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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는 어쩐지 홀대를 받았는가, 환대를 받았는가의 문제로 쟁점화되었다. 이 쟁점은 문재인이 욕 먹어 마땅한 인물인가, 칭송의 대상인가를 가르는 이상한 싸움이 되었다. 텅 빈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 영어로는 아스트랄(astral)하다고 한다.


즉 이런 싸움이다.


- 홀대를 받았다면 우리 대통령의 무능으로 국격이 하락한 것이다.

- 환대를 받았다면 우리 대통령은 무능하지 않다.


여기엔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다. 홀대는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의 책임이다. '집주인으로 하여금 대접할 필요성도 못 느끼게 한 손님의 무능'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후진국이 아니다. 한 세기 전 기준으로는 고종황제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열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대인가 아닌가?


홀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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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이 잦았다. 그리고 이것은 문재인의 책임이 아니라 시진핑의 의지다. 손님이 혼자 밥을 먹는데 집주인이 외출을 하고 있으면 누구 책임인가? 집주인의 멱살을 잡아 겸상에 끌어앉힐 도리는 없다. 서로의 바쁜 일정이 충돌해서 빚어진 불행이라고 하지만 시진핑은 중국의 절대권력자다. 일정은 결국 핑계에 불과하다.


2. 

손에 잡힐 건덕지도 없는 문재인의 외교력 여부 아니라 시진핑의 무례를 거론할 일이다. 자국의 국격을 떨어뜨린 건 중국의 지도자다. 그의 대접은 상식 이하였다. 부끄러워할 주체는 중국 공산당이다. 이 무슨 유치한 짓이란 말인가.


중국이 유치해진 이유는 있다. 대한민국의 지난 박근혜 정권이 유치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삽질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장기 프로젝트인 대중국 포위망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대중국 포위망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안 되면 그만이요, 잘 되면 장땡이다. '아님 말구'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목숨줄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다.


중국은 북서쪽으로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되는 거대한 황무지를 만난다. 동쪽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남쪽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있다. 서쪽에 아프가니스탄이 있"었"다. 외국의 천연자원을 지하 파이프라인으로 제공할 수 있는 국가였지만 미국이 전쟁으로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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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나라는 크지만 현대산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원(주로 화석연료)은 없거나 있어봐야 무의미하다시피 하다. 인구와 크기 때문에 착각하지만 중국의 성장모델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역수출하는 형태가 아니면 자생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숨줄은 태평양에 의존한다.


3. 

태평양. 지구의 거의 반을 뒤덮고 있는 이 드넓은 바다의 주인은 당연히 미국이다. 우리는 경제성장에 있어 미국에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자주 간과한다. 밀가루와 초콜렛? 아니다. 태평양의 안전이다.


역사상 미국만큼 완벽에 가깝게 지구의 바다를 지키는 제국은 출현한 적이 없다. 다시말해 바다는 지금처럼 안전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에서도 '독박'은 미국이 쓴다. 그 돈 많은 독일도 전투기들을 정비 불능의 방치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다. 왜? 미국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거니까.


제국이 되기 직전 그러니까 '프린켑스' 겸 '임페라토르'가 출현하기 직전의 로마를 보자. 결국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폼페이우스를 다들 알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내해(內海)인 지중해의 해적을 깨끗이 소탕한 공로로 '마그누스(大)'라는 칭호를 얻었다. 어릴 적 해적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무찌른 건 역사의 재미난 변곡이리라.


바다란 그런 것이다. 청 제국도 총력을 기울여 해적집단의 후계자가 통치하는 대만과 혈전을 벌여야 했다. 근대 중국의 여해적 두목이 영국-포르투갈-청나라의 연합 함대를 격파하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바다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전까지 인류의 바다는 평화롭지 않았다. 불과 백 년 전까지 사략선이 합법이었다. 일개 상선이 바다에서 살육과 약탈을 해도 된다는 정부의 인증을 받았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뒤얽혀 방치상태가 된 소말리아 앞바다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해적이 기승을 부린다. 이런 현상은 전 대륙, 전 해역에 걸쳐 있어 왔다. 인류가 부족집단을 이룬 이래 그랬다. 지금의 안전한 바다는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과 군사력이 만들어 낸 황당한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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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 경제발전의 기본 배경은 미국의 태평양 제해권이다.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바다의 안전을 지킨다. 수출길에 위험한 해역이 단 두 개만 있어도 엄청나게 긴 거리를 돌아야 한다. 이것은 모두 시간과 비용이다. 물론 그나마 해적을 마주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이러면 제품 수출 가격이 상승한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미국 블록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미국은 전 세계 항구의 기름탱크 파이프 규격까지 제시하며, 표준을 유지하는 비용까지 군말없이 감수한다.


막대한 돈이 든다. 그래서 달러를 찍어낸다. 찍어냈으므로 그대로 빚이 된다. 왜 빚이 되는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찍어낸 액수만큼을 책임지겠노라고 보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권은 공짜가 아니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결과다. 물론 찍어내면 된다는 점에서 부럽기도 하다. 이 모든 것과 맞물려 돌아가는 군사력, 그리고 군사지출로 세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이 제공한 태평양의 치안 없이는 현재의 한국도 일본도 대만도 없다. 이것이 한일 양국이 갈등할 때마다 미국이 놀라고 불편해하는 이유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 집에서 키운 자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칭송하자는 게 아니다. 이 나라는 중남미에서 참 나쁜 짓 많이 했다. 도덕적인 제국이 아니란 것 잘 안다. 다만 미국의 세계통치전략은 동아시아 자유블록 국가에 커다란 수혜였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이용하면 될 일이다.


