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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형님 전상서

2014-05-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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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23. 금요일

논설우원 파토









형님 가신 지 오늘로 5년 되셨네요.


스무 살도 넘게 위시니 형님으로 부르는 건 좀 시건방진 거 압니다. 지금껏 그런 식으로 불렀던 적도 없고요. 하지만 오늘은 좀 그래 볼렵니다.


제가 제일 억울한 게 뭐냐하면, 형님이 대통령으로 있던 이 나라에 거의 살지 못했던 겁니다. 2001년 여름에 나가서 2006년 10월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월드컵 거리 응원도 못했고, 형님 당선될 때의 기적같은 상황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노빠가 되고 말고 할 기회조차 없었고 그저 탄핵 때 열 받아서 글 몇개 쓴 정도에요.


그리고 나서는 형님이 정치와 국정 운영을 잘못해서 우리나라가 망해간다는 뉴스만 늘 보이더군요. 저쪽은 저쪽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술자리 아저씨들 찜질방 아줌마들 너나 할 것 없이 형님 탓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 나라 진짜 엉망된 줄 알다가 들어와서 아닌 거 보고 깜짝 놀랐고, 다들 뭔가에 홀려 있으니 정신 차리라는 글 쓴 기억도 나고요.


마, 형님이 재임 중에 한 일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여기 링크 함 걸어봅니다.


1.JPG

<링크 바로가기>


하지만 이런 소리들은 지난 5년 동안 다 한 거니 다시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동생으로서 개인적인 이야기나 드리고 하소연이나 할랍니다. 형님 아니면 받아줄 사람도 없고요.


2.jpg

이 정도면 충분히 젊으니 이 사진 보고 말씀 올릴랍니다.


형님, 나라 꼴 보고 계십니까...?


형님 가신 그날, 저는 지금도 얄밉게 살아남아 있는 이 지면에 이렇게 썼었습니다. 이 나라는 이제 저희 후배들이 맡아서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테니 다 잊어버리고 푹 쉬시라고요.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렇게 약속 드렸습니다. 3년 만 참으면 다 된다고요.


죄송합니다, 형님. 저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은커녕 사람이 눈 앞에서 죽어 가는데 구하지도 못하는 세상이 됐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인간다운 삶은 고사하고 저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의 생존권마저 지키지 못하는데 무슨 변명이 가능하겠습니까.


촛불들고 노래 부르는 동안, 당연히 찾아올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동안 저희는 끊임없이 패배해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철학은 물론 전략에서 태도까지 다 잘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의는 이긴다는 감상에 도취되어 주먹만 불끈 쥐면 형님의 영혼이 살아 돌아올 거라는 환상에 빠졌더랬습니다.


마치 저들이 냉정하게 펀치와 스텝을 가다듬고 나아가 심판을 매수하는 동안 저희는 씩씩거리면서 섀도우 복싱만 하고 있던 셈입니다. 샌드백도 한 번 치지 않으면서, 이 주먹 한 대만 맞으면 다 나가 떨어질 거라고 호언장담하면서요. 형님 계셨으면 그 꼴 보면서 뒤통수 한 대 갈기면서 말씀하지 않았을까요. '야 이 미친 놈들아. 그렇게 간단한 일 같으면 내가 왜 그랬겠냐.'


그러게요.


형님, 이제 솔직히 고백할랍니다. 저희,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야구 감독 말마따나 노무현도 가고 김대중도 가고, 남은 저희들은 후보 선수도 안되는 그냥 바보천치였던가 봅니다.


미련하고 힘도 없는 저도 나름대로 5년 동안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이러이러하니 저러저러하다. 그러니 '우리는 그 정신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열심히 하자!'까지 쓴 글 만도 따지고 보면 스무 편은 되지 싶어요. 하지만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자고? 그 결론은 항상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아, 선거 이야기를 했지요. 다만 국민들이 ㅂㄱㄴ에 대해 저리도 동정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동시에 저들이 선거의 순수성마저 해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사실 몇 주 전에도 저는 선거에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는 글을 여기 썼었습니다. 무조건 해야되는 건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이걸 어쩌지요. 이제 형님의 억울한 죽음을 민주주의의 힘으로 승화시킨다 운운할 상황마저 지나갔습니다. 더 이상 어느 쪽이 이기고 뭐고 하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라 꼴이 어떤지 느낄 기회도 없던 어린 아이들, 형님 당선되던 때 젖먹이나 다름없던 녀석들 수백 명이 그 짧은 평생 동안 공부에만 내몰리다가 죽고 말았으니까요.


작년 김대중 대통령 4주기에 제가 쓴 글을 읽어봤습니다. 이런 표현이 있더군요.


더욱 무서운 점은 이걸 내버려 두면 결코 발목 정도나 빠지는 진흙구덩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3년 반 후에 사람 사는 세상 대신 이게 왔듯이, 방치해 둔 구덩이는 언젠가는 죽음의 늪이 되어 우리 모두를 머리 꼭대기까지 집어 삼키게 될 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을 저지르고도 제대로 비판 받지 않은 권력은 언제나 그래왔다. <원문 링크>


이걸 쓸 때만 해도 그 죽음의 늪이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습니다.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올거라고도요. 그런데도 형님,


저희는 아직도 뭘 해야 될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촛불은 ‘정치색’을 가졌다며 왜곡되고 폄하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종북세력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배후에서 저희를 조종하고 있다네요. 권력자들은 그렇게 저희를 짓밟으려 들고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 넘어 갑니다.


