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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13.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마크의 편지


From : Mark Weber<MarkWeber21@qmail.com>

To : Marie LeBlanc<Beautyqeen@qmail.com>

Date : 2022-08-11

Subject : 마지막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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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그제 드디어 마지막 번역문이 도착했습니다. 앞의 것들과는 달리 여러 날에 나누어 기록된 것인데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군요. 첫 번째 것부터 요약해 붙이지요.



1급 내정관이 찾아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을 뿐인데, 이 실험이 어느새 정부에까지 알려진 모양이다. 그는 수십 명의 호위병들을 밖에 대기시켜 두고 홀로 이 방에 들어왔다. 호위병들이 대화를 듣고 호기심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통령은 이 기술이 사회의 가치를 혼란시키고 대중의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박탈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상태에 빠져 있으니. 하지만 나는 이 실험이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순수한 과학 탐구이며, 일반인이 이 기술과 장치를 사용하도록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물론 그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정관은 나의 장치들이 파괴되어야 하며 실험 기록과 노트 등 모든 흔적이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다음 번 방문할 때 확인하겠다며 떠났다. 그 작업을 위해 내게 주어진 날은 6일이다. 그가 즉시 모든 것을 부수지 않은 것은 그 동안의 내 업적과 명성을 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나의 연구들은 제국의 교통에 크게 기여해 왔다.



통령이니 제국이니 하는 표현들을 통해 이 마을이 속한 사회의 상부 행정체계가 거대규모로 존재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렇다면 그 ‘제국’과 관련된 유적이 이 일대에 많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사실 이 근처 수십 킬로미터 지역은 느네베 유적이 발견된 이후 150년 동안 깡끄리 파헤쳐졌지만 나온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직 이 마을 하나 뿐입니다. 작년에 지하 동굴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 학문적 중요성도 없는 외딴 주거지일 뿐이었죠.


그렇다면 저 통령이나 내정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요? 문자와 사회 구조로 봐서 느네베는 분명히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대에 거대한 제국이 있었다면 이렇게 흔적이 없을 리 없어요.


뭔가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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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지만 더 호기심을 끄는 이야기는 그 다음이에요.



며칠 째 장치에 들어가지 않은 채 고민 중이다. 만약 이 것을 내 손으로 부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직접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법을 어긴 벌을 받게 될 거다. 그렇다면 고집을 부릴 이유가 뭔가.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아니, 이 장비를 그들 모르게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이 신비한 체험을 계속 할 수 있지만, 평생을 범죄자로 숨어 살아야 한다. 내 발견을 세상에 공표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건 너무 잔인하다.


(중략)


이제 이틀 남았다. 깊이 고민했지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준 이 장치를 내 손으로 부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남 몰래 장치들을 꺼내갈 방법도 없다.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실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1년 동안의 내 경험들, 내가 만든 환상들. 그것들은 분명 실제 세상 만큼이나 현실적이다. 이제 나 자신에게 묻는다. 환상은 그저 환상인 걸까? 사실을 말하자면, 이제 나는 환상과 현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하루의 절반 이상을 그 속에서 살아간다. 환상과 현실은 내 삶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그 무게가 뒤바뀌어 왔다. 어쩌면 내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이 모두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내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장치 속에 들어가 내 자신을 그 내부에 봉인할 것이다. 그래서 며칠 후 저들이 이곳을 침탈해 들어왔을 때 이미 나는 그 세상 속으로 젖어 들어가 버렸기를 바란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게 가능할 것 같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계획이 서 있지만 이 곳에 남기지는 않는다.


파괴를 위해 찾아올 자들에게 모든 것을 알려 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입니다.


이해가 되나요, 마리? 그는 환상 속에서 살겠다며 저 관 속에 들어가 숨어 버린 거에요. 그리고는 무슨 일 때문인지 내정관과 하수인들은 뚜껑을 열지 못했던 겁니다. 그 이유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요.


