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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31. 월요일

프랑스특파원 아까이 소라

 

 

 



 


 

 







한국과 프랑스는 분명 다르다.


우선 서울과 파리의 거리는 8500km 가량. 그 거리만큼이나 문화권도 다르고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다. 물론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각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확연히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 알게될 때마다 새삼 놀라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한국과는 다른 사회의 모습을 배워나가는 것이 재미있기는 하다. 아마 그래서 여행을 다니면 견문이 넓어진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연애. 그 중에서도 연애의 시작.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이 표현으로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나눈다" vs "faire l'amour"


남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 관계를 맺는 행위를 일컫는 두 표현. 프랑스어로는 faire l'amour(패르 라무르)라 한다. 직역하면 '사랑을 만든다'


언어가 그 언어를 영위하는 이들의 생각을 담고 있다면 한국어와 프랑스어 간의 차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생각 차이를 극명히 보여 준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인류 최고의 난해한 문제이기는 하겠으나, 한국인은 '사랑'을 우선 순위에 두고 프랑스인은 '관계'를 앞에 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툭 까놓고 말해서 한국에선 사랑하는 감정이 있고 나서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일반시하는 반면, 프랑스에선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사랑하는 감정을 꽃피우는 것을 일반적으로 여긴다는 것. 물론 상대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이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물론 그런 경우도 다반사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연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좀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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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시작도 못하고 끝나는 것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단계 역시 한국과 프랑스는 많이 다르다.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눈 맞은 두 사람이 '우리 사귀자!'라는 전제 하에 '자, 오늘부터 우리는 연인!'임을 선언하고 그 때부터 서로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이 의무화되는 반면, 프랑스에선 뭔가 상당히 불확실하다.


두 남녀가 만난다. - 서로 마음에 든다. - 몇 번 데이트를 한다. - 더욱 마음에 든다. - 키스를 한다.


대강 여기까지가 어느 정도 '진지한' 관계를 여는 시작점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나의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라 부를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 여자들, 남자의 무심함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면서도 그 고민을 남자 앞에 꺼내놓지 못하는 경우, 상당히 많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남녀가 데이트를 한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살랑거리는 화창하고 기분 좋은 오후,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 후 자리를 옮겨 테라스에서 와인을 한 잔 한다. 뭐, 분위기에 따라서는 맥주도 좋다. 슬슬 딱 좋게 술기운이 오르고 서로의 눈빛이 더욱 다정해 진다. 영화를 보든 산책을 더 하든 아니면 주변 갤러리 관람을 하든 이제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차 아름다워 진다. 시간이 흐르고 땅거미가 질 무렵, 세느 강변으로 산책을 간다. 이미 두 사람의 손은 꼭 쥐어져 있다. 어둠이 찾아오면 날이 조금씩 쌀쌀해 진다. 여자가 추워하자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싼다. 둘은 세느 강변 벤치에 앉아 못다한 (쓸데없는)이야기를 더 나눈다. 갑자기 침묵이 찾아온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계속한다. 둘의 입술이 겹쳐 진다. 잠시 후 입술을 떼고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다시 입술을 맞댄다.


시간이 계속 흘러 이제는 더 이상 귀가를 지체할 수 없게 되었을 무렵, 둘은 헤어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서로의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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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게임의 한복판에 놓여진다. 누가 먼저 연락할 것인가는 이제 두 사람 인생 최대의 문제로 자리 잡는다. 보통 여기서 프랑스 여자들은 남자의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너무 들이대는 것처럼 보이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러고보니 한국의 밀당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관계가 여기까지 오려면 이미 남녀는 사귀는 사이이므로 연락 없음에 대한 책망이 가능하지만 이 곳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혀 정의된 바 없으므로 그 누구도 원망이라던가 연락을 종용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도가 키스보다 더 나갔다면? 계속 데이트를 하다가 잠자리까지 함께 한 사이라면?


그래도 아직은 모른다. 프랑스에 사는 한 한국 남자는 자신이 만나던 프랑스 여성이 친구들에게 자신을 '남자친구'라고 소개하자, 그제서야 둘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대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이거다. 상대가 나를 자기 친구들에게 어떻게 소개하느냐 하는 것. 그리고 당연히 사랑의 고백. 하지만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


파리에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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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필자 주변의 모든 파리지엔느들, 남자 때문에 집 구석에 틀어 박혀 머리 싸매고 고민 중이시다. 도도한 파리지엔느들의 일상엔 유혹이 차고 넘치지만 그녀들의 마음 속에 들어온 남자는 바로 그 남자이기에 그의 무심함에 아우성이다.

 

한국이었다면 그녀들의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적어도 한국 남자들은 결혼 전까지는 프랑스 남자보다 더 로맨틱하다고도 항변해 본다.


여튼 모든 새로운 연인들을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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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특파원 아까이 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