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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02. 월요일

K리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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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벨기에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서 벨기에와 한국을 저절로 비교하게 된다.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5년 동안 가르쳐왔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많다. 그리고 이는 벨기에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것들과 비교하면 내 아이들을 어디서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큰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내가 벨기에에서 보냈던 학창시절은 좋은 추억만 남아 있는, 그야말로 즐기면서 보낸 시기였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큰 걱정거리 없이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면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르다. 자유라는 것은 학생들한테 금기시되는 주제다. 내 아이들이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하지만 한국에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벨기에로 돌아가면 분명히 내가 우울해질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행복하단 말이다. 난 어떡해야 하나?


난 한국을 부정적으로 비판만 하는 외국인이 절대 아니다. 어떤 주제가 됐든지 한국과 유럽의 문제를 함께 지적하지만 이번에는 안 되겠다.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들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교육제도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달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한국 교육제도를 다르게 평가할 수 있겠다. 교육이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의 교육제도가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교육이 아이들의 행복을 배양하고 행복의 초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의 교육제도는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통계를 살펴보자면, OECD는 교육에 대한 연구를 주관하는데 이를 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PISA 2012 Results in Focus)라고 한다 . 2012년에 65개국 중에서 16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한국과 벨기에의 상황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수학, 과학 및 읽기에서 한국 학생의 실력은 벨기에 학생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학교에서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학생의 비율이 벨기에에서는 85%에 가까운 반면에 한국에서는 겨우 60%밖에 안 된다. 심지어 한국의 학생들은 연구된 65개국 중에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벨기에 학생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등 소위 ‘못사는 나라’의 학생들이 한국학생들보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한마디로 한국 학생들은 학습능력은 좋지만 불행하다. 그에 반해 벨기에 학생들은 한국학생들에 비해 학습능력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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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한국학생도 분명히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은 학생들의 주된 사망원인이 자살인 유일한 나라다.(Suicide No.1 cause of death for younger people) 왜 그럴까? 학창시절은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어야 하는데 한국학생들은 왜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1. 자유시간이 부족하다.


먼저,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일반적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커피를 마시고 학교에 갔다. 8시 15분부터 12시 30분까지는 오전 수업시간이다. 점심 시간은 1시간이 넘었고, 학교바깥에서 자유롭게 보냈다. 오후는 1시 45분부터 3시 30분까지 수업하고 끝이었다. 수요일에는 오후 수업이 없었고, 토요일에 학교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30시간 정도만 학교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온전히 학생들의 자유시간이었다. 주말은 제외하고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잔다고 가정하면 깨어있는 시간은 85시간인데, 그 중에 30시간은 학교에서 보내고 나머지 55시간은 자유롭게 학교 밖에서 보낼 수 있었다. 즉, 벨기에 학생의 평일 잠재적인 자유시간은 65%이다.


그럼 일반 한국 고등학생의 일상생활을 보자. 6시에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 간다. 7시 반부터 자습을 시작으로 긴 하루가 시작된다. 9시부터 1시까지 수업시간이고 끝나면 바로 점심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 보통 점심시간에는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 식당이나 교실에서 밥을 먹는다. 오후에는 2시부터 4시까지 수업을 한 뒤, 30분 동안 다 같이 학교 청소를 하고 나면 또 수업을 한다. 6시에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7시부터 10시까지 ‘야자’를 한다. 밤 10시부터는 자유시간이지만 곧바로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다시 말해서 하루에 14시간 30분, 평일 70시간 넘게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유시간은 겨우 18%인 15시간인 셈이다. 학원을 다니는 경우에는 그나마 있는 자유시간도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자유시간의 부족은 한국학생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첫 이유라고 본다. 자유시간이 생기면 그 만큼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는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게임도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이나 취미를 찾을 시간도 생긴다.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조화를 이루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됐든 해야 하는 것만 하다 보면 하기도 싫어지고 하고 싶었던 것을 못하게 되면서 동시에 삶의 의욕도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것만 하다 보면 해야 할 의무도 잊은 채 게을러진다. 한국 학생들은 게으르지는 않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남몰래 하거나 아예 못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차츰 포기하고 자기가 해야 되는 것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 학습능력은 좋지만 불행한 학생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자유의 이면도 있다. 자유의 이면은 자유시간에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 중에 ‘나쁜 행동’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성과는 자유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난 술과 대마초를 중3 때 시작했다. 이러한 ‘일탈’에 대해서는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도 않다. 돌이켜 보면 그저 내가 누리던 자유의 대가였을 뿐이다. 자유 덕분에 행복했고 자유 때문에 실수를 했다. 그러나 실수하는 것 자체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받는 교육에만 제한되지 않고 직접 겪는 경험도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있어 자유는 불이라고 할 수 있다. 옆에 있으면 따스해서 좋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현재의 추위에 익숙해져 체념하게 된다. 한국 학생들에게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불에 아예 못 가게 하는 것이다. 보호의 명목 아래 아이들을 우리에 가두게 된다. 다치지 않고 안전하지만 불의 따스함도 느낄 수 없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불이 어떻게 위험한 것인지는 모른 채 그냥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안 가는 것이다. 벨기에에서는 불에 가는 것이 자유롭기 때문에 다쳐서 화상을 입고, 아파서 우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통해서 불과 자신과의 맞는 거리를 찾는다. 실수를 하고 다쳐서 힘들지만 결국엔 불의 따스함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로 자유롭게 살아야 되는데 매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자아실현은 긴 과정이고 보통은 학창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를 쓸 줄 알려면 일찍부터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모른 채 그저 남의 뜻대로, 혹은 사회 압력에 따르며 고분고분하게 살고 말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자유시간은 그 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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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험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벨기에의 교육 제도를 먼저 설명해야겠다. 첫 학기의 시작은 9월이고, 12월에 중간고사를 본 후 2주 동안 겨울방학이다. 1월 중순에 수업이 다시 시작되고 6월에 기말고사를 본다. 1년 동안 2달마다 성적표가 나오는데 학생들은 과목별로 평가를 받는다.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1년 동안 받은 성적표를 토대로 전체 평가가 나온다.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여부는 그 마지막 성적표에 달려 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과목은 8월에 진급 시험을 따로 봐야 되기 때문에 1년 동안 꾸준히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여름방학 때 공부해야 된다. 학생들에게 여름방학 때 공부하라는 것은 지옥이다. 벨기에의 여름은 날씨가 제일 좋은 때이기에, 친구들이 밖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동안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은 최악의 처벌이다. 설상가상으로 진급시험마저 떨어지면 유급되어 새 학기가 시작하는 9월부터 후배들과 같이 수업을 들어야 되고 졸업도 1년 늦어진다. 학생들이 꾸준히 공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름방학과 진급 때문이다.


