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물뚝심송 추천9 비추천-2

2014. 02. 19. 수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물뚝심송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는 한 평생 이 주제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젠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르겠는 '저들' 말이다. 솔직히 이제 와서 약간 후회하는 마음도 든다. 내가 뭐 잘났다고 중뿔나게 나서 가지고 경기동부 운운해 가면서 그 소동을 벌였는지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게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도 들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매우 복잡한 심경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에 다시 키보드를 잡는다.




무슨 일인가?

 

결국 박근혜 정권은 이석기와 그의 동료들, 나아가 통진당(통합진보당은 지난해 '진보당'으로 당명을 개정했으나, 언급될 사건이 발생하던 시점의 명칭을 쓰기로 하자)을 무슨 이유에서건 간에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리기로 작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01.jpg


이번 판결의 무리함은 차차 설명을 하겠지만, 법원의 입장에서는 현존하는 권력의 의지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권력의 의지는 그저 이석기와 그의 동료들 몇몇에게 내란음모죄라는 무시무시한 올가미를 씌우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어질 헌재의 위헌정당 심판에서는 이번 판결문에 등장한 엉터리 논리가 그대로 인용될 것으로 보이고, 통진당은 해산 명령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국회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민주당의 동의를 통해 이석기 의원의 제명처리가 진행될 것이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다.


이렇게 다 처리해 버리면 그걸로 끝이냐고? 아니다. 그 다음 순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다가오는 6.4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통진당과의 연계를 추궁하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고, 내란음모를 꾸미다가 적발되어 해산되어 버린 통진당과 왜 야권연대를 했었는가 하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논리인즉슨, 이석기 일당은 내란을 모의하고 획책하던 자생적(북한과의 연계를 증명하지 못한 권력의 시녀들은 자생적이라 더 위험하다는 기괴한 논리까지 이미 내놓은 상태) 반정부 집단인데 그들이 통합진보당이라는 공식적인 대중정당의 외피를 입고 활동하면서, 심지어 다수의 의석까지 내어주게 되는 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공격에 대해 방어 논리를 만들기 힘들 것이며, 그 신종 프로퍼갠더가 지방 선거 내내 넘실거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북풍, 총풍 정도를 넘어 종북몰이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근거를 가진 논리적 비판으로 구성된다. 법원의 내란음모 판결 및 실형 선고, 국회의 제명 의결, 헌재의 위헌정당 심판 판결, 이 정도면 국가 의사결정 기구는 총출동한 명실상부한 공신력이 있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반박할 말이 없다. 어쩌면 구차하게도 “우리도 속았다” 라는 논리를 개발해서 민주당이 앞장 서서 종북 척결 궐기대회라도 열게 될 지도 모른다. 간첩으로 비난 받기 보다는 바보 흉내를 내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련의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일까? 그 기원과 진행, 그리고 현 상황은 모두 이번에 법원이 만들어낸 역사적이고도 치욕적인 판결문에 담겨 있다. 이제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법원.jpg


재판의 진행


이번 재판은 과거의 공안사건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이점을 가지고 출발했다. 즉, 국가보안법 재판이 아니라 형법상 내란죄에 관련된 재판이었다는 점이다. 즉, 국보법이 가지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는 이미 상당부분 퇴색해 버렸고, 국보법은 진작에 없어졌어야 하는 사문화된 법이라는 인식이 생각보다 많이 퍼져있다는 것을 공안당국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재판 시작부터, 국정원과 검찰은 이번 사건이 국보법 재판이 아니라 내란죄 재판이 될 것이라고 크게 떠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피고인측도, 변호인단도 국보법상 유죄 판결은 각오했었고, 형법상 내란죄를 부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예측 역시 국보법상의 유죄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국보법의 논리적 모순, 위헌성 등에 대한 반발은 꾸준히 있었고, 판결이 나온 뒤에도 소지하고 있던 이적 표현물이 이적 표현물이 맞는가, 제창했다던 노래들이 과연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하는 비아냥이 반응중에 상당수 포함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문제는 그 사안의 심각함에 비례해서 내란죄, 아니 내란음모죄의 적용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국정원이 난리를 치고 검찰이 공안사건으로 몰아간다고 하더라도, 재판 초기의 여론은 과연 내란음모죄 적용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갸우뚱스러운 반응이 주류였기도 했다. 법 논리상 내란음모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라고는 전혀 없었고, 애초에 검찰이 내란음모죄로 기소를 하겠다는 얘기를 꺼낸 것 자체가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무리한 기소였기 때문이다.


