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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28. 수요일

전직 방송작가 김현철(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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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집집마다 있는 TV는 물론이거니와 스마트폰으로도 TV 시청이 가능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TV 방송이다. 세상의 소식을 전해 주는 뉴스,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쇼 프로그램,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드라마 등 TV는 그야말로 우리의 삶 속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TV의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걸 만드는 PD나 작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동안 방송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을 비정규직이라는 관점으로 이 지면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방송작가 직종 특성과 고용 형태

 

방송작가를 분류하자면 프리랜서에 속한다. 극소수의 정규직 작가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프리랜서다. 프리랜서 작가라고 하면 혹자는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고 집이나 카페에서 자유롭게 원고를 써서 넘기는 편한 직업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의 모습을 살펴보면 크나큰 착각이다. 방송사와 프로그램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개 지상파, 종편, 케이블, 라디오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상근 프리랜서’라는 말을 쓴다. 즉,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계약직이냐? 그것도 아니다. 프리랜서인데 회사에서 출근하라면 출근해야 하고 퇴근하라고 할 때 퇴근할 수 있는 요상한 직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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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만들어가는 방송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았다는 

평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방송작가가 고용되는 형태는 대개 이렇다. 신규 프로그램의 제작이 결정되면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는 메인PD, 메인작가들이 자기와 같이 일할 제작진을 모은다. 인터넷의 구직란에 공고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으레 그전에 인맥을 통하여 알음알음으로 제작진이 구성된다. 주로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는 PD나 작가들이 합류하게 되고 빈자리를 공고로 모으는 형식이다. 이렇게 제작진이 꾸려지면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면 채용일로부터 마지막 방송 예정일까지 계약서를 쓰면 되지 않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필자도 계약서를 쓴 적이 없고 경력 많은 메인작가 급의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계약서를 썼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으니 일자리가 안정적일 리가 없다. 일을 못하거나 눈 밖에 난 경우에 “내일부터 더 이상 나오지 마라.”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해고당한 것이다.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반대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거나 사정이 생겨서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에는 당장 그만둘 수 있게 놔두질 않는다.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그만두기 전에 대신 일할 후임자를 구하고 가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끼여 들들 볶이게 된다.



불안정하고 비상식적인 보수 체계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방송이 죽느냐 사느냐’에 따라서 ‘임금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리기 때문이다.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일부 막내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바우처’라는 용어를 쓰는데, 흔히들 생각하듯 한 달 일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한 것이 담긴 내용이 TV를 통해서 나갔을 경우에만 보수를 받는다. 만약 어떤 휴먼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두 달 동안 사례자를 찾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마쳤는데 마지막 시사에서 “이것 방송 못 보낸다.”라는 결정이 나면 두 달간 일한 것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방송사나 제작사가 그에 대한 임금을 일절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수고비라는 명목으로 지급하는 제작사들도 100% 지불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위의 경우는 보통 ‘입봉’을 한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작가들에게 통용되는 상황이고, 경력이 적은 막내작가들은 대개 월급의 개념으로 임금을 받는다. 그렇다고 막내작가들이 고용과 임금에서 안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막내작가들의 임금 수준은 적게는 한 달에 80만 원에서 많게는 140만 원까지 받는다. 보통 경력이 아예 없는 막내작가의 경우 한 달에100만 원 정도를 받는데, 임금의 기준이 2014년 기준 최저임금인 시급 5,210원으로만 계산하면 1주일에 5일 출근하고 하루 10시간 정도 일하면 받을 수 있는 정도다. 문제는 하는 일의 양에 비해 현저히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막내작가 시절은 여러 프로그램을 전전했던지라 여러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들을 겪어 봐서 근무 환경이 천국인 시절도, 지옥인 시절도 있었다. 평일 낮 12시에 출근하여 점심 먹고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하루 5시간 근무인 곳에도 일해 봤고, 일요일 낮 9시에 출근해서 금요일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곳에서도 일해 봤다. 방송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있어 단순히 근무시간으로 임금을 계산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겠으나, 초과근무시간이 월등히 넘어가는 상황에 대해서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 또한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그래서 막내작가들끼리 모인 곳에 가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작가 안하고 그 시간에 편의점 알바를 했어도 한 달에 200~300만 원은 벌었겠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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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작가라고 하면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원고를 쓰는

