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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모름 추천21 비추천0

2015. 07. 08. 수요일

연애불패 잘은모름







편집부 주



이 글은 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0. 우리의 썸 - 그것을 떠들어보려는 이유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는 사실상 연인과 다를 바 없고

최신 영화가 나올 때마다 ‘언제 볼 거냐’며 약속을 잡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아이의 옆자리에 앉아 팔을 비비며 수다를 떨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괜스레 웃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다.

집에 돌아가는 저녁 길엔 나란히 걸음을 맞추다

대화가 점점 짧아지고 주위의 공기가 묘하게 둘을 휘감을 즈음

조금씩 스치고 있던 서로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보기도 한다.

다칠까봐 아플까봐 걱정하고, 다른 이성 얘기에는 내심 질투하고,

장난 섞인 말투로 투닥거리기도 한다.

서로의 감정이 닿을 듯 말듯, 밀고 당기며,

발을 주춤거리고, 주위를 서성인다.


나도 이 애를 보고 웃고 이 애도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나 우리 둘 중 누구도 너가 내 것이면 좋겠다고,

내가 너의 사람이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도, 이 아이도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


우리 사이는 지금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는 것일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성과의 관계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을 짧은 이야기로 꾸며 적어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줄에 ‘우리 사이는 지금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는 것일까’라는 물음은 사실 별 필요가 없는 듯싶기도 하다. 젊은 세대의 대부분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너무도 쉽게 내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답은 바로 ‘썸’이라고 하는 간단한 조어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 세대는 위와 같은 관계를 ‘썸’이라 이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이 단어를 조금 지난 옛 표현으로 풀어서 이야기해보자면 ‘우정과 사랑 사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이성간의 관계 속에서 설레고 두근대면서도 모호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를 헷갈려하는 상태. 연인과 다를 바 없는 말과 행동을 주고받았거나, 심지어 스킨십이 있었다 하더라도 ‘고백’과 ‘수락’ 이후 ‘사귄다’라는 말로 정확히 둘 사이를 결정짓지 않는다면 분명히 ‘연인’은 아닌 관계.


사실 ‘썸’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썸에 대한 기준이 개개인 마다 다르고 쓰임도 상당히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소개받은 이성과 분위기가 잘 이어져 연인이 되기 이전의 단계이거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성 친구와 나의 관계를 잇는 연결고리가 ‘사랑’인지 ‘우정’인지 명확치 않거나, ‘밀당’을 주고받는 중이거나, 연인처럼 자주 연락하고 데이트도 하며 스킨십과 잠자리까지 함에도 사귀는 사이는 아닌 경우 등등... 실제로 ‘썸’의 형태는 무척 다양하다. 그 결말이나 진행 과정 역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다. 연애가 늘 결혼의 전 단계인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썸’이 ‘연인관계’로 발전되는 것도 아니다. 암묵적으로든 아니든 합의 하에 그 관계 속에 머물거나, 천천히 멀어지거나, 한쪽이 애인이 생기거나.


‘애매한 관계’를 지칭하면서도 그 뜻조차 애매하여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애매한 신조어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수도 없이 많이 쓰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대중 전체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어 최근에는 음악, 개그 코너, 방송 프로그램 포맷 등등 문화와 방송 매체에까지 주요 코드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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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고 x 소유의 인기곡 '썸')


일부는 이러한 세태를 두고 ‘사랑’과 ‘사람’에 대한 요즘 젊은 세대의 태도가 가벼워졌으며, 빠르고 편리한 것만 찾는 성향이 ‘인간관계’에 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기적이며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특성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썸이란 관계는 나약하다. 명확한 관계를 규정짓지 못하고 적당한 이득만 주고받는다. 무거운 책임감과 같이 힘들고 싫은 것들은 굳이 가지려 하지 않는 거다. 철저하게 계산된 합리적 선택만을 선호하고 낭만과 도전은 입으로만 외치는 현실과 참 어울리는 관계다. (중략) 썸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합리화시키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어장관리에 몰두한다.“

연애칼럼니스트 김정훈


"송혜윤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SNS, 앱 등을 통해 불특정다수와의 소통이 훨씬 쉬워지면서 20대의 연애 습관이 ‘썸’ 타기와 같은 보다 빠르고 간편한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이성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간계의 교류와 확장 과정에서도 ‘썸’ 트렌드가 적용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책임연구원은 그러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관계 맺음에만 익숙해짐을 다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해럴드 경제>

 


"이들에게 사랑은 감정 소모와 경제적 손실로 치부될 뿐이다. 즐기더라도 절대 모험은 하지 않는다."

