이벤트 중에 로얄럼블이란 게 있다. 링 위에 오만 선수들이 다 올라가서 모두가 모두와 싸운다. 개 아사리판 그 자체. 결국 한 명의 승자가 남을 때까지, 그 개 아사리판은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처맞고 피흘리고, 반칙과 편법이 난무하고, 편가르기와 배신이 난무한다.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1년간의 아사리판도, 과연 언젠가는 누군가의 승리로 끝이 날까. 아니면 또 한 번의 1년동안 반복될까. 애초에 이런 개싸움은 인간의 숙명인 걸까 아니면 싸움 자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 없이, 일단 나한테 달려드는 어떤 놈에게 한방 갈기기 시작하면, 내가 지거나, 혹은 이긴 후에 떨어진 체력으로 다른 놈에게 한방을 갈겨야 한다. 눈앞의 모든 몸뚱아리들이 모두가 나를 위협하는 적이니까.


그러는 사이, 이석기에게 핀이 들어갔고, 첫 번째 카운트가 시작됐다. 이석기가 다시 일어나든, 이대로 폴을 당하든,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1명이 아웃됐을 뿐이니까.


나는 정말로, 이런 룰의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









분위기 안 맞는, 홍보 하나.


다들 아시는 TED 행사가 오는 2월 22일 토요일에, 서울의 신촌에서 열린다. 

신촌현대백화점 U플렉스 제이드 홀 오후 1시부터. 


무려 춘심애비가 첫 번째 연사로 나선다.


좀 와 주시라.


참가 신청은 여기서 http://onoffmix.com/event/23343


공식 홈페이지는 http://www.tedxsin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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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트위터 : @miiruu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