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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28. 월요일

범우










뜬금없이 대화중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국정원 대북라인이 다 무너져서 북으로 간첩을 못 보낸다는 안타까움을 들었다. 남한에서는 북한 공작원의 조직망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북한에서 따로 간첩을 안보내도 보고망이 꽉 짜져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새벽에서 밤 늦은 시간까지 소형 화물차로 납품을 하시는 분이다. 지난달엔 그렇게 일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기가 막혀 응대를 해 드렸다. “우리나라 어떤 장군님도 전쟁나면 우리가 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분들은 전쟁 나면 외국으로 튀려고 이중국적 다 갖고 있고요. 주체사상 만든 황장엽이란 김정일 스승도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안장 되어있고 ,우리나라에서 여자도 대줘서 애가 초등학생인가 그럽디다. 칼기 폭파범 김현희는 안기부 직원이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시절 김정일 만나러 가서 뭐 김정일 개새끼야 아버지의 이름으로 널 박살내겠다. 이렇게 시원하게 욕을 하고 왔겠습니까. 서로 세워주고 잘 빨아주고 기분 좋게 헤어졌겠죠. 강명도인가 북한에서 외제차 타던 놈들은 남한 내려와도 외제차 타고 거기서 힘들어서 내려온 사람들은 여기서도 힘들게 삽디다.”


북한 핵과 화학무기의 위험성을 말하기에 “막말로 김대중, 노무현이 빨갱이면 그 밑에서 밥 먹던 공무원들은 죄다 빨갱이 밑에서 밥 얻어먹던 새끼들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70년 대에 김일성이랑 박정희랑 핵개발 경쟁 붙었다가 박정희 죽고 전두환이 그거 포기하고 노태우는 미사일 개발도 포기각서 쓰고 북한은 주구장창 매달린 결과죠.”


그러면 우리는 핵이 없냐는 질문을 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수십 갠대. 그중 하나 뗘다가 비행기에 실어 박으면 되는 거죠.” “띠다가 터지면?” “어차피 비행기 타고 튄 놈들 빼곤 다 죽어요. 이쪽에서 쏘나, 저쪽에서 쏘나, 그냥 터지나 땅덩어리가 좁아서 결과는 매 한 가지고 한 방에 못 죽는 사람만 불쌍한 꼴 볼 겁니다.”


혹시 북한을 찬동하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서린 얼굴이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들만 떵떵거리긴 하는데 그래도 이쪽이 났죠. 고모부도 죽이는 놈인데 이짝은 지들 친인척은 엄청 챙기니 조금 났죠. 좆 빠지게 일해야 겨우 먹고 살긴 하지만 세 끼 밥은 먹고 살고.” 좀 어정쩡한 분위기로 대화가 마무리 되었다. 피차 할 일이 바쁘다.


해병전우회가 진도에 왜 갔을까요? 하는 내 질문에 “돈 때문이겠지. 나랏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니까. 그거 먹으러 갔겠지”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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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는 일상적인 대화 외에는 묻는 말에 대답만 했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대화가 늘었다. 더 탈 것 없이 다 태워버려서 더 이상 분노할 힘도 없이 회색빛 조소만 남아 있는 부정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스스로 선택한다면 모를까 힘든 삶을 강요하기 싫었다.


해고무효소송기간의 참담하고 잡다한 일들과 재판과정도 굳이 알리지 않고 지나왔다. 따님을 검사로 키우신 노동운동가 출신 의원님도 자녀들을 유학 보내버린 노동운동가님들도 자녀들은 결코 집회 장소에 데려 오지 않는다던 변호사님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공부체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삼학년이 되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예민해졌다. 말수가 줄고 짜증이 늘었다. 그런 시기니까 그렇게 지나가려니 했다. 부모님이 진도로 모두 내려가셔서 혼자 남은 친구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어주다 와서 시위가 뭐고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시위는 어떤 요구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위력을 보여주는 거라 요구가 남들이 보기에 합당하고 정당해야 하고 실현 가능해야한다고 하니 종류와 방법을 묻는다. 피켓을 든 일인 시위부터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본 바리케이트까지 설명하니 한숨을 푹 쉰다.


그냥 동생을 걱정하느라 반쯤 정신이 나간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고 친구들이 이야기하는데, 진도에서 일부러 잠수부투입을 늦추고 있다는 말도 들려서 구조작업을 서둘러 달라고 시위라도 해보자는 이야기를 카톡으로 하는 중이라고 불법과 합법시위의 경계를 물어 본 거란다. 학교 운동장에서 혹시 선생님들이나 경찰들이 들으면 막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어서 답답한데 눈곱만한 소용이라도 있을지 답답하단다.