<해럴드 경제>



이러한 견해들은 오로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바라볼 때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사이에서도 ‘썸’이라는 관계를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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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앱 어라운드에 올라온 글



"‘썸’이라고 하며 사랑이 가볍게 퇴색되는 느낌이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실제로 ‘썸’을 탄다면, 진짜 사랑이 왔을 때 무뎌져 있을 것 같다. ‘썸’이라는 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여러 명을 만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인 건데,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진짜 사랑이 왔을 때 상대의 단점을 찾으며 다른 연애의 기회를 엿보게 될 것 같다."

가수 이승기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연애, 사랑, 성(性)에 대한 관념과 시각은 각 시대의 ‘젊은 세대’마다 다른 양상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며, 이전 시대의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바통을 넘겨받은 이들이 예전과 똑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리 역시 만무하다. 젊은 세대의 이성관은 과거보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으로 변했으며, 계속 그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썸은 상대를 ‘내 사람’이라고 결정짓고 만나는 사이가 아니므로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상대에게 관여하거나, 관여 당할 일도 적다. 덕분에 갈등이나 다툼이 적어 달콤한 분위기만을 즐기며 만남을 이어갈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이성 간의 호감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이기에 연인들이 흔히 즐기는 데이트, 스킨십을 함께 하며 설레는 감정까지 누릴 수 있다. 연인 관계가 아니기에 또 다른 이성과 썸을 탄다고 해도 욕먹을 일이 아니다. 심지어 만나는 도중 상대가 맘에 들지 않아졌을 때는 굳이 이별 통보를 할 필요도 없고, 상대를 차버리는 ‘나쁜 사람’이 되지도 않는다. 져야 할 책임은 작으면서도, 커플의 감정과 행동을 거의 유사하게 경험하며 외로운 감정을 달랠 수 있는, ‘안전하면서도 편리한’ 관계인 것이다.


젊은이들의 썸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썸을 타고 있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연인으로 발전해야 하는 이유나 썸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지 않는다면, 굳이 그 관계를 친구 혹은 연인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외줄타기의 아슬아슬함이나 롤러코스터에서 오는 아찔함을 즐기듯 서로의 감정을 밀고 당기면서 ‘눈치게임’하는 상황 자체를 즐기는 성향을 가진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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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삼성앤유


‘썸’이라는 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른 신조어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그렇게 사알짝 뉘앙스 바뀐 단어가 바로 ‘어장관리’다. 이전에는 어장관리가 잘생기거나 예쁘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만 유한된 특권을 지칭하는 말처럼 쓰이곤 했지만, 요즘 추세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굳이 어장관리라는 말로 지칭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젊은 세대는 여러 이성과 동시에 감정을 조금씩 주고받아보는데 익숙해져 있다. 사실 이것은 어장관리보다는 ‘썸을 동시에 타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해석이다(때문에 ‘어장관리’는 여전히 ‘잘나가는 사람이 여러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이런 모습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누군가는 이를 ‘문란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묻고 싶다. 이게 썸을 타는 이유의 전부일까? 정말 ‘썸’이라는 말이 젊은이들의 ‘이기적이고 가벼워진 태도’만을 대변하는 단어일까?





<그들이 썸만 타는 이유> 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지식채널e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썸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 다루어 왔던 사랑, 연애, 사람에 대한 태도나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이 아닌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전부터 필자는 젊은 세대들을 바라보는 데에 이런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의 삶을 통해, 연애가 아닌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현상을 해석해보는 것이다.



'개방적으로 변한 이성관, 더 좋은 상대방을 찾는 계산적 행동, 문란함, 가벼움, 편리함의 추구, 불확실성을 통해 얻는 짜릿함. 이기적인 태도, 어장관리, 이별에 대한 지레 겁먹음'



미리 말했지만 필자는 이러한 해석들을 전부 옳다고 말하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필자에게는 썸이라는 관계가 양산되는 모든 원인을 다룰 생각도 역량도 없다. 25살 현 취준생, 찌질이, 무지랭이, 루저, 외톨이, 상처뿐인 머저리가 어찌 그렇게 넓은 사안들을 다루며 뛰어난 필력과 통찰력을 보이겠는가(필명을 ‘잘은모름’으로 정한 이유기도 하다).


그저 ‘썸’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당사자나 다름없는 젊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멀찌감치 물러서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것이 필자가 이 글을 통해 떠들어보려는 주제이자 이유다.