제일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이석기와 그의 동료들이 모여서 회합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내란에 관련된 얘기(유류 저장고에 대한 파괴, 통신망의 교란 등)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내란음모죄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그들에게 내란음모죄를 적용하려면 그들이 최소한 진지한 자세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현실적인 행동(총을 사거나 폭탄을 만들거나)을 했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내란음모죄를 다루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실행에 옮길 가능성,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증거는 전혀 없었다.


현실적으로도 그들은 내란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길만한 능력이 없는 집단이다. 이는 관심있는 자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들은 단지 오랜 시간동안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해온 운동권 출신 중년들의 집단이며, 그들이 쓰는 말,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 등이 과거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문화지체 현상을 겪고 있는 집단일 뿐인 것이다.


4.jpg



종북? 그런 거 없다. 그들과 북한이 연계되어 있다는 증거는 없다. 아니 혐의 자체를 씌우지도 못했다. 실질적으로는 북한 측에서 오히려 당황스러워 했을 것이다. 아니 저 남한 동무들은 왜 자기들끼리 저러고 노는 건가? 하고 의아해 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들은 그저 과거 주체사상을 신봉하던 시절부터 써오던 언어를 써서 대화를 하고, 그 시절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그 시절의 풍습대로 자기들끼리 몰래 연락하며, 그 시절의 문화를 지키며 고립되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퇴행하고 있는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아미쉬 공동체와 유사한 집단들이다.


그러나 법원은 전혀 새로운 관점에 주목한다. 그들이 조직을 건설했다는 점이다.




판결문의 핵심


이게 얼마나 우스운 얘기인지 과거 운동권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겪어 봤던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판결문에 수도없이 등장하는 RO 라는 명칭은 Revolutionary Organization, 즉 혁명조직이라는 말이다. 과거 운동권들이 만들었던, 이름이 너무 길어 외우지도 못하던 남민전, 삼민투, 민민투, 전대협, 전국연합, 한총련 뭐 이런 조직들은 대부분 허세가 그득한 외형을 자랑했었다. 전국 대학생을 모두 담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조직들은 핵심의 몇몇만 서로 연락하면서 가끔 모여 회의하고 시위 계획을 잡고 하던 초라한 조직일 뿐이다. 그러던 시절에는 거의 모든 외형적인 조직에는 내부에 RO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딴지일보라는 외형을 움직이는 딴지 수뇌부같은 그룹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상 보통명사에 가까운 명칭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원은 이석기와 그의 동료들이 이 RO 라는 조직을 건설했고, 이 조직은 비상연락망도 갖추고 있고 지휘계통이 성립된 실체가 있는 조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리 정치 판타지 같은 얘기지만 실제적인 내란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이 오간 그 회합은 이 조직의 회의였다고 승격시켜 준 것이다. 즉, 내란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내란에 대한 계획이 오가는 회의가 이 RO라는 무시무시한 이름과 함께 실체까지 갖추고 있는 조직 안에서 논의가 되었다는 점. 이 점을 집어낸 것이다.


내란을 모의하는 사람들이 그냥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이름의 조직까지 갖추고 비상연락망에 명령계통, 지휘체계까지 갖춘 조직을 결성한 것, 그리고 그 조직의 수장이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점. 이런 논리가 완성된 것이다.


비록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판단이며, 국정원도 검찰도 저게 얼마나 우스운 논리인지 잘 안다. 그러나 판결문 자체로 보자. 이석기 일당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어떤 일을 해온 사람들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판결문만 본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점을 들어 법원은 관련 피고인들에게 도합 50년이 넘는 실형 선고를 때려 버린다.


