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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02. 수요일

펜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작가들이 유별나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유별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15년 가까이 이쪽 판을 기웃거린 내 나름의 판단은 ‘둘 다’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배우들의 경우를 보자면(작가들은, 나도 이쪽 분야다 보니 아무래도 객관성이 떨어질 거 같아 빼겠다), 이기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적”이란 표현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음. 이런 표현이 적절할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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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정말로 사랑한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평범한 샐러리맨 기준)이 주변을 둘러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배우들은 자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다. 정말 부러웠다.(이건 “뜨고”, “뜨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느냐... 그 ‘이기利己’의 정도에 따라 스타가 되고 안 되고가 결정된다고 난 본다. 그런 의미로 난 ‘덜 이기적인’ 즉, 날 ‘덜 사랑하는’ 인간이다.)


각설하고 지난 회에 이어 시나리오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1. 올드보이, 그리고 포기


지난 회에서 약간 옆길로 빠졌는데, 왜 하필 <올드보이>냐면, 그 날이 올드보이 개봉일자였다. 그때 시나리오 초고 탈고가 끝이 났다. 그리고 담당 PD가 날 불러서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순서였다. 계약서를 쓰고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데,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다음에 계약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당시 PD는,

 

 

“우리가 이런 회사가 아닌데, 요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라면서 미안해하는 연기를 보여줬다.(영화판 PD생활 10년이면,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감독이 OK했고, 담당 PD도 OK했고, 제작사 이사들도 OK했다. 그런데 엎어졌다. 결국 그 시나리오는 감독이 들고 나와서 여기저기 영화사를 기웃거렸다. 문제는 당시 “작가”였던 나였다. 감독의 경우는 계약금 조로 얼마를 받았고, 진행비도 받았다. 그 밑의 스태프 2명은 감독의 케어 아래에 있었다. 그럼 나는? 난 당시 부양가족이 있었다. 3달 간의 작업기간 동안 난 돈을 받지 못하고 일을 했다. 몇 년 후 그 PD가 내게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시나리오 의뢰를 위해서 말이다.)


 

“아이고, O작가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고, 내 평생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이번에는 제대로 계약을 하고...”

 

 

그때 난 정중히 일 못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내가 못 받은 돈은 3천만 원 정도였다. 영화판은 그런 곳이었다. 3천만 원 정도 떼먹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동네다.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당시 <올드보이>가 개봉하던 때 난 계약을 해달라고, 이런 비상식적인 계약 체계 아래서는 더 이상 작업을 못한다고 말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PD와 제작이사와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이때 감독이 끼어들었는데, 3개월 작업기간 동안 내가 진행비 조로 2백만 원을 받았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당시 난 영화 인생 최대의 ‘모욕’을 경험하게 된다.


 

“O작가 돈도 받았어?”

 

 

...감독은 정말 놀랐다는 반응이었다.(그리고 너 따위가 ‘돈’도 받고 글을 쓰냐는 표정이었다, 망작이지만, 한 작품을 걸었고, 한 작품을 각색했던 작가인데도 말이다.) 한때 충무로에서 촉망 받던 감독이었고, 그 당시 두 작품을 극장에 올려 나름의 스코어를 기록해 승승장구하던 감독이었다.

 

당시 내 집은 수원이었고, 싸이더스의 본사는 인터콘티넨탈 호텔 근처였다. 최소한 차비와 식대는 나와야하지 않을까? 게다가 석 달 동안 출퇴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2백만 원이었다. 그 2백만 원 때문에 난 그런 대우를 받았고, 그날 결심을 했다.

 

 

돈을 벌자. 정말 글로 돈을 벌자. 그런 다음 영화를 하든, 시나리오를 쓰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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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올드보이>가 개봉하던 그날, 난 글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했다.




2. 영화판을 떠나는 작가들...?


내가 받았던 ‘최소금액’의 원고료는 시나리오 한 편에 2,300원이었다. 두 달 동안 작업했는데, 감독이 주머니를 탈탈 털며,


 

“미안하다. 내가 지금 가진 게 이거밖에 없다. 담배라도 사 펴라.”