이 글은 젊은 세대의 일원인 내가 우리 젊은 세대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문이자 자기고백이며, 일부는 자기변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말 가벼워진 걸까'



1. 우리의 자기고백 혹은 변호 - “왜인지 모르게 두려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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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썸’ 이런 단어가 생기는 게 너무 싫어. 별로야. 이미 존재하던 거였잖아.

래 있었던 거야. 단어만 없었고, 조선시대에도 있었어.

그렇게 단어가 생겨나면 양성화가 된다니까. 뭔가 나도 해야만 할 것 같고.”

출처 - JTBC 썰전


단어가 생겨나 양성화되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일부만. 이전에도 존재했던 관계에 왜 이름이 붙게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허지웅이 말했듯이 '썸'이라는 관계는 이전까지 그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을 뿐 인류가 만든 사랑의 역사, 그 시작부터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이름 없이도 잘 살아왔던 인간들이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 생각에는 젊은이들이 분명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이를 지칭할 이름이 없는 상황을 스스로 불편해했던 것 같다. 분명 ‘보편화된 어떠한 관계’가 있음에도 이를 명료하게 표현할 단어가 없으니, 이를 조금 더 명료화한 것이 ‘썸’이 아닐까. 그러니까 썸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분명 ‘대중화’되었다는 것이다.


왜 우리 삶 속에서 썸의 비중이 커졌을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필자와 주위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다. 사실 새로 소개받은 이성이나 '썸'에 대해 고민하는 주위 친구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 ‘두렵다’ 혹은 ‘걱정된다’.


소개받은 여성과 잘 되어가던 친구놈이 술자리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순간 표정이 살짝 무거워지더니 고개를 반쯤 숙이며 뱉은 말이 있었다.



“근데 있잖아 이상하게, 그 애 손을 잡으려고 하면 두려워지더라. 사귀는 사이로 넘어가는 듯한 순간이 느껴지면 왜인지 모르게 두려워져.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잘 되어가는 소개팅녀와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는 것이 왜인지 모르게 두렵다는 그의 말이 얼핏 듣기에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들은 필자는 말없이 공감하며 허공에 눈을 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의 집에는 빚이 좀 있다. 학자금 대출 외에 부모님 몫까지 따지면 꽤 적잖은 금액이다. 부모님 명의의 대출에는 집까지 담보로 잡혀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부모님들만의 노력으로 갚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당장 친구가 벌어야 조금씩이라도 원금을 줄여나갈 수 있다. 친구는 취업준비가 중요하다며 연애를 미루고 있는데, 취업이 된다 해도 연애 할 맘을 먹을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란다. 빚 갚으려면 당장 내 씀씀이부터 아끼고, 소비하는 시간을 줄여야 할 상황인데 연애를 한다는 게 가능할지,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만나고 싶다’고 사랑하는 이에게 말하는 게 염치가 있는 건지부터가 의문이라고.


상대가 이해하고 괜찮다고 말해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맘은 여전히 무겁고 불안할 것이다. 우리는 ‘여자 소개받지 않겠냐’는 물음에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필자가 근 1년을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한 뒤, 매우 기뻐하며 떠올렸던 여러 생각의 조각 중 작은 것 하나는, ‘공부하는 도중에 마음에 드는 여성이 나타나지 않아서 다행이다’였다. 스스로 보기에도 약간 실없는 생각이긴 했지만, 무언가에 몰두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자 소개는 둘째 치고 우연히 마음에 드는 여성이 나타나는 상황만으로도 꽤나 곤욕스러웠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딘가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은 스스로도 받는다. 소개팅을 통해서든, 우연히 알게 되어서든 맘에 드는 좋은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오히려 기뻐해야하는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치다. 우리에겐 연애라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한 눈을 파는 것이고, 효율적이지 못한 시간 소비를 하는 일이며, 주제를 모르고 절제할 줄 모르는 태도다.


