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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피사의 빌라 2

2014-05-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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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16. 금요일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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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빌라 1









한참 뜸을 들이던 L이 뜬금없이 '견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L : 건설업자 Y : 철거업자 나 : 펜더


L : (심드렁) 아산 빌라보면 알겠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면 안돼. 싼 게 비지떡이다. 뭐 그런 거 까지는 아닌데, 최소한의 리미트는 정해놔야지. 10억짜리를 8억에 짓는다? 이게 못 짓는 게 아니거든. 근데 싸게 지으려면 싼 자재 써야하고, 빼가고 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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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 그렇지. 철근 넣을 때 10개 넣을 걸 7~8개 넣을 수도 있고...


나 : 그걸 건축주가 확인할 수도 있잖아? 


Y : 그것도 방법인데, 그러면 10미리 써야 하는데, 7미리로 바꿔서 공구리 치는 거야. 일반인이 이게 10미리 철근인지, 7미리 철근인지 구별할 수 있겠냐? 현장에서 작정하면 못 빼먹는 게 없어. 


Y의 말을 듣고 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 멋도 모르고 집을 지었는데, 그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우울한 회상은 길게 가지 못했다. L의 말이 이어졌다. 


L : (진지) 싸게 짓는 게 합리적일 수도 있는데, 거의 대부분은 병신 되는 거거든... 건축에서 합리적인 소비란 부실공사란 소리거든. 소장이 도면을 받아와. (사이) 이런 거 까지 말해야 하나? 그래, 프리 소장이 10억 짜리를 8억 정도 불러서 도면을 받았다 치자고, 그러면 이걸 발주분리를 해야 해. 


나 : 발주분리? 


L : 도면 받아올 때 보면, 설계도면, 소방도면, 전기도면 이렇게 들어오거든... 어디보자, 여기 들어가는 게 전기, 토목, 설비, 내장도 싱크대, 타일, 장판, 미장, 도배, 보일러...


Y : 상하수도 있잖아.


L : 글치... 이렇게 여러 파트가 들어와야 하거든. 이걸 혼자서 다 못 해. 보통 현장 소장이나 건설사면 자기들이 데리고 쓰는 업체가 2~3군데 있거든? 여기 애들에게 도면 보여주는 거지... 전기사장, 소방사장 뭐 이렇게 불러다가 견적서를 받는 거야. 10억 짜리를 8억에 받았으니, 일단 단가를 후려쳐야 할 거야.


Y : (심드렁) 견적서 올린 거에서 15~20% 정도 후려쳐질 각오하고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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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 (고개 끄덕이며) 그러니까 견적 넣기 전에 그걸 감안해서 견적을 넣지. 


나 : 만약에 소장이 원하는 수준이 안 되면? 


L : 그럼 계약 못하는 거지. 그리고 어지간하면, 소장이 하자는 거 대충은 맞춰줘. 정 안되면, 소장이 약속 한 번 해주지. 다음에 신경 써 준다. 다음에도 너희랑 한다고. 이게 보면, 또 돈이 돈을 번다고, 자재 납품하는 애들도 보면 돈 가진 놈이 돈을 벌어.


나 : 그건 또 뭔 소리야?


L : (사이) 스티로폼이 있어. 노가다에서 제일 많이 쓰는 게 100T짜리. 조립식 공장 지을 때 많이 들어가거든 (귀찮은 듯) 여튼 이걸 제일 많이 써. 근데 업체가 돈이 좀 있어. 마침 100T짜리 가격이 싸졌어. 이게 또 썩는 게 아니잖아? 그럼 한 5천 만원어치 정도 사놔. 이게 분명 오르거든? 이때 견적 내놓으라는 소리를 들으면 자재비만큼 세이브 되는 거지. 전기도 그래, 전선 가격도 오르락내리락 하고, 그 뭐냐? 매설 할 때 같이 묻는 거.