 

 

단편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라 상업영화를 지향하던 80페이지짜리 시나리오였다. 영화 인생을 같이 한 선배의 간청에 따른 “재능기부”차원의 글이었다.(당시 난 2,500원짜리 에쎄 멘솔을 태우고 있었다. 담배 한 갑도 못 살 금액이었다.)

 

작년에 춘사관에 끌려가 시나리오를 쓰던 그때 우연히 영화 시나리오로 입봉한 후 “드라마”로 전업한 작가와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시나리오를 쓰러 춘사관에 들어왔다는 소리를 하자, 상당히 놀라워했다.

 

 

“O작가님, 드라마로 넘어오세요. 뭐하러 사람 대접 못 받는 거기에 있어요?”

 

 

며칠 뒤 다른 남자 작가와 담배를 태우다가 우연찮게 ‘업계’이야기를 하게 됐다. 역시나 놀라워하며, 조심스럽게...

 

 

“뭐, 꿈이 있으시니까요. 그냥 드라마 하면서 쉬엄쉬엄 시나리오 하시는 것도 좋죠.”

 

 

그들에게 난 “별종”이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주업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게 “낭비”라는 건 알고 있다. 어떤 “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라이프펜 형도 내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영화판에서 사람대접 못 받고, 질질 끌려 다니다 소진 되느니, 아싸리 드라마로 넘어가서 딱 6개월 승부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음 작품 들어가는 게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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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건 2천년대 초였다. 한류 열풍이 불고, 드라마에 대단위 투자를 하게 되고. 일단 분명한 건 “드라마”를 쓰게 되면 사람 대접을 받는다. 예전 시나리오 작가 선배가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글판에서 ‘작가’대접을 제일 잘 해주는 곳이 어디인 줄 알아? 바로 영화판이야. 시나리오 작가라고 하면 꼭 ‘김작가’, ‘이작가’하고 대접을 하지. 왠지 알아? 그렇게 말이라도 해주자는 거야. 그 나머지 대접은 없으니 말야. 우리가 여기서 작가냐? 난 작가란 말 대신 ‘김기사’라고 불러달라고 해. ‘김시나리오 기사’ 얼마나 멋있냐?”

 

 

한때 드라마 외주사에 들어가 드라마 대본을 쓴 적이 있었다. 놀라웠다. 신세계가 펼쳐졌다.


담당 PD는 친절하게 “작업실”을 안내해 줬다. 꽤 괜찮은 오피스텔에, 자료조사 겸 청소를 해 주는 20대 중반의 아주 예쁜 여자 새끼작가를 소개시켜줬다. 물론, 사무실 운영비도 매달 지정된 날짜에 입금됐고, 계약금도 입금 됐다. 아, 좋았다.

 

매니지먼트 회사의 매니저들은 족발과 치킨 등 야식을 싸들고 사무실을 뻔질나게 들렀고, 자기 휘하의 배우들을(조연급)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란 말을 실감했다. 나같은 초짜가 그런 호사를 누릴 줄이야.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지면서 사무실 생활을 쫑내야 했지만, 어쨌든 호시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다. 편성을 잡고 들어갔으니.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영화판보다는 훨씬 좋은 대접을 받는다. 영화판은 엎어진 아이템이라도 ‘감독’의 고집이 있으면, 끝까지 그걸 물고 늘어져 질척거리는 경우가 있지만, 드라마의 경우는 보통 6개월 안에 가부 간의 판단이 안나면 접어버린다. 작가들에게는 이쪽이 훨씬 더 낫다. 괜히 답도 안 나오는 작품 붙잡고 질척거리느니, 새로운 아이템으로 다시 도전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드라마판이 마냥 좋은 ‘따뜻한 남쪽나라’는 아니다. 드라마판도 상위 5% 내외를 제외하고는 힘들다. 그리고 치열하다. 어디나 똑같겠지만, 영상작가들이 너나할 거 없이 드라마로 모이면서 꽃놀이패는 아니게 됐다. 물론, 케이블과 종편의 등장으로 편성에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이 조차도 만만하게 뚫을 만한 곳은 아니다. 즉, 어디를 가든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대접” 해 주고, “질척거리지 않는다”란 사실은 확실하다.)