장담할 수 있다. 이 판결이 만약 대법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20년이내에 무조건 뒤집힐 것이다. 요즘 과거의 판결을 재심해서 무죄판결이 나오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을 보시라. 사법부는 결국 권력이 원하는 판결을 내어주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한 뒤 시간이 흐르면 그 때는 폭압적인 정권의 의지로 인해 어쩔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물러설 것이다. 그렇게 물러서서 자신들이 과거에 내렸던 판결을 뒤집어 버려도 사법부는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보상은 행정부가 다 해주게 되어 있는데 뭐가 문제가 될까. 그렇게 사법부는 스스로의 존재이유, 법이 가져야 하는 엄정함과 자존심을 자신들의 이익과 맞바꿔 먹은 것 뿐이다.


shutterstock_90092965.jpg


그러나 이 현실을 무시하고 알량한 법적 꼼수를 통해 외형적인 논리만 만들어낸 이 창작품은 처음에 얘기한 대로, 박근혜 정권의 장기 시나리오의 첫 단추를 꿰어 주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 사법부는 이런 진행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척 하고 있다. 아주 무책임하게도 이런 복합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법부에게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이렇게 치욕적인 판결문을 작성해 냄으로써, 삼권분립의 한 축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권력의 시녀로 낮추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앞으로는?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가? 헌재에서는 법원의 판단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다. 남은 문제는 저 무시무시한 RO라는 조직이 사실상 통진당의 핵심 세력인가 하는 것만을 판단하면 된다. 이석기는 사실상 그들의 수장이며, 통진당의 당권을 장악해온 사람이다. 현실을 개무시하고 RO 라는 보통명사 스러운 조직명을 갖춘 반란 조직을 만들어낸 법원과는 달리 헌재는 그렇게 법원이 만들어온 RO라는 조직과 통진당과의 연계만을 확인하면 된다. 이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쉽다. 그 구성원들만 확인해도 될 정도다. 실제로 통진당은 이석기와 그의 동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반란과 혁명을 꿈꾸는 RO라는 조직의 외피라는 점이 쉽게 인정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통진당을 위헌정당으로 규명하고 해산 명령을 내려 버리는 것은 문장 몇개로 완성되는 일이 된다.


국회에서는 어떨까? 법원에서 국보법같은 사소한 범죄 (실제로 국회에는 국보법 위반 전과가 있는 의원들이 버글버글하다.) 말고 무려 형법상 내란음모죄라는 거창한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석기 이원을 국회에서 활동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시라. 의원직 제명안은 순식간에 의결될 것이다. 거기다가 이석기 의원에게 내려진 처벌에는 자격정지 10년도 포함되어 있다. 대법 판결이 나게 되면 어차피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는 골목마다 “내란음모 세력(과 한통속인 민주당을) 척결하자”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게 된다. 안철수 신당에서는 “내란음모는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내란음모 없는 새정치를 하고자 한다.” 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이게 바로 박근혜 정권이 원하는 결론이다. 아닌가?



e20140209105157_57.jpg



몇 가지 디테일이 더 있다. 통진당이 해산되면, 정치에 관심이 많은 당원들은 어찌될까? 상당수는 정의당이나 노동당으로 당적을 옮길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조직을 추스려 당적을 바꾸게 될 텐데, 2008년 이래 멱살잡고 싸워 왔던 노동당 보다는 그래도 인천연합의 동지들이 자리잡고 있는 정의당이 더 많은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있다. 정당이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노동 운동을 함께 해준다는 믿음으로 인해 당적을 유지하고 당비를 자동납부하던 무수히 많은 노조원 당원들은 어떻게 하게 될까? 이 부분에서는 그래도 노동당(일단 당 이름부터 노동당 아닌가)이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 이 부분에서는 민주노총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게 2014년 대한민국의 진보그룹은 지리멸렬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앞으로 발생할 일들에 대한, 맨날 틀리는 물뚝심송의 현실예측이었다.




