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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2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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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이란 말을 회자케 만들었다. 지금도 우리 뇌속을 잘 뒤져보면, ‘네이처’란 단어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SCI급 논문이란 건, 전 세계가 인정하는 논문!”

 

 

뭐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이 SCI와 직접 연관된 ‘글’을 쓰고 나서는 여기에 대한 환상이 상당부분 사라지게 됐다(훗날, ‘차관급’ 인사와의 인터뷰와 이와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완벽히 깨지게 됐다).


이공계통이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써보겠다.


ISI 社에서 만든 학술지 데이터베이스의 이름이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이다. 일반인들 기준으론(나도 처음엔 그런 건줄 알았다) SCI에 등재 됐다는 건 대단한 학문적 성과를 보여주고,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일보(一步)를 내딛는 역사의 순간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건 ‘학술지 데이터베이스’다. 논문 쓸 때 논문검색 시스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문을 검색하는 시스템이란 소리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올라가는 논문이 SCI급 논문이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이 올라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 세계 수천종이나 되는 SCI 저널 중 한 군데에 논문이 등재되면, SCI의 데이터 베이스에 올라가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십여종의 SCI 학회지가 있는 걸로 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전 세계에 수천종이나 되는 학술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네이처’와 같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잡지가 있는 반면, 정말- 생소한 학술지도 많고, ‘특이한 소재’를 다루는 잡지도 많다. 우리 기준으론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다루는 잡지들이 꽤 있다. 물론, 문외한인 내 자의적이고 편협한 기준에서의 판단이다. 해당 연구를 하는 학자들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수천종이나 되는 학술지 중에서 적당한(?) 잡지를 하나 선택해(일반인 기준으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잡지) 거기에 자신의 논문을 투고한다. 만약 논문이 통과되면, 이 연구자는

 

 

“SCI급 논문을 썼고, 이게 등재됐다!”

 

 

라며 선전을 한다. 이걸 본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야~ 정말 저 사람 대단한 연구를 했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끝나면, 인류의 지식에 대한 욕구가 작은 성과를 이룬 것으로 끝나겠지만,

 

 

“이 연구성과를 인류 복지를 위해 사용하겠다!” (혹은 그걸 가지고 돈벌이를 하겠다)

 

 

이때부터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류복지를 위해 연구실에서 밤을 새고 있는 대다수 과학도들을 매도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겪은 몇몇의 사례를 통해 ‘이런 연구자’들이 ‘신기한 연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말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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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CI급 논문을 처음 봤을 때...

 

‘오더’가 왔다. 이공계통에서 내게 오더가 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더 놀라운 건 이게 ‘홍보대행사’...아니, ‘홍보쪽’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업체 명을 알려줄 순 없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친분이 있는 업체는 아니었다. 2~3번 사석에서 본 정도일 뿐이다).

 


“oo작가님 xx입니다. 이번에 저희 쪽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중인데, 꼭 좀 도와주십시오.”

 

 

...생뚱맞게 들어오는 이 말. 처음 의뢰 내용은 ‘자서전 작업’이었다. 자서전은 몇 번이나 대필해 봤기에 선선히 수락을 했다. 페이만 맞는다면, 이완용 자서전도 써줄 수 있다(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장이... 상당히 광범위하고, 특이하다. 만약 나와 같이 ‘매문’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자서전이나 회고록, 기타 이런 쪽 글을 전문으로 대행해 주는 업체가 꽤 많다. 거기에 소속돼 있는 작가들을 보면, 나름 유명했던 이들도 꽤 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 책 찍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에도 모 지방단체 시장으로 출마하려는 인물이 ‘만화가 들어간 홍보유인물’과 세트로 의뢰가 들어왔으나 페이 문제로 거절했다).


처음엔 성공한 학자의 반생을 정리하는 작업인 줄 알았으나, 두 번째 미팅 이후 이 ‘오더’의 실체를 확인하게 됐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신원보장과 내 계약서상의 비밀유지조항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쓰겠다).

