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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07. 월요일

정치불패 돼끼






편집부 주



이 글은 정치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0여 일이다. 한때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세월호는 이제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쪼그라든 이슈가 되었다. 허나 그 여파만은 아직도 정치권을 뒤흔들고 사회를 뒤흔든다.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는 것과 우리가 마지못해서 믿고 있던 정치권에 대한 믿음의 종언을 내렸다.


대통령과 그녀의 추종 세력이 얼마나 별나라 사람인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하였고, 동시에 추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이면도 보았다. 그리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눈물까지도. 이는 한때의 악몽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이제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고, 넘어가서도 안 되기에 본 필자 이 글을 남긴다.



1. 전설의 시작


한국 사회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뤘다. 이는 자랑할 만한 일이다. 다만 그 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희생한 것이 안전장치였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그 비정상적인 성장에 힘입어 수많은 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듯 서울 드림을 꿈꾸며 서울에 자리를 틀었다. 그렇게 전국에서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을 수용할만한 여력이 당시 서울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판자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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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이 융성하고 김현옥이라는 사람이 서울시의 시장이 되었다. 그는 불굴의 사나이였다. 장애물 따위는 모르는 남자 중의 남자, 그의 어록은 남자 김현옥을 잘 보여준다.


"60년대 말 서울의 판잣집은 기어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도심·외곽 할 것 없이 들어찬 판자촌은 한 마디로 서울의 행정을 마비시킬 정도였으니까요. 내 발상은 간단했습니다. 쓰러질 듯 누워 있는 판잣집을 번듯하게 일으켜 세우자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아파트지요. 당시에는 서대문 금화지구 7만 채를 포함, 서울시 1백만 평 땅에 14만 5천 채의 판잣집이 널려 있었습니다."


-김현옥, 1994년경 월간중앙 허의도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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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뻗어나가고 만세토록 자랑스러워야 할 한국에, 그것도 한국의 심장인 서울에,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판자촌이라는 장애물은 김현옥에게 매우 찝찝한 것이었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한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고자 한 위대한 영도자 마사오에게도 이건 불편한 문제였다.


이에 마사오는 자신의 충실한 심복인 김현옥에게 판자촌의 정리를 맡긴다. 이는 현명한 처사였다. 김현옥의 별명은 불도저로 그의 앞에 걸림돌 따윈 남아나지 않았으니까. 불도저에 시동을 걸기 전 김현옥은 서울의 무허가 건축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는데 무려 13만 6,650동이라는 숫자가 집계된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를 보고 김현옥은 계획을 세우는데 4만 6,650동은 현지에서 고쳐 쓰기로 하고 나머지 9만여 동에 가까운 집은 아파트를 짓거나, 경기도 광주로 내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후일 이 결정은 끔찍한 사고를 불러오는데 이는 나중에 시간 나면 논하기로 하겠다.) 


역사적인 1968년 12월 3일, 서울시는 시민아파트 건립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1969년, 그 짧은 1년 동안 32개 지구에 406동, 1만 5,840가구의 아파트를 건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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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이 바위를 때리고


그중에서 와우 아파트라는 이름은 김현옥에게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업적이 되었다. 와우 아파트는 말 그대로 서울시 와우산에 만들어진 아파트였는데, 가파르기 짝이 없는 산 중턱에 세워진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었다. 허나 이렇게 위험한 곳에 지어진 까닭이 있는데, 이는 김현옥 시장의 어록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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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기간인 1년 동안 아파트를 지어야 하니, 아파트는 날림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여력이었다. 그 배경을 살펴보자면,


시공업체인 대룡 건설이 맡은 13~16동 지역에 투입된 예산은 2,638만 3,455원으로 택지조성과 축대비를 제외하면 평당 1만 원도 안 되는 예산이 투입된 것이다.


공사기간은 앞서서 말한 것처럼 너무나 짧았는데, 1969년 6월에 착공해서 12월에 완성되었다. 6개월 만에 아파트를 올린 것이다.


