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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언제쯤 나가나요?”

 

 

 

인터뷰이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대개는 인터뷰라는 것 자체에 설레거나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앞에서 눈을 깜박이며 앉아있다. 먼저 말을 꺼내더라도 딴지 사무실이 ‘생각보다’ 좋다든가, 아니면 털이 많은 총수의 방송을 잘 듣고 있다는,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러니 최소한, 인터뷰이가 먼저 기사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잡지사나 신문사들... 인터뷰를 많이 했었는데, 인터뷰할 취지는 좋았는데 마지막에 킬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광고주가 우선이니까, 최종 결정하시는 분들이 자른다고…”

 

 

 

박창진 사무장을 만났다. 딴지에는 광고주가 없고 내일도 없다고 확답하고 나서야 그는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사 취지와 구체적인 일정을 인터뷰 중에도 몇 번 더 물었다. 

 

 

 

공익제보자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응원은 그리 길지 않다. 꽤 오래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공익제보자라면 성공했다고 할 만하다. 그 사람이 원래의 조직으로 다시 돌아갔다면 더 성공적인 경우다. 박창진 사무장은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는 데다 대한항공으로 복귀한 후 여전히 승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꽤나 성공적인 공익제보자. 그런데,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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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1년 차, 신입사원

 

 

( : 박창진 / : 인지니어스)

 

 : 지금은 무슨 일을 하세요?

 

 

 : 원래는 팀장을 10년 정도 하고 있었는데, 복직하고 나서 신입사원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승객 입장에서는 승무원이 하는 일이 어떻게 나눠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팀장의 일은 어떻게 다르죠?

 

 

 : 승무원들은 회사에 출근을 잘 안 하니까 회사에서는 관리와 통제 권한을 팀장에게 줘요. 팀장은 직접적인 서비스보다는 주관을 하는 거죠.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성교육도 해야 하고요. 지금은 거의 이코노미에서 주니어들(1~2년 차)이 하는 짐 올리고 서비스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C 플레이어(저성과자)가 돼서…

 

 

 

 : 어떤 기준으로 저성과자가 되는 거에요?

 

 

 : 회사에서는 영어 실력을 문제 삼고 있어요. 기내 방송을 보고 읽는 시험인데, 계속 누락되고 있어요. 제 능력이 모자란다면 인정하겠지만, 저는 객관화된 공인 영어시험 성적은 회사 내에서 A급 정도로 갖추고 있거든요. 그런데 회사가 주관하고, ‘대한항공 출신 승무원’이 채점하는 그 시험만 통과가 안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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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회사는 사무장이란 직급을 주었다. 부팀장을 거쳐 팀장 자리를 오래 유지한 그에게

회사는 이전에도 VIP 불리는, 오너 가족의 서비스를 맡긴 적이 있다

 

 

 

오너 가족에게 반기를 들자, 입사 21년 차인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었다.

 

 

 

 

 

혼자가 되었다

 

 

 

 :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불편해하지 않아요?

 

 

 : 아무래도 저란 존재 자체가 부담이겠죠. 저도 예전에 회사에서 노조 활동을 했거나 회사에서 찍힌 분들과 비행하면 터놓고 얘기하긴 어려웠어요. 

 

 

 

 : 공익제보자들은 돌아가도 인간관계에서 외로워지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인터뷰를 했던 선생님 한 분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말을 안 건다고 하시더라고요.

 

 

 : 하나고등학교죠? 저도 그래서 혼잣말이 엄청 늘었어요. 같은 팀 사람들은 아예 바깥에 있는 사람들처럼 외면하거나 모른척하진 못하죠. 그렇지만 제가 다른 팀과 함께 비행을 한다 그러면, 제 옆에 앉아서 같이 밥 먹고 싶겠어요? 저 혼자 텅 빈 식탁에 앉아있는 거예요. 

 

 

 

 : 직장 내 왕따가 된 거네요.

 

 

 : 회사에서 사람을 자진해서 나가게 만들 때, 회사 내에서 그 사람의 자리가 없게 만드는 거. 그거라고 생각해요. 

 

 

 

 : 동료들에게 섭섭하진 않으세요? 

 

 

 : 아직은 우리나라의 조직이란 곳에서 노동권이라든지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터부시되고, 사람들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 사람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되는 거죠. 학교에서 왕따 문제도 그런 거 아니에요? 몇 명이 걔가 이상하다 그러면 대다수의 학생이 걔랑 어울리면 나도 당할 것 같으니까 멀리하는 거잖아요. 그 대다수 학생은 “나는 왕따 시킨 적 없어"라고 할 거예요. 그런데 당하는 친구 입장에선 다르거든요. 모든 사람이 날 왕따 시키는 거예요. 지금 저도 그래요. 