 



① A라는 학자가 X라는 가설을 가지고, 몇 편의 SCI급 논문을 발표했다.

 

② X라는 가설은 현대과학(의학)으로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과학이란, 현상들의 인과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그 인과를 찾기 위한 노력과 열정은 분명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아직까지는 ‘가설’단계에 머물러 있고, 논문에 올라가 있는 표본의 수도 제약적이다)

 

③ X라는 가설은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주류의 입장이다.

 

(물론, 이런 시도 자체가 과학발전의 자양분이 된다는 건 사실이지만, 일반인의 시선... 내 시선으로 보자면, 과학의 범주 안에 들기에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현상과 인과 사이를 해석할 만한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답보 상태이다)

 

④ 학술지의 성격은 이런 가설을 주로 내놓는 마이너 한 학술지였다.

 

⑤ 일반의 경우에는 어쨌든 SCI급 논문이라는 타이틀만 각인 됐다.

 

⑥ 이걸 그 학자나... 혹은 주변의 누군가가 ‘돈’으로 치환시키려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가설을 기반으로 한 논문의 끝에는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나중에 이쪽 색인으로 확인해 봤는데, 무수히 많았다).


이 논문의 연구자가 투입한 땀과 열정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픈 것은 아직 학문적으로 완벽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돈’으로 연결하려는(홍보와 포장으로), 시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내게 연락이 온 홍보쪽 사람은 내가 이 논문을 읽고, 인터뷰를 해 하나의 회고록과 캐치프레이즈(어찌하다보니 책 목차 중 하나가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되게 됐다)를 만들면, 이걸 기반으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방송을 타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실제로 나갔다). 그리고 법인을 만들고 해당분야를 가지고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겠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학문적으로만 보자면 꽤나 흥미로운 가설이고, 만약 여기에 더 연구자원을 투입한다면 새로운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가설’이란 사실이다. 가설을 실증할 만한 연구자료가 있다고 하지만, 현상의 ‘인과’를 완벽하게 설명할 정도의 표본규모는 아니었고, 현재까지는 알려진 부분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8:2 정도?).


한 마디로 ‘더’ 연구해야 한다는 소리다(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당시로서도, 그리고 지금으로서도 요원한 듯 보였다. 다만, 그 ‘가설’자체는 지금도 흥미롭고, 가끔 생각이 나면 이 분야에 대한 서치를 하곤 한다).


문제는 이걸 ‘홍보’해야 하는 ‘나쁜(?) 목적’ 때문에 이 논문은 가설이 아니고, 검증된 ‘이론’으로 포장되고, 이걸 먼저 시험한 이들은 선구자, 이걸 취득하거나 활용하는 이들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들이 됐다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떤 게 맞는 것인지, 내 상식이 옳은 건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분야를 말 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실제적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개입 돼 있고, 일반인들도 길을 가다 한 번씩 마주치는 것이다. 만약... 이게 완벽하게 증명된다면, 우리 일상의 상식 하나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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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터뷰와 논문, 회고록

 

자료를 넘겨받았다. SCI에 게재된 논문 몇 편과 해당 연구결과물과 실험 자료들... 일단 ‘영문’이었다. 인문학이나 사회학이면 모르겠지만, 이공계 논문... 그것도 영문 자료를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해당 업체가 알려준 랩의 말단 연구자 전화번호에 불이 났다. 3일 만에 난 연구의 개요와 성취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덤으로 시장규모도 말이다).


그 다음은 쉬웠다. 해당 연구가 국내나 국외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그 상업적 가치를 대략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 10일간 해당 분야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이 이어졌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콜롬부스의 달걀이 될 수도 있고, 희대의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라는 것이다. 정말 위대한 발견이고, 인류 복지에 이바지하는 대단한 연구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사기꾼의 요설로 끝날 수도 있었다. 글을 쓰는 나 조차도 판단을 보류 할 정도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논문의 말미에 적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란 말이 적확하다는 것.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과 ‘업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밥그릇 싸움’이란 결론이었다.