Y : 주름관?


L : 그래 그런거나, 전선 같은 거 돈 있으면 쌀 때 한 1억씩 사서 쟁여놔. 이게 견적 넣을 때 세이브 되지. 그리고 현금으로 자재사고, 대량으로 사면 DC들어가고... 돈이 돈을 번다니까. 이런 애들이 견적 낼 때 유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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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그래서? 


L : (심드렁)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돈이 돈을 번다는 소리지. 그게 자본주의지. 문제는 이렇게 돈을 만들 수 없는 애들은 살아남으려고 별별 짓을 다 한다는 거고. 만약 수준 이상으로 단가를 후려치면, 자재나 시공... 어딘가에서 분명 문제가 터진다는 거지. 다시 말하지만, 싸게 지으라면 짓긴 지어. 


나 : 그럼 아산빌라도 싸게 지으려다 잘못된 거다? 


L : (어깨 으쓱) 건축주들이 싸게 지으려 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이) 노가다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그러다 보니 견적이 계속 내려가고...


나 : 궁금한데, 그래도 네들은 네들끼리 뭉쳐서 사업하잖아?


Y : 노가다들이 정이 좀 있지? 


L : 노가다가 처음에 보면 까칠하긴 하지만 정이 있지. 


나 :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L : (고개 끄덕) 그렇지. 30평짜리 작은 공사를 해도 아는 사람만 데려다 쓰고 그러지. 좀 폐쇄적이야. 그런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나 : 왜?


L : 믿어야 하니까.


Y : 간단히 말해서... 두 번 일하기 싫은 거지. 아무 사람이나 데려와 썼는데, 일을 개판으로 하면 2번 일해야 하잖아. 노가다가 2번 일하는 거... 이거 꽤 복잡해. 거기다 공기도 잡아먹고...


L : (심드렁) 온갖 개잡놈들이 넘쳐나잖아. 이런 새끼도 있어. 내가 초창기에 당했는데... 잡부 놈이야. 이색희가 빠루질을 하다가 손 인대를 살짝 다쳤어. 병원 가니 인대를 살짝 다쳤대. 드러눕지. 산재 받으려고... 이리저리 달래서 3백에 합의 보려는데, 이놈이 여수놈이야. 갑자기 연락이 안 돼. 알고 보니 고향에 내려가서 여기저기 알아본 거지. 정말 살짝 다친 거거든? 근데 거기서 아는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알아본 거야. 갑자기 노무사 놈이 우리쪽으로 서류를 보내 바우먼 법인가? 뭔가로 해서 4천 3백을 거는 거야. 그걸 산재로 받아쳐먹고, 우리는 다음해에 보험료 폭탄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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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 (심드렁) 그럴 땐 지정병원에 집어넣어야지. (날 보며) 이런 잡놈들이 한 두놈인지 알아? 일하다 말고, 자해하는 놈이 심심찮게 있어 산재받으려고... 우린 딱 보면 아니까. 이건 일하다 다친 게 아니라 자해 한거다. 지정병원 가자 그래야 해. 이런 놈들이 널려있어서 아는 얼굴 데려다 쓰려고 하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얼굴들끼리만 공사하게 되고, 이 바닥이 얼굴장사야. 한 번 얼굴 트면 끝까지 가는데... 그러다 보니 좀 폐쇄적이야.


말을 들어보니, 얘들은 잡부도 아는 얼굴들만 쓴다는 것이다. 만약 인력 사무실에서 사람을 섞어서 데려오면 다 돌려보내고, 어제 왔던 애들로 채우라고 말한다고 한다. 일머리가 있는 잡부라면, 따로 불러서 전화번호 받고 계속 쓰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해해서 산재 타먹으려는 놈들, 사고치는 놈들, 별별 희안한 잡놈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안면 익히고, 일 할 줄 아는 몇몇들, 즉,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움직이게 되고, 이게 커지니 노가다판이 폐쇄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나 : 다 알겠는데, 그럼 아산빌라는 왜 자빠진 거야? 네들이 말한 그 시나리오 2는 뭐야? 