당장 나 혼자 걸어가는 이 길에서조차 비틀거리고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 누군가의 옆에 서겠다고 쉽사리 맘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기고 그 이성과 천천히 만나기 시작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확실한 관계를 결정짓는 ‘연인’보다 주춤거리며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는 ‘썸’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의 부재 속에서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는 부족하니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맘에 들지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한편으론 스스로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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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초혼 연령 점점 올라 남·여 모두 30대를 넘겨

출처 - <세계일보>


‘서울 시민의 평균 초혼 연령이 남성 32.8세, 여성 30.7세로 20년 전(1994년)에 비해 각각 4.2세, 4.9세 늦어졌다‘는 기사다. 시대가 갈수록 각 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그 이전 시대의 젊은이들보다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어지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단순히 결혼에 대한 인식만으로 ‘달관세대’라 불리기도 하는 우리 세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카톡에는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 대기업에서 죽어라 일만하는 친구, 적은 월급 받으며 힘들게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 등 15명이 떠들어대는 단톡방이 있다. 취업 정보나 여자이야기, 술 이야기, 맛집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다가 뜬금없이 ‘로또가 답이다’따위의 실없는 소리를 하기도 하는 중에, 간혹 나오는 한숨 섞인 이야기가 있다.



‘결혼만 안 해도 인생에 부담이 덜하다.’



우리는 20대 중반이다. 위 기사에서 말하는 서울시 평균 남성 초혼연령까지 시간이 꽤 남은 나이이지만, 벌써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을 시작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짊어져하는 인생의 부담과 무게가 얼마나 커지는지 이미 세상을 살아오며 역력하게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라고 남들처럼 결혼하고 신혼집을 꾸미고 아이를 낳아 예쁜 가족을 꾸려나가는 일에 흥미가 전혀 없을 리가 없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면 위와 같은 말로 한탄을 뱉어내지도 않았다.


‘달관’이라는 것이 다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진 스펙, 갈 수 있는 일자리, 벌 수 있는 돈, 그중 저축할 수 있는 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등을 내 손에 꼭 쥐고 세상을 바라보면 부동산 가격의 상승, 높은 물가, 여가와 연애 따위를 즐기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 같은 것들이 어마무시하게 거대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내 삶에서 가질 수 있는 희망과 미래, 꿈, 활력소와 같은 것들이 이 사회 속에서는 그리 밝게 빛을 내기 힘들다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으며 그나마 주어진 것들조차 전망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내가 무능력하기 때문에 내 손에 주어진 ‘힘’이 사실상 거의 없다고, 그렇게 피부로 느끼는 순간, 몰려오는 무기력감과 자괴감이 우리를 덮치기 시작하고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한없이 낮추며 ‘달관’하게 된다.



‘아, 나는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는 힘들겠구나.‘



친척이나 지인의 어린아이를 보며 ‘귀엽다’를 외치는 것에서 시작해, ‘나의 예쁜 아기를 낳아 돌보는 육아 판타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몇몇은 무심코 ‘아기 갖고 싶다’라는 말을 뱉기도 하는 젊은 세대. 물론 그런 생각들 대부분은 ‘환상’에서 기인하였기에 그 아이가 시선에서 사라지는 순간, 젊은 친구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이렇게 버티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통해서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그 걱정이 기다리는 현실로.


중년이나 노인이 아닌 2,30대, 특히 미혼 여성들이 육아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모습은 위의 이야기와 연결해 생각해볼 만하다. 최근 인기를 끄는 육아 프로그램은 이전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는 반대로 육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꽤 괜찮게 사는 연예인이 꽤 그럴듯한 집에서 꽤 훈훈한 외모의 배우자와 너무도 귀여운 아이를 키우며 알콩달콩 투닥투닥하는 이야기. 간혹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만나는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을 비춰주기는 하지만 이 역시 ‘아름다운 육아’의 한 과정이 되어 감동코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해당 육아 프로그램에서 비춰주는 즐거운 모습도, 힘든 모습도 모두 ‘아름다운 육아’의 한 과정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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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빠 어디가>, S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우리도 그런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자라왔고, 아이를 가진다면 그렇게 키워 나갈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육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말 ‘독한 현실’은 해당 방송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이가 다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찾는 일이(심지어 ‘좋은’ 곳을 찾는 일은 더더욱) 힘들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엄마들, 부당하고 힘든 환경에서 어렵게 일을 하면서도 아이와 아내를 위해 견뎌내는 아빠들,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거나, 출산했음에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거나, 출산 후 회사로 돌아오기 힘든 직장맘들, 함께 앉아 생활비와 육아비용, 월세, 대출, 세금 따위의 지출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부부,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일이 바빠 중요한 시기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 등등...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독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육아의 현실을 비춰주지 않는 방송이, 젊은 세대가 절제해야 하거나 달관하게 되는 ‘꿈’을 ‘환상’으로 만들어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성과의 연애를 즐기고 싶지만 ‘연인’사이가 되는 것은 부담스럽고 두려운 젊은 세대가 ‘썸’이라는 관계를 구체화하고 양성화시킨 것과 같은 문맥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현실의 벽 앞에 다시 뒤로 물러서게 되는 젊은이들이 맘 편히 환상을 즐길 수 있는 ‘육아 판타지’에 열광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한다.


