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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14. 월요일

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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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취직을 하게 된다면,

그 지루하고 비루하고 동어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출근 좀비들의 무표정을 마주한 오전 9시의 테헤란로에서 문득,

혹은 영혼을 반쯤 내려놓고 퇴근하는 막차 직전의 지하철 안에서 문득,

혹은 달콤한 주말 낮잠 후 폭풍처럼 밀려오는 허무함 속에서 문득,

피곤한 와중에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떠남의 욕구가 끓어오를 때면,

나는 아마 이 곳을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


라며 이미 그곳을 떠나기도 전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산 페드로 라 라구나San Pedro La Laguna, 바로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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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벼운 남자였다.


여행의 첫 도시였던 안티구아를 떠나면서 그 아쉬움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는데, 두 번째 도시인 산페드로에 도착해서 콜렉티보를 내리는 순간, 이미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도시의 경쾌한 대기를 피부가 느끼고 있었다.그야말로 첫 눈에 반해버렸다.


산페드로는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의 기슭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열다섯 명이 가득 찬, 지붕에는 한아름 짐더미를 올린 낡은 밴이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산길을 힘겹게 비틀대며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달렸다. 휘청대는 차가 절벽에 좀 가까이 붙는다 싶으면 이내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가오가 중요한 여행자들은 불안함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꺼내지 않았다.

 

변이 급한 아이 같은 침묵 속에서 구절양장 산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 저 멀리 새파란 호수가 눈에 들어오고, 차 안의 모두는 봇물 터지 듯 소리를 질러댔다. 아티틀란 호수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 그리고 이제 곧 내릴 수 있다는 안도감을 담은 진심 어린 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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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틀란 호수는 산 속 깊숙하게 자리한, 바다 같은 호수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호수에서 빨래를 하고, 온 몸에 비누칠을 한 채 호수로 뛰어든다. 동네 아이들은 물가의 나무에 매달려 누가 더 멀리 다이빙하는지 내기를 한다.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는 젖은 김에 목욕을 하려는지 갑자기 웃통을 벗어서 시선 둘 곳을 앗아간다. 벌거벗은 채 수영을 하던 아저씨가 기슭에 올라와 고추를 흔들며 몸을 닦는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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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따스한 시골의 정경과 달리 한 쪽에서는 히피들의 파티다. 레게 형님들, 문신 형님들, 거시기만 간신히 가린 형님들, 눈 풀린 형님들이 저마다 근육을 자랑하며 혹은 늘어진 뱃살을 개의치 않고 맨 살을 드러낸 채 거리를 누빈다. 만나는 사람마다 두 손을 마주 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난 밤의 파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으스댄다. 쓰러질 듯한 구멍가게도 술에 한해서는 거의 세계 주류 백화점 수준이다. 간혹 골목길에서 만나는 형님들은 뭔지 몰라도 싸게 판다고 속삭인다. 안티구아에서 팝이 흘렀다면 여기는 레게가 흐른다. 밥을 얻어 먹으려는 거리의 개들은 느긋한 걸음으로 식당을 드나든다. 저녁이 되면 곳곳에서 악사들의 연주가 시작된다. 불꽃이 터진다.

 

자유롭다. 이 마을에서는 삶의 무게나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은 그것들을 외면할 수 있는, 그 육중함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


산페드로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넉살 좋은 어느 한국인 청년이 아는 체를 한다. 우리 블로그를 우연히 봤다고, 오늘 여기에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온몸 구석구석 이미 여행의 흔적이 가득한 그가 의미심장하게 경고했다. 이곳은 블랙홀이라고,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 한다.


"아미고"  나는 벌써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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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드로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해먹에 누워있기’였다.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몇 시간이고 해먹에 누워있었다. 호스텔 마당에 걸린 싸구려 나일론 해먹이었지만 어떤 침대보다도 아늑했다. 반쯤 감은 눈으로 태양이 이동하는 것을 천천히 좇다가 잠깐씩 잠이 들곤 했다. 눈을 뜨면 태양은 저만치 나아가 있었지만 어차피 내일이면 또 돌아올 테니 개의치 않았다.