L : (지나가듯) 자체 공사. 


나 : 자체공사? 


L : (심드렁) 시공자랑 건축주가 같은 사람이란 거지. 지들이 지들 땅에다가 건물 올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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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했다. 시공자랑 건축주가 같은 사람이라고? 아니, 그럼 자기가 살 집을 자기가 짓는데 이렇게 막장으로 짓는단 말인가? 


L : (웃으며) 야, 자기가 살집을 이렇게 막장으로 짓는 놈이 어딨냐? 


나 : 그러니까...


L : 이게 노가다 판에서는 스탠다드한 케이스거든. 문제는 이게 '2~30만원 떼기'로 털려고 했던 건지, 아니면 제대로 작정을 하고 남겨먹으려 했던 건지가 문제인데... 사진 보면, 허허벌판이잖아? 지적도 확인해 봐야겠지만, 논밭 한 가운데 이걸 올려놓은 걸 보면... 아리까리하긴 하지만 건축주랑 시공자가 같은 건 확실해. 


나 : 지가 살진 않더라도 지가 지어서 팔 건데, 이렇게 만들어?


L : (심드렁) 후딱 팔고 털 거니까 대충 만든 거지. 


나 : ...자세히 말해봐. 


L이 갑자기 내 기자수첩과 볼펜을 뺏더니 본격적으로 그림과 숫자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L : 자세한 건 등기부등본이나 토지대장을 떼보면 알 수 있는데, 지금은 추리만 하는 거야... 일단 가장 평범한 방법이라면, 이 땅이 건축주 땅이야. 


나 : 자기 땅에 자기가 집을 짓는다? 


L : 물론, 명의는 시공자 명의가 아니지. 자기 처남이나 매제, 친구 이름으로 명의를 돌려놨을 거야. 노가다판에 이런 경우 쎄고 쎘잖아? 당장 나만 봐도 그렇지. 자기 이름으로 재산 만들어 놓은 애들 거의 없지. 대출이나 PF(project financing : 사업주로부터 분리된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 자금조달에 있어서 자금 제공자들은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우선 고려해 대출을 결정하고, 프로젝트에 투자한 원금과 그에 대한 수익을 돌려받는 자금구조를 의미한다. - 편집자 주) 이빠이 받고 파산 신청하고 배째라 하는 애들도 천지이고... 어쨌든 이렇게 땅을 돌려놔. 시공자가 신용불량자일수도 있고. (웃음) 근데 이것들이 차는 전부 벤츠 아니면 BMW지. 월급쟁이들이나 서민들은 신용불량자라면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회심의 미소) 이게 다 은행이나 국가가 사기 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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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가만... 친구 이름으로 돌려놔서 집을 짓는다고?


L : (웃음) Y있지? 그리고 너도 있고... 이렇게 셋이서 뭉쳤다 치자고 (사이) 우리끼리도 이렇게 빌라 올릴 수 있어. 우선 Y가 논밭떼기를 조금 가지고 있을 경우도 있고... 아니면, 아예 없는데 내가 땅을 사서 이걸 Y에게 주는 거지. 내가 신용불량자라 치고 (L은 신용불량자가 아니다. 예를 든 거 뿐이다), Y에게 말하지. '친구야 이거 좀 가지고 있어라. 한 4~5년 푹 썩인 다음에 용도변경하고, 돈 끌어와서 여기에 건물 하나 올리자. 그럼 내가 10% 떼주께.' 그럼 Y도 OK하지. 너나 Y를 못 믿는다? 그럼 세상에 믿을 사람 없는 거잖아? 아니면 Y가 아산에 논을 가지고 있어. 땅 값이 1억 정도인데, 이건 농지라 어떻게 손 써볼 게 없어. 건물을 올려야 하는데 돈도 없고, 그럼 내가 나서서 얘랑 투자자랑 묶어서 공동으로 지을 수도 있고... 여튼 아는 사람들끼리 팀을 짜서 이 짓을 하는 거지. 