기존 학계와 업계 기준으로 보자면, 자기 기득권이 침해되는 것이고, 이걸 연구한 ‘업계’를 보자면 새로운 시장개척이었다(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이쪽에선 시장을 선점하고 싶은 거였다(나중에 인터뷰를 통해서 내 ‘촉’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전 조사가 다 끝날 즈음해서 해당 연구의 총책임자를 만나게 됐다. 재미난 건 그 총책임자와의 첫 미팅에서 이 책임자는 나와 바로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훗날 자신의 동료들(잠재적인 고객들)도 소개해 주겠다고 나섰다(이건 정중히 사양했다. 내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이 총책임자는 인격적으로도 성숙했고, 연구에 대한 열정도 있었다(4~5번의 인터뷰로 파악한 것이기에 확언할 순 없지만, 업체 몰래 업계관계자들의 정보를 취합해 본 결과.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 내가 파악한 SCI급 발표논문에 대한 요지를 듣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은 이공계통이라 이런 식의 설명을 할 순 없다고, 나중에 PT자료까지 만들어주면 안되겠냐고 부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로선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하고, 회고록을 작성하고(이 ‘논문’을 연구한 여정을 글로 풀어쓰고, 이 ‘논문’과 총책임자의 인생역정을 엮어서 이 발견이 대단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글이었다), 언론과 방송, 학계에 배포할 ‘글’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분량은 신국판 사이즈로 책 한권 분량이고, 기한은 3달, 비용은 중견작가의 평균적인 자서전 대필 비용정도로 결정됐다(생각해 보니 이공계라는 옵션이 있는데, 너무 싸게 해 준 것 같다). 물론, 계약서도 작성했다(이 계약서 초안은 내가 잡았다. 비밀유지조항을 삽입한 평균적인 계약서 양식이다. 내가 봐도 난... ‘너무 양심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총 4회의 인터뷰를 했는데... 이건 ‘시간낭비’였다. 2회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았을 것인데... 일하는 ‘시늉’을 내기 위해서 4회를 다 했다. 처음엔 녹취를 하고, 녹취를 풀 생각도 했는데, 녹취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고, 나중에 가선 녹취는 폼이 됐고, 풀지도, 듣지도 않았다. 잠깐 부연설명을 하자면, 술 마시다 보면, ‘내 인생 책으로 풀어내면 대하소설 한 질이 나와!’라고 말하곤 하는데, 생각 외로 그 정도 분량이 안 나온다. 내가 아직 과문해서 그런 진 모르겠지만, 자서전 의뢰를 했던 이들의 인생이라면 어느정도 성공도 했고,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다 겪은 것처럼 말하지만, 의외로 인생의 대부분은 심심하고, 별달리 쓸 게 없다. 포인트 몇 개만 잡은 다음에는 칸 채우기다. 자서전을 의뢰한 사람들의 인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어지간한 인생이야기는 2~3시간 들으면, 대략 감이 나온다는 의미다. 특히나 회고록과 같이 특정 시점을 상정해 놓고 진행하는 이야기라면 이야기 구성은 더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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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대필을 해 본 작가라면 다 알 것이다. 어떤 대단한 ‘필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왜냐면 자서전은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럴 때 보면 조셉 캠밸 옹은 정말 천재시다!!).