하지만 할 말이 없군요. 자만심에 젖어 그 단초를 제공한 건 바로 저희들이었으니까요. 우리도 우리지만 형님과 김대중 대통령님이 그 수괴로 낙인찍혀 있다는 사실 아십니까. 그럼에도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 항변조차 하지 못하십니다. 살아생전의 그 강단과 자부심으로 ‘아니다!’ 라고 말해 주실수만 있다면요.


죄송합니다 형님. 저희는 형님의 삶도 죽음도 지켜내지 못한 못난 후배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 스스로와 자식들의 목숨도 위태롭게 되고 말았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3.jpg


이제 사과는 드렸으니 떼 좀 쓸렵니다.


형님, 정녕 그렇게 돌아가셔야 했습니까...?


지난 5년 동안 늘 형님의 죽음을 이해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짊어진 무게가 얼마나 컸으면, 오해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렇게. 이제 하실 일 다 하고 삶의 멍에를 벗으셨으니 이제부터는 우리 몫이다.


아니에요 형님,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를 믿고 가시면 안되는 거였어요. 순진해서 선거에 지고 이용당한 건 저희가 원래 그러니 그런가보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모습을 보세요. 불의와 거짓, 죽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저희는 속수무책입니다. 때리면 맞고 잡으면 끌려가는 저희들을 보며 저들은 한껏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습니다.


형님, 저희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주저하면서 뭘 해야할지 모를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서성일 때 앞장서서 나서줄 사람 말씀입니다. 불 같은 신념으로 돌처럼 버텨주는, 최루액도 방패도 수갑도 막지 못하는, 나아가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도 타락하지 않은, 그래서 그 존재 자체로서 권위가 되는, 어떤 명분이라도 그 뒤에 불순함이 있다면 용서하지 않는, 세상에 요령과 타협의 기술만이 아니라 민낯의 정의도 분명히 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는,


형님같은 사람 말입니다.


4.jpg

형님, 이거 해 주셔야 할 때 아닙니까.


그 사람은 대체 어디 있습니까.


형님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이들이 이름과 얼굴을 들이 밀었습니다.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 포함해서 모두들 새로운 정치, 변화, 꿈, 사람, 복지 등등을 떠들었죠. 그래서 저희들도 여기에 기대보고 저기에 환호해 봤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라면 혹시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젠 그런 꿈마저 사라져 갑니다. 보셨는지 모르지만 세월호라는 배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어갈 때, 그 곳에 리더는 없었습니다. 배의 리더나 사건 수습의 리더는 물론이거니와, 그런 모습을 준엄히 꾸짖으며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는 이조차 없었습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더군요. 한 마디 했다가 욕먹지 않을까, 여기서 내가 끼어드는게 맞나.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지 말자. ‘가만히 있자’.


물론 여러 생각이 있었겠지요. 나도 죄인이라는 성찰에서부터 시시한 계산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그 입장도 다를 겁니다. 하지만 형님,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 잘못된 것에 대해 용기있게 진심을 드러내는 사람만이 국민을 감동시키고 이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것이 진짜 리더의 덕목 아닙니까?


자신이 없어서, 욕 먹기 싫어서, 선동한다고 비난받기 무서워 할 이야기 못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서 저희가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토요일, 국민 수만 명이 촛불들고 모일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백여 명의 시민이 두들겨 맞고 닭장차에 끌려 갈 때 그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은 어디 있었냐고요.


5.jpg

형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마, 그런 리더가 없어도 이제는 시민들이 직접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형님은 생각하셨겠지요. 그래서 훌훌 털어버리고 가신 게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는 제대로 깨어있지도 조직화돼 있지도 못한 거 같아요.


형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형님 돌아가시고 석 달 만에 김대중 대통령도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 정권 10년을 이끈 두 분이 한꺼번에 가신 거에요. 당시에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지만, 5년이 지난 이제는 알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예. 말씀드린대로 저는 지금 떼를 쓰고 있는 겁니다. 이런다고 형님이 살아오실 수는 없죠. 아니, 실은 생전에 형님의 의미와 가치를 잘 모르고 국민 전체가 형님께 악다구니를 썼었죠. 그래서 그렇게 보내 놓고 잘난 척은 다하다가 결국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이 난리입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드릴렵니다. 형님의 기억을 통해 저희가 진짜 리더를 찾아내는 현명함을 갖도록 해 주세요. 형님이 가졌던 의미를 되새겨서 이 엄혹한 시대를 끌고 갈 인물들을 찾아 그 소임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저희도 언제까지나 형님만 그리워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권력자가 국민을 향해 몽둥이를 치켜들 때 그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 만큼의 강단과 결단력이 없는 자는 리더가 아닙니다. 서로 목숨을 맡길 정도의 믿음과 존경이 없으면 그건 동지가 아니고요. 굳이 형님 곁에 있던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분들이 있지만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겠지만 세상이 계속 이렇게 간다면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 그분들께 부탁을 드릴 날이 머잖아 올 겁니다.


답답한 맘에 이야기가 길었군요. 이렇게 형님 기일마다 글 쓰는 것이 일종의 의식이 되어 갑니다. 마, 매년 애써 보여드렸던, 어쩌면 공허했던 결기와 패기 대신 이번에는 하소연이나 드렸습니다. 예,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좀 암담함니다. 하지만 내년 오늘은, 그리고 그 다음 오늘은 올해보다 조금씩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도록요.


형님, 보고 계시오? 우리 이만큼 왔소.


어떻소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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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