이제 일주일쯤 후면 관을 열 수 있는 레이저 장비들이 도착할 겁니다. 그러면 이 불쌍한 고대 과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요. 아마도 저 속에서 질식사 하거나 아사했을 테지만 적어도 자신의 고집대로 살다 죽었으니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조금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학문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제 그의 뼈를 분석해 보면 어느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죠.


내 역할은 거기까지일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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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뉴스를 보고 있을 테니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하기는 어렵군요. 이 나라의 정치 상황이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모술에서 출발한 반군 세력이 바그다드로 진격해 내려가고 있어요. 설마 이쪽을 지날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전에 이 나라를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보다 마리, 몸이 아직도 아프다니요? 설마 큰 문제는 없겠지만 걱정이 좀 되는군요. 이번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주길 바래요.



마크



마리의 편지


From : Marie LeBlanc<Beautyqeen@qmail.com> 

To : Mark Weber<MarkWeber21@qmail.com> 

Date : 2022-08-17

Subject : 검사 결과



사랑하는 마크,


조금 놀랐나요? 이렇게 감상적으로 당신을 부른 건 참 오랜만이군요.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네요.


연구에 방해가 될까봐 그 동안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요.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군요.


마크, 내 몸 속에서 치명적인 종양이 발견됐어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해요. 석 달 정도 밖에.


갑작스레 이런 이야기를 전하게 돼서 너무 미안하고 슬퍼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에요. 이제 일을 거의 마쳤으니 조만간 내게 달려와 주겠지요?


조금 더 지나면 내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기도 힘들어 질 거에요. 그렇게 되기 전에 당신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군요.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아직 젊기도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는 피하는 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태도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그 때가 불쑥 찾아오자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해요.


정말이지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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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두려움 속에서 문득 관 속의 그 옛날 사람이 생각나더군요.


그는 어땠을까요? 당신 말대로 숨이 막히거나, 오랜 시간을 굶거나, 그렇게 번복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가면서 그는 두려움에 떨었을까요? 아니면 감각의 단절이 만들어 낸 환상 속에서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조금씩 죽어갔을까요. 당신이 관을 열고 그의 남겨진 모습을 보면, 그의 죽음의 순간과 관련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이 내게 도움이 될리는 없겠죠. 하지만 알고 싶네요.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을 먼저 떠난 사람, 그리고 지금 당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니까요.



마리



마크의 편지


From : Mark Weber<MarkWeber21@qmail.com>

To : Marie LeBlanc<Beautyqeen@qmail.com>

Date : 2022-08-18

Subject : 마리, 오 마리



당신의 메일을 읽고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종양이라니요. 당신 같이 젊고 건강한 여자가.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내가 신을 사랑할 맘은 없으면서 신을 원망하게는 되는군요.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장비가 도착합니다. 뚜껑을 열고 뼈에서 시료를 채취한 후 나는 곧바로 아르빌로 가서 리우데자네이루행 비행기를 탈겁니다. 이곳 저곳을 거치는 오랜 여행이 되겠지만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 힘을 내고 기다려 줘요.


도착하면 그곳에서 계속 머무를 생각입니다. 진작에 리우에 가 봤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지기만 했군요. 당신과 함께 보고 싶은 것이 많아요. 산꼭대기의 그 유명한 예수상, 실물도 그렇게 멋질까요? 하긴 당신에게는 일상적인 광경이니 감흥이 없을지도.


내가 도착하면 무척 귀찮을 겁니다. 이곳 저곳에 매일같이 나를 안내해 줘야 할 테니까. 그래도 어디 도망가면 안돼요.


나도 사랑합니다.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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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의 편지


From : Mark Weber<MarkWeber21@qmail.com>

To : Marie LeBlanc<Beautyqeen@qmail.com>

Date : 2022-08-21

Subject : …



마리, 


머리가 복잡하군요.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당신에게 늘어놓는 것이 옳은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관 속의 그에 대해 당신도 무척 알고 싶어했으니, 만나서 더 자세히 말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메일로라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어제 오후에 드디어 관을 열었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너무도 견고하게 봉인돼 있어서 모르타르 부분을 잘라내는 데만 24시간이 걸렸어요. 작업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파라오의 무덤처럼 부장품이나 황금 마스크, 미이라 같은 것이 있을리야 없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이 이 관 아니었던가요.