 

돈 떼먹히고, 중노동에 시달리고, 사람대접 못 받는 곳이 시나리오 판이란 말이 돌면서(그게 사실이지만) 영화판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드라마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아있는 작가들의 경우는 대부분 ‘야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영화를 한다고 하면, 첫 질문은 대부분 이거다.

 

 

“아, 연출 생각하시고 있는 거죠?”

 

 

감독을 꿈꾸기에 계속 이 척박한 ‘판’에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냥 쓰는 것이다. 그 다음의 표정들은 ‘경외’와 ‘미친놈’의 어디쯤에 있는 표정이다.

 

 

“...아 ...예”

 

 

음, 오해가 있을 것 같은데, 최근의 상황을 좀 정리해 봐야겠다. 크게 두 가지 부분인데, 하나는 “감독작가”란 새로운 직업군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진위 표준계약서”에 관한 부분이다.

 


첫째, 감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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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감독들이 작가를 한다. 2000년대 초 영상작가 교육원에 ‘조감독’들이 많이 수강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감독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자기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 문을 두들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은, 감독이 자기 작품을 쓰고, 그걸 각색해 영화에 들어가는 것이다. 감독의 기본 재능 중에 ‘글쓰기’가 포함되는 상황이 됐다. 이걸 ‘대기업’들도 좋아한다.(CJ, 롯데, 쇼박스 이 3대 메이저의 돈이 없이는 영화 들어가기 힘들다. 물론, NEW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 좋은 점이 꽤 많다.


우선, 돈이 갈릴 필요도 없고, 감독과 작가의 의견차이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자기 작품이란 생각에 감독이 목숨을 걸고, 설사 돈을 좀 늦게 주고 뭘해도 ‘자기작품’이란 생각에 별로 뒷말이 안 나온다. 감독도 여차하면 시나리오 ‘개발비’정도 토해내고, 그 작품 들고 다른 영화사 가면 된다는 생각에 돈 걱정 별로 안한다. 그런데 여기에 시나리오 작가가 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최근에 영화감독이 자기 영화가 아닌데도, 시나리오를 쓰러 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믿을 만한 작가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이 부분도 설명해야겠는데, 지금도 많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공모전에 도전하고, 기성 작가들이 있지만, 예전과 달리 ‘분위기’가 달라진 정도다. 요즘은 영진위가 하는 ‘시나리오 마켓’에 많이 도전하는 추세다. <관상>도 그렇게 만들어진 시나리오다. 문제는, 예전처럼 시나리오만 바라보는 작가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히트작가’의 경우에는 시나리오 청탁이 몰려들었고, 그걸 다 의뢰받은 작가들은 새끼작가들을 고용해 글을 쓰던가, 회사를 차려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분위기는... 거의 뭐... 대신 감독이 글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사 작가가 있더라도 감독과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분위기의 차이다. 분위기)



둘째, 영진위 표준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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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입장은(주로 제작사),

 

 

“영화 시나리오란 것에 대단위 투자를 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100개를 쓰면 1개 될까 말까하는데, 거기에 계속 돈을 투자했다가는 영화 올려보기도 전에 망한다!”

 

 

라는 것이고, 시나리오 작가의 경우는

 

 

“한 작품 쓰는데, 최소한 1년은 잡아야 한다. 

영화사와 감독은 시도 때도 없이 수정을 요구하고, 돈은 나오지 않는다!”

 

 

한쪽에선 최대한 돈을 주지 않으려 하고, 한쪽에선 돈을 받고 싶어 한다.