Y : (심드렁) 이런 사이즈의 존만한 건설사들 보면, 전부다 친인척들끼리 해. 바지 한 명이랑 움직이는 애 한 명. 아니면, 시공 전문이랑 자금 전문으로 나눠서...


L : (웃음) 그런 경우에 둘 중 한명은 꼭 신용불량자지. (사이) 무슨 신용불량자가 인생막장으로 아는데... 내 아는 사장 한 명은 PF 빵빵 내지를 때 막차로 타서 3백억인가? 이빠이 밟아서 사업하다가 빼돌릴 거 다 빼돌리고, 파산신청 했어. 그런데도 BMW 타고, 달에 6~7백씩 카드 긁으며 잘 살아. 


Y : (심드렁) 교육이 잘못됐어. 못 배우고, 없는 애들은 법 잘 지키고, 금리 1~2% 더 받겠다고 아등바등 삽질하며 돌아다니는데, PF 받고, 건물 올리고 하는 애들은 걍 배째라 하고 잘살아. 지 돈 아닌 거 끌어와서 지 돈으로 만드는 거지. (나 보며) 야, 너도 아등바등 살지 마. 나라에서 하라는대로 하지? 그럼 세월호 되는 거야. 대한민국에서 돈 벌려면,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거 해야 해. 실제로 위엣 놈들은 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 


나 : 그래서? 아산빌라도 이렇게 지었다?


L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Y를 바라본다. '업계비밀을 너무 많이 알려주는데...'라며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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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 등기부등본을 뗐다 쳐. 그 아산빌라 말야. 아직 준공이 안났으니, 건축대장은 안나왔을 테고, 그럼 거기에 보증인이 있다 치면, 99% 이 사업의 실체가 드러나. 만약 보증인이 없으면 자체공사로 건축주랑 시공자가 같은데, 이걸 2~30만원 떼기(평당 350짜리 건물을 짓는데, 300으로 짓고, 여기에 땅값에 프리미엄, 건물값에 2~30만원을 더 붙여서 후딱 팔아치우는 치고 빠지기다)로 가는... 아주 '건전한' 시공인 것이고, 보증인이 있다? 그렇다면, 이건 팀으로 작업을 했다는 거야.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게 토지대장이야. 앞에서 말했지만, 어떤 골빈 시공자가 자기 명의의 땅에다가 건물을 올리진 않아. 아마 자기 이름으로 재산 돌려놓을 상황도 아닐거야. 이게 서울이나 도시의 금싸라기 땅도 아니고, 허허벌판 논밭 한 가운데 허덕이며 올린 건물인데 무슨 돈이 있겠냐? 명의를 제3자... 친구나, 처남, 매제 앞으로 해놨겠지. 거기에 자기가 시공하는 거야. 


나 : 보증인이 왜 중요한 거야?


L : (진지) 걔들이 이 아산빌라 프로젝트의 팀이란 거지. 건축주는 말 그대로 바지고, 보증인으로 올라간 이들이 자금 끌어왔던가 건설사 지분을 타고 있던가, 여하튼 뭔가를 했던 애들이야. 보통 그런 식으로 많이 하거든. 아산 정도 규모의 동네에서 14층짜리(7층짜리 2동) 건물을 올린다? 그것도 논밭 한가운데에. 이건 걔네들 수준으로는(영세 건설사수준) 꽤 큰 프로젝트거든? 아주 스탠다드한 케이스로 보자면...



시공자 : 실질적인 프로젝트의 지휘자(신용불량자일 확률도 있다)


건축주 : 시공자의 친구, 친척으로 시공자의 따까리(토지대장을 떼보면 땅소유주로 나온다)


보증인 1 : 건설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시공자의 친인척일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자금을 끌어오거나, 1차 자금을 대줬을 확률이 높다.