권력이 문제다


이 내란음모 사건 자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돌이켜 보시라.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은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그게 들통나자 경찰을 동원해서 거짓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막판까지 치열한 선거운동에 몰입했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고 국가 권력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비난의 여론이 비등하면서 국정원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자, 터트려 버린 것이 바로 이 내란음모 사건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정보기관이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에 앞장서고,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세력을 넓히기 위해 현실 정치에 앞장 서서 참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라는 것이다. 중정이 지배하던 70년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이들은 심지어 중국 정부가 공식적인 공문을 통해 당신들 공문서위조라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수사하겠다고 해도 눈 깜빡도 안하고 버틴다. 권력이 지켜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828592728.jpg


그리고 내란음모 유죄 - 정당해산 - 의원직 제명 - 민주당 공격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 시나리오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를 권력에게 설득하고, 권력의 의지를 발동시켜 사법부가 그 시나리오의 최초 등장인물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이 사회의 최고 권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삼권분립 따위는 개나 주라는 태도로 사법부의 판단을 좌지우지하고, 감히 내 힘 앞에 대들자가 누구냐고 호방하게 외치고 있는 이 나라의 최고 권력이 문제인 것이다. 심지어 그 최고 권력은 생성 단계부터 정당성 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정당성이 없음을 알기에 더욱 더 막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막나가는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786_1464_2828.jpg




어떻게 할 것인가


싸움이 벌어질 때 상대를 쓰러트리는 가장 좋은 전략은 무엇인가? 상대의 약점을 집중 공격하는 것이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을 지켜보면서 가장 뼈아프게 느낀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저들은 흔히 말하는 민주-진보 진영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 부분을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도록 찌르고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자신들의 약점은 바로 정당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알기 때문에 그 약점을 보호하면서 상대 진영의 약점을 치기 위해 조직적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귀결은 도대체 우리의 약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정원이 사건을 만들어 내고,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하고, 사법부가 말도 안되는 판결을 내려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동력이 뭘까? 바로 종북 논리다. 저기 간첩들이 떼거지로 몰려서 이 사회를 뒤집어 엎겠다며 내란을 획책하고 있는데 지금 국정원의 사소한 실수나, 돈도 얼마 안되는 부정 부패가 뭐가 중요하냐는 논리, 이 논리 이거 무척 잘 먹힌다. 언제나 먹히는 논리다.


그런데 종북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심지어 과거에 주체사상을 신봉하던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북한과 별다른 연계가 없다. 그리고 오늘날의 이 사회에서 3대 세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는 기묘한 묘기를 보여주는 북한 정권과 그런 왕조가 이끌어 나가고 있는 북한 사회를 우리의 미래 비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북몰이가 먹히는 이유는 그저 전쟁을 겪고 난 민족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본원적인 공포심 밖에 없다. 그 공포심을 이용해 먹는 쪽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지만, 그렇게 현존하는 공포심을 애써 무시하고 일부러 자극하는 쪽도 바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민족? 당연히 중요하다. 통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서도 해야 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원하는 경제인들을 위해서도 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우리보다 좋은 정권이며,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절대 없다. 당연한 일이다.


NL계열 운동권들이 통일 운동을 앞당긴 공로, 백프로, 아니 삼백프로 인정해 주자. 그러나 지금도 80년대 임수경이 방북하던 시절의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부탁인데 병원에 좀 먼저 가 보시길 권한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80년대에는 다들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북한은 경제난에 허덕이며 국력이 쇠퇴해 가고 있는 와중에 비대칭 전력을 개발해서 어찌어찌 외교적으로 국제사회의 지원과 안전 보장을 동시에 얻어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저개발 국가에 불과하다.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 해도 현실을 부정해 가면서까지 옹호할 도리는 없고, 옹호해서도 안된다.



Japan-and-north-south-korea-1200x599.jpg



그런 북한이라는 꼬리표를 진보그룹이 왜 아직도 달고 다녀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사민주의를 주장하고 아나키즘을 주장한다면 이해라도 간다. 폭력 혁명만 주장하지 않는다면 어떤 좌파 그룹하고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아니고 북한도 아니지 않는가. 현실적으로 2014년 오늘의 북한의 체제를 옹호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왕정복고주의자로 간주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틀린가?