자신이 그리고 원하는 ‘꿈’을 이뤄내고, 즐기고 싶지만 쉽게 그럴 수가 없으니 찾아낸 합의점. 그즈음에 ‘썸’과 ‘육아 판타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사람의 가치를 가볍게 보고 있다’는 말. 어쩌면 그런 말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전에 경제 관련 게시판에서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저렴한 것은 사람의 가치이며, 사회의 모든 가치 중에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유일한 가치 역시 사람의 가치뿐’이라고. 자극적인 댓글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사회의 일부는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으며 부동산값을 올리기에만 바쁘면서도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애도 안 낳으며 집을 안사서 문제라고 한다. 대학은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들을 재단하여 통폐합하고, 자영업자들은 최저시급을 알려주는 광고가 '시장'을 다 죽인다, 그렇게 줄 돈 다 주면서 장사를 어떻게 하냐, 전부 망하라는 이야기냐며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탈퇴한다. 최저시급이 오를라치면 화들짝 놀라며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다 죽어간다며 안 된단다. 그러며 젊을 때는 사서도 하는 게 고생이라며 페이는 ‘좋은 경험’으로 지급한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라고, 아픈 청춘을 받아들이라고, 요즘 것들은 게으르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패기가 없는 데다 이기적이고 노력할 줄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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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치 사회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필자는 그들의 말이 얼마나 옳은가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들의 말대로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할 줄 모르며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사회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불평만 하기 바쁜, 패기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말해드릴 수 있는 것은 “어느 쪽이 옳든 간에 젊은 세대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경쟁시대’, ‘생존게임’이라는 말이 더이상 불편하거나 나쁜 말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평생을 경쟁하며 성장하고 늙어간다. ‘생존 가능성'을 가지고 불안에 떨며 사는 일 자체가 일상생활과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그러한 성향이 심화되는 사회의 모습을 헤아릴 수 있는 말 중 하나가 ‘높은 경쟁률’이다.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역대 최고 수준을 웃돈다는 뉴스와 기사가 뜰 때마다 공무원이 안정적인 일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 일에 깊은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어 하고자 하는 맘으로 지원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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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물론 필자에게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과 행복에 공무원 합격이 중요한 조건으로 생각되어 강한 열의를 갖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내가 지원한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고, 내가 그것에 흥미가 있는가’를 정확하고 깊게 고민해보지 않은 채 열심히 달려가기에만 바쁜 것이라거나, 젊은이들의 ‘도전’과 ‘꿈’에 대한 ‘열정’이 불안감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에 대한 추구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라면, 같은 또래의 친구로서 필자는 그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일이 가슴 아플 수밖에 없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날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아지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안정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결핍되어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말도 있지만, 요즘 세상은 돈이 없으면 사람이 나지 않는다. 슬픈 사고를 당해 아이를 잃은 유가족에게 “그만큼 돈 받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무정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들이 적잖게 나타나는 ‘생존의 사회’ 속에서 금전적 여유도 없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겠다는 맘을 가지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간혹 ‘젊은 세대는 사람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다. 만약 그 말씀이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젊은 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가족과 멀어지고, 친구를 자주 볼 수 없게 되며,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하면서, 그들의 삶 속에 사람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현실과 돈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모습’을 두고 하신 얘기라면 일견 맞는 말씀인 것 같다고 답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경제 활성화’든, ‘열정과 패기’든, ‘진중한 사랑’이든, 무엇이든 간에 젊은 세대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나아질 가능성은 정말 적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분들의 말대로 우리가 게으르고 개노답인 달관세대일지라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우리 세대는 불안에 떨며 생존을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벅차다.



2. 우리의 자문 - 그리고 자문에 대한 자문


이렇게 마구 떠들어대고 보니 다시 필자의 머릿속은 물음표 투성이다. 우리는 정말 사랑을 가볍게 보게 된 것일까?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원하는 것만 챙기려고 하는 이기적인 태도'로만 썸을 봐야하는 걸까? 우리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감수할 필요 없이 편리하게 이성과의 만남을 즐기는 것에 취해 진중한 사랑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썸은 정말 빠르고, 가벼우며, 간편한 관계이기만 할까?