보증인 2 : 위의 경우와 비슷하다. 농협이나 신협에 연줄이 있을 확률이 있다. 



L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L : 장담하는데, 얘네들 돈 없어. 20억을 한 번에 땡길 수 있는 애들이 이런 거 지을 이유가 전혀 없지. 


나 : 그럼?


L : (심드렁) 은행 대출 이빠이 받는거지. 모르긴 몰라도. 얘들 제1금융권에서 돈 끌어오지 않았을 거야. 


나 : 왜?


L :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뭐 이런 애들은 땅값에 50% 정도밖에 대출 안 주거든, 한 푼이 아쉬운 애들인데... 게다가 아산이고...


나 : 무슨 소리야?


L : 농협이나 신협은 한 때 70%까지 대출해 줬거든, 요즘은 시절이 시절이라... 한 60% 받았을 거야. 게다가 아산이잖아. 바닥이 워낙 좁으니까 농협 조합장, 신협 이사장 다 아는 사이일 거야. 다 형 동생 하는 사이고, 좁은 동네에서 건물 올리려면 일단 조합장이나 이사장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하거든 당근 지상권 설정도 해놨겠지.(웃음) 깡통이란 소리야. 한층 올라갈 때마다 건물 공정률 보고 은행에서 돈 주고, 그거 받아 건축하고. 안 봐도 비디오다. 


나 : 그럼 이 건물 올린 목적이 뭐야?


L : (답답한 듯) 돈 벌려고 올렸지! 무슨 사회봉사 하려고 올렸겠냐? 똥돈 치고, 평당 2~30만원 남겨 먹으려고 지은 거겠지. 이런 걸로 크게 남겨먹지 못해. 그러니까 후딱 짓고, 후딱 팔아먹는 거지. 이 정도 부실까지는 예상 못했을테지만, 최소한의 하자만 나와라 하는 마음에... 최선은 호구 하나 잡아서 건물을 통째로 넘기는 거고, 안되면 방 하나씩 파는 거고. 만약에 이것들이 진짜 독한 맘먹었으면, 일가친척 다 동원해서 배우 세운 다음에 분양사기 가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는 직접 전세를 놓든가 월세를 놓든가. 우리 회사가 올린 빌라 있지? 그런 거야 (L의 회사도 빌라를 한 동 가지고 있는데, 직접 전월세를 놓는다). 


최대한 싸게, 빨리, 후딱 건물 올려서 팔려고 했던 것이다. 자기가 살집이 아닌데다, 공기를 단축할수록 돈이 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재를 빼돌리면 이게 바로 수입이 되는 것이다. 좋게 볼 구석이 한군데도 없다. L에게 은근히 물었다. 이런 경우가 많은지.


L : (당연하단 듯) 얘들은 좀 심하게 해 먹은 거고, 아닐 말로 건물이 서 있기만 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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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당황) 그게 뭔 소리야? 건물이 안전해야지!


L : (한숨) 그건 일반론이고... (사이) 이쪽 판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야. '건물이 서 있기만 하면 되잖아?' 그게 뭔 소리냐면, 물 잘나오고, 물 잘 나가고, 잘 서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Y : (고개 끄덕거리며) 급수, 배수, 균형


L과 Y는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뒤이은 파안대소.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면대로 만들라고 감리를 붙이고, 공무원들이 확인하는 건, 도면대로 지어야지만 안전한 집이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L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걸 누가 모르냐? 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집은 아방궁으로 지어달라면 우리보고 어쩌라고? (사이) 단가를 너무 후려 쳐. 답이 안나와.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데, 공사는 점점 줄어들고. 답이 없어. 


나 : 그러니까 아산빌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지. 