그러고 나서 그날도 다음날도 저녁에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뭘 한다고 하던 게 삼일 째 되던 날 늦은 밤 짙은 안개를 뚫고 집에 오더니 제 방에서 밤새 울었다. 이제 끝난 것 같다고 친구도 이제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고 경찰이고 기자고 다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배에 시신이 가득한데 일부러 하나 둘씩 시신을 인양하는 거라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하며 포기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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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울더니 늦잠을 잤나보다. 점심 때쯤 친구들이 전화가 안 된다고 내 전화로 연락이 온다. 친구 동생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입술을 깨물고 몸을 웅크린 자세로 발견되었단다. 입관을 하던 엄마는 쓰러졌다. 집사람과 문상을 가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집사람만 들여보냈다. 장례식비는 시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학교를 마친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장례식장으로 모인다. 슬리퍼도 신고 교복바지도 줄여 입은 평범한 아이들이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반갑게 웃는 얼굴로 환영하더니 곧장 들어가지 않고 입구 옆에서 쑥떡 거린다. 어느 집을 먼저 가야할지 나눠서 갈 건지 순서를 정한다. 더 올 친구가 있는지 한참을 저희들끼리 재재 거리며 서있다. 문상을 하고 나오는 얼굴표정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도 있지만 농담을 나누며 웃는 얼굴들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도 웃는 얼굴이다. 쉼 없이 주변이야기, 겪은 이야기, 들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지독한 충격에 심리적 균형을 맞추려는 방어기제의 작용인 것 같다. 딸아이 친구 가족은 운이 좋았다. 하루 늦게 발견된 아이들은 안산에서 장례식장을 구하지 못해 화성이나 수원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자녀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은 디엔에이 표본 채취를 한다. 이제부터는 부모도 육안으로 자식을 알아볼 수 없는 몸으로 돌아오기 쉽다.


시신을 인양해 오면 입고 있는 옷의 메이커를 불러주고 유가족을 부른다. 어느 가난한 부모는 메이커 옷을 사주지 못해서 자식을 못 찾는다며 또 울고 있더란다. 안산은 편안할 안자를 쓰는 도시가 아니라 돈 있으면 이런 동네 안산다고 하는 안산이 되었다.


딸아이 말이 심리치료가 좀 웃긴단다. 별로 슬프지 않은데 자꾸 얼마나 슬프니 얼마나 아프니 해서 뻘쭘해 하던 곰 같은 남자아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나와서는 화장실 갔다가 그 안에서 한참을 울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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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도 좀 이상한 것 같단다. 웃을 자리도 아니고 웃긴 것도 없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고 갑자기 눈물이 나오고 한단다. “너는 예방주사를 맞은 적이 있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좀 괜찮을 거다. 죽음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더 힘들겠지만 가족들만은 못 하겠지. 슬퍼하고 울다 지쳐 깜빡 든 잠이 깊은 잠이 되어 깨어나는 순간이 죄스럽고, 허기가 느껴지는 게 미안하고, 억지로 떠 넣은 밥이 꾸역꾸역 넘어가서 한 그릇을 비우는 순간 자신이 혐오스럽고 ,영정사진을 보고 또 목 아랫부분이 아파서 신음소리만 나올 텐데. 밖에서 차마 못하는 이야기지만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넌 괜찮을 거야. 괜찮길 바라는 마음에서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 해준다.


삼학년 남자 아이들 중에 몇몇 아이는 갑자기 미친듯이 공부를 한단다. 무언가 영향이 있었던 거냐고 다시 물어 온다. 같은 일을 겪고 누군가는 악몽을 꾸고 누군가는 분노할 테고 누군가는 싸울 마음을 먹을 거고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자포자기 할텐데 아마 그 아이들은 성공하고 출세해서 다시는 배 같은 거 안타는 삶을 살려나보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안산시 전체가 장례식장이다. 검은 리본을 멘 택시가 유가족 이송을 담당하고 담장마다 나무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실낱 같은 희망을 염원한다. 경찰은 학교와 병원 모퉁이에서 안내와 교통통제를 하고 유가족을 이송하는 택시에게 다른 운전자들은 제 신호에도 양보한다. 그 와중에 빈집털이가 늘었다는 소문이 돈다.


