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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봉이사슴 추천9 비추천0

2014. 03. 04. 화요일

독투불패 닭봉이사슴





 

 




1. 교육, 썰 함 풀자


필자는 파리에 거주 중인 유학생이다. 전공은 건축이고. 바게뜨 좀 뜯으며 산 지 올해로 5년이 좀 넘었다. 석사나 박사 혹은 학사 3학년쯤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보통의 유학생과 달리 필자는 1학년부터 시작했다. 여기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고, 그 중 일부는 프랑스 교육현실을 분석하는 데 꽤나 도움이 된 듯 싶어 이 글을 쓴다.


최근에 독일과 프랑스 유학생활을 갱재적으로 비교한 글(위 링크 참조)을 잼나게 읽었다. 독일 집값과 교통비를 보고 석사나 박사는 독일에서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은 그런 통계나 레퍼런스 따윈 없이 그냥 내 생활했던 걸 토대로 쓰는 거다. 참고로 필자의 경우, 대부분의 유학생이 뭐 그렇지만서도, 조금 특이한 경우다. 몬 뜻이냐면 평범한 유학생활은 아니니 이걸 보고 따라하거나 이게 프랑스 유학의 전형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달라는 거다. 이 케이스는 프랑스 교육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꽤나 깊숙히 파고든,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잘 된 것도 좋게 된 것도 아닌 그런 케이스다.


필자는 건축학교를 다니고 있다. 프랑스의 건축학교는 대학교에 소속돼 있지 않다. 그래서, 행정 절차는 대학교와 공유되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꽤나 다르다. 이 특수성은 첫 글, 그니까 이 글만 그렇고, 혹시 연재를 하게 되면 그 이후 글들은 유학생활을 하며 인상깊었던 일들에 대한 썰을 좀 풀어볼 계획이다.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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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걍 공부하고 싶은 애들, 공부할 수 있는 제도


일단 왜오게 되었는가. 이거부터 시작해보자. 아까이 소라와 타데우스가 3탄에 걸쳐 한 계산들을 필자는 2004년에 했다. 그 당시에도 결론은 비슷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거랑 프랑스나 독일에서 공부하는 게 갱재적으로 별 차이가 안난다는 것.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었지만 졸라 신물나는 일들을 학교, 친구, 여자에게 연속으로 당한 필자는 이럴 바엔 때려치고 유학이나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계산해 보니 돈도 대충 비슷하게 드는 거 같고 하니. 근데 10년이 지난 아직도 학교 졸업은 커녕 학사도 못 끝내고 있다. 뭐, 그냥 졸라 실패하고 졸라 돌아왔다고 생각하자. 


가장 큰 실패는 학교에 떨어진 것이었다. 프랑스에 유학하려면 필요한 게 두 개 있다. 불어능력과 한국 대학 입학서. 일정실력의 불어능력은 당연히 필요한 거고(영어권 국가에서 대학 갈 때의 영어실력보단 좀 떨어지는 정도면 되지 않나 싶긴 하다. 아무래도 여긴 유학생이 별로 없으므로) 한국 대학 입학서는 프랑스의 고등학교 학위인 바칼로레아와 같은 종류의 서류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를 따면 그걸 갖고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데 한국처럼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진 않는다. 하지만 바칼로레아에 해당하는 학위가 없으면 대학에 지원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외국인에게는 이에 해당되는 서류를 요구하는데 이게 대학입학증명서다. 왜 대학입학증명서냐면 너네도 알다시피 솔찍히 고등학교 나왔다고 다 대학 갈 능력 되는 건 아니자나. 


대학입학 증명서가 없어도 고등학교 성적이 좋으면 대충 지원할 수 있고 대충 다 붙을거다. 내가 떨어진 이유는 불어능력도 아니고 한국 대학입학 및 성적문제도 아니었다. 이건 자세히 얘기하면 복잡하니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하자. 암튼 중요한 건 내가 불어가 됨에도 떨어졌다는 거다.