감히 단언하건데 조셉 캠밸(J. Campbell)의 영웅서사구조 12단계 분류에 적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자서전’과 ‘회고록’이다. 나머지는 소재와 사건을 어떻게 배치하고, 극적인 소품과 보도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미다시(みだし)를 뽑아내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야마를 얼마나 새끈하게 뽑냐는 차이일 뿐이다(대부분의 이런 자서전은 보도자료용 미다시와 야마의 승부라고 본다... 내 기준에선 말이다). 보도자료용으로 쓸 수 있는 미다시가 많이 들어가 있는 자서전이야말로 ‘한국형 자서전’의 표준이다... 업계 비밀이지만, 책 한권에도 파레토의 법칙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20%의 핵심 주제를 넣고, 나머지 80%는 그냥저냥 분량을 맞추고, 그 주제를 부연설명해 주는 내용이란 소리다. 이 20%의 내용이 보도자료나 기타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걸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작가’들은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해가 안 간다면, 이 자서전의 ‘발주처’를 생각하면 된다. 서점에 깔리는 경우보다 어떤 ‘행사’를 위한 것이나, 한정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영웅화’를 목적으로 한다. 어떤 사회든 ‘영웅’을 원한다. 주변의 온갖 압박과 탄압 속에서 꿋꿋이 떨쳐 일어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나,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는 태생적으로 ‘영웅담’일 수밖에 없다.


(그 쟁취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내가 썼던 수많은 자서전들은 정치적이고, 정치적이다)


그러니까, 사전 취재를 통해서 얼마간의 소스를 뽑아낸 다음 이 영웅서사구조에 대입을 하면 된다. 그게 귀찮다면, 시나리오 작업의 표준인 <3 장구조>를 출력한 다음 그 공식에 그대로 대입하면 책 한권이 뚝딱 완성된다. 물론, 이 작업의 경우에는 난관이 몇 개 있었다. 바로 ‘전문직 드라마’와 같은... ‘전문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조차도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영웅이지,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었다(황우석만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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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에 걸친 인터뷰(그나마 1번은 술자리였다)를 통해 총책임자분의 인생역정을 확인한 뒤에는 바로 공식에 대입해 작업에 들어갔다. 고백하건대 2주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뒤에는 미다시를 뽑아내느라 시간을 보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 하나...!! 간단하다. ‘영웅담’일 뿐이다.


책만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은, 이공계통이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인간이 돼 있었다.


재미난 사실은 그 동안 보도 자료를 어떻게 쓸까 끙끙 앓던 업체 관계자들이 이 책의 한 챕터를 그대로 정리해 보도자료로 돌렸고, 이 총책임자 분은 내가 만든 ‘미다시’를 가지고 언론인터뷰를 하고, 방송에 나갔다는 것이다. 돈 들인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큰 탈 없이 무난하게 회고록은 완성됐다. 발주처에서 소소한 수정 요구사항이 있었지만(초고, 재고, 삼고로 완성했다), 틀거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발주처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다가 느낀 점이 일반인들의 ‘글’에 대한 인식이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급박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 ‘납품된 글’에 대한 불안감을 보인다)

 

 

“저...이런 부분은 좀 더 매끄럽게 갈 수 없을까요?”

 

 

충분히 완성도 있게 뽑아낸 글이라지만, 발주처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다른 공산품이 아니라 ‘글’이란 제품은 인생에 거의 처음으로 산 제품이기에 자기가 옳게 사는 건지, 샀는데 나중에 하자가 나오는 건 아닌지, 결정적으로 이게 좋은 제품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십분 이해한다. A4 한 뭉텅이... 아니, 파일 하나를 메일로 보내놓고는 적게는 돈 천 만원 이상을 내놔야 하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두려울 것이다.


분명 좋아하고, 감동적이며(내가 들은 찬사 중 가장 짜릿했던 게, ‘어떻게 저보다 제 인생을 더 잘 아세요? OO작가님 글 보니, 그때 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제 납득이 갑니다.’란 말이었다), 이 글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주며,

 

 

“이 애비가 이렇게 힘들게 살았어.”

 

 

라며, 탄식을 했던 분도 있었다(어떤 분은 자기 아내에게 내 글을 보여주며, ‘그때 내 심정이 이랬어. 어땠는지 알겠어?’라며, 당시의 삶을 설명한 분도 있었다). 이렇게 만족을 해도, 그 분들 마음 한켠에는,

 

 

“좀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1~2달 사이에 이 정도면, 게다가 별로 많이 이야기 하지도 않았는데... 좀 더 고치면 더 대단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노벨 문학상의 퀄리티를 원하시는 건지...)