 

 

 

방관자도 공범이다.

 

 

 

 :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 것 말고, 업무에서 힘든 점도 있나요? 

 

 

 : 제가 지금 팀장이 아니라 관리를 받는 위치에 있는데,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어요. 동료들 중에 사측의 입장을 따라 앞장서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일하다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갑자기 “그따위로 하실 거에요?” 이런 말을 사람들 앞에서 해요. 그 순간 느끼는 모멸감이 어마어마해요. 불면증하고 불안증세, 공황장애가 아직 남아있는데, 그때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나는 거예요. 호흡이 안 돼요. 과호흡 상태가 되니까 말이 안 나올 지경이 되는 거예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제가 죽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직 자율수면이 어려워서 약을 먹어야 잘 수 있는데, 비행 중에는 먹을 수가 없어요. 14시간을 비행한다 치면 승무원들이 2시간씩 쪼개서 총 4시간을 쉬어요. 그때 제가 그 약을 먹으면...

 

 

 

 : 못 일어나겠네요.

 

 

 

 : 못 일어나죠. 그래서 휴식을 못 하고 10시간 넘게 가요. 그래서 비행이 힘들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피로도가 많이 쌓여요. 이것이 부당하다 얘기하는 건, 사측에서 제가 이런 상황인 걸 아는데도 가장 힘든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서비스를 하도록 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사정으로 “나는 지금 신입 승무원 업무를 한다”고 말하면, 신입 승무원 업무를 비하한다는 댓글들도 달려요. 그 말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쌓은 경력과 능력에 맞는 대우를 회사가 해주지 않는다는 건데, 그게 어째서 비하인가요?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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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스타그램에도 이런 일에 대해 포스팅하시던데, 그건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 작년 10월이었나,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괜히 제작진 시간만 뺏는 게 아닌가 했는데, 거기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박창진 씨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얘기를 하시고 응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연락할 수 있을지 방법을 모른다고.

 

 

 

 : 아, 기사가 꽤 나오는데도요?

 

 

 

 : 네. 제 이름 치면 기사가 많이 나오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제가 언론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했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한항공 측에서 내보내는 홍보성 기사가 더 많아요. 저를 깎아내리는. 우리나라 언론사 너무 많잖아요. 저를 취재한 곳이 아닌데 저에 대한 얘기를 써요. 다른 언론들이 그 기사를 받아서 쓰면 기사는 여러 개가 되는 거고. 

 

그걸 그대로 수긍하지 않고 ‘이건 문제다'라고 계속 얘기를 해야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SNS가 좋은 방법일 거라 생각하게 된 거에요. 응원해주는 분들께 고마움을 바로 얘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 언론 지형이 안 좋으니 SNS를 매체로 활용하시는 거군요?

 

 

 

 : 그렇게 시작했어요. 또 많은 분들이 제가 버티는 과정에서 많은 용기를 받고 있단 얘기를 해주셨어요. 저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더 생기면 참 좋겠더라고요. SNS를 활발하게 한다고 연예인병 걸렸다고 하는데, 제가 제 인스타그램에 늘 아프고 토하는 모습 올리는 것도 웃기잖아요.(웃음)

 

 

 

 : 하하하 맞아요, 맞아요.

 

 

 

 : 그게 인스타의 단점이기도 한 것 같은데, 커피도 마시고 쉬는 것도 제 모습 중 하나에요. 사건이 일어나고 지금까지 아픈 곳도 많아지고 마음도 병든, 그 모습도 저지만 인스타에는 없죠. 

 

 

 

 : 인스타를 종종 보면서 잘 지내시는구나 했는데, 약은 여전히 많이 드시더라구요.

 

 

 

 : 당시에는 심신미약하고, 불안증, 공황장애, 불면증 이런 게 겹쳐서 왔어요. 조현아 씨가 사과하겠다고 집에, 연락도 하지도 않고 기자들을 대동해서 우리 집 앞까지 왔잖아요. 저는 그때 병원에 있었고, 집에 없다고 미리 말씀드렸어요. 그렇지만 사과하는 걸 ‘보여는 줘야’ 하니까 그냥 왔고, 집이 다 노출되어버렸어요. 저는 기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 제 전화번호를 누가 알려줬는지, 새벽이고 밤이고 초인종 누르고 전화하더라고요. 집 밖으로 못 나갈 정도였어요. 

 

 

 

 : 시달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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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에선 경찰관들이 찾아와서 출두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선 회사가 제 이미지를 실추시키려고 찌라시를 만들고, 정신이 없었어요. 찌라시 때문에 제가 회사 생활을 제대로 못 하는, 성추행범이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제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모든 세상이 저의 적이라고 느껴지니, 그때 공황장애가 오더라고요. 사람들은 조현아 씨한테 그것 좀 당했다고 그렇게 아프냐고 그러지만, 이런 일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난 피해잔데, 계속 나한테 뭘 요구하더라고요. 조현아 씨는 힘이 세니 미디어가 거기는 못가고, 저한테 그래요. 그걸 괴롭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회사는 처음부터 박창진 사무장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를 버려야 조현아 씨가 살아나는 구도였다.