한국, 프랑스와 달리 벨기에에는 수능이나 대학교 입학 시험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만 하면 대학교에 등록할 수 있다. 1년치 등록금은 전공에 상관없이 835 유로, 즉 130만 원이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대학생 수가 많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졸업하기는 ‘졸라’ 어렵다. 1학년 때 시험은 하도 어려워서 많은 학생들이 시험에 떨어져 대학교를 포기한다. 선발은 입학시험이나 재력을 따져서 하는 것이 아니고 대학교에서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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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고등학교에서는 시험의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시험에 떨어지면 미래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름 방학을 망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좋은 점수가 안 나와도 의대나 법대에 갈 수 있다. 한국의 수능처럼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시험이 없기 때문에 잘못한 것은 언제든지 실점을 만회할 수 있다. 잘못해도 된다. 꼴등이 되더라도 창피할 것은 없다. 한국에서는 대학교, 취업, 명예, 연봉, 행복, 미래의 모든 것이 수능에 달려 있다. 학생들보다 학부모들이 더 수능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학생들은 수능공부 때문에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새벽 2시에 잔다. 수능공부는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에서도 계속되기 때문에 지나친 사교육 문제도 생긴다.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고 친구는 경쟁자가 된다. 자유시간이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놀게 되면 죄책감이나 불안감이 생긴다. 수능 때문에 아이들은 고3병이라는 이상한 병이 생긴다. 그러나 수능 덕분에 공부를 잘 한다! 좋겠다.


시험이 주는 긴장감은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유익하지만 지나친 긴장감으로 인한 불안, 신경과민은 학생들한테 해롭다고 생각한다. 또한 수능에 대한 집착은 행복의 기준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얼마 이상의 연봉을 받는가에 달려있다는 잘못된 환상에 기인한다. 한국 학생들은 쓸데없는 스트레스에 휘말려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3. 남녀공학은 필요하다


벨기에에서는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 고등학교들이 남녀공학이며 남녀합반이다. 교육부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62%의 고등학교들이 남녀공학이지만 남녀합반은 소수이고 대부분이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성과 같이 수업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학교에서 이성친구를 못 만나는 것은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난 학창시절에 같은 반에 예쁜 여자친구가 있어서 수업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비록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선생님들의 잔소리, 시험에 떨어질 것 같은 압박과 하루 종일 하품만 나오는 지겨운 일상이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학교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아니, 행복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는 인사할 때 서로 볼에 뽀뽀를 하는데 나는 중학교 때 예쁘고 인기가 많은 여자친구들이랑 인사할 때마다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졌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사춘기 때 이성친구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음에 들면 고백하고, 거절도 당해보고, 또 새로운 이성친구를 만나기도 하면서 학교에 가는 시간이 설렜다. 난 그러한 것들 때문에 학창시절을 즐겼다고 할 수 있다. 난 변태인가?