5. 

중국은 미국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중국이 미국을 이기려면 일단 챔피언이 있는 링 위에 올라가야 한다. 링은 바로 태평양이다. 그리고 위의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중국이 링에 오를 기회조차 줄 생각이 없다.


미국은 심지어 철천지 원수이자 자존심 브레이커인 베트남과도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것도 고위공직자가 베트남의 <미군전쟁범죄기념관>을 방문하는 굴욕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현재 중국의 거의 유일한 숨구멍은 파키스탄이다. 그러나 친구사이인 파키스탄의 국토를 가로질러 인도양에 진출해봐야, 태평양에 손을 뻗치기 위해서는 역시나 미군의 해상포위망을 뚫어야 한다.


중국의 무기는 하나, 거대한 시장이다.


이것은 거꾸로 중국의 약점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생산지역이자 소비지역이라는 양손의 떡. 미국은 이 중 하나를 마음만 먹으면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을 원한다. 당연히 생산/수출이다. 수출(진출)길은 막히고 소비는 해야 한다 - 이것은 19세기식 식민지 경제다. 미국은 중국을 살릴지 죽일지 자유롭게 결정할 권력을 원한다. 대중국 포위망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착실하게 건설되고 있다.


6.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과 갖은 진상을 묵묵히 받아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서쪽에 파키스탄이 있다지만 삼면이 바다이며 바로 태평양으로 직행하는 한반도만큼 확실한 숨구멍이 못 된다. 그러나 북한은 육지로는 38도선에, 바다로는 한국과 미 해군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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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한국을 친중 성향으로 돌릴 수 있다면?


마침 한국은 미국 블록 국가들 중 미국 말 안 듣기로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 꽤 오래 된 이야기긴 하지만 대학생 시위대가 미군 탱크를 점유해 포탑 위에서 자국 국기를 흔든 입지전적인 나라다. 보아하니 대중국 수출도 몹시 중요한 비중이고,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만에 하나 있을지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아니 가능하다.


가능했다.


지금은 503이라는 번호로 불리는 그 누가 전승절 행사에 초대했다고 냉큼 가서 혈맹 무드 조성에 아무 생각 없이 활짝 웃어주지 않았는가?


7. 

박근혜가 도무지 왜 그랬는지는 군사평론가들과 외교통들 사이에서도 미스테리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넘어가겠다. 아무튼 박근혜는 모종의 이유로 '삐져서' 중국을 다시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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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양강 모두의 뒤통수를 쳐 버린 게 되었고, 외교 상대로서의 국격은 땅에 떨어지는 걸 넘어 지하 시설을 탐방하게 됐다. 수습도 안 했다.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채로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정부 수반이 뒤바뀌었다.


문재인의 그 유명한 장진호 연설은 비굴하지 않게 품위를 지키면서도 한국이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외교상대임을 보여주기 위한 최선의 무브먼트였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경대 연설은 훌륭하다고 인정해야 마땅할 수준이다. 지난 수천년 간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위상을 상찬한 것은 글세, 아부라기보다는 그냥 팩트다. 외려 현재의 중국에 대해 보다 신사적인 국가여야 할 것임을 전제하는 지뢰를 착실히 깔기까지 했다. 다름아닌 북경대학교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중국 정부의 행태를 노리는 트랩을 은연중에 설치했으니 연설을 완성한 당직자들과 대통령은 칭찬받아야 한다.


허나 트럼프와 시진핑의 대우는 다르다.


홀대는 홀대다.


문재인의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은 할 일을 하고 있다. 이 홀대 사건은 훗날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 부끄러워해야 할, 21세기 국제 기준에서 벗어난 무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중국을 이해할 법도 하다. 이는 503이 걸판지게 지려놓은 똥밭을 책임져야 할 후임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전임자에 대해 '우리는 남남'이라고 할 도리가 없다. 모든 걸 계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성 있는, 다시 말해 '예측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그리 될 순 없잖은가.


8. 

외교 상대에 따른 우리 좌우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


장진호 연설로 상징되는 대미 외교의 경우 - 우측의 대부분은 상대가 미국이라는 이유로 울며 겨자먹기로, 좌측의 대부분은 주인공이 문재인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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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우파에게 있어 중국은 미국처럼 신사적인 문명국이 못 되어 외국 정상을 홀대할 수도 있는 나라가 된다. 여기에 진실의 일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튀어나온다. '대접을 못 받아먹는 지도자가 문제다!' 이게 뭔 소린가. 대통령은 전임자가 진 카드빚의 청구서를 받았을 뿐이다.


좌파에게 있어 문재인은 외국에 가 홀대를 당할 정도의 그릇이 아니어야만 한다. 이것도 이상하다. 외교실수는 중국이 하고 있다. 차라리 소중한 문재인을 홀대받을 수밖에 없게 한 전임자를 성토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면 이해하겠다. 그런데 홀대가 아님을 입증하는 데 열을 올리는 포스트가 진보 커뮤니티 게시판에 출몰하니 좀 당황스럽다.


언론의 역할은 이럴 때 논의의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왜 자기들 감정부터 정리정돈을 못 하는지...


홀대냐, 환대냐?


이건 애초에 우리끼리 언쟁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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