편한 직업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제멋대로인 노동환경과 변하지 않는 현실


일도 힘들고 박봉인데 사람한테까지 치이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 신입이라 아무 것도 모르는데 이 바닥에서 세월의 풍파를 겪고 잔뼈가 굵은 선배님들이 이것저것 시키면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답답하다. 여기저기 전화하랴, 인터넷으로 찾아 보랴, 이리저리 정신없이 다니다가 화장실에 잠시 갈라치면 또 찾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막내작가의 현실인데 일처리가 빠르지 않거나 윗사람이 보기에 답답한 구석이 있으면 눈 밖에 나기 십상이다. 매번 혼나고 불려가서 꾸중 듣고 그러다 “너랑 이제 일 못하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로 해고당하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 힘든 나머지 막내작가가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절대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바로 전까지 잡아먹으려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서 붙잡아 두려 한다. 막내작가가 나가면 방송콘텐츠를 만드는데 기초가 되는 자료를 찾을 사람이 없어서인데, 그래도 짐 싸들고 야반도주를 하는 막내작가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소위 ‘주홍글씨’가 새겨져 다른 프로그램에서 일하기가 힘들어진다. 일 처리를 못한다는 꼬리표가 붙어서 자신을 해고한 곳이나 뛰쳐나온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야 비로소 새로 일할 수 있다. 그러면 얼마 받지도 못한 월급에서 쥐꼬리만큼 모아놓은 것을 새 직장을 구하는 동안 야금야금 갉아먹는 생활을 한다. 새 직장을 구할 때면 다시 0에서 시작하거나 이미 마이너스라서 한동안 생활고가 계속 된다.


필자가 겪은 방송판을 돌이켜 보면 마치 군대 같다. 선배들이 흔히 말하는 얘기가 “나 때는 더 힘들었다,”, “나 때는 너처럼 그러지 않았다.”라는 거다. 물론 선배 작가들이나 PD들이 그동안 방송제작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하여 노력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0여 년 동안 물가는 올랐지만 임금은 전혀 상승하지 않았다. 지금이나 10여 년 전이나 임금테이블은 정해진 기준 그대로 따르는 걸 보면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위에 부정적인 점들만 열거해 놓아서 방송업계가 막장 중의 막장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방송은 멋진 일이다. 종사자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긴 해도 자신의 직업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방송일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보람이 있다. 갖은 고생을 해도 방송이 나가면 언제 고생했느냐 는 듯이 뿌듯하기만 하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우선 고용의 불안정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자기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당장 그만두라는 말 한 마디에 일한 대가도 받지 못한 채 나간다면 아주 불합리한 것이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고용계약에 대한 내용을 반드시 문서로 남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제작비의 지출을 줄여 인건비로 돌리면 방송 업계 종사자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 본다. 예를 들면 하루 커피 값 한 달 치나 쓸데없는 야근을 해서 나가는 저녁 식비를 그냥 임금에 포함시키는 정도 말이다. 만 2년이라는 짧은 경력의 방송 풋내기가 뭘 그리 알아서 지껄이느냐 고깝게 보실 지도 모르겠지만, 방송업계의 관행에 오래 물들어있지 않았기에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 방송업계에 종사하는 선후배, 동기분들의 발전과 질 좋은 프로그램이 거듭 탄생하기를 빌며 이 글을 마친다.





편집부 주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비정규 노동>에서 

본지 편집부가 발췌한 글입니다.



좋은 글을 널리 알리고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기사 제휴하였기에 

추후 좋은 글을 선정해 

본지에 틈틈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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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기원합니다.











전직 방송작가 김현철(가명)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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