솔직히 말하면 자그마한 키에 큰 머리, 아몬드를 닮은 거대한 눈을 가진 외계인의 백골 같은 것도 조금은 기대했었지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의 친구인 고대의 과학자는 아예 그 관 속에 누워 있지 않았어요. 텅 비어 있었단 말입니다.


망연자실했죠. 시신이 들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들 멍해 있는 동안, 나는 정신을 차리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내 일을 했습니다. 방금 닦기라도 한 듯 너무나도 말끔한 관 내부에 무엇인가 남아 있는 게 없는지 살폈지요. 그러다가 구석에서 작게 접혀 있는 종이 비슷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형문자가 잔뜩 써져 있더군요.


마침 이 발굴 현장을 보러 번역을 맡았던 마르코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와 있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종이의 사진을 찍었고, 그는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밤새 틀어박혀 번역을 했어요. 번역문을 뽑아 들고 조금 전 내 침실문을 두드린 그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건 일종의 편지였습니다. 이런 내용이죠.



나는 그대가 누군지 모른다. 왜 이 견고한 상자를 열고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이 곳을 폐쇄하기로 했지만 나는 이제 이 장치가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이 속에 나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 숨어들기로 했다.


그런 일은 원래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고, 이 속에 갇혀 나는 속절 없이 죽어 버릴 수도 있다. 혹은 며칠 후 그들이 이 장치를 여는 데 성공하고 나를 체포해 갈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 실험은 실패하고 장치는 파괴될 테니 이 편지는 전달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온 그대를 위해 이제 내가 시도한 일의 전말을 알려 주도록 하겠다. 그대는 모든 것을 알 자격이 있다.



글쎄요, 여기까지 읽고 나는 조금 의문스러웠지요.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꼭 실험이 성공한 걸까? 그가 관 속에서 죽은 후에라도 이 편지는 사라질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가 붙잡혀 가고 장치가 파괴된다 하더라도 역시 구석 어딘가에 버려져 남겨질 수도 있는 일이죠. 다시 말해 편지의 존재와 실험의 성공 간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 겁니다. 적어도 이 때는 그렇게 여겨졌지요.


하지만 뒷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런 것을 오랫동안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벽의 글들을 읽었을 것이니 내가 무엇을 실험해 왔는지는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도를 위해서는 훨씬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즉흥적인 환상들은 곤란하다. 환상이 환상이 아닌 일관성 있는 현실이 되어, 그것을 만들어낸 내 자신마저 속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내가 그 세계 속으로 말 그대로 젖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새로운 세상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계했다. 나 자신의 생각은 물론 영혼마저도 속일 정도의 정교함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 온 현실과는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한다. 어떤 기억도 되살아나지 않고 내 자신을 철저히 기만할 수 있도록.


그 극단적인 예로, 현실 세상과 달리 그 곳에는 태양이 단 하나 뿐이다. 4개의 태양 때문에 밤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기회가 적었던 점이 늘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 대신 중심이 되는 행성에는 태양빛을 받아 밤을 밝히며 공전하는 거대한 달을 만들기로 한다. 이 달은 그 곳에서는 태양 만큼 크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다소 과장된 존재지만 역학적으로 불가능할 것은 없다.


