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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28. 금요일

프랑스특파원 아까이 소라

 

 

 



 


 

 





2014년 2월 23일 황금 같은 일요일 아침.


전날 마신 맛난 와인을 그리워하며 오늘은 무엇을 하며 쉴까 팔자 좋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명치 쪽이 더부룩하고 무거워져 왔다. 체했거니 싶었다. 혼자 유학생활을 하는 필자에게는 흔한 일이다. 서랍장을 살펴 보니 소화제도 없기에 그저 손을 땄다.

 

어라?

 

아무 느낌이 없는 거라. 그래서 열 손가락을 다 따 봤다. 그래도 아무 느낌이 없다. 등을 두드리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기에 애꿎은 배만 자꾸 두드려댔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침대에 걸터앉아 자학하듯 배를 주먹으로 계속 팼다.

 

문제는 잠시라도 누워서 쉬고 싶은데 어느 자세로든 눕는 순간 복부의 통증이 배가 된다는 것. 결국 참을 수 없이 높아만 져 가는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약국이라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심... 그렇다, 이 작은 움직임에 결심이 필요할 만큼 상황이 안 좋았다.

 

전날 화장도 안 지우고 그냥 자버려서 몰골이 아주 흉하기 짝이 없었기에 우선 화장을 지우고 샤워부터 했다. 따뜻한 물이 몸에 닿자 왠지 몸이 풀리며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것도 그저 잠시. 머리를 말릴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화장을 지운 것과 양치라도 한 것에 만족하며 패딩에 붙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약국으로 향했다.

 

아뿔싸! 약국이 문을 닫았다.

 

프랑스는 평일도 저녁 8시가 넘어가면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대형마트도 일요일에는 모두 문을 닫아 버린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저녁시간과 휴일만큼은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요일, 슈퍼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계산할 차례를 기다린다. 가끔 깜박하고 토요일 저녁에 장을 볼 때면 평소보다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리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프랑스에 찬성했는데, 그 날은 찬성이 어려웠다.

 

하필이면 우리집과 가장 가까운 약국이 문을 닫을 차례가 된 건 뭐람.

 

약국에 도착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긴 했나 보다. 약사 언니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뛰어왔나 봐요?" 하더니만 가까이서 나를 보곤 곧 걱정에 휩싸인다. 소화제를 비롯해 각종 복통에 먹는 약을 샀다. 그저 누워서 잠을 청할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챙겨주는 대로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

 

약사 언니는 나더러 집에 혼자 있느냐며 그럴 거면 잠시 약국에서 기다렸다가 좀 나아지면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한다. 왠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안심이 되어서인지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지만 계속 나아지질 않고 결국 집에 들어가려니, 약국에서 일하는 청년 한 명을 보내어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 솔직히 프랑스에서 이런 따뜻함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나중에 퇴원하면 꼭 그 약국에 찾아가서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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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총각이 집까지 데려다 줬다. 고마운 일이다.

 

 

집에 오자마자 약을 모두 게워내 버렸다. 구토를 하고 나니 왠지 시원한 감도 있어서 이제는 나으려나 했다만 이제는 물을 마셔도, 토해버린 약을 다시 먹어도 그저 구토만 계속할 뿐이었다. 통증은 그대로. 약이 안 먹힌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건데, 이곳에서 딱히 기댈 사람도 없는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생애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불렀다.

 

실은 앰뷸런스를 부르는 것조차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왠지 응급환자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알러지로 호흡곤란이 왔을 때도 그냥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었더랬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겪는 날카로운 고통과 아무도 내 뒤를 봐 줄 사람이 없는 외국인의 신분은 응급콜을 할 만큼 나를 뻔뻔하게 만들어 주었다.

 

앰뷸런스를 부르는 전화 한 통이면 금방 빨간 차가 사이렌을 켜고 나를 찾으러 올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 내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이름이며 주소며 증상이며 참 꼼꼼히도 묻더니 잠시 기다리라고서는 의사를 바꿔 준다. 다시 처음부터 증상을 설명하는데, 이제는 곧 숨이 넘어갈 기세인데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차려 질문에 대답한다. 이번엔 의사가 일요일에도 열려 있는 메디컬 센터의 주소를 알려 준다.