세상은 변했고, 세상이 변하면 진보도 변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신에 프레카리아트를 얘기해야 하고, 선별 복지 대신에 보편 복지를 얘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 왜 2-30년전에 논의를 하던 사구체 논쟁이네, 민족 해방이네를 얘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걸 해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단지 과거의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과 퇴행을 반복하고 있는 이제는 중년이 되어 버린 운동권 출신 정치 룸펜들이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보통 사람이 술집에서 군대시절 얘기하듯이 전대협 시절을 얘기하고 민혁당 시절을 얘기하는 거, 그거 진보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꼰대질이고 민폐다.


정치를 바꾸기 이전에 문화를 바꾸면 어떨까?


과거 운동권들이 만들어낸 관습과 사고방식, 모두 다 사실은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일 뿐이다. 이 문화가 바뀌어야 대중과의 소통도 가능해지고 새로운 사회 변혁 운동도 시작될 수 있다. 주먹쥐고 흔드는 시위 문화 대신, 촛불 문화제가 자리를 잡듯이, 장대에 깃발 달고 노조 조끼 입고 붉은 머리띠 매던 파업도 이제는 “대한민국, 쉬어 갑니다”라는 포스터가 걸리는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한층 앞선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는 첨병이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의 역할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대접받기를 원하지 말자. 그거 우리들이 항상 욕하는 꼰대들의 전형적인 행동방식이다. 새로운 운동방식이 필요하고, 새로운 노동 투쟁의 방식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cf2c2a4e54bf320679c8d2c435002540.jpg



생각해 보시라. 진보그룹에게 ‘종북’의 딱지를 붙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왔을 때 저들이 느끼게 될 황당함을 말이다. 주체사상 따위는 제발 박물관에 기증하시라. 이미 북한도 주체사상 원전 같은 거 아무도 안 본다. NL-PD 얘기도 이제 좀 그만 집어치우고 싶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모른 체하며 잊어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을 배워야 할 곳은 현장이 아니라 역사교실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바닥을 쳤다


무려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50년이 넘는 실형을 받은 당사자들에게 정말로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이 든다. 우리 모두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당신들은 독박을 쓰고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당신들이 좀 더 잘했어야 한다”라는 매몰찬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 결코 평온하지 않다. 한 때 우리 모두는 함께 어깨를 걸고 시가지를 누비지 않았던가.


이렇게 폭주하는 정권이 탄생하고, 그 권력의 의지 앞에 민주적인 기능을 담당해야 할 국가의 시스템들이 마구 붕괴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나 마음이 편치 않다. 20년을 회귀하네, 30년을 회귀하네, 유신의 재림이네 하는 말이 모두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슴에 박히고 있다.


왜 우리는 좀 더 잘하지 못했던가, 왜 우리는 더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지 못했던가, 과연 우리는 그 긴 세월을 허송해 버린 것인가 하는 자괴감과 함께, 다음 세대들에게 절대 이런 사회를 물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부끄러움도 밀려 온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은 바로 그렇게 어렵게 쌓아 올렸던 우리의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느껴지는 고통이다. 이 고통은 그저 머리속에서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고통이 절대 아니다.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돈만 아는 사람들이 득세를 하고, 사람보다 돈이 더 대접을 받는 그런 지옥같은 사회는 이미 우리 주변에 와 있다. 이제 막 대학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던 꽃다운 생명들이 어이없는 인재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또 생겼다. 그런 후배들을 바라보면서 실제로 무너져 내리던 건축물에 깔리는 그 고통이 그대로 내게로 전달되는 것 같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말 그대로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우리 모두가 그 젊은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이어져 가야 하는 소중한 그 무엇이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거부할 수 없는 길일 뿐이다.


제발 믿고 싶다. 우리는 이제 바닥을 친 거라고.


갑자기 찾아온 민주정부 10년의 대가를 치르면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지만, 더 이상 떨어질 곳은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믿고 싶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 몇십 년간의 피눈물 나는 고통이 다시 반복될지라도 전보다 단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게 우리의 삶이며,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우리의 사회의 미래인 것이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 본다.




o-HEALTH-BLOG-facebook.jpg








정치부장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