시흥시 정왕동에 있던 고등학교 학생들은 원래 배 탈 순번이 자기들이었는데 무언가 일정 문제로 수학여행 순서가 바뀌어서 단원고 아이들이 대신 죽은 거라고 생각한단다. 단원고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숨진 계약직 승무원 박지영님의 장례비를 청해진 해운에서 700만 원까지만 지원 할 테니 알아서 계산하면 나중에 정산해 주겠단다. 대한민국 정말 기업하기 좋은 나라다.


청해진 해운의 실질적 오너는 전 재산인 100억 원을 내어 놓겠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수천 억 자산가라고 말한다. 수사대상인 오너 일족 30여 명 중 일부는 이미 이중국적을 이용해서 출국했다. 그동안 돈 받아먹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돈 값을 해야 할 시간이다. 마음 같아선 싸그리 모아 죽은 아이들의 영정 앞에서 번제를 올리고 싶지만 아이들이 고약한 냄새를 좋아할 것 같진 않다.


국정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벌 하겠다고 말했다. 정말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어느 선에서 책임을 자를지 답이 보인다. 승객을 버리고 먼저 도망간 계약직 선장을 살인범 같다고 질타했다. 검사들은 살인 혐의로 기소방안을 연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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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유언비어에 엄중 대처 하겠다고 한다. 어느 지역 국민이 뽑은 분이신 권은희 의원님은 고통과 분노로 항의 하는 학부모의 얼굴사진을 가지고 전문 선동꾼 이라고 했다. 문근영양의 지난 수 억원의 기부 활동을 빨치산의 영웅 만들기라며 지는 만 원이나 기부했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을 명예 훼손으로 고발조치해 법의 엄중함을 보여 주셨던 지만원님은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냐며 수도권에서 일어날 폭동에 대비하라는 말을 한다. 슬픔과 죄책감과 분노로 가슴을 쥐어뜯는 학부모들은 예비폭도가 되었다. 시발 것들 세상 참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 그냥 좆대로 딱지를 부치면 선동꾼이 되고 시체장사꾼이 되고 폭도도 만들고 살인범도 된다.


교육부 장관님 비서관은 의전대로 상주에게 장관님 오셨다는 걸 알렸다. 알아서 구십도로 인사하고 얼른 상석으로 모시고 상석이 없다면 의전용 의자를 준비하라는 친절한 싸인이다. 자식 잃은 슬픔에 넋이 나가있는 미개한 국가의 미개한 학부모는 장관님을 맞이하는 의전 절차를 알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미개하지 않은 분들은 친인을 잃은 슬픔에 비통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인의 사후 상속권의 지분을 계산하고 문상객들의 면면을 살펴 지위고하를 분별해서 지위에 맞는 접대를 한다. 문상객들은 이해득실을 따져 정중한 미사여구로 줄서기를 한다. 그래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긴 하다.


경찰의 유언비어 대처는 아마도 아이들의 마지막 유언에 참담한 슬픔을 꺽꺽거리는 울음으로 비통한 몸짓의 비어로 표현하는 유가족들의 분노가 한 덩어리로 뭉치지 못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 같다. 참사의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학부모는 시체장사꾼으로 앞장서는 사람은 전문 선동꾼으로 미리 낙인을 찍어 놓은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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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수업을 심리치료로 마친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을 기다리던 기자들은 '나온다'라는 외침으로 다른 기자들에게 알림을 주고 카메라를 총처럼 조준한다. 아이들입에서 씨발이라는 소리를 기어이 듣는다. 장하다 씨발놈들.


이명박이 왜 선박연령을 풀어줬는지, 어떤 놈이 선박개조를 합법화 시켜 줬는지, 운항권이 왜 수십 년간 독점이었는지. 어떻게 비정규직 선원들이 안전교육과 비상 탈출 훈련을 받지 않았는지. 돈을 먹고 입 다문 놈들이 누군지 찾아서 카메라를 총처럼 조준해야 한다. 학생 희생자가 아니라 찬밥 대접을 받고 있는 다른 유가족들에게도 관심을 좀 주고.


그냥 시청률 올리고 싶은 거면 뉴스시간에 기자가 지하철에서 바지 벗고 성추행에 당황하고 상처 입는 사람들 표정을 찍으면 된다. 그것도 약발 떨어지면 질 좋은 콘돔을 고르고 착용하는 방법과 사용법 사용 후 처리법을 직접 기자가 한 번 연출 해보이면 된다. 슬픈지 아픈지 화난 건지 스스로 분간도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아이들을 상품으로 진열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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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