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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03. 목요일

정우성








 

 






[47] 창조경제: 박통 이세께서는 집권 경제담론으로 “창조경제”를 꺼내들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창조”라는 단어와 “경제”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의 슬로건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의 작법은 찬양해 줘야 한다. 찬양하기 싫으면 배우든가. MB 가카 정부의 “지식경제”보다는 더 ‘창의적’이지 않은가.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위해서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곳곳에서 회자되었던 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나쁘게도 생각지 말고 그저 단어의 의미만을 고대로 좇아 해석해 보자. 창조경제라 함은 창의성이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고, 국가경제를 구성하는 정부, 기업, 개인이 저마다 창조적 활동으로 경제적 가치를 만들자는 게 이 슬로건의 요체. 굳이 힘 써서 반대할 까닭이 없다. 단지 목돈사회는 그게 가당치 않은 이야기라며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48] 청년창업의 문제 : 정부는 벤처기업의 활성화와 “청년창업”의 붐을 조성하겠다는 것으로 창조경제를 실천하는 모양이다.(물론 다른 묘안도 있겠지.) 2000년대 초반 벤처붐이 있었다. 대부분 몰락했다. 데자뷰?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단, 용어가 다르다. “벤처”는 좀 진부하다. 요즘말로는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청년창업”의 강조는 청년실업과 대비되면서 왠지 신선하기까지 하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듯한 느낌도 있으니, “이 단어 참 마음에 드네”라며 정하지 않았을까.

 

창조경제를 하든, 경제창조를 하든, 기발한 아이디어로 쇼를 하든 그러다가 느닷없이 게임중독법을 말하든, 어쨌든 우리나라는 창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아이디어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 그러자 정부가 청년창업에만 1,67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투자를 활성화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원은 좋다. 그런데 망하면 어쩌지?

 

청년창업(스타트업 기업을 포함해서)이 갖는 긍정적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첫째, 극소수의 엘리트가 가져올 환상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다. 창업 기업의 대부분은 망하겠지만 일부 엘리트라도 성공해서 혁신을 일으키고 산업을 주도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낙수효과 발상. 재벌과 관료적인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과연 그럴 만한 꼬마엘리트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다. 그런 발상을 곧이 곧대로 인정한다 치더라도 망해서 뒹구는 나머지는 쓰레기인가? 극소수의 성공을 위한 로또 정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할 일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청년창업의 두 번째 긍정적인 의미가 제시된다. 예쁘게 말하자면 실패를 창조적으로 조직한다는 것이다. 창업과 폐업은 동전의 양면이다. 창업이 의미를 갖는 것은 실패를 경험할 기회를 갖겠다는 것이고, 실패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교훈을 사회적 자산으로 삼아 재도전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눈부신 성공은 그만큼 눈부신 실패를 먹고 자란다고나 할까. 창업의 활성화는 곧 실패의 양산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패를 조직하여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사회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없고서는 청년창업의 조장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당사자들에게는 몹시 위험하다.

 

아시다시피, 사회는 틈만 나면 개인에게 요구하는 목돈의 크기를 올린다. 소득이 오르는 것보다, 물가가 오르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더 높이 오른다. 목돈의 가파른 기울기는 개인의 투기를 조장했다. 투기가 아니고서는 그런 기울기에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냉정했고 하우스푸어가 생겼다. 그런데 만약 창업을 하다가 망하면 어쩌지? 창업을 하다가 망하는 경우 십중팔구는 수중에 현금이 별로 없다. 자칫 자식을 지원하다가 가족의 총탄도 떨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는 태평하게 또 목돈을 요구한다. 아래는 현기증 나는 서울 전세보증금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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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un Tan (1974~), “The Arrival”에 수록된 일러스트레이션

 

 

[49] 흑색실패와 적색실패 : 창업을 해서 열 명 중 예닐곱은 망하거나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사는둥 마는둥 할 것이다. 물론 홍길동은 열심히 일했다. 성춘향은 온 힘을 다썼다. 그러나 쌓아둔 현금이 없다. 집이 있다면 담보로 잡혔을 것이다. 창업에 실패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주거보증금은 어느 세월에 마련할 것인가? 목돈게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창업의 실패는 두 가지 색깔을 띤다. 흑색과 적색. 흑색실패는 목돈을 처음부터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냉정함. 적색실패는 그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랄함.

