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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14. 금요일

사회부장 산하








점심시간에 내는 성명서

 

 

우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가장 오래된 직업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일찍이 가나안 땅에 잠입해 들어갔던 여호수아는 우리의 대시조이며 여섯 가지 간첩의 예를 들며 우리 세계를 세분화한 중국의 손자는 우리의 중시조다. 비록 드러내지 않고 지하에서 일하며 정보를 캐내기 위해 상대방 수상의 똥까지도 냄새맡아야 하는 처지이며 임무를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간 말종을 감수해야 하는 사나운 팔자,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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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정보기관이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를 냄은 우리의 동류(同類)라 하나 차마 동류라 부를 수 없고, 동업자라고 부르기에는 혀가 꼬이며, 협력자라고 부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한 대상을 위해서다. 그 대상은 미루어 짐작하는 바가 맞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안전기획부로 다시 국정원으로 이름을 자주 바꾼 이 정보기관의 과거에 대해서는 다시 들추지 않겠다. 토끼를 잡아오라 했더니 곰을 끌어와서는 눈물 철철 흘리며 자신이 토끼라고 자백케 하던 무지막지함을 꾸짖고 싶으나 어쩌랴 우리 업계에서 그다지 귀한 일도 아닌 것을.

 

 

그러나 우리는 규탄한다. 국정원이 우리 업계의 공동선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우리 업계 최고의 죄악은 들키는 일이다. 대통령 마누라 바람피우는 침대 밑에 들어가든 세계의 모든 전화를 엿듣든 우리의 가장 큰 죄는 들키는 일이다. 법으로 처벌받는 것은 요식행위일 뿐, 우리는 그 자체로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맛본다. 그것이 우리 업계의 룰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정원은 도무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위조할 수 있다. 조작할 수 있다. 우리 업계에서 못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들키지 않아야 한다. 들키지 않도록 철저해야 한다. 그래서 호텔방에서 정보를 빼내다가 상대방에게 들키는 정보원은 서툰 좀도둑만도 못한 법이고 말도 되지 않는 출입국 도장 찍어 들통이 나는 정보원은 야바위꾼 이상이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증거는 조작인데 간첩은 간첩”이라니. 한국의 국정원 직원은 얼굴 보고 뽑는가. 아니 얼굴 두께 보고 뽑는가. 어떻게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수 있단 말인가. 창피하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명색이 동업자로서 지켜보는 우리 얼굴이 다 벌개질 지경인데 그렇게 세금으로 월급 받는 처지로 손발이 저리지도 않는가.

 

 

무엇보다 더 기이한 것은 정보기관 수장의 행보다. 정보원 다 드러내고 국제 망신 다 당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벌인 추악한 짓이 백일하에 폭로됐는데 한때 정보기관 명예 지키겠다고 국가원수 회담 기록을 토해내던 그 군바리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말이 심하다고 하지 마라. 한국의 국정원장은 그 자체로 우리 정보기관 역사를 새로 쓴 자다. 세상 어느 정보기관이, 정보기관장이 자기 목을 내놓을지언정 그 ‘명예’를 위해 정부 기밀 문서를 떠벌인 예가 있단 말인가. 명예? 명예로운 일을 할 거면 애초에 이 일에 발을 들이지 말 일이고 명예 타령을 할 거면 지금이라도 나와 배를 가르든 목을 매달든 최소한 사표를 던지고 군인 연금을 타먹든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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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정원에 준엄하게 경고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피차 명예 따위는 누구에게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정원 현관에 있는 열 몇 개의 별들. 임무 수행 중 죽어간 공작원들의 이름조차 내막조차 몰라야 하는 것이 우리 세상 아닌가. 우리는 당신들에게 우리 업계의 명예를 지키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창피하게는 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아내에게 우리 직업을 비밀로 하는 것도 서러운데 밥상머리에서 “한국의 국정원 하는 걸 보니 정보기관이란 데는 다 쓰레긴가 봐.” 이런 말을 듣지는 않게 해 달라는 말이다.

 

 

끝으로 “국정원을 흔들면 북한만 좋아한다.”는 한국 국회의원에게도 어려운 충고를 던지고자 한다. 정통한 정보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 보위부는 당신의 의견에 열렬한 지지 찬동을 보내고 있다. 지금 같은 국정원이면 얼마든지 삼분카레로든 신선로로든 요리할 수 있고 곶감에서 쓸개까지 다 빼먹을 수 있으며 덜떨어진 남한의 자생적 종북주의자들 정보 몇 개 주면 환장을 하고 달려드는 이 충직한 호구를 왜 흔든단 말인가. 마르고 닳도록 유지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무능한 정보기관을 가장 기뻐 맞이하는 것이 바로 적국의 정보기관임을 국회의원까지 되고서도 모른단 말인가.

 

 

과거 한국 중앙정보부 부훈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하지만 한국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한다면서 양지에서 놀고 있다. 검은 선글라스 끼었답시고 자기가 지하에 있는 줄 알면서. 더 이상 우리 동업자들에게 굴욕감과 낭패감을 선사하지 말라. 경고하거니와 계속 이런 행동을 할라치면 우리가 나서서 정보기관의 맛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건축업자 별장에서 섹스 파티한 것이 김학의 뿐이 아닌 걸 알고 있고, 국정원장 당신이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으며, 지금 대통령과 이전 대통령이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도 알고 있다. 한 번 다 까기 전에 자중하고 자애하여 동업자의 의욕을 추락시키지 말기를 기대한다.

 

 



2014년 3월 14일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 대리 아란나 마리다

 

러시아 해외정보국 (SVR) 한국 지부장 조토 모룬다스키

 

일본 내각조사처 한국 지부장 아리까리 아사무사

 

중국 국가안전부 한국 지부장 갸우뚱

 

모사드 극동지부장 골질 하고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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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부장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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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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