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03. 24. 월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 돌고래









20140316211216247611.jpg



1

 

며칠간 화자된 글이다. SNS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 잡지에 실린 글이라 하는데 정확한 출처는 찾지 못했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다며 악의적으로 만든 글이라 한다. 누군가는 그리 말하는 사람이 시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라 한다. 대부분의 반응은 무개념 시어머니,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어머니, 소시오패스 시어머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 이 글을 읽어 드렸다. 마지막 대목에서 어머니, 웃는다. 나도, 웃는다.

 

 

어머니는 평생 학교 무용 선생으로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몸을 쓰는 직업이라 퇴근하면 녹초될 터인데 그렇게 방에 들어가 겨우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에게, 할머니는 말했다.

 

 

'애비 밥은?'




2

 

어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그리 말하면 미워하는 게 가장 편했을 텐데, 라고.

 

'할머니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거든.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시대가, 할머니가, 오래 함께 살다보니 이해되더라. 나도 말했지.

 

<아니, 어머니! 나도 일하고 왔는데 며느리 피곤한 건 생각 안 합니까!>하고. 웃으며 농담하듯 말하면 할머니가 머쓱해하면서 "그렇제?" 하고 미안해 한다.(웃음)

 

그 시대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 여러가지가 녹아있어서 참 설명하기 복잡한데 그냥 미워하는 건 참 쉽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가 또 미안해하고, 근데 또 하고(웃음).  

 

여튼 이해하게 되버리면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할머니와 어머니는 장난도 잘 치고 잘 삐지기도 한다. 열에 아홉, 삐지는 건 할머니 쪽이다. 


충돌로 치면 할머니와 아버지 쪽이 많다. 그럴 때 어머니는 '나이든 사람 쉽게 안 바뀐다. 하물며 자기는 아들인데 먼저 이해하고 맞춰가려 해야지 왜 자기는 안 바꾸고 어머니를 바꾸려 하느냐'고 한다. 아버지도 자존심 있으니 금방 미안하다고 하진 않으나 대부분,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장난치며 미안함을 대신하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마무리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3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끔 할머니에게 화를 낸 건 '밥' 때문이었다. 반찬 투정이 아니다. 저녁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몇 번이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밥은?'

 

한번 물으면 될 것을 두 번 세 번 묻는다. 할아버지는 대개 허허 웃으며 넘기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땐 짜증을 냈다. 나밖에 없을 땐, 할머니는, 내게 그랬다.

 

'밥은?'




4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딸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먹물에다 사업에도 재능이 있는지라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허나 시대에 거스르려 했던 탓에 평생 고문과 후유증에 시달렸고 그 짐은 가족이 함께 져야 했다. 당시로선 고등교육까지 받았던 그녀, 열손톱 빠질 때까지 온갖 궂은 일 마다않고 생계 이끌었으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 자식새끼 밥 챙겨주지 못했음이 한이었을까. 어느 순간, 자신이 가족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밥밖에 없다 생각해, 사랑 받을 수 있는 길이, 존재감을 채울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 그리  밥에 집착했을까. 하여 남편 위해, 자식 위해, 살아온 자신의 존재를 '밥은?' 이라는 질문 속에 우겨 넣은 것일까.

 

할머니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 알아서 밥 못 먹는 사람 없을진데 왜 그리 밥밥 하냐고. 할머니는 말없이 머쓱해했기에 그 마음, 지금도 알 수 없다.




5

 

모두가 가난했기에 밥 먹었냐가 인사가 될 만큼 밥이 소중한 나라. 그 나라엔 아직도 뿌리를 쉬이 확인할 수 있는, 더 없이 무참했던 남아선호의 세상이 있었다. 아들을, 장남을, 누구보다 극진히 대접해야 자신도 사랑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여자가 제 배로 낳은 여자를 하대하고 무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오직 아들을 귀히 여겨야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가혹한 운명을 가진 여자들의 시대가 있었다.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시대의 피해자가 이젠 의심 없이 가해자가 되어 미움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온갖 희생과 비틀린 애정을 강요받았던 그녀들이 무심코 내뱉는 '애비 밥은?'이라는 질문은,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세상 문제 모두 그러하듯, 글 속의 시어머니를 비난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면 되는, 너무나 편한 지름길이 내 앞에 있기에, '애비 밥은?'이라는 질문은, 참, 어렵다.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