한국의 대학에 이미 제적되어있는 상태였고, 프랑스에서 시간을 꽤 보낸 상황에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기는 좀 뻘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도전을 결심한다. 하지만 여긴 성적순으로 학교를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뭐 딱히 할 수 있는 노력도 없다. 내가 불어를 졸라 열심히 해도 대충 커트라인 통과한 애랑 점수차이는 얼마 안나기 때문에 불어공부를 할 필요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수능같은 시험도 없기때문에 정말 할 게 딱히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것은 청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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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뭔가 오래된 단어같다. 오늘의 글은 이 청강에 관한 것이다. 대학에서 등록을 안 하고 수업을 듣는 행위. 그거 맞다. 심지어 필자는 돈도 안 내고 일 년간 청강을 했다. 돈이 적게 든 정도가 아니라 그냥 빵 유로 낸 거다.


일단 이쯤에서 건축과의 특수성 얘기를 좀 해야겠다. 건축은 일반적인 수업, 그니까 강의실이나 강당에서 하는 그런 수업도 듣지만, 건축설계라는 실습형 강의가 따로 있고 -이게 제일 중요한 수업이다. 이건 전세계 공통이다- 보통은 한 명에서 두 명의 교수가 10에서 30명 가량의 학생들을 데리고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하는 과정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며 학생은 당연히 설계를 한다. 수업은 학생의 작품에 대한 교수의 비평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1:1 방식의 수업이다. 교수가 하루 웬종일 수십명의 학생들을 하나하나 봐주는 거다.


난 당연히 이 수업을 청강했다. 그니까 말이지, 그냥 교수가 떠드는 거 가서 들은 게 아니라, 교수랑 직접 대화를 하며 진짜 거기 대학생처럼 수업을 듣고 점수도 받았다는 뜻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돈을 받고 일하는 교수가 학생을 공짜로 가르치다니. 그것도 1:1로, 꽤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게다가 난 돈도 안 냈고 학교에 등록도 안 되어 있는데. 학생 = 대학병원 건설비 쯤으로 생각하는 사립대들이 판을 치는 한국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한 거고 프랑스에서도 거의 없는 일이다. 뭐, 여긴 공부하고 싶으면 그냥 대충 대학 등록해서 다니면 되니까 그럴 필요가 없는 거긴 하지만.


이 이상한 일이 현실에 일어날 수 있는 덴, 지금 돌이켜 보니, 몇가지 큰 이유가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거. Unité Pédagogique. 한국말로 하면 '단위 교육 기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UP는 평준화되어있는 프랑스의 건축학교들을 부르는 말이다(정확히는 Unité pédagogique d'architecture). 나꼽살에서 우석훈 박사님이 나왔다는 빠리십대학 같은 거다. 필자가 댕기는 학교는 UP6 되시겠다. 이름은 La Villette. 68년인가 교육 혁명과정을 거치며(이 부분은 나도 잘 몰라...) 프랑스의 대학들이 서열을 없애고 통폐합 되는 과정에서 건축학교들도 같은 혁신을 하는데, 그때 붙여진 잠수함 번호같은 이름이 UP6, 유빼씨쓰다. 그 혁신의 결과로 프랑스가 얻은 것이 고등학교 학위만 있으면 그냥 집근처에 있는 아무 학교, 아무 과나 가고싶은 데 가서 동사무소 전입신고 하듯이 신고하면 3년간의 학사과정과 2년간의 석사과정, 그리고 박사까지 거의 무료에 가까운 돈으로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자세히 들어가면 조금 더 좋은 학교들이 있고 거기 학생들이 좀 더 몰리기도 하니 무슨 등록만 하면 다 받아주는 그런 식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과는 프랑스 전체 정원이 그 공부를 하고싶어하는 학생 수 만큼은 되니 어쨌든 공부는 할 수 있는 거다. 공부를 하고 나서 취직할 때도 당연히 학벌의 영향 따윈 없어진다. 기업들은 그냥 걔 실력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뽑으면 되는 거다. 졸라 경쟁적이지 않아 학습 능력을 저해할 것 같은 빨갱이적 교육정책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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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청강을 할 수 있었던 거랑 몬 상관이냐면은. 내가 안면도 안튼 채로 "나 너네 반에서 공부하고 싶어 졸라. 나 공부 할 수 있게 해주면 졸라 열심히 할께"라고 메일 한 통 보냈을 때, "ㅇㅇ 담주 월욜에 강의실에서 보자"라고 쿨한 답장을 해줬던 교수의 마인드에 이 UP 교육철학이 있다는 거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만 있으면 그 학생은 교육시켜야 한다라는 생각.