L : 걔네들은 너무 남겨먹었고... 양심의 선을 지켰어야지. 


피사의 빌라... 결국은 돈이 문제였다. 사람과 돈을 놓고 비교를 해보면, 말로는 사람이 돈 보다 위에 있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L : 글쎄. 일단 건물은 서 있으면 되는 거지. 서 있는단 의미는 멀쩡하게 수평 잡힌 상태로 땅에 박혀있다는 의미 아냐? 그럼 건물 꼴은 한다는 소리잖아. 그럼 어지간해서는 문제없어. 거기다 급수랑 배수가 된다면, 사람 살 수 있는 건물이란 소리고 그럼 문제없어. 


나 : 하자 발생하면? 


L : 하자 발생 안하는 건물이 어디 있냐? 중요한 건 골조 올라간 상태에서 수평 잡혀있고, 급수 배수가 된다면 큰 하자가 아니란 소리지. 어차피 건물 올라간 뒤에 하자 잡아주잖아? 골조를 건들 정도의 하자가 아닌 다음에야 충분히 잡을 수 있거든. 문제는 너무 싸게만 생각하는 거야. 늘 말하지만, 싸게 올릴 수 있어. 근데 퀄리티는 떨어지지. 


아산빌라는... 이게 좀 다른 성질인 게, 정말 긍정적으로 보면 '평당 2~30만원 떼기'로 보고, 팀을 짜서 아산 지역사회, 아니, 걍 유지들이라고 하자. 유지들이랑 짝짜쿵 해서 용돈벌이 한 거야. 


나 : 부정적으로 보면?


L : (웃음) 분양사기지. 먹튀 하는 거야. (사이) 건설사 휴폐업 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하루에서 수십 개씩 만들어지고, 자빠지는데. 건설사 폐업할 작정하고, 몰빵하고 분양하거나 통째로 넘긴 다음에 튀는 거야. 어차피 건설사는 없앨 거고, 이 정도면 시공자는 신용불량자라서 핸드폰, 카드, 자동차 등등 모든 게 그 밑에 있는 애나 다른 애 명의로 쓰는 거니까 사라지면 찾아도 어쩔건데? 


근데 이 정도 사이즈에서 이렇게 사기 친다는 건 미친 짓이야. 잘해봐야 평당 350짜리 건물인데, 이걸 눈탱이 쳐봤자 얼마나 떨어지겠냐? 딱 봐도 견적 나오는데, 이걸로 남겨 먹어도 여기 딸린 식구가 몇이냐? 땅 아도 치는데 들어간 입이랑, 건물 올릴 때 붙은 애들...그 보증인들 있잖아. 이것들 입 다 채우면 별로 남는 거도 없어. (웃음) 좀 심하게 해먹은 거지. 


Y : 결국은 표준적인 케이스야. 건축주랑 시공자가 같고, 싸게 후다닥 지어서 팔아넘기려고 했는데, 이게 자빠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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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그럼 이 '피사의 빌라' 주인은 어떤 처벌을 받을지


L : (심드렁) 걔가 무슨 잘못했는데?


나 : 건물이 자빠졌잖아!


Y : 준공 전이었잖아. (묘하게 웃으며) 아깝긴 아까웠어. 준공 7일 전이었다는데, 공무원이 준공 내리고 자빠졌으면 '꽤' 재미난 일이 일어났을 텐데 말야.


L : (피식) 똥 빠지는 거지. 공무원 몇 명 목 날아가고...


나 : 건축주는?


L : 사급공사잖아. 지 땅에다가 지가 건물 올리다 자빠진 거 아냐. 게다가 준공전이고, 인사사고도 안 났어. 만약 건물주가 '씨바, 내 땅에다 내가 건물 올리다 자빠졌어! 이거 내가 책임지고 철거하면 되잖아!' 이렇게 나오면 어쩔 건데? 


