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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공사가 재개되었다. '숙의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말을 우리에게 남긴 채 원전 공론화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다. 정부는 그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형식만 따지면, 그러니까 '형식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모양새로 원전이 다시 지어지고 있다.

숙의민주주의의 절차는 공정했다. 그러나 선수 선발만 해도 당장 제 주머니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이 섞인 찬성론자들과 불확실한 위험(동의반복 같기도 하지만)에 반대해야 하는 사람들간의 대결이었다. 잉어와 숭어가 바닷물에서 싸우는 격이랄까?

그 와중에도 원전에 대한 설왕설래는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더 불안하다. 후쿠시마원전 사태로 인해 법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매뉴얼'대로 제 역할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가 생긴 것은 다 '소테이가이(예상 밖)'의 세계였기 때문에, 불가항력이었다. 불안하고. 불편한 말이다. 위험은 찬성론자들의 논리 밖에서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1. 마이클, 너는 누구냐?

나는 장제원의원을 좋아한다. 잉여로울 때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얼마 전에 연재가 끝난 필독님의 '쇼펜하우어'시리즈를 보며 장제원이 쇼펜하우어의 현신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전형적인 중2병을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만한 지능은 가지지 못한 탓에 쇼펜하우어보다 젊은 나이에 인생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며칠 전에도 나는 장제원의 새로운 괴랄함을 보고 마조히즘스러운 쾌감을 얻고자 그의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쇼펜하우어의 현신답게 그는 친구신청을 함부로 받아주지는 않지만 댓글창은 개방하고 있다. 역시 현 정권을 까 내리는 데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번 화제는 포항 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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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당의 새 대변인 답게 그는 원전마피아의 생계가 위협받을까봐 지진으로 인한 원전괴담이 속출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포항 시민의 아픔을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같은 당 의원께서는 지진이 천벌이라는데 감히 천벌을 탈원전에 이용해서야 물론 아니될 일이다. 그러나 원전에 반대함으로써 누군가가 챙기는 '알 수 없는 이익'이 뭔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원전이 계속 지어지면 원자력학과 학생들의 일자리는 늘어나겠지만.


쇼펜하우어의 현신에게는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댓글로 약올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 한 말씀 적으려는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 그의 글 한 토막을 보자.


미국 타임즈가 선정한 '환경의 영웅', '그린북 어워드'를 수상한 미국의 마이클 쉘렌버거도 "한국의 원자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문장이다. 아마 나도 전 같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일 년간을 통해 유모차 엄마들에 대한 겁박 등 장제원의 염치 수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탄핵반대 시위 도중 영감님들의 카톡방에서 비틀즈의 노래 '예스터데이'가 촛불시위를 비판하는 기사가 되는 매커니즘에 대해서도 잘 알아보았다. 또한 마이클이라는 흔한 이름 앞에 아무래도 부자연스런 '쉘렌버거'라는 성도 국정원 댓글처럼 입안에서 꺼끌거렸다.


또한 미국의 '타임' 혹은 '타임즈'가 원전 찬성론자에게도 '환경의 영웅'상을 줄 만큼 도발적인 논조의 언론인지 궁금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화석연료의 폐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 원전을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함부로 그렇게 하지는 않고, 그렇게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배경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또한 만약 저 상을 쉘렌버그가 원전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전향'하기 전에 받은 것이라면 그의 삶이 김문수 같은 스타일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2. 마이클 쉘렌버그를 찾아서


나는 마이클 쉘렌버그에 대해 검색해 보기로 했다.


'쉘렌버그'를 알파벳으로는 어떻게 써야할지 알기 어려웠다. 그냥 휴대폰 창에 한글 그대로 검색해 보기로 했다. 장제원이 원전에 찬성하기 위해 아무렇게 지어낸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실존인물이었다. 마이클 쉘렌버그가 가공의 인물이라 할 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마이클 쉘렌버그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의지로 접촉하려는 어떤 실체는 분명히 있었다. 여기 그의 얼굴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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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수의 기둥" 김무성 홈페이지 (링크)>


쉘렌버그는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자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얽히는 것을 보니. 그러나 그에 대한 더 자세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쉘렌버그가 한국에서 언급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거의 대부분 자한당 계열의 원전 찬성론자들과 함께 튀어나온다. 그냥 탈원전에 반대하기 위한 얼굴마담으로 어느 원어민 강사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처럼 이용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를 구해야 할 텐데!



