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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21. 월요일
멀더요원









4월 16일 오전에 침몰 상황이 보도되었을 때, 배가 기울어져 있긴 하지만 그리 많이 잠겨 있지 않은 것 같았고 이미 언론에 알려질 정도라면 곧 구조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 그게 이런 대참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번 여객선 침몰 사고에서 대한민국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니, 어쩌면 시스템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1.신뢰

사고 발생 초기에 대책본부의 대응은 너무 미숙했다. 탑승객, 구조자, 실종자, 사망자 숫자... 그런 숫자는 너무 어수선한 상황에서 틀릴 수도 있다. 처음에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중복집계 가능성이 있었다면 아예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모른다고 했어야 한다.

만약 모른다고 했다면, "대책본부가 여태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냐!" 라는 비난을 들을 수는 있었겠지만, 적어도 여러 차레에 걸쳐 집계된 숫자를 바꿔 혼란을 줌으로써 신뢰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에 대해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게 된다. 엄청난 경쟁사회에서 무능함이 드러난다는 것은 곧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위장이 필요하고 따라서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모를 때 모른다고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엉망이 되어버린 신뢰는 배에 산소공급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이 바로 몇시간 뒤에 들통나고, 그 밖에도 그들이 발표하는 구조작업 상황의 많은 부분이 현장의 '진실'과 많이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또한, 특종을 위한 '속보'와 '오보' 경쟁이 붙은 찌라시들은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생산해냈고, 트위터에서는 그걸 실시간으로 유통시켰다. 이것들이 무한히 확산되는 와중, 18일 아침에 등장한 양치기 소녀 홍XX까지 가세했고 급기야 대책본부의 언론플레이로 보이는 '조명탄 보도'까지..

이렇게, 정보로서 가치가 없는 이야기(90년대 중반, 수도권 인근의 육군 모부대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방위통신'이라 불렀음)들이 언론과 SNS에서 계속해서 생산, 유통되었고 그 결과... 이른바, '정보공해(information pollution)'에 빠져 지금은 어느 것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정부와 언론에 대한 신뢰는 완벽하게 무너졌다.





2.수단과 방법

지금 현장에는 각종 베테랑 전문가들이 잔뜩 몰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초기에 그들이 투입이 많이 늦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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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현장에 나타난 잠수사들이 일정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느라 그런 건지, 혹시라도 구조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냐는 고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제대로 된 통제기구가 없었다는 걸 나타내 주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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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치 '관할과 책임'의 문제로 현장에서 백분토론을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저 사람이 싫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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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싼 돈 쳐들여서 1년 반전에 도입한 해군 함정이 시험운전도 제대로 안되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군수물자 관련된 오랜 '관행적 문제'가 의심된다).



하지만, 우리가 늘 잊고 사는게 있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들이 한반도 주변에 다 몰려있다는 것이다.



긴급한 상황에서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다면, 어디서든 가져와야 한다.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최대한 빌려서라도 가져와야 한다. 우리 국민이, 아니 사람이 죽어가고 있잖아.

그런데 정부는 그 정도로 급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름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듣고 싶지 않다.

사고 발생 초기에 인근에 있던 미군은 헬기 두 대를 대기시켰다가 한국 측의 요청을 기다리며 초동 구조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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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구조 지휘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투입된다면 오히려 구조대가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초동 구조에 참여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해상보안청(자위대)가 구조활동을 지원하겠다고도 하는데, 그것도 사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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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 등 일본의 한반도 진입에 대한 여론과 이런 저런 외교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고발생 초기 상황이 그런 정치적 문제를 따질 상황인가?

적어도 대책본부라면, 그 상황에서 필요한 자원은 그게 뭐가 됐든 가장 신속히 어떠한 외교적 문제를 무릅쓰더라도 동원해야 한다. 나중에 문책을 당한다면, 그건 그걸 문책하는 지도자가 문제인 것이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그의 잘못은 아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그걸 '군수지원'의 형태로 법제화 하려고 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막으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건 대책본부에서 걱정할 게 아니라 대통령과 외교부가 걱정할 문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 아니던가? 만약 그 인근에 중국해군이 있었다면 거기도 요청을 했어야 할 것이고... 아니, ㅆㅂ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만약 그 인근에 북한해군이 있었다면 그들에게 구조요청을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ㅆㅂ 만약, 소말리아 해적이 제일 가까이 있었다면, 걔네들한테라도 구조요청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초기 대응에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렸다.



3.결론

사고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늘 일정한 비율로 발생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즉,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아마,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보험도 필요없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규제장치'를 마련하고 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발생한 사고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떤 재난상황에 대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스템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만 했던 국가는 이번 사고에서 마치 엊그제 개업해서 뭘 어째야 할지도 모르는 직원들이 어디서 본 건 있고 막 나서서 통제나 하고 싶어하는 '무허가 상조업체' 같은 느낌이었다. 신속히 '구조'하기 보다는 '처리'나 하려는 듯한...

우왕좌왕 하고 머릿속에 이런 저런 생각만 많아서 모든 가능한 자원을 동원해 효율적으로 투입하지 못하는 능력없는 대책본부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그런 게 만약 없다면 희생자 가족이든 누구든 만들거다. 어차피 지금도 희생자 가족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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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자원배분과 공정한 소득분배를 실현하려는 정부의 개입 내지는 정책이, 어떤 이유에서든 실패하거나 더 악화시키는 상황을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라고 한다.

이것은 주로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래서 민간 참여가 필요한 거고, 그래서 정부는 최소한으로만 개입해야 하는 거고, 그래서 규제를 풀어야 하는 거야."라는 주장을 할 때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데...