 

혼자 있으며 거기까지 갈 여력이 안 된다고 하자 요즘 독감 유행으로 당신 같은 환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핀잔 비스무레한 답변이 돌아온다. ‘저기요, 그런 환자가 한둘이 아닌 줄은 몰라도 난 하나뿐이거든?’ 곧 의사가 방문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일요일이니 진료비에 의사 왕진비에 돈이 장난이 아니게 깨지겠지만 일단 살고 봐야지.


전화했다. 또 증상을 묻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은 걸 또 다시 설명한다. 이제는 말이 뇌를 거쳐 나가지 않는다. 증상을 다 들은 아줌마가 지금 워낙 대기자가 밀려있어서 왕진은 깊은 밤에나 가능할 것 같단다. 프랑스에서 그럴 것 같다는 건 100% 그럴 거라는 거다. 아니, 120% 그것보다 더 심한 상황을 생각하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럴 수는 없다. 너무 아파서 그냥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줌마는 다시 응급센터에 전화해서 앰뷸런스를 불러달라 하라고 시킨다. 아니, 무슨 서비스가 하나도 연동이 안 되어 있고 아픈 사람이 하나 하나 다 찾아서 해야 하는지. 항상 이런 식이다, 프랑스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알아서 뭘 해 주는 게 없다.

 

다시 응급센터 전화.

 

같은 번호로 두 번째 전화한 거라 바로 의사한테로 넘어간다. 나는 프랑스에 혼자 와 있는 외국인이고 지금 딱 죽겠다. 당신네들이 시킨 대로 방문센터에도 연락해 보고 다 했는데 오늘 밤에나 온단다. 여기까지 설명하니 눈물이 왈칵 난다. 울먹이며 나 좀 살려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앰뷸런스를 보내겠으니 기다리란다.

 

그제서야 앰뷸런스라니. 그러나 앰뷸런스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도 40분이 지나서였다. 고통에 못 이겨 지쳐 잠시 졸았던 내가 아직도 앰뷸런스가 안 온 것에 빡쳐 다시 한번 응급센터에 전화하자 그나마 조금 더 일찍 오기는 했다만 그게 40분. 알고 보니 민간 앰뷸런스였다. 젠장. 어쩐지 혈압 재고 하더니 결제 어떻게 할 거냐고 먼저 묻더라. 카드는 안 된다 하길래 수표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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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 하나 타는 데에 한 시간 반, 22만 원 들었다.

 

 

사실 프랑스 앰뷸런스가 그리 비싼 건 아니다. 단, 나는 외국인인데다가 학생이지만 나이가 29세 이상이기 때문에 프랑스 사회보장시스템 중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함정이 있다. 그래서 나중에 보험처리 해서 환불이나 받자는 심정으로 일단 급한 대로 요구하는 돈 전부를 결제했다. 149유로. 한국 돈으로 22만 원가량. 썩을, 드럽게 비싸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병원에 왔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통증은 병원에 도착한 18시가 지나도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레이디로서 품위를 지키고 싶었으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 보는 수준의 고통에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한 번 터진 방언처럼 소리가 고래 고래 나왔다. 참, 소리는 한국어 반, 프랑스어 반 나오더라. 프랑스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 피검사, 소변검사, CT촬영을 마치고 맹장염 판정을 받은 것은 다음 날 새벽 1시. 그나마 모르핀을 두 번이나 놓아 줘서 살 만은 해졌지만... 이 나라 참 쓸데없이 여유가 지나치다.

 

‘아마도’ 내일 수술을 할 거란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응급실에서 일반병동으로 보내졌다. 급성맹장염이라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게다가 ‘아마도’라니! 일반병동에 옮겨지고 고요한 밤이 되자 비로소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일단 ‘아마도’라 했으니 내일 중으로 수술을 못할 확률이 더 높다고 이해하면 쉬울 테다. 급성맹장은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복막염이 될 지도 모르는데 ‘자기 일 아니라고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하는 불평부터 수술 및 입원비 걱정까지 몸이 좀 덜 아파지자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밀려왔다.

 

보험 적용이 바로 되는 게 아니라서 일단은 자비로 내고 환불을 받아야 할 텐데, 그 절차도 생소하게 느껴졌고,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 일단 이 병원비 커버가 가능할지조차 모르니 무서웠다. 앰뷸런스비만 이미 22만 원이 나가지 않았던가?! 의사에게 이런 사정을 말했더니 응급으로 온 거라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며 위로는 해 주더라. 물론 “확신할 수는 없지만”을 덧붙인 채.

