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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18. 수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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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백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1>

반 백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2, 上>

반 백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2, 下>








일단 반도체 관련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보고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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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amsungsemiconstory.com/20


삼성이 남기고 싶어서, 남겨야만 해서, 남기려고 만든 스토리니깐 결국 역사에 이렇게 남을 거야. 


거니제가 반도체 '합시다' 그랬대. 그리고 병철씨는 '올인' 했고. 


책에도 했다고 써있고, 언론도 했다고 인정했는데 반박할 자료도 없고 논리도 없고 내가 삼성 금고에 얼마나 들어있는지 몰라서 뒤로 오간 돈이 있는지 없는지 셈도 못 하니까,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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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난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수학여행으로 남해대교를 보고 그러면서 살고 있었어. 송광사에서 북치는 스님보고 멋지다는 생각을 해서 북치는 걸 배워볼까도 했지. (하지만 돌아온 고향 조그만 절엔 북 따윈 없어서 결국 스승구하기는 실패. 북치는 내 미래는 소멸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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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 소멸과 야만의 시대


그런데 이 1982년은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어. 서로 더 큰 빽을 엮어서 무주공산 먼저 찍든지, 이미 차지한 놈 센타까든지, 해서 갈취하던. 그래서 한참 뒤에 출발한 대우그룹의 전성시대였기도 해. 대우는 당시 짭짤하게 돈 되는 기업들 중 오일쇼크로 혼수상태인 애들 쏙쏙 잘 뽑아먹어 계속 커졌고 1983년 새한자동차를 인수하기도 했지. 반면, 삼성은 경쟁 순위의 현대나 대우에 비해 빠른 승계를 스타트하기 위해 작업 중인 시절이었기에 어찌 보면 활동적인 부분은 좀 적었지.


그러다 보니 더 욕할 게 줄어들어. 빨아줄 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1982년 삼성은 일본 오사카 10등쯤 부자에 비해서도 처지던 한마디로 개 좆도 아닌 기업, 즉 듣보잡이었기 때문이야. 흔한 어글리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만드는 하나의 가전기업이자, 일본 제품 홀라당 베껴먹기 플러스 주요 기술자들을 돈과 기타 방법을 동원해서 스카우트 해와 기술과 공장 운용 효율을 높이던 뭐 그런 처지였지. 반도체에 올인을 결심하기 직전이고 그 올인의 규모조차 제대로 조사해서 보고할 인재도 없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고만고만한 놈들 사이에선 선두권인데 그런 녀석들 서울로 데려가봐야 SKY는 커녕 지방 국공립이나 겨우 들어갈 도서지역 섬마을 수재급?


1982년 당시에도 일천한 한국 땅에서 이만큼 큰 건 기적이라며 자화자찬질을 해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의 현대는 남미에 겨우 수십 대 팔고 '최초의 수출'이라며 감격하던 때였고 덤핑에 싸구려의 화신으로 미국과 그 얼라이언스 국가에서나 팔아주던 경공업 제품과 섬유가 주요한 수출품이던 상황을 생각하면 뭘 비판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 막상 세계로 스케일을 늘려보면 그때의 삼성은 허무하게 언급 가치도 없는 기업이 되어버리는 거야. 카세트 레코더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서 중동 노가다 파견 나갔던 애들 들어올 때 양손에 소니 카세트플레이어 박스 딱! 작은 포터블 티비 박스를 딱! 들고 들어오면 웃돈 주고 얼른 사 가던 브로커들이 있던 시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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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삼성 제품군에는 선풍기도 있었어. 3일도 못 가서 목이 부러지는 저질 품질로. 덕분에 이후 30년 간 여기 꺼 안 사겠다는 결심을 내게 심어준 기업.


AS의 삼성이기 전 시대. 품질이 개판이어서 AS라도 쓸데없는 자존심 안 부리고 친절하게 해주는 게 당연한 기업 정도로 기억하는 시대인 거야.


그런 삼성의 비판 포인트는, 내 생각엔 이래.



1. 나라를 위해 사업한 게 맞다면 정말 지금이 최선인거냐?


2. 아들에게 뭘 가르쳐놓은 거냐?