 

 

 : 찌라시는 언제부터 생긴 거예요?

 

 

 : 재판 때 보니까 회사에서 자기들끼리 회의를 했더라고요. 이미 회항은 일어난 일이니, 바보 같은 사무장이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조현아가 관리자로서 화를 낸 거라고 해야 그나마 욕을 덜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제 이미지가 훼손돼야 그들이 이득이거든요.

 

 

 

저도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까 예전에 징계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걸 이용하더라고요.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한 후에 찍은 바디 프로필을 카카오톡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제가 여성 승무원한테 누드 사진을 보낸 것으로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럼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 박창진이 누드 사진을 여성 승무원에게 보냈다는 말만 있고, 받은 사람은 없군요?

 

 

 

 : 그렇죠.

 

 

 

 : 그리고 저도 사무장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제일 흥미로웠던 게 일반 직원들을 상대로 갑질했었다는 거였어요. 소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 갑질이요? 그것도 그 소문 중 하나인데요, 대한항공 측에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면, 제가 팀장을 했던 몇 년 동안의 모든 팀원들을 추적조사를 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아요. 제가 갑질을 했다면, 대한항공에서 최고성과를 여러 번 내는 팀장일 수 있었을까요.

 

 

 

 : 저는 그 정도로 생각했어요. 관리자는 일상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 사소한 지시를 이제 와서 갑질이라고 붙인 건 아닐까. 저도 구체적인 사례는 듣지 못했거든요.

 

 

 

 : 제 생각도 그래요. 회사는 승무원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팀장급한테 그 요구를 해요. 공식적으로 사라졌는데 손톱 발톱 체크해라, 화장 체크해라 등의 지시를요. 관리자인 저는 그걸 해야 될 입장에 있어요. 관리자로서 제가 하는 얘기를 갑질이라고 한다면, 그게 정말 갑질이라 생각한다면 나와서 그 사례를 진작 말했을 거라 생각해요. 만약에라도 정말 제가 사과할 일이 있다면 저는 사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악의적인 소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요즘은 찌라시가 없죠?

 

 

 

 : 사내 블라인드 앱에 제가 인격적 모독을 했다더라, 여성 차별을 했다더라 하는 내용이 많이 올라왔어요. 저는 블라인드 앱을 사용하지 않는데, 친구가 캡쳐해서 보여주더라고요. 난리 났다고. 

 

 

 

 : 사건은 끝났는데 아직도 그래요?

 

 

 

 : 알고 봤더니 그때 회사 노조 대임원 선거가 있었어요. 직원들 중에는 누가 나타나서 상황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면서 제 이름이 나왔나 봐요. 저는 노조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데, 회사에서는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나 봐요. 갑자기 저에 대한 욕이 엄청 올라오는 거예요.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직접 저한테 얘길 하면 되는 것인데, 진짜로 그랬으면 제가 사과하면 될 텐데 실체는 없어요. 그런 것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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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사건 당시에는 사내 여론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사건 당시 회사 블라인드 앱(기업 직원들이 이용하는 익명 게시판)을 보면 직원들이 이 일에 함께 분노해서 이걸 외부에 알리자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더라고요. 그때는 동료들의 반응이 좀 달랐던 게 사실인가요?

 

 

 

 : 그때는 동료들을 전혀 본 적이 없어요. 제가 그때부터 제가 병가를 내고 출근을 못 했거든요. 저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적도 없었어요. 다 겁먹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 만의 일은 아닐 거에요. 주변 사람들도 (공익 제보자와) 똑같은 일을 당할까 봐 앞에서는 말 못 해요.

 

 

 

공익 제보의 결과가 보여주잖아요. 제보자들이 오히려 철저하게 당한다는 걸. 그럼 사람들은 그 공포를 학습하고 뒤에서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게 저를 칭찬하는 것이든 욕하는 것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손가락질하는 건 동료들이었다.

 

 

 

 : 요즘은 욕이 더 많더라고요.(웃음) 저도 한 다리 건너면 그 회사에 다니는 분이 있어요. 원래 사무장님 연락처를 그쪽에서 얻으려고 했는데 안됐어요. 안 알려주더라고요. 직원이라 알 수는 있는데 굳이 나서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었어요.

 

 

 

 : 그랬을 거예요.

