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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파토의 쿡찍어 푸욱> 7. 사회의 품격(2)

<파토의 쿡찍어 푸욱> 8. 하는 김에 하는 교통 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9.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인가

<파토의 쿡찍어 푸욱> 10. 비극으로 모자라서 이렇듯 철저하게 패배할 겁니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1. 내가 수퍼맨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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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진정성으로 넘쳐나는, 정직하고도 올곧으며 사회와 개인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실제적인 일 처리 능력과 친화력까지도 겸비한 인물이 정치를 하길 원한다. 이런 사람이 아마 정치인의 '이데아'일 거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진정성 있고 헌신적인 사람은 있지만 그런 이는 대개 정치가가 되기 싫어하거나 과정에서 도태된다. 능력 있는 사람은 더 많지만 사욕이나 권력욕이 그 동기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진정성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열정이 부족해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여하튼 어느 나라던 저런 조건들을 모두 갖춘 정치인이 드문 건 분명하고, 요즘 꼴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상황은 절망적이며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아무 기대도 해선 안 되는 걸까. 머 그게 가능한 세상이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대의제 하에서는 정치인을 통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환멸에도 불구하고 개 중 나은 정치인을 택하는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 결국 더 나쁜 넘들이 권력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원은 저런 덕목들을 종합적으로 기대하는 대신에 절라 현실적으로, 정치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딱 한가지 능력만 제시해 볼란다. 


그건 바로 위선이다. 다만 아주 잘 떠는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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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 있는 미드 중에 <House of Cards>라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는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원내대표인데, 자타가 공인하는 킹 메이커로 화려한 지위보다 뒤에서 미국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그려진다. 


우리가 노무현 등에서 연상하는 인간미는 찾기 어려운 대신 잔인할 정도의 결단력과 교활함, 정치력과 업무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 바로 이 양반이다. 우원도 아직 다 본 게 아니기 때문에 뒤에 어떤 모습이 되는지는 모르겠고, 다만 인상적인 앞쪽 에피소드 하나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주인공 프랭크는 대통령의 공약 사안이었던 교육법안 정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 지역구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촌구석 개프니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밭에 세워져 있던 워터 타워의 생김새를 비웃으면서 운전 중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던 17세 소녀가 그만 사고로 죽고 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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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재배 업체를 위해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 워터 타워.

뭘 닮았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근데 지역의 반대파 정치인이 이 일을 프랭크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죽은 소녀의 부모와 함께 손해 배상 소송을 준비한다. 철거 민원에도 불구하고 그 탑을 계속 '그 모습'으로 서 있도록 한 게 바로 프랭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가 사고를 낸 건 그 탑 보다는 운전 중에 문자를 쓴 것이 더 직접적인 이유이고, 그래서 프랭크 입장에서는 억울하고도 골치 아플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대한 프랭크의 대처 방식이 바로 우원이 하려는 이야기다. 그는 워싱턴에서 처리해야 하는 중요하고도 바쁜 일을 남겨두고 개프니로 달려간다. 문제의 반대파 정치인을 먼저 찾아 담판을 지으려 하지만 실패하자,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촛불 집회를 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프랭크. 동행한 경호원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집회 장소로 걸어 들어간 그는 소녀의 부모에게 사과하지만 냉대를 받고 쫒겨난다.


하지만 프랭크는 다음날 마을 교회의 예배에 다시 참석한다. 친분이 있는 목사에게 부탁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은 그는 마흔 세살에 죽은 아버지를 언급하며,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의 이른 죽음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리고 그 순간에는 신을 미워하고 원망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실제로는 프랭크는 아버지와 전혀 가깝지도 않았고, 내심 그가 일찍 죽은 게 차라리 그 자신을 위해 나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데려가는 신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증오하는 대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가장 엄혹한 시험을 당할 때 비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물론 죽은 아이의 부모도 앉아 있다.


전형적인 교회 설교스런 내용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본인이 책임 추궁을 당하는 와중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피해 당사자인 부모 앞에 직접 나서서 이런 말을 했다는 거다. 무척 뻔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이야기 자체는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상처받은 부모에게 위로를 주는 내용이다. 이런 행동은 사람들의 분노를 바로 삭힐 수는 없을망정 날카로운 감정의 예봉을 무디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그날 오후, 프랭크는 목사의 집에서 부모를 다시 만난다. 워싱턴과 정신 없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직접 그들을 대접할 샌드위치를 만드는 프랭크. 어머니는 이미 누그러져 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분노를 삭히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죽은 소녀가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대학에 그녀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걸 위한 재원은 그간 시가 부담하던 복숭아탑 야간 조명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끄면서 아끼게 된 전기료로 자연스럽게 마련된 거였다. 물론 프랭크가 그런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버지가 마음을 풀지 않자, 그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내가 사퇴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즉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그러자 프랭크는 이어서, 이 의미 없는 고통을 뭔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고 싶다, 내가 당신을 위해 일하도록 도와주겠느냐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아버지는, 장학금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한다. 