Y : 자질구레한 걸로 걸고 넘어지겠지. 건축법이나 뭐 그런 거. 그런데 피해자가 없잖아? 사건이 일어났다면, 피해자랑 가해자가 있어야 하는데, 지가 짓다가 자빠진 건데 누가 뭐라 그래? 남은 건 은행이랑 건축주 사이의 문제가 남았지만...


L : (피식) 지금 이자 빼기도 허덕일 거야. 


Y : (웃음) 그래도 은행은 절대 손해 안보지. 땅도 있고. 어차피 채권자 1순위가 은행이잖아? 세입자는 2순위고. 근데, 지금은 무조건 은행이지. 


L : (고개 끄덕이며) 씨바 은행새끼들. 돈놀이 하는 새끼들은 진짜, 어휴...


나 : 그럼 지금 문제되는 건 건축주랑 은행 사이의 문제만 남았다는 거네?


L : (고개 끄덕) 그렇지. 근데, 그것도 별 거 없지. 은행이야 땅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냥 건축주만 좆된 거야. 걍 하늘에다 24억 흩뿌린 거지. 


Y : 언론 보라고, 건물이 자빠졌네 뭐라 하고 난리 났잖아? 근데 아무도 안 나타나. 건축주가 지랄발광을 해야 할 상황인데, 건축주가 코빼기도 안 보여. 안 봐도 비디오지. 


L : 정 안되면 건축주가 만세 부르면 돼. 뭐 만세 부를 일도 없겠다. 은행이야 땅 가지고 있으니... 피해자가 있어야 뭔 말을 하지. 피해자가 없잖아? 팀 짜고 들어갔으니, 같이 좆 된 거고. 전주(錢主)가 붙었으면... 아, 만약에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끌어다 썼으면...


Y : 야, 그거 상황 심각하겠는데? 


L : 잘 하면 다른 공사 하나도 퍼지겠는데? 


Y : 그래, 어디 지자체 같은데 완전 똥 밟게 생기던가, 호구 하나 폐인 되겠다?


황당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L : (웃음) 국도 타고 가다보면, 지자체 같은데 공사 하다 만 데 있잖아? 중간에 퍼진 공사들 아니면 짓다 만 사급공사들 있잖아. 이게 왜 생긴 거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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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뭐, 건설사가 부도났거나 그런 거 아니겠어?


L : 글치. 근데 그 부도가 그냥 나는 게 아니거든. 기본적으로 노가다 판, 그러니까 아산빌라 같은 애들 수준의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공사 3개를 돌려야 해. 하나 끝내고 다른 현장 바로 붙고 하는 식으로. 근데, 이렇게 돌다가 덜컥 걸리는 경우가 있어. 돈이 어디서 나올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카드론, 신용대출, PF, 제1, 제2 금융권 등등 법 안에서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아. 그러다 안 되면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끌어다 쓰지. 아니, 한번쯤은 다 써. 근데 덜컥 공사에 차질이 생겨. 


나 : 그러면? 


L : 관급공사라 치자. 이거 보면 돈 주는 방식이 2:3:5야 계약금 2, 중도금 3, 잔금 5거든. 이게 공기 진행에 따라 나오는데, 건축주가 딱 중도금까지 이리저리 끌어와 버텨 그러다가 중도금 받지? 그럼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딱 맞춰줘. 그런 다음 폐업하고 만세 부르는 거지. 


나 :  나라에서 뭐라 안하냐? 


L : (웃음) 공무원이 어쩔 건데? 걔들 해봤자 법으로 거는 거 밖에 없잖아? 공무원이 칼 들이미는 거 봤냐? 근데 사채 잘못 쓰면 칼이 들어오거든. 아니, 칼만 들어오면 상관없는데 가족이 위험해지잖아. 공무원이나 은행원이 가족 협박은 안하잖아? 근데, 그쪽은 하거든. 그러니까 중도금 받으면 사채 해결하고, 바로 만세 부르는 거지. 그렇게 자빠진 애들도 꽤 있지. 


