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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3. 목요일

인문/사회과학독투 JINO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인문/사회과학독투에서 납치되었습니다.






1.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8년작 ‘이웃집 토토로’. 나는 이놈을 그간 족히 100번도 넘게 봤던 것 같다. 이따금씩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한 번, 심심한데 딱히 할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한 번, 아이들 보여주면서 옆에 낑겨서 한 번... 이렇게 보다보니 그리 되었다. 내가 아무리 봤던 것 또 보는 걸 좋아라 한다곤 하지만 이토록 많이 반복시청했던 작품은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토토로가 가진 비교 불허의 매력 등이 나로 하여금 '본 거 또 보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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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웃집 토토로'인가? 내가 왜 이런 쓸데 없는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 우선 내가 이 토토로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밝혀야겠다. 토토로는 내 방식대로 정의하자면 '인격화(혹은 형상화)된 자연의 섭리’다. - 같은 방식으로 고양이 버스는 바람이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 바람이 불고, 씨앗에서 싹이 나서 그것이 자라는 등 자연의 섭리에 따라 벌어지는 온갖 것들이 토토로를 통해 이뤄진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그런 토토로가 어째서 '바람 계곡의' 토토로나 ‘깊은 산 속’ 토토로, 혹은 딴지 벙커의 토토로가 아닌 '이웃집'(에 사는) 토토로인가? - ‘이웃집’으로 번역된 일본어 ‘토나리’(となり)의 사전적 의미 및 회화적 용법에 대해서는 ‘아부나이 니홍고’를 참고하시라. 나처럼 일본어에 문외한인 사람에겐 사전이나 어학책 보다는 마사오상의 설명이 훨씬 느낌적으로 와닿는다. - 아무튼 오늘은 바로 ‘이웃집 토토로’라는 제목 속에 담긴 비밀을 밝혀볼까 한다.



2.


사실 일본인들에게 토토로처럼 어떤 자연현상이나 또는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삼라만상에 신격을 부여하는 사고체계는 매우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그 뿌리도 매우 깊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도 온갖 종류의 신들이 등장한다. 태양의 신, 달의 신, 물의 신, 바다 표면 가까이에 사는 신, 바닷 속에 사는 신, 바다 밑에 사는 신, 불의 신, 곡물의 신, 물방울의 신, 녹슬은 철의 신, 땀의 신 등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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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의 신 이나리(稲荷)신을 모시는 신사


그런데 ‘신(神)'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의 종교와 철학에서의 절대자, 초월자 특별히 기독교의 유일신을 가리키는 의미 또한 갖게 되어 오늘날 무언가를 '신'이라 부르게 되었을 때 의미의 혼동이 발생한다. 그래서 나카자와 신이치 같은 종교학자는 본래 일본의 전통적 신을 '스피리트(spirit)'란 말로 대체하기도 한다.


본 글에서도 역시 나카자와 신이치를 따라 일본인들이 ‘삼라만상 속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어떤 신비한 존재’를 스피리트라 부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이 스피리트는 본래 자연현상과 결합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서양 철학, 서양 종교에서의 신과는 달리 인간의 감각이 감지하는 세계, 즉 물질세계 밖으로 완전히 초월해버리지 않는다.

 

이러한 스피리트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들이 비록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초월적 존재가 아닌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들의 특성은 인간이 현실세계에서 경험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람의 신이 일으키는 바람, 겨우내 창고에 쳐박아 두었던 호미에 슬은 녹 등의 경험은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며, 꿈이나 환상처럼 애매하지 않고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들 스피리트는 인간과 매우 가까이 존재하지만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 알 수 없다거나, 호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녹이 드는 것과 같이 알 수 없는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를 "증식의 중공(中空) 공간"이라 부른다.

 


3.


우리가 신 하면 보통 ‘하늘에 있는 까마득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스피리트는 오히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밀폐 공간을 거처로 삼는 듯한 이미지가 있다. 우리들 앞에 나타난 듯 하다가도 어느새 없고, 때론 낯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단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스피리트는 인간의 사고나 의지나 욕망으로 가득 찬 '현실' 세계에서는 멀리 떨어져 닫힌 공간 속에 숨어 지내지만, '현실'과 완전히 차단되고나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폐된 공간을 덮고 있는 얇은 막 같은 것을 통해 출입을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막이 있는 장소에서 스피리트의 힘이 '현실' 세계와 접촉할 때, 물질적인 부나 행복의 '증식'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이런 현상은 전부 다양한 형태의 '경계'에서 일어납니다. 완전히 이쪽 세계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저쪽 세계로 분리되어 버린 것도 아닌 '경계'를 통해서, 스피리트의 특성을 가진 존재는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일을 반복해왔습니다. 따라서 스피리트가 모셔져 있는 장소도 자연히 그런 '경계' 지대에 모여 있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신의 발명’ 중


 

토토로에서는 이 '경계'가 몇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느날 앞마당에서 놀고 있던 소녀 메이에게 갑자기 꼬마 토토로가 나타났다가 이를 뒤쫓자 갑자기 모습을 감추는 것, 토토로를 처음 만났던 풀숲을 다시 찾았을 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던 것, 고양이 버스가 얘기 중인 두 농부 사이로 휙 지나가는데도 그저 바람이 부는 것으로 생각하고 바람에 날리려는 밀짚모자를 손으로 붙잡고 계속 얘기하는 것, 또 그런가 하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버스정류장에서 토토로가 어슬렁 어슬렁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 등 이들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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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들의 이런 이미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독특한 발상이라기 보다는 일본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그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일본인들이 신으로 여기는 -여기서 스피리트로 칭했던 - 온갖 것들은 생활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아주 또렷하고 구체적인 것들이다. 


바꿔 말하면 매우 친숙한 것들, 그게 어딘 지는 몰라도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다. 토토로 역시 이런 스피리트로서 사츠키와 메이 두 자매가 사는 집 근처 크고 오래된 나무의 구멍 속에 살면서 자연을 섭리하고 사츠키와 메이 두 자매의 '행복의 증식'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웃집 토토로’다.

 

왜 이웃집 토토로인가 하는 별 시덥지 않은 질문을 가지고, 일본인들의 종교적 심성 한 자락을 살펴보았다. 이정도면 꽤 괜찮은 글 아닌가? 아님 말고...

 





편집부 주

 


독투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 JINO' 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겠습니다.


아울러, 'JINO'님께서는 본지 대표 메일 ddanzi.master@gmail.com으로 연락가능한 개인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인문/사회과학독투 JINO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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