3. 우동집 하나 차리지 그랬냐?



이 세 가지로 압축될 거 같아.


21세기가 10년도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 1982년을 바라보며 삼성의 잘못을 논할라치면 순결한 편이고 순진한 편이며 덜떨어진 얼라한테 성교육하는 기분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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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뭘했든 그냥 귀여워.


다만 돈이 꽤 많았고 정권과 살짝 빗겨나서 삐진 적이 있었지. 그래서 자연농원이나 살살 키우고 도굴꾼들 전국 땅에 꼬챙이 꼽아 금붙이 나오면 얼른 장물 인수해서 상속세를 아낀 것도 이해가 가고. 나였어도 여건이 되면 그런 절세방법(?) 썼을 거야. 이따위 나라에 세금 제대로 내면 등신인 거니깐. 게다가 80년대 체제에서는 내라는 세금에 정치자금 다 내고 사업하란 소리는 깡패를 하든 고리사채를 놓든 하라는 소리랑 같은 거니깐.


그렇다고 해도, 세상을 보는 눈도 어느 정도 있고 일본 지인을 통해 정보도 빠른 편이었으며 나름 시대의 흐름에서 돈맥도 본다는 사람의 사업 세팅이 1982년까지 여윳돈이 있음에도 보수적인 사업만 했다는 것은 좀 비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나라를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면 "왜 기간산업에는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었냐"라고 비판할 수가 있는 거지. 비료에 화들짝 털려서 그럴까? 


경험, 지식, 사업관리 수준으로 볼 때 50% 미만의 집중을 했던 듯 보이는 이병철의 1982년. 난 그게 아쉬워. 더 빨리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할 수도 있었어. 굳이 일본이 개발해서 우려먹은 순서대로 천천히 가전을 따라 하지 않고 말이야. 비슷한 스피드로 출시했어도 될 제품들을 단계 별로 천천히 리플레이하듯 우려먹은 점과 유통을 하며 금융기능까지 추가한 건 좋은데 알게 모르게 고리사채를 돌린 거나 다름 없는 자체 할부 시스템을 채용한 점 또한 비판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1982년 로스구이 겨우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던 이들이 중상층이었던 시절인데 좀 너무한 거 아니었을까? 


1달 1로스구이도 못 챙겨먹는 사람들이 전 국민의 70%가 넘던 시절. 가전제품 하나 사면 할부금리는 연 12% 이상 때렸어. 그나마 표시가 그렇고 제값 이상을 받던 독과점 체제의 이점으로 보면 연 30%가 넘었을 고리 할부를 운용한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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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도 그런 체제가 아직 살아있는 필리핀에서 살다 보니 거꾸로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필리핀과 우리나라에는 조건의 차이가 있어. 여긴 배 째는 애들이 많고 즉흥적이라 유실률이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한국은 품위, 체면, 강박 3요소를 갖춘 어여쁜 소비자니깐 확실히 고통스럽더라도 다 갚아나가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인 거지. 병철씨는 꼭 그 힘든 시절 다 벗겨드셔야 했을까. 이제 대답도 못하겠지만.


그런 섭섭함이 있기에 비판해보는 거지. 그게 최선이었을까,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삼성을 기업으로 바라본 게 아니고 애국심도 섞어서 봐줄 수밖에 없던, 더구나 다른 회사 거 사려해도 수입품 제한 때문에 쉽지 않았던 시대에 말이야.


그리고 가장 총명하진 않았으나 소질은 좀 있고 남의 말 잘 듣고 생각하는 훈련 좀 시켜놓아 쓸만했다던 거니제에게 삼성을 물려줬다면 왜 '국가원수랑 맞짱을 떠서 굴복하지 않는 기개(뭐, 원래는 바짓가랑이 쪽쪽 빨며 사정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드라마 보면 호텔방에서 폼나게 말로 설득하길래 하는 얘기야)'와 '시대의 흐름과 권력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서 사정기관 따위를 두려워해 몰빵으로 기관 전체를 매수하려는 무모한 짓을 시도하지 않을 지혜'는 가르쳐 놓지 않은 거야?