대학은 원래 뛰어난 놈들 데려다 더 뛰어나게 키우는 데 목적을 갖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엇비슷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니 '우리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교육하면 졸업장 받을 때쯤은 누구나 그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나같은 얼치기라도 한국에서 대학도 다녀봤을 정도의 능력은 되니 내가 한 일 년 가르치면 좀 똘똘해 지겠지라고 그 교수는 생각한 거지. 등록금은 원래 얼마 되지도 않고 그건 대학 행정과 문제니 교수는 그건 고려해 볼 필요조차 없는 문제고. 


당근 이게 둘째 중요한 거 되겠다. 돈. 글타. 프랑스는 대학갈 때 등록금 이삼백 유로 내는 거 빼면 따로 돈이 거의 안든다. 필자는 청강 당시 행정과의 실수로 그것조차 안냈다(나중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직원은 어라? 그러고 말더라). 그런 상태로 학생증 받아서 도서관 가고 학교 컴터 프린터, 플로터 다 이용하고 다녔다. 프랑스에서 세금 한 푼 안 낸 주제에 프랑스인들의 세금으로 세워진 학교에서 세금으로 사재낀 물건들을 그냥 막 그렇게 쓰고 다닌거다. 나같은 놈 만 명만 있으면 프랑스 망하겠다. 그러니 이딴 제도는 울나라에선 안돼!


된다. 완전 된다. 돈과 프랑스식 교육철학을 합쳐보면 당근 우리 머리속엔 이런 생각이 든다. 공짜로 다니고 싶은데 들어가서 막 학교다니면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냐. 근데 말이지. 다 하고싶어서 온 애들이라서 졸라 열심히 한다. 물론 개중에 떨어지는 애들도 있다. 근데 이런 애들은 보통 짧으면 한 달 길면 한 학기 안에 학교를 그만둔다. 못쫓아 가니까. 나머지는 그냥 쭉 열심히 하는거다. 자기 하고싶은 거, 공부하는 거 보다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다.


이 마인드가 구체화 된 정책이 이 두가지다. 무료에 가까운 돈으로 가고싶은 과에 가서 하고싶은 만큼 공부를 하게 한다. 그것 이상으로 효율적으로 학습시키는 방법은 없으므로. 졸라 멋있지 않나? 여기에는 '적성'평가 따위는 필요없다. 애초에 어떤 적성이 어떤 직업, 혹은 학군에 맞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 직업이나 학군에 여러가지 적성을 갖은 사람이 활동해야 더 다양한 활동이 생기지 않겠나? 아이들은 그냥 자기가 하고싶은 걸 선택하고 가고싶은 학교에 지원을 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이곳에서 교수가 "너네 부모님 세금으로 공부하는 거니까 더 열심히 해야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선 "너네 부모님이 뼈빠지게 벌어다 준 돈으로 등록금 내고 공부 이따위로 하냐"라는 고무적인 말들을 졸라게 들어왔는데 말이다.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더니 그냥 펑펑 써재낄라 그러나? 전혀 아니다. 대학이 돈을 벌어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은 대학이 돈을 필요한 곳에 쓰게 만든다. 예산 집행 결정자들은 회의를 수도 없이 해서 행정과와 또 상의해서 돈을 쓴다. 건물은 수십 년에서 수백년 된 걸 그냥 쓴다. 무너지지 않으니까. 그거 새로 지을 돈으로 컴터나 책을 사고,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서 쓴다. 누군가 횡령을 하지 않는이상 교육이 아닌 곳에 돈이 빠져나갈 확률은 거의 없다. 이런 인식은 UP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퍼져있다. 아니 애초에 대학이 돈을 벌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조차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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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간지>



그 덕이다. 그 덕에 필자가 청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청강생인 주제에 그 반에서 일등을 했고 이후 교수의 추천서 덕에 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그 제도들이 필자와 같은 훌륭한 학생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나의 자랑질. 


뭐, 그런 얘기다. 대학 평준화와 등록금 무료화.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런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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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긴 p.s.


예외는 있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교, 그니까 여러가지 과들이 모여있는 교육기관이 있고, 그 이외에 건축학교나 의대 같은 전문학교들은 따로 나와 있다. 심지어 건축학교나 예술학교들은 소속이 교육부가 아니라 문화부라서 일반 대학과는 디테일한 차이점들이 있기도 하다. 