 

둘 다 이해가 간다. 제작사의 경우 시나리오 한 편(초고 기준)을 뽑아내는데, 아주 ‘잘’ 나오는 경우라도 최소한 3번의 수정작업(삼고)까지 나와야 외부로 돌릴 만한 ‘초고’를 완성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의 진행비와 계약금을 생각하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가장 싸게 먹히는 작업환경이라 할 수 있는 ‘춘사관’에서의 2주 작업의 경우라도 1~2백만 원을 생각해야 한다. 작가와 감독 딱 2명에 외부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춘사관에서 제공하는 밥만을 먹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2주 동안 시나리오 1편이 나오는 것도 ‘굉장히’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다. 날 찾는 이들이 날 선호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쥐어짜면 나오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선배 작가들의 경우 음, 나의 경우도 해당사항이 있는데, 시나리오 작업을 하러 끌려가면,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밥을 먹거나 그 동안 먹고 싶었던 걸 먹거나, 운동화를 사거나, 머리를 깎거나, 술을 마시거나 기타 등등으로 진행비 청구를 했다. 가난한 작가의 오기일 수도 있겠지만, 돈을 주지 않으니 다른 식으로 보전하자는 심리도 포함돼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나와 같이 들어간 조감독 형이,

 

 

“OO아 너 머리 지저분하다? 머리 깎으러 가자. 결제 해주께!”

 

“OO아 너 신발이 그게 뭐냐? 운동화 사러 가자!”

 

 

라면서 내 팔을 잡아 끈 적이 있다. 내가 계약금을 정말 말도 안 되게 받은 걸 알고, 이런 식으로 최대한 보전해 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양심상 그 호의를 받을 순 없었다.)

 

반면에 작가들은 정말 “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 뭐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글값”은 “돈”이 아니다란 의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작품을 해야지, 돈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 돈 쫓다간 작품 못해!”

 

 

란 개소리를 하던 감독이 있었다. 그 감독은 집안이 좀 살아서 ‘노트북 수집’이 취미였던 이였다. 그 감독은 집에서 용돈 받아쓰면서 1년이고, 2년이고 작품 준비를 할 수 있었지만, 난 아니었다. 그때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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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작품 안할래요. 전 돈이 필요하니까요. 예술 할 수 있는 작가분 찾아보세요.”

 

 

라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건 비단 영화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글값’에 대한 ‘편견’이다.

 

최근 신인작가들은 영진위 표준계약서에 맞춰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쪽의 불만을 최대한 조율해 나온 계약서인데, 예전에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 이런 식으로 정리하고, 계약금 주고 나면 잔금은 못 받는 돈이었다.(잔금은 영화 들어가면 나온다. 이건... 정말...)

 

그런데 요즘은 양측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선 시놉시스를 써보시죠?”

 

 

그런 다음에 시놉이 괜찮으면, “트리트먼트” 계약을 하는 것이다. 건물을 시공하기 전 설계도면을 우선 그린다고 해야 할까? 그런 다음 트리트먼트가 괜찮으면, 또다시 시나리오 본 계약에 들어간다. 여기서도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시기별로 딱딱 나눠서 지급하는 것이다.

 

2년 전인가? 아는 감독분이 영진위 표준계약서를 들고 와 계약을 요청한 적이 있다.

 

 

“O작가 정말 미안한데, 요즘 세상이 이래. 짬밥이 있는데, 이렇게 맞춰줄 수밖에 없어. 그냥 내 얼굴 봐서 한 번만 같이 하자 응?”

 

 

당시 계약서를 보고, 난 흔쾌히 도장을 찍었다.

 

 

“왜요? 이게 더 합리적인데요?”

 

 

비록 총액 액수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그래 까자. 까짓 거, 당시 총액 4천만 원짜리 계약이었다. 잔금이 1천 2백이었고, 내가 받을 돈이 2천 8백이었을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바짝 달리면, 총 투자 기간은 한달 정도면 되겠다는 계산이 섰기에 선선히 도장을 찍었다. 이 2천 8백만 원을 6개월에 나눠 받았다. 시놉 제출하고 나니 이틀 만인가? 트리트먼트 계약을 했고, 그 뒤에 본계약에 들어갔다.(영화판에선 잔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게 건강상 좋다.) 결국은 6개월 동안 2천 8백 짜리 알바를 뛴 것이다. 시나리오는 그쪽에서도 나름 만족했고, 계약은 성공적으로 완료 됐다. 다만 제작사 사정 때문에 지지부진하고 있지만, 난 받을 돈 다 받았다.