삼성이 돈을 많이 벌고 비싸게 물건을 팔고 국민을 개 좆으로 보든 노예로 보든 다 좋아. 대부분 다른 기업도 그러고 살 거든. 근데 삼성이 오늘날 가장 큰 암흑기를 국민에게 선사한 원인은 아주 기본적인 정의와 법 앞에서의 평등-그것이 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라도- 그런 걸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돈에 푹 절여진 파김치들을 보여준 데에 있어. 이건 뭘 의미하냐면, 적어도 인간으로서 훼손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이미 오래 전부터 허상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라는 허무한 포기를 학습시켰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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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IMF 이전 꿈꾸던 것들, 열심히 성실하게 미친 듯이 일하면 적어도 먹고살며 공부시키는 정도쯤 빚 안 지고 가능하던 시절에 대한 기대, 그런 게 서민의 삶이었거든. 그리고 그렇게 몇 세대가 희생하며 노력하면 다음 세대는 더 나은 곳에서 출발하고 언젠가 누군가의 노예이거나 얕보이는 위치가 아닌 곳에서 출발한 후손이 근시일 내에 나올 수 있다는 희망. 그런 게 있어야 자유민주주의의 로망이 제대로 포지셔닝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잖어. 


근데 삼성은 영원히 그렇지 않겠지. 개인의 성실과 노력으로 얻는 가장 지고한 자리인 사법기관,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자리에 가도 그냥 한 마리의 개고, 말 잘 듣는 고양이밖엔 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먹이라도 받아먹지 않으면 좌천되고 승진도 못해서 최고자리에 오르지 못 할 거라는 것. 적절히 더럽고 약점이 오고 가야 수장의 자리로 갈 수 있는 세상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 주인공인 셈이야.


이게 삼성의 가장 근원적인 죄야.


돈은 삼성 너님 자식새끼들보다 필리핀 재벌이 더 부자래. 차명으로 감춰뒀대도 그래 봐야 푸틴 못 이기잖어. 부자는 많아. 돈이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우와~많다'하지 가장 많다고 가장 미워하지는 않지. 그 부가 내 평화와 꿈을 앗아간 대가처럼 보일 땐 욕을 하는 거고.


1982년 시점이야 별거 아닌 후진국 기업 중 하나니 책임도 그만큼 가볍지. 다만 자식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해. 이상한 짓거릴 하게 교육시켜 놓은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망조 대부분이었음을 혼이 흩어지는 중이라도 미안하게 생각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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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처럼...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공수해 먹었다는 우동집. 거기 어디인 거야? 삼성 사보와 사사 만드는 애들있음 위치 좀 띄워 적어놔롸. 다음에 일본 가면 한 젓가락 좀 하게.


그리고 그쯤 부자였는데 그냥 삼성본관 근처에 하나 만들지 그랬어. 가전제품 기술 빼오는 거보다 우동집 맛하나 베끼는 건 껌이었을 건데. 삼성본관 근처 콩국수는 참 좋아했지. 근데 일본에서 배달씩이나 해먹던 우동이라는 거, 참 궁금한데 어떻게 맛을 볼 방법이 없네. (호암 100주년~ 이런 거 할 때 우동집 좀 개업했음 싶어.)


1982년 삼성은 너무 비천해서 그 시점까지라면, 내게, 그리고 세상에 지은 죄라는 게, 오늘 날 돌아보자면 귀여운 수준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비판은 이쯤이 다야.


아, 혹시 빨아준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는데 뭐, 그래도 별수 없고.


마이마이도 못 만들던 시절 삼성선풍기를 정말 니들이 봤어야 하는데. 모가지 똑 부러지는 게 동급 제품 중 최고등급이고 AS하러 가면 사용과실로 수리비가 제품의 20%쯤이던. 그래서 그보다 10년도 더 전에 산 산요 선풍기에 만족하며 다신 삼성 제품을 사지 않는 집이 되었다가 10년 전, 아버지 친구 아들이 대리점을 차리는 바람에 티비세트와 몇몇 가전 사서 또 후회 중인 게 우리 집안이다. 고장 드럽게 잘 나. 내구도가 40년째 한결 같냐. 에이, 된장...


국산은 엘지 최고~







메이비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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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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