거기에 추가로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라 할 수 있는 폴리테크닉같은 초 전문학교들이 있다. 이것들 이외에 여러가지 사립학교들이 함께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여러가지 사립학교에는 주로 국립대학에는 없는 전공들, 예를들면 인테리어나 음악 같은 것들이 있고, 건축학교도 하나 있다. 이런 덴 등록금도 졸라비싸고(물론 돈이 없는 가정의 학생에게는 장학금이 나온다) 들어가기도 드럽게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학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이런 데를 들어가기 위한 중간단계의 준비학교가 따로 있고 이 준비학교에 있다가 입학에 실패해도 준비기간을 공부기간으로 인정해줘서 일반대학에는 편입으로 갈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특수학교들, 특히 폴르테크닉같은 초 전문 학교들이 프랑스의 서울대 카이스트 포공 같은 걸 담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니까 사회를 구원할 1%는 어디서 누가 교육하냐는 질문은 하지말자. 그런 특수한 계층을 위한 교육기관은 지들이 알아서 쿵짝쿵짝 잘 만들어서 잘 유지한다. 


평준화와 등록금(이라고 쓰고 건설비라고 읽는다) 무료화는 전국민의 80%가 대학을 가는 시대에 79%를 위한 정책이다. 쏠찍히 우리가 다 사장, 이사 해먹고 살 순 없자나. 그냥 하고싶은 거나 하면서 살자는 거지.








3. 내가 어떤 공부를 할지 제대로 아는 거, 입학 전에 가능할까


앞서 대학의 평준화와 등록금 무료화가 가져올 수 있는 크거나 작은 영향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했다. 이 두가지 정책이 표방하는 교육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히 얘기하자면 어떤 공부가 하고싶다면 해당 고등교육 기관에 가서 무료에 가까운 돈으로 고등학교 성적에 큰 상관없이 들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공부를 하고싶을지, 그니까 성인이 되서 어떻게 살지, 고등학교 졸업 후 5년간 어떤 학교생활을 보낼지를 대학입학하기 전에 안다는 거, 이거 가능할까? 


필자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프랑스로 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의 이상한 정책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한국에서도 건축공학과였다. 필자가 학교를 입학한 03년 당시는 한국 건축교육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였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의 분리 되겠다. 내가 아는 학교인 중앙대를 예로 들면 이전에는 건축과 하나였던 건축관련 학과가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로 02학번부터 분리되어 건축학부 안의 두개 과로 나뉘어졌다. 이 과도기적 상황에서 중대는 신입생의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의 지원을 따로 받았고, 같은 학부내의 과로는 전과를 할 수 없다는 학칙에 따라 1학년 때 지원한 그대로 4학년 혹은 5학년(건축학과는 5년제다)의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고 여기에 문제점이 있었다. 



필자는 고등학교때 파괴공학을 할까(남산 아파트 뽀개는 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건축설계를 할까 고민중이었다. 어쨌건 둘다 건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별 생각없이 더 짧다는 이유로 4년제 건축공학과를 지원하게 된다. 그리고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 모두 공통 과목들로만 전공수업이 채워지는 1학년을 마치고 설계에 뜻을 두었으나 아뿔싸. 건축설계는 건축학과에서 배우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학부라 전과도 안된단다(이후에 과도기 당시의 학번들은 예외적으로 가능하게 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난 이미 떠난후). 본인은 그렇게 3학기 동안 천만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은 후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만약 대학을 가기 전에 이런 상황들을 모두 알았으면 어땠을까? 이런 혼란한 과정에서, 이전 선배들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들을 수 없고, 학교 홈페이지에는 두 과가 뭐가 다른지도 안나와 있는 상태에서 그냥 저냥 건축이란 이름만 보고 지원해서 피를 본 필자의 케이스는 흔하진 않다고 치더라도, 솔까말 우리, 다 가고싶은 과 간건 아니자나? 평생을 따라다닐 그 학교 그 과를 정하는데 있어서,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이런거 고등학교에서 부터 확실히 알고 가는 사람, 흔치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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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대학을 평준화하고 무료화해서, 자 이제 너네 하고싶은 공부 맘껏 해, 라고 해봤자, 자신의 취향과 상관없는 일부 돈잘벌 거 같은 학과에 지원들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된다. 중고등학교때 아이들이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보게 해야한다. 십팔 십구살때 하는 그 선택이 그 아이의 평생을 결정하게 될 것음으로.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 




4. 대학을 간다는 것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교, 직업, 특히 평생하게 되는 노동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정책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인턴을 포함해 몇가지 될 거다. 하지만 난 프랑스 교육을 대학교부터 접했으니 패쓰.