그리고 주변에는 7개의 다른 행성을 둔다. 다른 이유는 없고, 행성이 여럿 돌고 있는 항성계에 대한 내 로망 때문이다. 4개의 태양에 단 하나의 행성만 존재하는 현실 세상은 너무 건조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하나의 태양과 8개의 행성으로 된 항성계는 일종의 소용돌이형 거대 별 집단인 ‘은하’의 가장자리에 놓이는 것으로 정했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그야말로 상상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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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필요한 물리 법칙들을 고안해서 자동적으로 적용되도록 한 점이다. 그래야만 내가 직접 모든 대소사에 관여해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이 설정된 법칙들을 통해 스스로 작동하고 변화하게 될 것이다.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심 행성에는 원시적인 생명을 만들었다. 그들은 법칙에 따라 진화할 것이며,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자신들의 발전에 맞춰 그들 자신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처음에는 하나의 항성계와 은하라는 흐릿한 별집단으로 시작하지만, 멀리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그들의 우주는 그만큼 실제로 커질 것이요,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면 그만큼 더 정교해 질 것이다.


이렇게 생물의 지적 발전에 맞춰 변화하는 우주라는 속성을 심어 줌으로써 이 환상 세계는 처음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것으로 점점 복잡해지고 또 발전해 갈 것이다. 물론 까마득한 훗날이겠지만 기대가 크다.


그 생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사는 세상의 정체를 알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진실을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 끝에 일종의 단서를 남겨 주기로 했다. 그래서 중심 행성의 곳곳에 전설, 신화, 언어 등의 형태로 흐릿한 흔적들을 남겨 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메마르고 구석진 한 지역을 골라 현실 속의 내 실험실과 똑같은 곳을 만들고 이 모든 작업을 하게 된 과정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그대가 지금 이 글을 발견해 읽고 있는 곳이 바로 그 장소다.


나의 환상의 자손이여. 이 모든 진실은 그대에게 주는 상이다. 이 곳까지 찾아와 편지를 읽고, 나아가 그 내용을 이해할만큼 훌륭하게 발전해 줘서 고맙다. 이제 이 진실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온전히 그대의 몫이다.


이 환상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 세상 속에서 나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도 실은 궁금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내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그 오래된 경구의 모습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게 전문이에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니 전 우주에 나와 이 글을 번역한 마르코, 그리고 당신 세 사람 뿐입니다.


다 읽고 나니 알겠더군요. 누군가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그 실험은 반드시 성공했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래요, 이 편지는 그의 머리 속에서 쓰여지고 남겨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편지 뿐 아니라 이 관과 실험실, 아르빌과 모술, 지구, 태양계, 은하계, 은하단, 이 모든 것이 다.


나와 당신도 물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봐요. 모레 도착합니다.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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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메일을 다 쓴 그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메일은 보내지지 않았다. 어느 틈엔가 인터넷이 끊겨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발굴팀장 크리스천이 요란하게 소리치며 뛰어 들어왔다.


“마크! 반군이 왔소! 외국인들을 모두 죽인다고 해요. 얼른 도망가야 해!”


마크는 고개를 돌려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빨리 나와요. 밖에 지프가 준비돼 있어. 짐은 전부 놔두고 빨리!”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먼지를 날리며 뛰어나갔다.


잠시 끊어진 듯한 정적이 흘렀다. 마크는 편지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의 여파와 갑작스런 비상 사태의 혼란 사이에서 어째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하지만 1, 2분이나 지났을까, 바깥에서 일단의 고함소리에 이어 요란한 기관총의 총성이 들렸다. 동료들의 끔찍한 비명이 긴 지하 터널 벽을 타고 들어왔다.


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둔중한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커지며 울려펴지기 시작했다. 반군들이 터널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애잔한 표정으로 컴퓨터의 스크린의 보내지 못한 메일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금니를 악물고 황급히 몸을 돌려 빈 관으로 뛰어 들었다. 반쯤 열려있는 뚜껑은 의외로 가벼웠고 손을 대자 마치 스프링이 걸려 있는 듯 제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잠시 후 뚜껑은 빛 한 줄기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마치 용접한 것인양 굳게 닫혔다. 그와 동시에 총 소리와 반군들의 군화발 소리도 잘리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어 무엇인가 액체가 차 올라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암흑 속에서 마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즈막히 속삭였다.


“조금 있다 봐요. 마리.”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