남녀공학은 연애감정뿐만 아니라 많은 장점들이 있다. 여자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행동을 주의하게 된다. 이성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할 수도 있고 폭력이나 욕 같은 나쁜 행동도 자제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기도 한다.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서로에서 영향을 주면서 이성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남녀공학은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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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은 아직 멀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남녀공학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 했지만 남녀공학을 다니는 학생들의 수능성적이 비교적 낮다고 지적하면서 남녀공학의 단점에 대한 기사밖에 없었다.() 이런 연구에서 이성친구는 학생이 공부하는데 지장을 주는 존재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자유시간의 부족과 남학생과 여학생을 나눠서 수업을 듣게 하는 것은 단지 수능을 위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다. 난 새로운 연구를 권유하고 싶다. 남녀공학이 수능점수에 주는 영향이 아니라 행복지수에 주는 영향이 어떤지 말이다. 그런 연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 의견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남녀합반은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학교폭력은 낮아지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4. 관건은 부모들이다.


난 고백해야 된다. 나도 1등 지상주의 아래서 자랐다. 교육제도나 시험 때문은 아니지만 부모님 때문에 그랬다. 초등학교부터 1등을 해야 했고 1등을 못하면 부모님이 크게 실망했기 때문에 실망을 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부모님의 욕심은 어느새 내 자신의 욕심이 됐고 어떻게든 1등을 해야 됐다. 물론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는 내 마음대로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1등에 대한 집착은 이미 내면화 돼버렸다.


내 요점은 아무리 교육제도가 그러니 어쩌니 해도 부모님의 역할이 핵심이라는 거다. 난 느슨한 교육제도 아래 엄격한 부모한테서 자랐어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자유를 억압하는 교육제도와 엄격한 부모한테 키워진 학생들은 오죽하겠는가?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의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고 싶다면 집에서만큼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야 한다. 이미 학교에서 충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집이 스트레스의 피난처가 된다면 그나마 아이들은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의 육아와 교육은 아이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태어날 때부터 12살까지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인성을 좌우한다. 만약에 부모들이 5살 된 자식한테 사자를 호랑이라고 하면 아이한테 사자는 호랑이가 된다. 만약에 부모들이 10살 된 자식한테 1등을 해야 나중에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얘기한다면 아이들은 그대로 믿을 것이다. 부모들은 흔히 말한다. “지금은 공부하기가 지겹겠지만 버티면 나중에 보람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불행해도 나중에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 테니까 그 때는 행복하게 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큰 오해라고 본다. 첫 번째 오해는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가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오해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해도 행복하게 살게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공부가 힘들고 지겹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그림 그리는 게 좋다면 그림을 그리고 노래 부르는 게 좋다면 노래를 부르면 된다. 반면에 공부가 즐겁고 취업 경쟁의 스트레스도 쉽게 버틸 수 있다면 대기업에 취직해도 좋다. 내 요점은 지금의 불행을 버티면 나중에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바꿔야 나중에 행복해 질 거라는 뜻이다. 학교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불행하다고 해서 자퇴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단지 자기 나름대로 공부하고 학교 생활에 충실하되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려면 부모들이 도와줘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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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겪은 일화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등산을 하다가 정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내 옆에 어머니 두 명과 여자애 서너 명이 놀고 있었다. 11살 된 여자 아이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Hello’라는 인사로 시작해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너 결혼 할 거야?

 

네!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키가 크고, 대기업 다니고, 돈 많이 버는 남자랑 결혼할 거예요.


사랑은?

 

사랑 필요 없어요! ㅋㅋ

 

그래? 그럼 생각해 봐. 남자가 두 명 있어. 첫 번째 남자는 대기업 다니지만 하도 바빠서 조금밖에 못 만나, 그리고 돈은 많이 버는데 널 잘 안 챙겨줘. 두 번째 남자는 대기업도 안 다니고 돈도 별로 없지만 널 미치도록 사랑하고 잘 챙겨줘. 어떤 남자 고를 거야?

 

(서슴없이) 대기업!

 

그래?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괜찮아?

 

네! 돈 많이 있으니까…….

 

잘 안 챙겨주면 어떡할래?

 

음……. 아! 부자와 결혼해서 돈을 충분히 챙기고 잘 챙겨주는 남자랑 재혼할거야…….

 

(충격) 예리하네…….



참고로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나눈 대화였다. 그 날 나는 한국의 교육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사고방식과 교육관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제도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교육제도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교육의 목적이 경제와 시장이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 교육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없지만 자아실현을 이루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라면 한국의 교육제도는 개혁이 필요하다. 학부모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불행한 1등보다 행복한 꼴찌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행복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학생들의 자유시간과 남녀공학을 늘리고 교육제도 개선으로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감소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변화들은 학부모들의 생각이나 관념이 바뀌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부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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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