저번엔 끄트머리에 살짝했는데 이번엔 아예 대놓고 자랑질로 시작하겠다. 뭐, 대단한건 아니지만서도. 지금부턴 프랑스 시점이다. 2학년 1학기를 마치는 건축설계 마감 날 피로와 심한 흡연에 바닷바람에 말린 오징어마냥 허옇고 쭈글쭈글해진 필자는 교수로 부터 뜬금 없는 말을 듣는다. "너의 프로젝트는 우리반을 대표할만 하니 곧 있을 'Journée porte ouverte'(학교 개방의 날쯤으로 해석 할 수 있겠다)를 위해 옆교실에 네 모형이랑 판낼을 전시해놓고 가라." 온몸이 땅으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던 필자는 안그래도 3장의 A0크기의 판넬과 26세대짜리 아파트 모형 두개를 집에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기에 오케 메흐씨를 외치며 기쁘게 모든 것을 놓아두고 왔다. 뿐만아니라 그 전에 했던 지리수업 발표 판넬, 기하학 수업에 그린 도면과 모형 등을 이 학교 개방의 날에 전시한다고 해서 이미 제출한 상태였다. 당시에는 이게 뭔가 했다. 혹시 이곳은 국립학교니 그 무서운 장학사님꼐서 오시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 학교를 청소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런건 아니었다. 필자는 주말에 일을 하기때문에 토요일에 열리는 이 학교개방의날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그날은 그런 날이 아니다. 그날은 그 학교의 학생들이, 1학년부터 5학년까지의 모든 학생들이 한 학업의 결과를 최대한 많이 끌어내 이 학교에 앞으로 들어오게 될 중고등학생들에게 보여주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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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냥 대충 보여주는게 아니라, 학교를 통째로 전시회장으로 바꿔서, 그니까 모든 강의실, 강당, 학교 현관, 안내부스, 식당 등등 활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간을 학생들의 학업의 전시공간으로 바꿔서 보여줄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행사는 전국 모든 대학 및 고등교육 기관이 같은 날 동시에 진행하며(전국은 아니고 지역별로 좀 다를 수도 있다. 보통 봄방학 첫주 토요일에 하는 건데 지역마다 방학일정에 차이가 있으므로) 중고등학생들은 엄마아빠 손을 잡고, 혹은 좀 큰 아이면 친구들과 함께 자기가 가고싶었던 학교를 몇군데 찍어서 돌아보게 된다. 


웬만한 학교는 그래도 건물 하나가 통째로 전시회장이기 때문에 단 하루에 많은 학교를 볼 순 없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3-4개 학교정도 보면 하루가 그냥 다 간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입장에서도 학교를 닫지 않는 봄방학이니 그렇게 학교를 개방해 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날은 자기 작품을 전시한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 및 학교생활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줘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의 전국행사가 되는 것 같다.


프랑스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행사 되겠다. 학교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 학교개방의 날에 관한 이야기가 빠짐 없이 등장한다. 자기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말할 때, 또 이학교의 첫인상에 대해 기억할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날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만큼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행사인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몇년에 걸쳐 여러 학교들을 처음엔 그냥 재미로, 나중엔 실질적인 잣대를 가지고 둘러봤을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싶은 공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그게 학교별로 어떻게 다른지 보다 선명하게 알게 된다. 게다가 자기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자기보다 한두살 위의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 대학생활을 좀더 현실적으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면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육광고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학원은 물론이고 대학들까지 광고를 해댄다. 이름을 알기 힘든 대학은 물론 저 유명한 연고대까지도 광고를 하고, 티셔츠를 찍고, 무슨 교류전을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해서 지들끼리 클라쓰를 만든다. 이미지 메이킹 쩐다. 역시 항문의 전당이라 안쩌는게 없다. 


