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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21. 월요일

범우












6개월 전부터 유통창고에서 일을 한다. 물건을 주문하고, 창고에 물건을 적재 하고, 출고되는 물건을 장부 프로그램에 기입 하고, 남는 시간에 소포장용 물품을 포장한다. 마트 행상을 하는 영세업체 사장들이 공동 지분을 출자해서 자본금을 만들고 운영비를 모아서 창고 살림을 꾸려나간다. 창고 수리를 위해 건물주가 운영하는 건설 기계 임대회사에서 공구를 몇 번 빌리고 출퇴근 시간에 인사를 나누어서 그곳에서 일하는 형님과 제법 친해졌다.


출근 시간이 비슷해서 항상 같은 자리에 주차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일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있다. 자동차 정비를 하시다가 은퇴 이후에 건설기계 점검과 장비이송 업무를 하시는데, 출근시간이 항상 일정한 걸 보면 성실하신 분이다. 그 형님에 기준으로 내 출근 시간은 앞 뒤로 십여 분 들쭉날쭉하다.


그걸 보고 인사말로 한 마디 하신다. 어떤 날은 자신보다 먼저 오고 어떤 날은 좀 늦다고 이유가 뭐냐고 물어온다. 딸 아이를 학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라 이 녀석이 준비가 늦는 날은 제가 좀 늦는 날이라고 설명해주었더니 학교를 물어본다. 딸 아이 학교 이름을 알아듣는 걸 보면 안산 쪽 지리를 잘 아시는 것 같다.


월요일에는 구십을 몇 년 전에 넘기고 노환으로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고 계셨던 친구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족들의 얼굴에 피로와 슬픔이 있긴 했지만 복잡하게 서 있는 화환에 비해 차분했다. 친구의 고종사촌이 아이돌 출신의 연예기획사 이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화환을 찾아보았는데 구석으로 밀려나있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녀분들인 고모와 외삼촌들이 은근히 화환배치에 경쟁을 해서 좀 늦게 도착한 사람의 화환이 밀려났단다. 인정욕구와 경쟁은 죽음 앞에서도 은근하게 치열하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향을 피우고 산 사람들을 위해서 절을 했다.


16일 수요일이었던 것 같다. 오전 11시쯤. 수업중이어서 전화기를 꺼두었을 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학여행을 간 2학년생들이 탄 배가 사고가 생겨 기자, 경찰, 학부모들이 몰려와 학교가 난리 나서 일찍 집에 가라고 했단다. 목소리가 밝아 배에 탄 애들의 안부를 물어보니


“선생님이랑 학생들이랑 모두 무사히 구출 되었데.” 


“다행이네, 놀랐을 텐데 집에 가서 잠을 좀 자렴“ 하고 짧게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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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시 조금 넘어서 아침에 인사를 나눈 형님이 창고로 뛰어 들어온다. 출장 갔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뉴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주차되어있는 차를 보고 뛰어 내려왔다고 놀람이 가득한 얼굴로 딸 아이의 안부를 물어온다.


“학년이 달라서 수학여행은 작년에 다녀왔고 딸아이 말로는 다 구조됐다고 하던데요?”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어쨌든 걱정해준 그 마음이 고마워서 감사인사를 전하니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이 뭐 다 그런 거라며 쑥스러워한다.


조금 일찍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가 멍 하니 티비를 보고 있다. 처음에 들은 내용이 오보였다. 불안한 얼굴로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잠깐 뉴스를 지켜보다가 못 나온 사람들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잠수함처럼 완전 밀폐된 공간이 있는 게 아니라면 공기가 남아있는 곳에 머리만 내밀고 호흡하며 떠 있더라도 저체온증으로 두 시간을 버티기도 힘들 것 같다. 냉정한 말에 눈물이 글썽이는 눈에 원망이 서린 걸 보고 말을 덧붙인다.


“그래도 기적이 라는 것도 종종 있으니까 기다려봐야지.”


사고 뉴스를 보다가 분노와 슬픔이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 뉴스를 피한다. 집사람은 1년 치 안부전화를 받았다. 장모님은 이미 안심 시켜드렸건만 손녀와 같은 이름의 사망자 명단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고 다시 전화를 한다.