 

여기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이란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아마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확인은 필요할 거야. 그 확인은 니가 알아서 하면 되겠지? 어차피 내 사정은 아니잖아. 니 사정이 참 딱하긴 하다. 잘 되었으면 좋겠네. 파이팅!” 이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너무 기대할 필요는 없다.

 

일반화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프랑스인들 대부분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가 잘 아는 주제가 나오면 신이 난다. 방언이 터진다. 만약 그 훈남 의사가 관련 내용을 정말 잘 아는 경우였다면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을 거다. 이럴 경우, “확신할 수는 없지만” 따위의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여튼 이제야 슬슬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우선 부모님 및 친구들에게 맹장염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알렸다. 그런데 이 죽지도 않는 돌고래는 날더러 프랑스 병원 입원실과 병원식이 궁금하니 사진으로 남겨 놓으란다. 필자, 솔직히 농담인 줄 알고 좋아했다. 유일하게 “어머, 어쩌면 좋니!” 식의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심 반갑기까지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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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죽일 돌고래는 진심이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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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게 다 있지?

 

 

지금 이 글을 적는 것은 절대 원고료 때문 아니다. 그저 심심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려고 가져 왔으나 눈에 들어오질 않고 머리만 멍멍하다. 어차피 방문객도 없는 2인용 병실을 혼자 쓰고 있으려니 작은 스마트폰 하나 붙들고 자폐아 마냥 글을 쓰고 있다.

 

여튼 맹장염 수술에 들어간 것은 판정 받고 20시간이 흐른 후였다. 프랑스에서 걸리는 맹장은 한국의 빨리빨리 맹장이랑은 뭔가 다른가 보다. 프랑스 특유의 여유로움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빡침의 연속이다. 나를 보러 오는 모든 간호사 및 의사에게 나 수술 언제 받냐고 나 보험 적용 안 되니 좀 빨리 받고 나가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깜깜 무소식.

 

프랑스 행정은 정말 “사대빵”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사대빵이란 4:0이 아니라 ca depend이란 표현이다.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뜻으로, 프랑스 행정의 유연성을 자랑하기보다는 그 불합리성을 조롱하는 데에 자주 쓰인다. 독일처럼 무언가 절차가 확실히 있어서 그에 따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가 그 업무를 담당하는지, 그 누군가의 기분이 어떤지 등 알 수 없는 이유들이 활발히 작용하여 그 누구도 프랑스 행정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어쨌든 그 다음 날 수술을 받긴 받았다, 밤 10시에. 잘 생긴 의사 선생님이 내 침대를 끌고 가며 꼭 머리 쪽으로부터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나는 복도에서 몇 번의 회전을 거쳤다. 옆에서 간호사들이 미신이라며 지적했지만 의사는 끝까지 그건 미신 같은 게 아니라 원래 발부터 들어가면 안 좋은 거라는 궤변을 계속했다. 팽팽 도는 내 머리로도, 아무리 좋게 보려 해 봐도 그건 그냥 미신 아닌가? 그냥 잘 생기기만 한 거면 어쩌지 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곧 마취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저 잠만 잤다.

 

잠에서 깨어 보니 올 누드상태로 이불만 덮고 있다. 마취에서 깨는 게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인 줄 지금까지는 몰랐다. 머리가 빙빙 돌고 구역질이 났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들고 몸이 별로라 그랬더니 왜 안 자고 일어났냐며 얼른 다시 자라는 타박만 돌아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잘 수가 없었는데 말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상당히 불쾌한 상태로 그곳에 누워있었다. 아무래도 마취에서 필요보다 일찍 깬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몸무게를 사실대로 얘기할 걸 그랬다.

 

다음 날 일어나니 이제서야 조금 여유가 생긴다. 자, 이왕 이렇게 된 거 프랑스 병원을 구경해 보자. 한국과 많이 비슷하다. 병상이 있고 벽에는 TV가 걸려 있다. 다만 곳곳에 소지품을 주의하라는 문구가 가득 채워져 있다. 화장실 갈 때 핸드폰 침대 위에 두고 갔다가 한 소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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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없는 2인실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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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이라 뷰 하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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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은 꼭 벽장 안에 넣어 두거나 귀중품은 따로 보관을 요청하란다.