우린 어쩌다 보니,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와중에도 경제문제와 재난관리문제에서도 골고루 실패한 정부를 어쩔 수 없이 갖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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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FAILURE>


"북한과 전쟁하면 우리가 진다."라는 군 고위 관계자의 발언에 헛웃음을 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말이 되냐. 우리 군대는 60년 동안 국방비로 떡 사먹었냐'는 조롱을 했지만, 지금 이런 '사고'에도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고 있으니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없는, 그렇다고 별로 그럴 의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
아마도 그런 정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사고 여객선에 미국, 일본, 유럽,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었다고 해도 저 따위로 대응했을 건가? 그런 경우였어도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서야 조명탄 300발 구했다고 했을까?

만약, '전시작전통제권'처럼 '재난지휘통제권'이라는 것이 있다면, 정부 수립 후 60년 넘게 재난대응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정부에서 그걸 하겠다고 돈 쓰고 있느니, 차라리 미군에 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9200억 원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주면서, 몇푼 더 얹어서 주더라도 그런 재난 구조 서비스를 같이 해주는 걸로 한다면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대형사고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ㅆㅂ 나라 되찾고 60년 넘게 삽질이나 하고 앉아 있는 정부라면 앞으로도 그 시스템을 똑바로 갖출거라는 생각이 들겠냐?


ㅆㅂ... 이게 나라냐...




****추가****

1) 구조작업이란 게 그렇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 거라는 것쯤은 다들 안다. 이것은 지금 현장에서 목숨걸고 구조하는 현장요원들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그런 우수한 자원을 똑바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낭비해버린 어떤 인간들에 대한 분노다.

2) 배를 버린 최고 책임자와는 별도로 승객을 구하려다 실종된 승무원도 있다. 이 나라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가 자기 자식이 '선장'이 되기를 바라지 '여객선 알바'가 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자식에게 올바른 생각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책임감'을 심으면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게 과연 옳은 것인지 '양심'에 대한 회의도 생긴다.

3) 언론은 이제부터 '스토리'를 찾아 다닐 것이다. 언론사 종업원들의 '근면 성실함'으로 인해 괜히 여러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을 '효수'라도 할 기세로 이야기를 쏟아내고 여론몰이를 할 거라면, 그와 비슷한 비중으로 '중앙대책본부'가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도 함께 취재해서 알렸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왜 사고를 냈냐"며 사고낸 쪽만 강력히 처벌할 것이 뻔하다. 사고예방을 위한 규제와 관리감독의 책임과 그 사고에 적절한 대응에 대한 '정부의 의무'는 뒤로 한 채...

4) 시인이자 정치인인 어떤 분들이 여객선 침몰을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시적 감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필휘지'로 막 적어 제끼신 것 같은 작품이 일부 '종북좌파'들의 원성으로 혹시 지워져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여기에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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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안 말리겠어.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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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의 작품을 보고 할 말을 잃었소. ㅆㅂ



이 내용과는 상관없이, 입국장에서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마약관련당국이 짐검사를 좀 더 철저히 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그냥 갑자기 든다.

5) 바퀴벌레의 세계에서 죽은 동료 바퀴벌레는 먹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특성을 이용해서 바퀴벌레약을 만들기도 한다. 4월 18일 12시쯤 안산시청에서 자신들은 모금활동을 안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트윗을 보니, 사고 발생 이틀만에 안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모금을 하는 미친 새끼들도 나타난 것 같다. 여기가 바퀴벌레 정글인가?

6) 이번 사고를 통해 여러 이름을 가진 법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뭔가 시스템을 만드는 척은 하겠지만 늘 그랬듯이 결국 안 될 것이다.


이제 며칠 지나면 실종자의 다수는 사망자로 변경될 것이다. 다음달부터는 보상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지방선거를 맞을 것이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몇개월 쯤 지나면 지금 우리들의 분노는 잊혀질 것이고 지금 희생자 가족들은 '선진국이 되려면 슬퍼하는 방식도 격을 높여야 한다'며 '동물처럼 울부짖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국가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듣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사회 분위기상 아마도 그때 쯤이면, 보상에 합의를 안 하는 유가족들은 '친노종북' 내지는 '자식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부모'라는 색칠이 될 것 같다.

아마도, 더 나아가 희생자 가족들이 정부에 대한 분노로 '테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정권안보자들의 우려가 있다면, 그들을 상대로 '민간사찰'을 하지나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국들은 '민간선박 구조'를 명분으로 각자 자신들의 군사적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들을 할 것이다. 원래 청일전쟁 때도 그랬고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은 늘 그럴 듯 했다. 늘 그랬 듯 일본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비롯한 동북아지역에서의 역할 확대를 주장할 것이고, 국내 찌라시들은 '세월호' 자료화면을 보여주며 한일간의 군사교류를, 민간선박 구조에 관한 얘기로 '프레임을 전환'시켜 떠들어 댈 게 뻔하다. 미국은 일본을 지지할 것이고, 중국은 반발할 것이고 그 와중에 북한은 미사일 쑈와 핵실험을 할 것 같다(이런 추측을 근거로 '이게 다 미국과 일본의 음모'라는 소설은 쓰지마라. 그들은 그냥 그들 입장에서 호재를 만났을 뿐이다. 그런 음모론은 여객선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거나 국정원 소행이라는 얘기만큼 정신나간 얘기다. 정신병은 좌우가 없다. 원인과 치료가 있을 뿐이다).



오늘 하루도 살아남아 이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내일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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