선장은 브이아이피 승객들과 자기가 거느리던 사람들만 데리고 일등으로 탈출을 했다. 초기부터 반복됐던 명령대로 배 안에서 대기하던 학생들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어선들이 구조해냈다. 그리고나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가족들의 지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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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몰려든 기자들은 빈 교실을 따고 들어가 사망자 명단에서 확인된 학생의 사물함에 있던 책과 소지품을 널어놓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유족과 친구들 슬픔과 걱정이 유독 도드라지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극적이고 잔인한 질문들을 던져댄다. 언론보도는 경쟁적으로 선정적이 되고 누군가의 슬픔은 그들에겐 상품이 된다.


기자들끼리도 저들끼리 정해진 급수와 레벨이 있다. DSLR 카메라를 들고 선 남자기자들은 사진 찍기 좋은 모퉁이에 모여 서서 담배를 물고 환담을 나눈다. 학교 교문을 올라오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그들의 대화를 잠시 멈추게 한다. 곧 있을 운동회 때 교장선생님이 훈화를 하실 사열대에는 방송국 카메라와 직원들이 모여 있다.


무례하고 비열한 카메라 앞에서 걱정과 슬픔을 한가득 짊어지고 올라오던 학생들과 가족들은 얼굴을 가리거나 시선을 돌린다. 방송국과 신문사 이니셜을 보고 분노와 경멸을 표출한다. 아이들은 기자들을 기레기에서 쓰레기자로 바꿔 부른다. 벌레보다 더 한 놈들이란 증오를 담아 말한다.


안산 고대 병원에서 희생자 어머니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다 성난 남학생들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 나간 기자가 있었다는 뉴스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동업 종사자의 명예를 존중하는 예의 정도는 갖추고 있나 보다. 자본과 권력의 비위에도 그렇게 취재경쟁을 벌이고 오바마의 질문 요청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더라면 쓰레기자라는 말도 벌레만도 못하단 말도 듣지 않았을 거다.


딸 아이는 연년생 동생을 둔 친구가 혼자 남아 있는 집에 며칠 가서 함께 걱정하고 잠을 자준다. 촛불모임, 선생님 장례식장에서 구조되지 못한 친구 동생과 동아리 후배들 걱정에 눈물을 흘린다. 그저 쓴 마음으로 토닥이고 위로할 뿐이다.


단원고는 교사들이 1학년을 맡으면 졸업식까지 삼년을 함께한다. 재작년에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가있는 사내 아이는, 제가 좋아하던 선생님의 사고 소식과 후배들의 참사에 분통을 터트린다.


딸 아이의 무력감과 죄책감, 사내 아이의 분노에 딱히 대답해줄 말이 없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의 슬픈 소식에 그저 한숨만 쉰다. 쌍둥이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금속노조 조합원 이야기, 친구 딸을 걱정하는 전화, 언젠가 길거리에서 인사하던 여자 아이 이야기를 집사람에게 들었을 때도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쉰다.


해쓱해진 얼굴로 집에 돌아온 딸 아이가 방송이 다 거짓말 이라는 말과 죽은 아이들에게 6억 원 정도의 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 돈 받고 부모들이 행복할 수 없고, 죄책감과 원망으로 갈라서는 집들이 많을 거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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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 교감이 죄책감과 중압감으로 자살을 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남은 삶이 더욱 위태로워 보인다. “친구 죽은 걸 아냐”는 리포터의 질문도 아프지만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들 눈에 어린 슬픔과 원망은 어린 마음에 지독한 죄책감과 상흔을 남길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의 부모는 비통한 다른 학부모들 앞에 이미 소스라치게 죄스럽고 미안해한다. 제 것이 아닌 죄책감으로 스러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명예를 알고 고고한 성품이라 천안함 유족들에게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며 불의의 사태에 대비토록 사복경찰을 침투시킨 조현오 전 경찰청장님의 정신을 계승한 지금의 경찰청장님도 사복 경찰을 침투시켜 짐승처럼 울부짖는 유족들의 동향을 조사했나 보다.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청와대로 항의 방문하려는 학부모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아프고 괴롭지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인정해야겠다. 계약직 선원들은 일에 대한 책임의식과 소명감이 없는 하루살이 인생들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박 연령 제한을 풀어줘서 일본에서 고철이 될 폐선을 수입해 합법적으로 증축하고 구조를 변경해서 선장마저 평소 불안함을 토로하던 배란다.


안전교육은 서명을 받아 가라로 처리했고 접대로 무마했다.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매뉴얼은 있었지만 지키는 사람도 다른 대책도 없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른 말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솎아내서 윗 분들 눈치를 잘 보고 제 한 몸 챙기는 사람들만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가는 사회다.