Y : 만약에 아산빌라 애들이 계속 공구리밥 먹겠다고, 어쨌든 수습해 볼 요량이면 분명 다른 공사현장을 찾을 거 아냐. 근데, 이게 구멍이 너무 커. 순식간에 24억이 날아간 거 아냐? 정말 끌어올 돈, 안 끌어와야 할 돈 다 끌어왔으면... 이것들도 살아야 할 거 아냐? 그냥 지들끼리 짝자쿵 하다가 자빠진 거면 다행이지만, 상황 심각하면, 이것들 무슨 수를 써서든 다른 현장 하나 잡아야지. 그럼 그것도 자빠지거나 퍼지는 거야. 


나 : 그게 가능해?


L : 지금 건설사 폐업하고, 아, 세무상으론 휴업할 거야. 그런 다음 다른 거 하나 차리지. 면허를 빌리든 뭘 하든 기를 쓰고 현장 하나 돌리겠지. 그런 다음 메꿔야지. 딱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메꿀 수 있을 정도. 중도금 때 퍼지거나 하더라도 우선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메꿔야지. 그런 다음에 자빠지는 거야.  


Y : 근데 이 사이즈인데 거기까지 갔을까? 너무 나간 거 아냐?


L : 모르지. 속사정이야. 


Y : 여튼, 건축주 좆 된 건 확실해


L : 뭐 일어설 수도 있고, 손 털고 프리로 뛰던가 해서 벌충할 수도 있고. 근데, 24억은 감당하기 힘들 거야. 애초에 돈 있으면 이런 짓 안하지. 


듣다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노가다가 복마전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L과 Y에게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우리나라 노가다판이 괜찮은 건지를 물어봤다. 들어보니 많이 나아진 편이란다. L의 표현으론, 


"내가 보기엔 양심적인 애가 50, 남겨먹는 애가 50 정도라고 보는데? 그렇게 심한 건 없어.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나름 사람답게 살아. 일반인들 보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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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다음 회에서는 건축주가 눈탱이 맞지 않는 법과 한국 노가다 판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L의 주장이다). 가볍게 시작한 일인데 3회짜리 기획기사(?) 느낌이 나면서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첨언 :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는 곳은 대전이다. 여동생과 같이 내려와 며칠간 요양을 하려고 했는데, 어찌어찌 '피사의 빌라' 때문에 기사를 쓰고 앉아 있다. 휴가까지 내고 내려온 동생의 잔소리 때문에 뒷골이 울린다. 이 여동생을 달래기 위해 오늘 대전 한밭 야구장을 가기로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롯데팬이다. 그리고 오늘(5월16일) 대전구장에서의 경기는 한화-SK다 내가 KBO감독들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킬끼리와 만수르의 접전이다. 동생은 한화 쪽 내야 탁자석을 예약하고, 열심히 한화를 응원할 생각인가 보다. 동생에 대한 소심한 반항을 하기 위해 롯데 저지를 입고 나가기로 했다. 동생은 한화 저지를 포기했다(지가 쪽팔린건지, 날 배려한건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 여동생이 앞뒤 반동을 하며 '최강한화'를 외치고,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는 걸 보려니 벌써부터 긴장된다. 말려야 하는데... '오라방 같은 조류동맹끼리 돕고 삽시다'를 외치며 날 끌어 들일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정말 만약에 동생의 강권에 넘어간다면, 롯데 저지를 입고 앞뒤 반동을 하며 '최강한화'를 외치는 웬 미친놈을 오늘 TV중계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정말 '만약'이다). 젠장, 요양 왔다가 기사 쓰고, 한화를 응원해야 한다니!! 그냥 작업실에 있을걸!! 무능룡!! 기왕 할 거면 이겨라!! (어제 연장 12회까지 간 거 보니 오늘도 틀린 거 같더만,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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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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