 

목돈사회는 경영자 연대보증을 요구한다. 창업자에 대해서는 투 트랩으로 목돈게임이 진행되는 것이다. 경영자 연대보증은 사실상 창업을 한 홍길동과 성춘향에게 실패를 담보로 목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창업의 실패로 말미암아 마이너스 목돈을 떠앉는다. 기업의 빚이 개인의 빚으로 바뀐다. 흑색실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주거보증금 목돈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흑색목돈이다. 적색실패는 빚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건 연대보증채무를 지는 자를 콕 찍어서 목돈을 요구하는 적색목돈이다. 목돈사회는 관용이 없다.

 

미국인이 미국에서 창업을 하는 경우 이런 부담을 겪지 않아도 된다. 독일인이 독일에서 창업을 하는 경우에도, 이스라엘 기업이 이스라엘에서 창업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창업의 활성화는 우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너님이 실패했으므로 너님이 모두 책임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똥냄새 나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초딩도 아는 에디슨의 문장이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날린 그 숱한 사람 중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실패에 대한 관용, 이것이 인류사의 가르침이다. 재기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목돈사회에서의 실패는 드라마를 찍는다. 여기서 한 마디 더. 창업을 한 젊은이가 부잣집 자식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목돈게임의 승자들은 망해도 금세 일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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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un Tan (1974~), “The Red Tree (Hodder Children’s Books)”에 수록된 일러스트레이션,

<빨간나무>(풀빛, 2002)

 

 

[50] 모럴해저드? : 투자자와 은행은 적색실패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그들은 경영자 연대보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꼭 옳은 것도 아니다. 모럴해저드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 개별적이거나 예외적인 현상이며, 현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존재할 뿐이다. 경영자 연대보증을 세우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경영자가 모럴해저드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의 인성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사업성만큼이나 중요한 투자 요건이 되고 심사의 대상이 된다. 투자자나 은행이 프로라면 적색목돈을 징수하지 않더라도 모럴해저드는 상당히 예방할 수 있다. 인상 나쁜 사람한테 투자를 하지 않으면 된다. 인성 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프로다운 자세다. 사회의 문화 수준 자체가 올라간다면 모럴해저드의 예외지수는 감소하게 마련이다. 정직과 염치는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인프라다. 또한 모럴해저드에 빠진 경영자에 대한 사후적 조치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상당수의 모럴해저드는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기업대출”에 대해서 경영자 연대보증채무를 세우는 것은 예외를 위해서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투자자와 은행은 개별 인간에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조직의 힘으로 사업을 하는 “법인”에 투자한다. 그렇지만 오너주의의 경영을 권하는 한국에서는 개인과 법인은 동항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국가와 모든 관료조직의 행정은 인간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전제 하에 건축되었다. 이 건축술은 인간을 단속하고 규제하고 감시함으로써 피로하게 만든다. 행정과 관료는 규제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시민단체는 새로운 규제를 청구한다. 건축술의 패러다임을 바꿔서 인간 본성의 도덕률을 신뢰하는 쪽으로 전제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물론 사악함의 역습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다. 대비는 필요하겠다. 그렇지만 예외에 대한 공포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말 것. 예방적 차원의 조치는 보편적 인간을 피곤하지 않게, 사후적 조치는 개별적 인간을 몹시 피곤하게. 하지만 우리 사회는 거꾸로 구조화되어 있다.

 

지금처럼 경영자 연대보증을 세워서 적색목돈의 짐을 지우게 하더라도 사악함의 싹을 없애지도 못한다. 경영자는 책임재산을 없애기 위해서 자기 재산을 명의이전해 둘 수 있다. 악랄하게는 바지 사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오히려 회사가 ‘오너’ 개인의 소유인 것마냥 치부하는 문화를 만든다. 모럴해저드는 투자자나 은행이 자기들은 결코 리스크를 지지 않겠노라며 발명한 진부한 논거에 불과하다. 누구도 모럴해저드를 비호하지 않는다. 투자자와 은행은 인간의 이런 선한 태도를 교묘히 이용한다. 그들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경영자 연대보증이라는 적색목돈을 지속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모럴해저드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개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덕률을 지킬 수도 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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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un Tan (1974~), “The Red Tree (Hodder Children’s Books)”에 수록된 일러스터레이션,