선장이 자신과 끈끈하게 맺어진 선박직 승무원들만 챙기고 일등으로 도망 나온 건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유구하게 내려온 전통이다. 애국 보수 세력들이 국부로 추앙하는 초대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라고 말하고 한강철교를 끊고 도망갔다와서 남아있던 사람들을 부역자라고 죽여 버린 일부터 삼풍백화점의 임원들, 대구 지하철의 기관사, IMF시절 이래 수많은 부도기업 경영자들 모두 전통을 지킨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당당하고 떳떳했다. 정말 국부 같은 전통이다. 미국 가서 국부를 드러낸 윤창중님은 이 나라의 엘리트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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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분노로 변한 사람들에게는 지치고 질려 포기하고 소수가 남아 묻혀질 때까지 기다림의 전력을 쓴다.


그나마 진주 속의 모래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은 너무 솔직했다. 이번 사건이 선거의 유불리에 미칠 영향을 따지고 움켜쥘 밥그릇 크기와 떡고물의 양과 질을 따지는 분들에게 이번 사고의 1차 피해자는 청해진 해운의 사주와 끈끈한 동업자 관계를 맺은 정관계 사람들이다. 진주 같은 그분은 지금쯤 새옹지마를 읇조리며 편안한 시간을 지내고 계실 것 같다.


‘북한과 싸우면 우리가 진다’던 어떤 장군님의 말씀이 이제 뼛속 깊이 체감 된다. 똑똑한 애국 보수 세력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인 것 같다. 그러니 전쟁의 순간을 대비해서 미국 시민권이나 이중국적 정도는 보유하고 있었던 거다. 선진국들의 자국민 보호 프로그램을 보험처럼 구매해서 재난 위험에 항시 대비하고 있는 거라는 깨달음이 온다. 그러려고 권력을 잡으려는 거고 그러려고 기를 쓰고 출세하려는 거다.


총알받이가 될 그냥 그런 집 아이들과 점령지의 부역자로 처리될 그냥 그런 살림의 사람들이 그 순간에 그냥 운명으로 받아드릴 것 같다. 새삼스레 분노도 욕할 마음도 없다. 대한민국은 그런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나라다. 소수의 의인들을 연료와 희생양으로 그때 그때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려고 권력을 잡고 출세를 지향하는 애국 보수님들의 욕망을 대한민국 주류의 핵심 사상으로 인정하겠다. 권력과 자본에 저항하는 척 하면서도 주류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욕망이 삐뚤어져 발현된 변절자만 끝없이 양산하는 반대쪽 세력의 한심한 형태도 현실 그대로를 받아드린다.


그냥 최악의 순간 당신들이 타고 떠날 비행기에 화가 난 사람들이 자동차로 들이박아 항공유가 폭발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안을 하나 한다.


어차피 일자리가 없어 취업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분노가 누적되어 폭발하는 것도 좀 찜찜한 걱정거리 중 하나여서 수자원공사가 삼다수와 에비앙을 가려내는 워터 소믈리에 같은 거도 유망 직업이라고 선전하고 양성하는 것도 안다.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나 회사 또는 이용하는 대중교통에 재난 및 사고 담당 자격증 소지자를 배치시키도록 하자. 새로운 직군이 생기고 실업난도 어마어마하게 해소된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면 그냥 당신들은 그 사람들에게 권한을 자동이양하고 안전한 곳으로 튀면 된다. 남은 사람들도 살 희망이 보이면 당신들을 목숨을 걸고 까지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장사꾼들은 이문으로 세상을 보고 각각의 직업군들은 제 생활의 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재난과 사고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게 된 사람들은 유사시의 안전통로와 안전망을 확인하는 눈으로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다음 번 재난에는 좀 다른 소식들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재난을 대비하는 자세는 풍뎅이들이 똥을 대비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 똥을 먹는 풍뎅이들이 언제 어느 곳에 영양가 높은 똥이 떨어질지 몰라 가지각색의 크기와 생활습관을 갖도록 진화한 것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 힘 없는 서민들도, 돈 많고 힘 있는 니들도 좋다. 씨발 진짜 니들 운영하는 나라 꼴 국부 같아서 정말 좆도 아닌 휴일 없이 일하는 서민도 나라 걱정하게 만든다. 뭐 삼 개월 지나면 먹고 살기 피곤한 사람들 또 모른 척 잊은 척 하고 살겠지만, 그래도 참 씨발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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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나이나이&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