‘썸’이라는 관계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이전의 사회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썸이 어딘가 건강하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판단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가 썸을 타는 세태를 줄여나가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해 나갈 때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일까? 그것이 더 낭만적이고 진중하게 사랑을 대하는 자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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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고 있다


하지만 나와 내 주위 친구들의 삶을 떠올려 보며 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반대로, 썸을 유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무책임해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임을 지기 두렵다는 말이 비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책임을 고려한다는 것' 자체를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다. 정말로 상대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책임'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지 않았을 거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누군가에게 ‘연애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젊은 세대 스스로에게는 오히려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일 수 있다.


상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썸이라고 한다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여러 고민을 해보는 것은 필요한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삶이 불안정한 남녀가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쉽게 확신을 줄 수 없는 요즘 세대라면 더더욱.


물음표를 마구 던지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인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의 만남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나와 내 친구가 보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으로 섣불리 발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나와 내 친구가 보인다. 자격증 합격 후 '공부하는 동안 맘에 드는 여성이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했던 내가 보이고, 소개받은 여성의 손을 잡기가 두려웠다며 한숨을 내뱉던 친구놈이 보이고, 단톡방에서 ‘우리가 결혼을... 할 수 있긴 하겠지?’따위의 말을 하며 각자의 월급과 취업준비 상황을 따져보는 대학 동기들이 보인다. 또 일찍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보이고, 다른 이의 귀여운 아이를 보며 밝게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는 여성들이 보이고, 보이지 않는 희망에 지칠 대로 지쳐 정치, 사회, 투표에 대해 기대를 전혀 갖지 않는 젊은 세대가 보이고, 자신의 꿈과 욕망, 열정에게 솔직하지 못하며,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을 해소할 방법을 찾느라 방황하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 아니 모든 젊은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의 모습에서는, 전부 저마다의 '불안감'이 짙게 풍겨 나온다.


우리가 불안하지 않다면, 고려하며 망설이는 태도를 가질 일도 적어진다. 안전한 것만 추구하는 태도를 벗어나 자신감과 패기로 도전하는 열정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두렵다.


우리가 정말 야망과 패기가 없으며, 불평만 해대기 바쁘면서도, 나태하며 게으르고, 큰 노력 없이 편한 것만 찾으며 사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삼포세대, 오포세대, 달관세대이기 때문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받아들이고, 사회의 체계에 잘 적응하며, 열악하거나 조금은 부당한 상황일지라도 묵묵히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서 흔들리는 것을 힘겹게 버텨내고 살아가면 우리의 불안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까.



3. 그리고, 드릴 수 있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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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필자는 저 모든 질문에 답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20대 중반의 취준생으로서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있을지언정 그를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려드리지는 못한다. 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문이나 자기 고백, 자기변호 따위가 아니라 그저 루저의 한탄만 길게 쏟아낸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든다.


젊은이들이 썸을 타는 이유가 단순히 사랑을 가볍게 보기 때문인지,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서인지 달관세대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이 살기 힘든 주변 환경 때문인지, 의지박약이기 때문인지 필자 같은 무지랭이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감히 어느 쪽이 옳다고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얘기해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낮은 출산율과 투표율, 달관세대, 오포세대, 그리고 썸 등등 지금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세태 중 적지 않은 것들이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힘든 삶을 사는가', 그저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사는가',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는가’와 같은 평을 떠나, 필자가 청년 세대의 한 구성원으로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희망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살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어야만 하는 젊음과 청춘들에게 너무도 두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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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서 말했듯 어떤 식으로든 이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상황은 나아지기 힘들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마 이 정도가 필자가 던진 자문에 대해 둘러댈 수 있는 변명이자 최선의 이야기인 것 같다. 부질없고 공허한 말로 얼렁뚱땅 결론을 짓는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 어쩔 수가 없다.


비록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필력으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만 줄줄이 써놓았지만, 필자가 해드린 이야기를 통해서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주요 코드로 떠오르는 ‘썸’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볼 만한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되도 않는 소리를 자세히든 대충으로든 읽어주신 여러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p.s.


혹 이 글이 모든 청년의 입장을 대표하려 한다거나, 젊은 세대의 입장을 무조건 옹호하려 한다거나, 기성세대를 비난하려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도중 기분 나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글을 쓰는 데에 서툴다 보니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저 어느 무지랭이 취업준비생이 짧은 생각으로 자신과 자신의 주위 사람 이야기를 하며 자기 생각을 맘대로 떠들었다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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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