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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18. 수요일

편집부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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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19> - 스티브 잡스 (上)]








현실 왜곡장


스티브 잡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현실 왜곡장'이다. 이 표현을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매킨토시 개발 팀의 소프트웨어 설계자 '버드 트리블'로 「스타 트렉」에 나오는 용어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원하는 기한 내에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양의 일을 완료해줄 것을 지시하면서 팀원들에게 확신에 찬 눈빛과 어조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곤 했는데, 버드 트리블이 이것을 두고 현실 왜곡장을 떠올린 것이다. 잡스의 현실 왜곡장은 그와 함께 일했거나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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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가치가 그러하듯, 잡스의 현실 왜곡장 또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갖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긍정적 측면은 잡스의 현실 왜곡장이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는 데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현실 왜곡장을 사람들에게 펼친 흔적은 애플 초창기부터 잡스가 죽기 전까지의 오랜 시간 사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대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잡스의 지시가 자신들의 상식 선에서는 말도 안될 정도로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잡스에게 '홀려' 일단 수긍하게 되고, 그렇게 일에 매진하다보면 어느새 잡스의 주문대로 임무를 완수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잡스의 현실 왜곡장을 성공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통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없었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짜릿한 성취감과 보람을 맛보게 되었다. 


잡스를 뛰어난 리더라고 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러한 점을 근거로 그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스티브 잡스라는 리더가 팀을 이끌면서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강하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끝내 그것을 달성하여 팀의 성취를 이루는 것과 함께 개인의 능력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잡스의 리더십을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부분에도 양면성은 존재한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대인관계가 착취적이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잡스는 그저 부하 직원을 닥달하고 쪼아대서 성과를 쥐어짜는 리더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잡스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평범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더 높은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다그치고 채찍질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잡스의 리더십을 폄하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렇다고 착취형 리더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때의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언어적 메시지만을 전달한 것이 아니다. 상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과 확신에 찬 어조 등 그가 전달하는 모든 형태의 비언어적 메시지와 감정의 전달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정말 그 일을 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사람들은 잡스가 현실 왜곡장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를 대면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현실 왜곡장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상대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행위는 단순히 상대를 기만하는 것만으로는 성립되기 힘들다. 스티브 잡스의 현실 왜곡장처럼 사람들이 '알고도 당하는' 수준이 되려면 상대를 기만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행하는 스스로마저 기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펼치는 다양한 형태의 현실 왜곡장은 거짓말이면서도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나까지 그것을 믿어버리면 더이상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기꾼으로 먹고 살았어도 일가를 이룰 수 있었을 게다.


그래서 잡스의 현실 왜곡장은 그가 가진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특징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잡스가 가진 이러한 능력의 전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현실 왜곡장 뿐아니라 잡스의 전반적인 성격과 찌질함까지도 그런 면이 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잡스를 분석하는 데 있어 매우 쓸모있는 단초가 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잡스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을 무조건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아니며,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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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현실 왜곡장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은 주로 그것의 목적이 잡스 자신에게는 이로운 것이면서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때 종종 나타났으며 때로는 그것이 서로에게 모두 도움이 되지 않기도 했다. 잡스의 현실 왜곡장에서는 설령 반박의 근거가 명확한 과학적 사실일지라도 잡스의 비과학적인 확신 때문에 쉽게 무시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잡스는 젊은 시절 극단적인 채식과 단식을 반복하면 몸의 독소가 빠져나가 씻지 않아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냄새로 인해 고통 받기도 했다- 잡스는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 분야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에도 잘못된 정보로 상대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잡스의 현실 왜곡장이 가장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사례는 그것이 잡스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이다. 잡스가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다행히 그것은 종양 제거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자신의 몸을 여는 것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수술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는 수술 이외에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고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찾아 시도했다. 그러나 암은 확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잡스는 진단 후 9개월이 지나서야 종양 제거 수술을 받는 것에 동의했지만 이 때 시간을 끈 것 때문에 그의 췌장암은 완치되지 않았고 결국 시간이 흘러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나를 숭배하라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잡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든 우호적인 사람이든 간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 중 하나다. 대중 앞에 홀로 서서 사람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힘과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 프레젠테이션 흐름의 적절한 강약 조절 등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그 자체로 애플의 제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벤트이자 상징이 되었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지독하리만치 완벽을 추구했다. 리허설은 흡사 유명 가수의 대규모 콘서트 준비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하고 엄격하게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음향 효과나 제품 시연 등 한 치라도 미비한 점이 발견되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신제품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 행사는 애플과 애플의 제품에도, 그리고 잡스 자신에게도 무척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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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경영자 이상의 무엇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창의성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애플 제품의 아버지였으며, 예술가이자 장인이었다. 애플 제품 만큼이나 잡스는 그 스스로도 돋보였고 이는 잡스 스스로 원하는 일이었기도 했다. 타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즐기고 숭배를 요구하는 것 또한 자기애성 인격장에의 증상인데다 잡스에게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모두 있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애플과 스티브 잡스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 적어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통제욕 - 조직과 제품