<빨간나무>(풀빛, 2002)

 

 

[52] 창조경제의 덫 :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진실로 위험하다. 창업은 도전과 용기를 독려한다. 하지만 흑색목돈과 적색목돈이 창업하려는 당신의 목을 조를 것이다. 합리적인 관점에서는 한국에서 창업하지 않는 게 좋겠다. 비합리성의 관점에서 꿈을 좇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겠고, 청년창업의 환상이 그 본성을 부추겨서 창업을 할지도 모른다. 다만, 환상이 파멸에 이를 때 우리 사회의 비정함이 사무칠 것이다.

 

취직을 하면 당분간 망하지 않는다. 일정한 소득은,누군가 투기를 재촉하지만 않는다면, 재정을 건전하게 할 수 있다. 소득과 소비 대차대조가 분명하기 때문에 욕망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으며, 재정 설계가 가능하다. 목돈사회는 일정한 소득을 가진 사람조차 그들의 능력을 넘는 목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버겁기 그지 없다. 그런데 취직을 하지 않고 창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도박과 같다. 자영업자이든 예술삘 혹은 문학삘의 프리랜서든 목돈사회는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들이 악전고투를 하든 말든 사회는 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목돈을 요구한다. 물가인상과 소득증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돈의 크기를 올린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창업을 하든 말든, 실패를 하든 말든 목돈을 요구한다. 수작을 쓰든 로또 당첨처럼 운수 좋게 성공한다면 괜찮겠다. 원래 가족이 부유하지 않다면 목돈게임을 이기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악착 같이 늙는 것이고 아니면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요행도 경쟁력이다. 청년창업, 90% 이상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목돈을 요구한다. 목돈사회, 창조경제의 닻을 내려도 그것은 금세 덫으로 바뀔 것이다. 목돈사회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지극히 농밀하고 창조적인 것이어서 여타의 창조성은 목돈 블랙홀에 빨려들고 만다.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는 개수작이다. 청년창업은 자기 인생의 똥밟기다. 누가 이 똥을 쌌고, 누가 이 똥을 치울 것인가.

 

나는 그저 소박한 사회를 꿈꾼다. 국가가 굳이 나서서 개인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넘어질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여러 번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툭툭 털고 내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바란다.

 

넘어져 본 사람은 넘어졌을 때의 아픔을 안다. 별것 없다. 넘어졌으면 그저 일어나면 된다. 그러나 일어나면 되는 것을 알고 또 일어나고 싶은데 가위 눌린 것처럼 도저히 내 힘으로는 일어날 수가 없을 때, 누군가 올려놓은 천근의 무게에 짜부라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절망이라고 부른다. 목돈사회는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참견하며 절망의 씨앗을 뿌리고, 넘어진 누군가의 등을 짓밟는다. 이런 짓, 우리 이제 그만하자.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창업을 하기 전에, 자신이 속한 단체(가족)가 목돈게임의 승자인지 여부를 따져봤으면 좋겠어. 넌 부잣집 자식이니?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창업하지 않기를 바래. 목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하기보다는 목 좋은 곳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더 좋을지도. 창업을 하다가 망하면 어쩔 것인데? 흑색목돈과 적색목돈, 엄청난 무게를 견딜 수 있겠니.


 

2. 인간은 사악하고 악랄하다는 전제로 국가와 모든 관료조직의 행정이 건축되어 있는 것 같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이런 건축술은 다수의 악하지 않은 사람을 감시하고, 단속하고, 규율하면서 인간을 피로하게 만들지. 좀 거꾸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도덕률을 지킬 수 있다는 전제로 국가와 모든 관료조직의 행정을 재건축하면 어떨까? 도덕률은 그 사회의 염치 수준에 의해서 정해지므로 다 함께 염치지수를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순진하게 뭔 소리 하냐고? 인간은 깨끗한 물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아. 그치만 사악함의 역습을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오염되면 정화하면 되지. 물이 오염될 수 있다고 치수를 안 할 수는 없잖아. 기업대출과 기업투자에 대한 경영자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서 선생의 생각은 어떻소? 투자자와 은행은 모럴해저드론. 나는 적색목돈론.

 


3. 넘어지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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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un Tan (1974~), “D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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