벽장 안에는 금고도 있다. 도난사건이 빈번했다는 증거.

 

 

뻐근한 배와 멀미를 하는 듯 울렁대는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 만큼 누워 있었으면 됐다 싶어 스마트폰을 들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고 있을 때,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 사실 수술과 입원 소식 이후에 친구들에게 위로의 연락은 많이 받았지만, 굳이 와 달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더랬다. 뭔가 유난 떠는 것 같기도 하고 몸 자체도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데 이 친구는 먼 데서도 한 걸음에 달려와 줬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생일파티 때 온다고 해 놓고 안 왔다고 은근히 삐져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레일라, 미안..

 

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바로 현지인 동성친구 사귀기가 아닐까 한다. 특히 이곳 프랑스에서는 더더욱. 한국 미디어에서 막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2000년대 초반 만화에서부터 시작한 한류는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분명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동양남자도 “개만큼도 인기가 없지는” 않다. 동양여자와의 데이트는 이전부터 인기가 있었고, 이제는 동양남자와 사귀는 것이 어느 정도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이 사실.

 

여튼 그러한 관계로 한국 여자로서 프랑스 남자와 친구도 아닌, 연인도 아닌,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이는 즉,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엑조티즘(이국 취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동성친구와 우정을 맺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지만 친구가 별 거던가. 언제나 그렇듯 우정의 시작은 서로 마음 열고 대화하는 것부터. 그 친구와도 그렇게 연을 맺게 되었고 아마 이번 일로 레일라와의 우정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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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병문안 세트 : 잡다한 잡지와 꽃다발

진정한 휴가에 가십 잡지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이제 마취는 다 깬 것 같은데 아직 남아있는 통증 때문인지, 계속 끼고 사는 진통제 때문인지 친구가 챙겨 준 프랑스식 병문안 세트는 아직 빛을 볼 준비가 안 된 듯 하다. 그냥 가십잡지이지만 그마저도 프랑스어로 되어 있기 때문. 머리가 핑핑 도니 내 반평생을 바친 프랑스어도 다 까먹은 것 같다. 직관적인 표현 아니고서는 입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다.

 

오늘 아침, 의사가 찾아 왔다. 이탈리아 억양으로 프랑스어를 말하는 이 남자 말,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 요즘은 죄다 턱수염을 기르는 게 유행인가. 배를 까고 여리저리 조물딱 만져보더니 식사하고 싶냐고 물어 본다. 장난하나. 이틀 전 18시에 병원에 도착한 이후, 다음 날 수술까지 26시간, 또 그 이후로 가스가 나오기까지 10시간. 총 36시간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 했다. 일부러 다이어트를 하려 해도 이렇게는 힘들겠다. 가스 나왔다고 밥 먹을 거라고 했더니 아침으로 이런 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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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첫 끼니는 따뜻한 차 한 잔

 

 

입 안이 완전 건조해 있어서인가, 마른 땅에 물 붓듯 차가 내 몸에 흡수되어 갔지만 맛은 못 느끼겠다. 정말 코카콜라 한 잔이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게 허락된 것은 그저 차 한 잔.

 

그래도 점심식사는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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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맹장염 수술을 마치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 내게는 건더기 없는 맑은 수프와 플레인 요거트 및 설탕, 그리고 사과 살구 콤포트가 나왔다. 콤포트는 과일 퓨레 같은 것으로 달달한 것이 잼과 비슷하긴 한데 그만큼 점성이 있지는 않다. 디저트로 먹는다.

 

수프는 정말 맛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남겼지만 요거트와 콤포트는 바닥까지 쓱쓱 긁어 먹었다. 이것도 식사라고 좀 먹고 나니 힘이 난다. 다시 링겔을 꽂은 채로 여기저기 발발거리며 돌아다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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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인 만큼 제일 자주 많이 보이는 손 소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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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가만 보니 병실이 모두 2인용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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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 사진.

그러고보면 시설 면에서는 한국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한국은 병원마저 삐까뻔쩍하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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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근데 샤워실 보니 여기 병원은 좀 심하다.

알고 보니 이 병원, 실력으로는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병원인데

또 그 시설의 낙후도로도 알아주는 병원이었더라.