다른 사람들에게서 숭배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향력이 어딘가에 끝없이 미치기를 바라는 욕망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스티브 잡스의 욕구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람들에 대한 통제욕이다. 잡스의 통제욕은 그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불화를 일으키거나 스스로 피해를 입는 경우 또한 잦았다. 잡스는 때로 다른 사람이 책임을 맡고 있는 팀에 월권을 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그 때문에 상대방이 회사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잡스 마저 애플을 떠나게 만들었다.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매우 공들여 애플의 CEO로 '모셔온' 인물이었다. 펩시콜라의 CEO였던 스컬리를 붙잡기 위해 잡스는 거의 구애에 가까운 공세를 펼친 바 있으며 스컬리가 애플에 부임한 이후 한동안은 꽤나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잡스는 스컬리와 충돌한다. 스컬리가 애플을 효과적으로 경영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잡스는 CEO직을 맡고 있는 스컬리에게 너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고, 스컬리가 없는 자리에서는 그의 권한을 너무 자주 침범하려들었다. 둘의 불화는 끝내 둘 중 하나가 떠나지 않고는 해결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사회는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아닌 존 스컬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스티브 잡스의 생에 있어 그가 겪은 가장 참담한 일을 꼽자면 아마도 이때의 사건이 될 것이다.


잡스의 통제욕은 조직을 넘어 그의 제품에도 실현되었다. 잡스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은 '우주에 흔적을 남기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진정으로 애플의 제품이 사람들에게 그동안 그 어떤 것으로도 해보지 못한 경험과 느낌을 선사하길 바랐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뒤따랐다. 잡스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까지 통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잡스는 애플 초창기부터 이용자들이 애플의 제품을 열어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 멋대로 애플의 제품을 어떤 방식으로든 변형, 확장하는 것을 원하지도 허용하지도 않으려했다. 스티브 잡스는 마치 창조주마냥 그가 창조한 세계의 틀 안에서만 사람들이 만족하길 바랐다. 그리고 이것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하나로 묶는 '엔드 투 엔드' 방식에 대한 잡스의 확고한 신념과 철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어느 한 쪽에 완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나로 묶어 함께 개발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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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통제욕과 함께 잡스가 추구하는 완벽성에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 완벽을 추구하는 잡스에게 있어 자신의 제품이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 없는 다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엔드 투 엔드 방식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잡스와 애플에 계속해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잡스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았고,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 확고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자신이 내놓은 제품 그대로의 상태에서 이용자들이 통제된-단어의 뉘앙스가 거슬린다면 '예측 가능한'이라고 바꿔 이해할 수도 있겠다-  경험을 통해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제품이 한없이 완벽에 가깝게 수렴해야 했기에 잡스는 개발에 있어 출시일이 늦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보다 나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과적으로 애플의 팬과 안티를 동시에 양산했다. 엔드 투 엔드 방식의 통제를 거부하고 개방성과 확장성을 추구하는 이용자들에게 애플의 제품은 독재 그 자체였다. 그러한 사람들은 애플의 제품과 철학을 모두 거부했다. 반면 애플 제품의 완성도와 매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것은 전자기기가 아닌 예술품과 다름 없었다. 애플 제품에 대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 호불호는 그대로 잡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으로도 이어졌다. 잡스가 사망하고 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뚜렷하게 엇갈린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필자가 추측컨데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차피 잡스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부류의 인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과거의 경험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힘 -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지금까지 계속 말해온,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특징을 기초로 한 스티브 잡스의 성격은 잡스에게 매우 훌륭한 강점이자 치명적인 찌질함이라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인식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그의 성격은 자신의 경험을 대하는 자세에서 가장 밝게 빛을 발한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인생에서 몇 가지 굵직한 사건을 경험한다. 그가 태어난 후 오래지 않아 입양되어 자랐다는 것처럼 몇몇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었으며 리드 대학을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청강생이 된 일, 애플의 경영진에서 쫒기듯 물러나 모든 주식을 팔고-정확히 말하자면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권한을 위해 딱 한 주는 남겨두었다.- 완전히 독립한 일, 그 뒤 설립한 넥스트가 실패하게 된 일처럼 그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일도 있었다.