 

“이 정도 돈을 줬는데... 뭔가 좀 아쉽다.”

 

“실제로 글이란 건 얼마 안하는데, 저 작가가 사기 치는 거 아냐?”

 

 

등등의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하는 거 같았다. 나라도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 나야 글을 파는 게 일상이지만, 그 분들에게 ‘글을 산다’는 행위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기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잔금을 되도록 늦게 주고, 최대한 많은 ‘재고’를 위한 행동들을 한다. 영화판 다음으로 잔금 받기가 힘들다고 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그나마 중간에 업체가 있어서 수월하게 넘어 간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번이나 수정을 해줘야 했다.


이 수정과정이 힘든 게, 영화나 출판사와 같은 경우에는 구체적인 ‘지시’나 ‘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에는 구체적인 ‘지시’ 대신 자신의 감상과 느낌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거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렇기에 그 의중을 맞추기가 참 힘들다. 나중에 가면, 결국 초고와 대동소이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만약 이 글을 볼지 모르는 자서전 예비 의뢰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미사여구가 많다고 좋은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다. 과도한 조사와 부사의 사용은 MSG의 바다에 헤엄치는 갈비의 맛일 뿐이다. 진짜 좋은 글은 쉽고, 단순하고... 콕 찍어 말하자면, 조사와 부사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글이다... 뭐 이건 내 자의적인 판단이지만, 그렇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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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엉뚱한 결과

 

잔금을 받고 반년 정도 지났을까? 이 작업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방송과 언론에 내 글들이 해체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총책임자분도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작은 영웅’은 그렇게 방송에 나왔고, 얼굴 가득 파안대소를 지으며 자신의 성취를 말했다. 이런 게 보람이라고 해야 할까? 가끔 내 이름이 박혀있지 않은 책들... 내 표현으론 ‘보쌈당한 년들’이 팔려 가서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이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엉뚱한 결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과 언론에 나온다는 건 필연적으로 ‘뭔가’를 홍보하기 위함이다. 그 ‘뭔가’가 학술적으로 검증이 끝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불완전한 상태란 점이다.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됐다.

 

 

마음 한 켠에 불안과 찜찜함이 채워지고 있었다. 내 상식으로 이 ‘가설’은 좀 더 연구가 돼야 하는 아직은 ‘검증단계’의 이론이다. 그리고 그 검증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그 분야’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물론, 이런 연구와 실험이 이어져야 과학이 진보한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가설을 마치 ‘완성’됐다는 듯 홍보하고(그 목적이 연구비의 확보를 위한 것이라면 인정하겠지만),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나간다는 건 문제가 있다. 확신이 없었다.


다행인 건 대중의 판단으로도 이 ‘분야’가 아직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고, 아직 구체적인 인과의 과정이 다 파악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형성됐는지 곧 사그러졌다. 그때 난 어떤 ‘안도’를 느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총책임자분이 내게 연락이 왔었다.


글에 대해선 만족하는데, 이걸 확장하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어서 내게 팁을 원한 것이었다. 일종의 AS라고 해야 할까? 당시 난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나 그 이상은 손대지 않았다. ‘접근해선 안된다’ 빨간경광등이 내 머릿속을 계속 울리고 있었다.


분명 말하지만, 이 책임자분의 인격과 연구에 대해서는 지금도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가 가시적인 ‘상업화’를 위해 나아가기 위해선 앞으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한 연구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우선은 연구지원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황우석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공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우선 언론에 나와 뜨고 나야 연구소가 돌아간다.”

 

 

란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우리나라에선 일단 뜨고 봐야지만, 뭘 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시 업체 관계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너무 급박하게 추진했고, 배려가 없었다는)은 있었지만, 연구종사자들에게는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연구가 아닌 ‘홍보’에 곁눈질을 하게 만든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환멸이었다.



그리고 이 환멸은 또다른 ‘인터뷰’를 통해 확신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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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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