이러면 이제 문제는 해결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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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자주 시청자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드라마의 독특한 스타일 덕에 우리는 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프랭크의 속마음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이 모든 행위는 분명 복잡한 법정 싸움과 거대한 배상금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전략이고, 넓은 의미에서 위선적이다. 이를 위해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포함해 상당한 과장과 왜곡도 동원했다. 


하지만 그가 이 행위들을 통해 끌어낸 '결과'는 순수한 진정성을 갖고 임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위로받았고 보상금을 받게 됐으며, 죽은 딸의 이름으로 장학금도 생겨나게 됐고, 엉덩이 타워 주변에 위험 표지판도 세워지게 됐다. 진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반대파 정치인 뿐인데 그건 정치인들 사이의 문제일 뿐 마을 사람들과는 무관하다. 나아가 프랭크 자신은 돈 한푼도 쓰지 않았고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물론 그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활용한 도구는 두뇌와 배짱이지 선한 마음이 아니다. 그 두뇌와 배짱을 사용하게 한 동력도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정의감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행위들을 악하다거나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랭크는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여러 장치들을 통해 부모의 마음을 적당히 다독거려 놓은 후 딸의 이름을 건 장학금을 제안함으로써 딸의 죽음과 그 책임 추궁에 대한 부모의 의무감과 죄책감을 덜어 줬다. 이어 아주 적절한 순간에 자기가 사퇴하길 바라냐고 물으며, 프랭크는 그들에게 큰 권력을 넘겨 준다. 물론 이럴 때 사람들은 되려 관용적이 되고, 따라서 그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자기가 사는 건 물론, 부모도 원망을 풀고 가급적 좋은 그림으로 이 비극에서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모든 구조를 만들어 일을 수습한 후, '진짜' 자기 일을 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돌아온다.


결론적으로 적어도 이 에피소드에서 프랭크 언더우드는 뛰어난 정치인이다. 훌륭한 인간은 아닐 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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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편법과 탈법, 과적을 남발한 세월호 같은 배가 뜰 수 있었던 것부터 해경의 초기 대응 문제, 언딘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 직후라도 정치인들이 제대로, 아니 적어도 똑똑하게라도 대응했다면 국민이 이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집권 세력이 잘못된 철학과 무능으로 이런 세상을 만든 건 그것대로 짚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위기 상황을 맞아 정치인으로서 국민 앞에서 응당 보여야 할 모습조차 보이지 못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자질 문제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다 한들 프랭크처럼만 처신했어도 가족과 국민들의 고통은 훨씬 덜어졌을 거다.


세월호 경우와 달리 프랭크는 정말로 좀 억울한 면이 있었지만, 부모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를 절대 취하지 않았다.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근거없다'며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고, 일체의 압력이나 공작도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신의 사랑에 대해 설파하며 사람들의 고통을 다독였고(거짓 일화를 동원하긴 했지만), 부모에게는 한껏 자신을 낮추며 사퇴 제안과 딸의 이름을 건 장학금이라는 '거절할 명분이 없는 제안'을 던졌다. 


헌데 우리 정치인들 중에는 이 정도 인물도 없는 거다. 그까짓 물세례 받는 게 대수며, 뺨 한 대 맞는 게 대순가. 정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진정성이 없어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감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태도만 취하면  물 던진 사람도, 때린 사람도 결국 나중엔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일이 만족스럽게 풀려가지 않아도 기본적인 신뢰와 믿음을 주게 된다. 


이런 게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의 현실적 정치 행위다. 


정치인들의 수준이 이런 와중에 그 중 한 사람의 자식 녀석은 한 걸음 나아가 국민의 미개함 운운하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이 드라마 속에서 프랭크에게 소송을 걸려 했던 저 미국인 부모는 어떤가. 문제의 복숭아 타워는 사고의 단초를 제공했을망정, 실제 사고는 운전 중에 불법적으로 문자를 보내다가 일어난 거다. 누가 봐도 프랭크보다는 사고 낸 본인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이런 일에 국회의원을 얽어 넣는 그 국민은 과연 개화된 걸까. 드라마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실제로 저런 류의 소송이 일어난다. 이때 만약 프랭크가 책임은 문자를 보낸 딸내미에게 있고 나는 이 사건의 콘트롤 타워도 아닌데 왜 지랄이냐는 식으로 나섰다면 저 아버지는 모욕감에 아마 총을 집어들었을 거다. 프랭크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일은 더 큰 상처를 내지 않고 해결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떠냐?


슬픔과 분노에 빠진 국민 앞에서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만큼 책임을 지고,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게 정치인의 사명이다.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정치력이라도 발휘하는 것, 또 적절하고 성의 있는 말과 행동을 통해 환상이라도 심어주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그 역할을 할 필요성도 모르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리더랍시고 국민의 수준을 운운할 때, 그 국민들이 총은 아닐망정 촛불이라도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머, 그간 써온 글에서 드러나듯 우원은 실은 이상론자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프랭크 정도의 주변머리만 갖고 있어도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 이제 그 꼴이라고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번 지방 선거에서 우리가 뽑아야 할 사람들은 국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아는 똑똑한 위선자들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위선자이자 거짓말쟁이인 주제에 멍청하기까지 한 지금 이 자들보다는 나을 테니.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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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