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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눈물의 값어치

2014-05-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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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19. 월요일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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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은 사람을 잘 믿는 편이다. 누가 심각하게 말을 할 때, 바보같은 헛소리라고는 여길 망정 저게 진심이 아니거나 속이려는 의도라고는 잘 생각 못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어떤 약속이나 사과를 할 때도, 그게 내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 한들, '에유, 저넘이나 나나 결국은 사람인데 비슷한 느낌이겠지'하고 여기는 편이다. 많이 속다 보니 덜해지긴 했지만 천성이라 아직도 좀 그렇다.


그래서 내심 ㅂㄱㄴ의 사과를 기다렸다. 사과하면 다 용서하고 잊어버리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그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으로서 응당 느껴야 할 감정과 태도를 좀 보여주길 바랬다. 그래서 그걸 지켜보는 가족이나 국민의 마음의 짐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고, 무엇보다도 지난 한 달 동안 무너질대로 무너진 인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눈꼽만치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전혀 의미없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대통령은 그냥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하는 것도 눈물이나 찔끔 짜는 것에서 그칠 수는 없다. 그런 감정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저 눈물의 값으로 함께 제시되었어야 하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입을 통해 우리가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생뚱맞은 해경 해체였다. 우원은 해경이 정확하게 어떤 조직인지 모르고, 그 내부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건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해경 해체를 통해 제2의 세월호를 위시한 이 사회의 시한폭탄들도 해체되지는 않는다는 점만은 삼척동자가 봐도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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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해경은 어쨌든 30여 일간의 '구조'를 지휘한 장본인들이다. 책임과 권한을 가졌음은 물론, 세월호 현장에서 가장 밀접한 지점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기록한 주체다. 따라서 그 주체를 없애 버린다는 건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게 아니라 책임의 대부분을 해경에 몰아넣은 후 아예 통째로 증발시키겠다는 꼼수로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조직이 사라진 후에 실제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거기에 속했던 일부 개인들 뿐이다.


특검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 화살은 엉뚱하게도 청해진 해운과 그 유착 관계만을 향해 있었다. 청해진의 비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왜 특검이 필요한 건지 우원은 이해할 수 없다. 특검은 정말 강한 힘을 가진 존재, 즉 권력자나 정부, 재벌 등을 수사할 때 필요한 거고 그간 특검의 역사가 이점을 증명하고 있다. 국민과 야당이 특검을 요구할 때 그 방향이 청해진 쪽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ㅂㄱㄴ 본인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결국 이런 그림이다. 국민 앞에서 눈물을 보여줘서 안그래도 ㅂㄱㄴ에게 동정적인 보수층과 어르신들에게 일단 어필한다. 동시에 해경은 아예 없애버리면서 확실한 책임을 묻는 제스쳐로 중도층을 감싸안는 척 하지만, 실은 수사와 진상 조사 자체를 미궁에 빠트린다. 그리고 청해진 문제에 국한된 특검을 제안함으로써 '특검'이란 단어로 생색을 내는 거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게 이런 꼼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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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해수부와 안행부의 안전 관련 업무를 새로 만드는 국가안전처로 이전하겠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건 원래 김대중과 노무현 때 다 만들어진 걸 전임 가카가 없애버린 거다. '좌파'의 모든 업적을 폄훼하고 삭제하겠다는 비뚤어진 논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즉 NSC를 없애고 재난 관련 매뉴얼도 전부 사장시키고 말았다.


작년에 ㅂㄱㄴ 정부가 들어서며 NSC 사무처가 다시 설치됐지만, 이때는 재난을 국가안보에 포함시키지 않는 우를 범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안보는 오로지 북한과 '종북 세력'만을 타겟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 빌어먹을 종북 세력이란 게 국민 한 사람이라도 다치게 한 적이 있냐는 거다.


이렇듯 세월호 사건 같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조직이 이미 갖춰져 있었음에도 저들은 정치보복에 가까운 논리로 그걸 다 무효화시켜 버렸다. 따라서 특검도 이런 영역까지 포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어째서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재난 대응 조직과 매뉴얼이 폐기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국민 안전에 대한 책임 방기와 정치적 편견에 의한 잘못된 결정들이 없었는지를 파헤쳐야 진짜 구조적인 부분에 접근할 수 있다. 오늘 담화에서처럼 복지부동의 거대 공무원 조직에 민간인 전문가나 좀 들여온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은 돈만 아는 이기적인 세상을 조장하고 장려한 전임 가카와 ㅂㄱㄴ 정권의 정체성 자체와 직접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 10년 간 누려온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압살한 가카와, 그 전통을 이으면서 대부분의 복지와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헌신짝처럼 폐기한 ㅂㄱㄴ 정권은 그 자체로서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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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금 뭔가가 해체되어야 한다면 그건 해경이 아니라,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자격도 준비도 없는 청와대와 집권 세력일 것이다. 이를 깨닫고 즉각 정권을 내려 놓고 퇴진하면 참으로 바람직하겠다. 하지만 절대 그러지 않을테니, 그렇다면 면피할 생각만 말고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대로 생각이라도 하라는 말씀이다.


이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세월호 사건의 뿌리가 해경이나 청해진, 관피아를 넘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그리고 정부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불신이 왜 이리도 깊은지 그 진짜 이유를 알고 거기에 맞게 말 그대로 환골탈태의 변화를 꾀하지 않는 한 실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 또 종북 세력이니 뭐니 하면서 실재하지도 않는 위협으로 국민을 겁박한다면 그 결과는 단지 정권의 안위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호 전체의 침몰로 이어지고 말 거다.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는,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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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은 오늘 보인 ㅂㄱㄴ 눈물의 진짜 의미를 모른다. 사람들 말대로 악어의 눈물일 수도, 혹은 국민 따위 앞에서 사과해야 하는 여왕의 억울함일 수도 있을거다. 하지만 사람 잘 믿는 우원은 그녀도 사람이니 이 일과 관련돼 나름 슬픔과 회한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싶다.


그러나 권력자의 눈물은 그저 개인적인 감정만을 담아선 안된다. 그건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이나 흘리는 눈물의 값이다. 지금 시점에서 국민이 대통령에게서 보고 싶던 눈물은 슬픔이나 애도가 아닌 뉘우침과 변화의 눈물이었다. 가슴을 뜯는 통렬한 깨침과 성찰이 없는 눈물은 그 바탕의 감정이 뭐든 결국은 쇼로 귀결될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그녀의 눈물에 큰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또 변화의 기대를 걸 수 없는 이유다. 해경 아니라 해경 할아버지가 없어진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지금의 방향 그대로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서도 모른 척하는 자들이 지금 이 나라를 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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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