3. '타임즈'가 준 '환경의 영웅'상


마이클 쉘렌버그에 대한 자료를 직접 찾기가 어려워지자 나는 그에 대한 부수적인 탐색에 들어갔다. 바로 쉘렌버그가 받았다는 '환경의 영웅'상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타임지 홈페이지의 수상자 목록을 찾아냈다. 그러나 마이클 쉘든버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제원 페이스북에 소개된 그의 수상이력이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을 순간 확고히 했다.


그러나 결과를 이야기하자면 내 실수였다.


나는 환경의 영웅상이 매년 단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고 지레 짐작했다. 실제로는 여러 분야를 나눠 각 분야마다 다시 여러 명을 선정한다. 내가 우연히 접속한 리스트는 역대 수상자 전체가 아닌 2007년 단 한 해의 수상자 목록이었다. 쉘렌버그는 2008년에 수상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군대 있을 때 속아서 본 영화 '아이돌 섹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쉘렌버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업적으로 세계적인 시사주간지가 주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어쩌면 환경의 영웅 수상자가 원전 찬성론자들에게 무단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다시 증거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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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 길 사람의 속


쉘렌버그에 대해 나중에서야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등잔 밑이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한글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자 조선비즈에서 그를 인터뷰한 내용이 떴고, 거기에 알파벳으로 된 이름이 있었기에 위키피디아 페이지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두 가지 다 그를 알 수 있게 하는 아주 좋은 소스였다.


그러나 열 길 물 속보다 어려운 것이 한 길 사람의 속이라고, 그런 자세한 정보를 알게 됨으로써 나는 쉘렌버그를 이해하는 것이 한결 더 어려워졌다. 조선일보의 인터뷰다.

 


한국에서 초청한 단체가 있는건가


"아니다자비를 들여서 왔다서한에 공동 서명한 동료들을 대표해 내가 오게 됐다내가 대표로 있는 '환경진보'는 재무적으로 독립적인 단체다돈이 별로 많지 않다.(웃음우리 단체는 개인 후원으로만 운영되며원전 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나 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지 않는다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다후원자 목록은 우리 단체의 웹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비즈 인터뷰 중 (원본 링크)


환경단체가 '재무적으로 독립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개인 후원으로 운영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일단 쉘렌버그의 의도는 '원전산업과 관련된 기업이나 단체'에서 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일 것이다. 가령 '뉴스타파' 같은 언론도 오로지 개인 후원으로만 유지함으로써 삼성같은 기업이나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의미는 애매모호하다. 만약 내가 어떤 단체를 내 돈으로 후원할 때, 제3자가 후원자 목록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더라도 내 의도나 내 자금의 출처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게다가 개인 후원이라고 하기에 '실리콘벨리의 벤처 투자가'는 뭔가 어색하다.


그리고 어쨌든, 벤처투자가 씩이나 되는 후원자가 있는 단체장이 한국 원전에 반대하기 위해 자비로 태평양을 건너와서 '보수의 기둥', 김무성을 만났다? 특수활동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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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쉘렌버그의 말들


그가 원전에 찬성하는 논리는 어쨌든 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굳이 에너지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대충 생각해 낼 만한 것이다.


쉘렌버그는 여느 환경론자들과 같이 처음에는 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 회의적이었고, 결국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기 위한 '차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환경진보' 활동도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적어도 위키피디아의 내용만 놓고 보았을 때 환경단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탈원전 반대'에 치우친 활동을 한다. 화석연료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탈원전 반대에 한 발 걸치면 모를까, 오로지 그것이 주가 되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최근 조원진 의원의 단식투쟁 같다. 원전에 찬성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환경단체라고 하자니 조원진 의원 역시 뭐 실제로 밥을 굶었다면 단식을 한 게 맞고 단식 투쟁이라고 해도 되는데, 고운 피부와 묵직한 휠체어가 영 이상한 것과 닮아 있다.