앰뷸런스에 실려온 나로선 알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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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보낸 세 번째 밤

이제는 야경을 감상할 여유가 생긴다.


 

입원 4일째.

 

이제 머릿 속에는 딱 두 가지. ‘퇴원 언제 하지? 돈 없는데.’ ‘밥 먹고 싶다.’ 프랑스 생활에 이골이 나서 뜨끈하고 짭쪼롬한 찌개에 김 올라오는 밥 이런 거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뭔가를 씹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10분 자고 다시 깨고 다시 잠들어 10분 후 다시 깨는 상황을 반복하다 보니 이런 게 나온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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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초코와 바게뜨, 버터와 딸기잼, 오렌지 주스와 플레인 요거트, 그리고 프로마쥬 블랑(생치즈)


 

완전 신나서 하악하악 거리며 달달한 핫초코를 한 모금하려는 순간, 간호사 언니가 급히 뛰어 들어 온다.

 

 

“마담은 아직 이런 거 먹으면 안 돼요.”

 

“아…아니…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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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주스와 쨈, 버터, 빵을 걷어가 버렸다.

 


완전 좌절이다. 이런 거 가지고도 좌절할 수 있다니 인간은 참 간사하고도 단순하다. 가져갈 거 저 쓸데 없는 나이프도 갖고가 버리지. 결국 핫초코에 전지분유 넣어 꾸역꾸역 삼켰다. 그래도 4일만에 느끼는 핫초코의 찐득함은 잠시나마 행복감을 전해 주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우울하다!

 

곧 의사가 들이닥치더니 퇴원하고 싶냐고 묻는다.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나가고 싶은 시간에 나가란다. 아, 정말이지 쿨하기 짝이 없다. 11시쯤 친구가 올 예정이니 그럼 그 때 나가겠다고 이야기 하고서는 마지막 진통제를 맞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퇴원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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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가... 5,202.72유로 나왔다.

 

아놔 ㅅㅂ

 

유로로 하면 감이 안 올 너들을 위해서 한국 원화로 계산한다. 754만 4천 원. 거기에 앰뷸런스비 22만 원을 더 하면 거의 780만 원. 나는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급성맹장염(충수염)이라 3일 밤을 병원에 머물며 간단한 수술 한 번을 받았을 뿐인데 780만 원이다.

 

나도 안다. 내 탓이다. 만 29세가 넘었기 때문에 프랑스 학생 보험을 적용 받을 수 없어 보험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유학생 보험을 들었다. 제일 싼 거로 들었더니 해외 입원 시 보장 한도액이 500만 원이란다. 결국 나머지 280만 원은 그저 내가 알아서 내야 한다.

 

병원에서는 얼른 낫기나 하라던 부모님도 진짜 5000유로가 넘는 건지, 500유로를 내가 잘 못 본 게 아닌지 확인하신다. 아 정말,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하는 회한마저 밀려 왔다. 아, 정말 비싸도 드럽게 비싸구나. 해외 나오면 아픈 게 죄다.

 

뭐,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보험이라도 안 들어 놨다면 780만 원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을 테다. 그리고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 들어 놓은 거라 일처리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다. 퇴원날 아침에 컨택이 되었는데 3시간 만에 스페인 지사에서 병원으로 연락을 해 왔고 퇴원하면서 아무 문제 없이 보험처리를 약속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만하면 정말이지 어메이징한 거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말이다, 어차피 학교에 등록할 때 보험은 필수적인 거라 들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보험약관을 이제야 찬찬히 살펴 보니 아프지 않았을 땐 안 보이던 것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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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보험인데 왜 해외 의료비 지원은 5백만 원밖에 안 되고 국내 의료비는 3천만 원인 거냐? 이름만 유학생 보험인 거다 결국은. 나는 저 배상책임 부분만 있으면 됐었기 때문에 이 보험을 선택한 거긴 하지만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여튼 이제는 퇴원도 했고 아직 어지러움증이나 구토기가 가시지 않아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이나 끄적거려 가며 은신하고 있다. 얼른 박차고 일어나 나머지 280만 원을 채워 넣을 방법을 궁리해 봐야겠다.

 

역시 나이 먹어 하는 해외 유학 생활은 궁상맞고 처량하고 서럽고 힘들다.

 

젠장







프랑스특파원 아까이 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