 

지금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의 경우는 이렇다. 솔직히 양쪽 다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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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사먹었다 생각해야지.”

 

 

엎어진 시나리오를 두고 하는 말들이다. 어떤 경우엔 진행비 포함 1억 넘게 떡을 사먹는 경우도 있다.(흔하다 이런 경우) 그 동안 제작사들은 이 ‘떡 사먹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작가들에게 돈을 ‘덜’ 주는 쪽으로 혹은, ‘성공적으로’ 돈을 주지 않고 좋은 글을 뽑아내는 것을 제작자의 역량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나리오 작가보다는 글을 쓰는 감독작가들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연출 시켜준다고 꼬시니까 말이다.) 그들의 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말 X같은 작가 만나면, 돈은 돈대로 다 날리고, 글은 산으로 가 써먹을 수 없는 글을 들고 먼 산을 바라봐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판에서 “작가”를 섭외할 때, 그러니까 ‘기성작가’를 섭외할 때 하는 첫 번째 행동이 ‘전화’다. 아는 감독, 조감독, PD, 제작자들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곤,

 

“OO이 어때요?”

 

그 OO이에게 연출을 맡길지, 시나리오를 맡길지 모른다. 그럼 묻는다.

 

“무슨 일 때문이에요 형?”

 

그럼 거의 십중팔구 이런다. 


“책 하나 쓰려고...”

 

그때부터 설명이 들어간다. 적당한 품평과 곁들어 작업 스타일까지 말해준다. 그런 다음 은근슬쩍 ‘페이’에 대해서도 사전정보를 취합한다. 그런식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콘텐츠 산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떡값’을 투자하는 이유는? 만약 터지면, 그때까지 사 먹은 떡값을 다 회수하고, 새로운 떡을 사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행도 대기업들이 들어오면서 많이 개선됐다. 아니,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됐다.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 대신 철두철미하고, 계산된 기획들이 오가고, 계약도 치밀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게 됐다. 대신 ‘메이드’가 힘들어졌고, 작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산’을 보게 됐다.

 

얼마 전 모 방송국 PD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시나리오를 ‘메이드’ 시키는 것보다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게 더 쉬울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메이드’ 된 영화는 몇 년 전부터 ‘공식’이 나와 있다. 그 공식대로 시나리오를 찍어내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답이 나와 있기에 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는 게 쉬울 듯 싶지만, 답이 나와 있기에 어렵다. 답이 나와 있기에 그 답을 피해가면서 최대한 공식의 근사치에 붙여야 하는 것이다.(컬링이다! 하우스 안에 넣고, 가드를 세우는 것이다! 다른 작품과 비슷하면서 비슷하지 않은 오묘한 경계...)

 

 

“한국 관객들은 영화 한편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한다. 웃고, 울고, 감동하고. 

100분 동안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코미디 영화는 초반에 웃기고, 뒤에 감동을 줘야 한다.(아, 이놈의 감동...감동...감동), 슬픈 영화는 감동 속에서 위트 있는 유머를 원한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기준’으로 좋은 시나리오의 키 포인트는,

 

 

“1부에서 2부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넘어가느냐가 관건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음, 이제껏 본 영화들을 떠올려 보라. 최근 10년 간 나온 영화들의 대부분은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다. 웃다가 울어야 하고, 울다가 웃어야 한다. 그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정리하느냐가 좋은 시나리오의 관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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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천편일률적인 ‘웃음과 감동이 넘쳐나는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걸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게 이 시대의 트렌드라면, 그걸 따라가야 하는 게 작가이니 말이다.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될 수 없다.(상업영화는 말이다.) 대단위 자본이 투여되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위험요소는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토렌트와 P2P 사이트 덕분에 2차 판권이 무너진 통에(요즘은 IPTV가 많이 지르고 있지만) 영화사들, 투자사들은 영화 개봉에 올인 하게 됐고(평점알바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최대한 빨리 회수하기 위해선 이들을 동원해서라도 스크린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목숨을 걸게 된 것이다. 결국 모험보다는 안정이다.

 

난 그 안에서 나만의 생존법을 터득하게 됐다.



...다음 회에 이어가겠다.





펜더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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