시공업체에서는 뇌물을 써서 이 공사를 따낸 것이라 뽕을 뽑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기둥 하나에 19mm, 철근은 7개씩 박아야 했으나 5개만 박아 넣었다. (여러가지 상황을 보면 철근을 쓴 것만으로도 양심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나무를 쓰지 않은 게 천만다행 아닐까?)


철근에서 뽕을 뽑으려던 게 잘 안되었는지 시멘트로도 장난을 치는데, 시멘트가 아니라 모래와 자갈 반죽이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시멘트에 섞는 물로 하수도 물을 사용했다. 소문에 의하면 모래는 바다 모래를 퍼 와 섞었다고도 한다. 시멘트는 우리 생각보다 매우 예민한 자재로 불순물이 들어가면 그 내구도가 매우 떨어진다.


그리고 시민 아파트가 판자촌 주민을 위해서 건립되었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판자촌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는데 이들에게 입주권을 줘 봤자 들어올 여력이 안 되었고, 거기다가 브로커들의 난립으로 입주비는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그렇기에 아파트에는 실질적으로 돈 있는 중산층들이 입주하게 되었는데, 와우 아파트는 1평당 280kg의 중량을 버티도록 설계되었는데, 입주민들의 변화로 1평 당 900kg에 가까운 중량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공사를 마치기 위해서 지반 공사를 하지 않았다. 암반도 아닌 부토 위에 그냥 아파트를 올려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 답이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사고는 예정되어 있었고 그 시기 또한 예정되어 있었다.



3. 끝


겨울이 지났다. 겨우내 꽝꽝 얼어있던 흙이 풀리기 시작했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4월, 와우 아파트를 올려놓은 부토가 녹으면서 아파트가 무너졌다. 준공 4개월 만에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로 33명이 죽고 4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입주자들이 아직 다 차지 않아서 저 정도로 적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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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분에게 잘 보이려던 기념비가 청와대의 높으신 분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게 되면서 불도저의 시대는 저물게 되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1주일 만에 김현옥 시장은 사퇴했다. 그 여파로 시민 아파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101동이나 되는 아파트가 철거된다. 그 철거비용이 시민 아파트 447동을 올리는데 든 비용에 맞먹는 50억 원이나 되는 돈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이런 마사오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인 공무원의 부패와 단기간 성과주의를 만연하게 드러나게 된 사건은 그 당시에 언급도 해선 안 되는 금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가수 조영남은 한 공연에서 '신고산이 우르르르 함흥차가는 소리에' 를 '우르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라고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을 비꼬는 노래를 불렀다가 바로 군으로 끌려가는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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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이 일이 있은 후에 독일에서 대학생들이 와우 아파트가 붕괴된 원인을 분석하려고 시도를 하였으나 헛간 하나 올리기도 힘든 건축자재로 아파트를 올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 세상은 와우 아파트 참사가 일어난지 꽤 흐른 후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똑같다. 대통령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떠난 총리를 다시 불러다 앉혔고,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사라졌다. 그렇기에 유병언이라는 인물을 조리돌림 하기 위해서 잡고자 노력하지만 대한민국의 검찰과 경찰이라는 치안 집단은 다 늙은 노인네 한 명을 잡지 못하고 있고, 빨갱이를 증오한다는 이들이 중국의 오성홍기 앞에서 절하기도 한다. 어떤 도시에서는 피사의 사탑을 재연하는 듯 한 건축물을 올리고 있고, (관련 기사) 한때 민족의 자유를 앗아간 이들을 영웅으로 여기는 머리에 총 맞은 인물들이 몸을 일으킨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상식의 선에서 살 수 없단 말인가? 아니 상식의 선조차 가지지 못하고 살고 있단 말인가?



다음 편은 서해 페리호 사고를 다뤄보겠다. 







정치불패 돼끼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