대학광고들엔 꼭 졸라 청순하고 예쁜 처자 서넛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너그들을 오라고 유혹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겹다. 차라리 러시앤 캐쉬 광고가 더 솔찍해 보인다. 그들은 의도라도 빤히 보이지. 학문의 장인 대학 광고를 하는데 학교에서 제일 예쁜 학생들을 뽑아서 학교의 얼굴이니 뭐니 해야되고, 암만봐도 공부는 안할 거 같은 스포츠스타나 연예인을 데려다가 우리 학교엔 피겨여왕이 다닌다며 우린 평생 노력해도 안될 스타들이 마치 우리의 미래인 냥 이미지를 만들어데는게 진짜 이게 뭐하는 짓거리들인가 싶다. 이게 지금 우리 수준인가 싶어 슬프기도 하다. 갑자기 우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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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웬 광고얘기냐고. 좀만 더 들어봐라. 프랑스는 교육광고가 없다. 법으로 금지된건지 뭔진 모르겠고, 암튼 일부 어학원, 월스트리트 잉글리쉬 같은 글로발 제국주의시대의 필수교양을 제공해주는 곳이 아니면 교육기관의 광고를 볼일은 없다. 있어봤자, 교육박람회 광고 정도다. 이런 광고는 종종 보고, 가보진 않았지만 많은 학교들이 부스를 만들고 우리학교에선 이런걸 가르치고 우리학교에 올려면 이런 걸 해야해 라는 걸 보여주는 행사라는 것이 쉽게 상상된다. 단일 교육기관의 광고는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전 노르망디 지방의 Le Havre라는 곳을 가는 도중에 그 지역 몇몇 기차역에서 Université du Havre(아브르 대학)의 광고를 봤다. 그것도 무슨 거무죽죽한 추상화 같은 사진에 글씨만 대충 갈겨놓은 듯한 되게 불친절한 광고. 이건 뭐지 했다. 이곳에도 대학 광고가?


자세히 읽어보니 그 광고는 노르망디 지방의 가장 중요한 대학교 중 하나인 아브르 대학의 학교개방의 날 행사 광고였다. 지역에서 중요한 거점들 중 하나인 기차역들에 학교개방의 날이 며칠인지, 몇시부턴지, 그 학교가 어딘지 그런 걸 광고해 놓은 것이었다. 광고라기보단 공고가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뭐, 그것도 이미지를 차용하긴 했으니 광고라고 하자. 


하지만 말이지, 그 광고는 너무 좋았다. 학교개방의 날이 어떤행사인지 알고 나서 본 그 광고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날(수능날이 미래를 결정하는 날이 아니다. 너무 당연해서 눈물날꺼같지 않나.)을 놓치지 말라고, 꼭 와서 우리학교에 있는 모든 과들의 전시, 컨퍼런스를 보라고, 제발 잊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본 대학 광고는, 그런 느낌이었다. 파리는 그런 광고가 없다. 워낙 대학이 많기도 하고, 광고대도 비싸기도 하겠지. 그냥 집앞에 대학들이 널부러져 있으니 딱히 준비해서 나갈 것도 없고, 그날을 잊기도 쉽지 않겠지. 이번 여행의 수확 중의 하나였다, 그 느낌.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간다는 것은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처럼 무한경쟁을 통해 줄세우기를 해서 학교를 가는 시스템이라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가며 신중한 첫결정을 내린다. 물론 학교는 선택할 수 없기에 과만 선택하는 반쪽일 지언정. 우리는 그런 결정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대학의 광고들은 어쩌면 그런 판단들에 해만 끼치고 있지는 않은가? 대학생부터 청소년까지, 즐거운 소통의 축제의 장인 Journée porte ouverte를 보며 웬지 깊은 빡침이 몰려왔다. 이거 하는거, 별로 어렵지 않을거 같지 않나? 


근데 뭐. 반값등록금도 안해주는데 이런게 되겠어 



이 시리즈, 시간도 걸리고 필자의 방학이 이번주에 끝나는 관계로 끝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5년여간의 유학생활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한번 주저리주저리 풀어보자는 생각에 딴지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뭐, 일단 갈 때까지 가보는 거로 해보자. 암튼 이번 주안에 다 못올리면 다음 방학을 기달려야 하니. 다음 방학은 4월. 담편은 좀더 가벼운 이야기로 해볼까 한다. 프랑스에서 사귄 친구들 이야기로. 


그럼 오늘은 끝!





닭봉이사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