 

 

 

 :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도 동료들이 그리 우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 네, 제가 비난을 많이 받아요. ‘피해자가 피해자다워야지 왜 저렇게 고개 드는 거야’ 라는 생각인데, 저는 그게 너무 웃긴 논리인 거 같아요. 찌라시도 그렇고, 인스타그램 한다고 연예인병 걸렸다는 것도 그렇고… 피해자의 이미지를 훼손시켜서 피해자를 악역으로 뒤집으려고 하는데, 그 사건 내에서 피해자인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인 거잖아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네가 야한 옷을 입어서 그런 거라고 하는 거랑 같아요. 내가 야한 옷을 입은 건 이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지 않아요? 근데 ‘피해자다운 피해자’를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이 요구해요. 저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비난을 해도 제가 정당하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굴복할 생각이 없고 SNS를 접을 생각도 없어요.

 

 

 

피해자로서 영원히 낙인되어 있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 선택을 안 하고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다음 사람들을 위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남았다

 

 

 

 : 마지막으로 두 가지 질문을 할 건데요, “대한항공에 왜 들어갔는지”가 첫 질문입니다. 원래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인가요?

 

 

 : 김찬삼 씨라는, 여행 작가가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TV 채널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그분 책을 읽으면서 먼 나라에 어떤 사람들이 살까, 이런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 와중에 사업이 좀 안 좋아져서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셨어요. 10년 동안 타셨는데,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올까 말까 했어요. 너무 못 보니까 아버지가 엽서를 자주 보내셨는데, 하와이에서 보낸 적도 있고, 피지에서 보낸 적도 있고요.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서 꿈을 많이 꿨던 거 같아요. 언젠가 나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뭔가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고. 그러다 대한항공 입사 시험을 쳤는데 합격을 했고, 들어와서 일을 해보니 이 직업이 참 저랑 잘 맞더라고요.

 

 

 

 : 어떤 점이 잘 맞아요?

 

 

 : 비행기라는 공간은 물 한 잔을 마시고 싶어도 승무원의 도움 없이는 마실 수 없잖아요. 저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위치라는 게 좋았어요. 물론 비하도 많이 듣죠. “밥이나 주는 주제에” 이런 식의. 제 친구들도 아직도 그러거든요. “너 아직도 비행기에서 커피 나르냐?” 뭐 이렇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 그걸 할 수 있는 직업이 이거다. 그래서 난 참 좋았어요.

 

부모님한테서 물려받아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에 부합하고, 항상 동경해오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어서 좋았죠. 그 일을 잘 해냈고, 칭찬도 많이 받아서 더 좋았고요.

 

 

 : 그럼 지금은 대한항공에 왜 계속 계세요?

 

 

 : 가끔 비행기에서 “그렇게 비참한 일을 당하고 이 회사에 또 들어와서 일해요?” 하시는 분도 계세요. 지금도 저는 이 일을 좋아하고 이 일에 자부심이 많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회사에 남아있는 것은, 주체성의 문제인 거 같아요. 승무원이란 직업은 내 일이고 내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타자에 의해서 관둬야 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몸이 더 안 좋아지거나 공황장애가 더 심해지면 그만둘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타자의 의지에 의해서 퇴사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가는 거겠죠. 이 회사에 부당함이 있지만, 그것에 얽매여서 제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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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시는 조현아 씨의 대법원 판결 이전이다. 판결에 따라 어쩌면 회사 생활이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날에 대해, 혹은 언론에 계속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에 대해 후회가 없냐고 물었다.

 

 

 

 : 억울했죠. 난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까… 그런데 사건이 있고 나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아버지는 6.25 때 참전하셨다가 부상을 입은 후에 계속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그 얘길 했었어요. 나라에서 챙겨주지도 않는데, 아버지는 억울하지도 않냐고. 그랬더니 아버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대통령 한 사람, 큰 사람 한 명이 나라를 만든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만들었다.

나는 거기에 후회 없어.” 

 

 

 

어느 순간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람들만의 나라는 아니잖아요. 나 같은 사람이 덜 인정받는다고 해서 내가 작은 건 아니라는 생각,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그리 했듯, 주체를 저로 삼게 되었어요. 제가 이런 일을 겪을 다음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이 됐으면 좋겠어요.

 

 

건강과 인간관계,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직장까지 잃었다. 그 과정에서 생채기를 여럿 입었지만, 박창진 사무장은 숨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2, 제3의 박창진을 위해 조금이라도 앞장 서가고 싶다는 소망이 소명이 된 것 같았다.

 

어제 대법원은 조현아 씨의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그가 더 많은 인터뷰를 하길 바란다. 

 

 


 

 

 

편집부 주 
 
 
본 이너뷰 기획 시리즈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한다. 
사회를 위해 용기냈던 분들을 딴지 기자들이 돌아가며 
찾아갈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추천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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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정
 
공익제보자, 공익활동가의 삶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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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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