2005년, 만으로 쉰 살이 된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연설을 남긴다. 연설의 요지는 간략하다. 그의 생에서 겪은 몇 가지 중요한 경험들, 당시에는 절망스럽기도 했던 그 경험들이 자신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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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중간 과정이야 어찌됐든 그가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자신의 경험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어차피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죽기 전까지 최종적인 결과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겪는 모든 일들은 그 다음 일어나는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되고, 그러한 결과마저 그 이후의 일에 대한 원인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잡스 또한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을 하고나서 그때까지 이루어놓은 성공을 모두 지울만 한 실패를 또다시 경험할 수도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여전히 IT 업계의 성공 신화를 이룩한 인물로 남아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결과적 성공을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의 경험-그것이 참담한 좌절의 경험일지라도-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


스티브 잡스가 때로는 참담한 실패를 겪게 되더라도 그 때 당시만은 좌절하고 절망했으면서도 완전히 자신의 끈을 놓고 쓰러지지 않았던 이유는 역시나 그 자신이 '특별하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선택 받은 존재, 특별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어쩌면 전혀 근거 없는 믿음일지라도 잡스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그 믿음 덕분에 잡스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청강했던 리드 대학의 서체 강의를 통해 애플의 컴퓨터에 다양한 폰트를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선택에 운이 따른 것이 아니었다. 애플에서 쫒겨나고, 그 이후 설립한 넥스트가 실패했음에도 그 경험을 결국 이후에 애플과 자신의 최고 전성기의 밑거름으로 삼은 것은  잡스가 정말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이거나 성공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긴 그의 태도와 자세 덕분이었다.


'여정자체가 보상이다'라는 그의 말은 이런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당신은 여정을 보상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인가?'


잡스의 특별함, 우리의 특별함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성공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그리고 그가 사망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질문이 던져졌다. '과연 누가 포스트 잡스가 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가?' 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가진 몇 가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능은 본받을 만 하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것을 연결하여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거나 융합하는 것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융합형 인재니 뭐니해서 여러 가지 노력들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기도 하다. 출판계가 만성 불황에 빠진 요즘도 유독 잘나가는 자기 계발서 분야에서 스티브 잡스는 빠질 수 없는 단골 손님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우리가 잡스에게서 발견할만 것이 그것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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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그가 믿었던대로 정말 특별한 사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따라서 누구든 잡스를 대체할 필요도, 대체할 수도 없다. 잡스가 가진 특별함 만큼이나 우리 또한 각자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괴롭힐 때도 있겠지만 그 특별함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답게, 그리고 더 빛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잡스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잡스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함에 대한 믿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믿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로 인한 그의 찌질함까지 닮을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찌질한 위인전,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가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스티브 잡스





뱀발.


1. 스티브 잡스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의 전기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워즈니악과의 만남, 애플의 창립, 이후 잡스의 사업적 행보와 에피소드들에서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애플의 제품들과 그것의 개발에 관한 이야기 또한 그렇습니다.


2. 상편이 업데이트 되고 어떤 분이 잡스 전기의 요약본이나 독후감과 다를 게 없다는 평을 주셨습니다. 인물의 삶의 행적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하는 것이니만큼 평전이나 자서전을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하면서도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맥락을 잡아야 하기에 찌질한 위인전을 연재하는 내내 필자가 가장 걱정하고 신경썼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편집부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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