게다가 쉘런버그를 유명하게 만든 책 <환경보호론의 죽음(The Death of Environmentalism, 2004)>은 일찍부터 그가 환경보호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준다. 환경보호를 중요시 하는 시도는 효과가 없으며 기술의 진보를 통해 화석에너지의 대체제를 저렴하게 만듬으로써 기후 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원전에 반대하는 논리는 화석에너지의 폐해와는 다소 별개의 것이다. 단순히 화석연료를 줄이는 단기적인 처방의 효과 유무를 넘어서 원전이 가진 잠재적 위험에서 비롯된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은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핵심에 있다.


지금까지 환경보호가 지구온난화 같은 거대한 파괴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원전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 물론 원전을 쓰면 화석연료 사용은 상대적으로 줄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그리고 장제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쉘렌버그는 "한국의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원전마피아의 비리행위가 없다는 뜻일까?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리고 그 불량 부품이 문제가 되어 고장을 일으킨 적이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계에서 좀 덜 안전한 원전은 우리나라를 능가하는 비리와 부실을 안은 채 별 문제없이 가동 중이라는 뜻일까?


함부로 그렇게 말할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세계 최고의 내과 전문의에게 내 내장지방의 적정성에 대한 자문을 전화로 구한다면 그는 당연히 "모른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분야의 권위자이기는 하지만 내 뱃속을 초음파로 들여다보기는 커녕 방금 전까지 나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자비로 한국에 왔다는 쉘렌버그는 한국의 원전을 얼마나 속속들이 알아볼 수 있었을까? 내가 자비로 미국 일리노이 원전에 가서 그 안전성을 보게 해 달라고 하면 원전 경비원은 나를 위해 전기충격기와 곤봉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


쉘렌버그의 환경운동은 나 같은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 순수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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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극장의 우상


철학자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Four Idols)'을 들어 인간이 가진 어리석음을 논하였다. 그 중 극장의 우상은 권위나 유명세를 가진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말한다. 장제원은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마이클 쉘렌버그라는 외국인을 끌여들였다. 백인종 미국산 지식인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면 비약일까?


"어쨌든 마이클 쉘렌버그는 유명한 환경운동가잖아. 조선일보도 아니고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환경의 영웅'으로 선정되었다고"


그렇다. 아무리 극장의 우상을 우려하고 이 듣보잡 외국인의 말을 곡해 하더라도 전 세계인이 항상 주목하는 타임지가 선정한 '영웅'이 돈에 영혼을 판 악마라거나 혹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나대는 쭉쩡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내가 '환경의 영웅'수상 목록에서 마이클 쉘렌버그를 발견하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아마 타임지의 환경의 영웅상을 원래부터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쉘렌버그는 2008년 수상자인데 나는 우연히 실수로 2007년 리스트를 먼저 발견했다. 타임지는 세계적이고 권위 있으며 유명하기 때문에 내가 거기서 또한 우연히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것도 그렇게 놀라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타임지의 명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할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2007년 같은 상의 수상자 중 한 사람을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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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왜 거기서 나와?>


뭔가 검색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영웅적인 환경변화' 같은 키워드가 오해를 불러 일으킨 건지 순간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타임지 홈페이지까지 들어가서 확인해 보아도 2007년, MB는 환경의 영웅상을 타임지로부터 수상한 것이 맞다. 저 "Green Dreams"라는 꿈이 녹조라떼를 마시는 꿈은 아니었을까?


그가 대통령이 되지만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환경의 영웅으로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겉모습만 봤을 때 21세기 벽두의 청계천 복구 사업은 서울에 나쁘지 않은 랜드마크를 남겼으니까. 그러나 저 사업이 한 축이 된 그의 정치적 업적은 훗날 대운하에 이어 4대강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보고있다.


그 당시 타임지 편집장을 데려다가 MB대통령 시절의 딴지일보 편집장을 무보수로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고용계약을 쓰기 위해 한국에 올 때에도 자비로 와야 한다.







무성한그곳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