등이 배길 무렵이면 일어나 마을을 걸었다. 나루터부터 시장바닥까지 구석구석 걸었다. 배가 고파지면 타코를 먹고, 목이 마르면 과일 주스를 마시고,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 들어가 향이 짙은 커피를 마셨다. 성격 좋은 동네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오면 아내와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호숫가에 앉아서 빨래하는 아낙네와 수영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숙소로 돌아왔다. 가끔은 사진도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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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고 하늘은 맑았다. 문득 배낭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 옷가지와 여러 비품들을 반으로 뚝 잘라 서울로 보냈다. 실은 보내려고 포장까지 했는데, 의외로 국제우편료가 비싸서 두 달 후 페루에서야 보낼 수 있었다. 대충 그런 마음가짐이었다는 의미다.


정확히 뭘 하면서 산페드로에서의 시간을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다만 그 행복의 질감만이 선명하다. 나른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기억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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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고 싶은 것이 오늘 할 일이 된다는 것,

어제 하지 못한 것이 오늘 할 일로 이어지지 않는 것,

오늘 한 것이 내일 반복되지 않는 것,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온전한 오늘의 의미에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여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쉬는 법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의 단위가 복잡했다. 업무 다이어리는 일년의 시간을 반기로, 분기로, 월로, 주로, 일로, 시간으로 쪼갰다. 단위가 정교해질수록 열심히 일하는 척 할 수 있었다. 때론 너무 비대해진,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의 단위에 짓눌리기도 했다. 일일업무보고, 주간계획작성, 월간목표수립, 분기/반기별 성과보고, 연간계획수립, 중장기비전설정까지.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시간을 위해 나의 하루는 완결된 단위로 기능할 수 없었다.


산페드로에서의 하루는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나의 호흡에 맞추어 하루가 들썩거렸다. 나는 비로소 나의 하루를 찾은 듯 했다. 해가 뜰 때 시작되고 해가 진 후 마무리되는, 단위로서의 하루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하루.  너무도 당연한 그것을 나는 처음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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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에 열광하는 소년처럼 나는 산페드로가 좋았다. 나는 호수에 뛰어드는 아이도 아니고, 밤마다 파티를 즐기는 히피도 아니었지만,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 열렬히 응원했다. 끝이 보이는 나의 여행과 달리 그들의 하루는 영원할 것 같았다. 여기서 찾은 나의 하루는 곧 잊혀지겠지만 그들의 하루는 계속 될 것 같았다.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고작 며칠 간의 여흥인 것을 알기에 나는 더더욱 산페드로에 열광했다.


마지막 날, 깜깜한 새벽녘의 선착장에서 배낭 위에 걸터앉아 산페드로를 떠나는 배를 기다릴 때, 입을 열면 목이 멜 것 같아 애써 침묵했던 그 아침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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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미 여행은 과테말라에서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도시는 안티구아.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머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매일 시장에 장을 보러 가며 남미 물가에 익숙해졌고, 매일 오후 나른한 햇살 아래 하릴없이 앉아 남미 속도에 적응했다. 집집마다 달려있는 철창과 철문을 보며 배낭을 다시 야무지게 쌌고 늘 입고 다니는 바지에 복대를 꼬매 달았다.


잘 알지 못해서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미지의 대륙 남미와 천천히 친해졌다. 앞으로 오래 남미 땅을 걸을 힘을 쌓았다. 다시 가방을 싸고 배낭을 메고 복대를 차고, 다음 도시 산페드로로 향했다. 그곳은 아티틀란 호숫가 작은 마을인데 히피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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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이 사라지고 매연이 사라졌다. 가게도 호텔도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개들도 고양이들도 새들도 여행객들도 여기 주민들도 모두 그냥 여기저기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여행자들은 헐렁한 바지에 민소매를 입거나 아니면 웃통을 벗고 레게 머리에 맨발로 동네를 걷는다. 동네는 개성 있는 음식점, 숙소, 스페인어 학원으로 가득 차있다.


모든 것이 ‘히피히피히피’ 나즈막한 휘파람을 불고 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주소 없는 섬에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인가, 돌아나가는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아서 자꾸만 나가는 버스를 알아본다. 서둘러 나가지 않으면 영영 나가지 못할 것 같은 곳.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마을 곳곳에 박혀있는 곳.


늦은 밤 가게마다 불이 켜있고 사람들은 부드럽게 흥겹다. 우리는 해가 지고도 한참을 식당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고도가 높아져서인가 별이 머리 위에 바로 가깝게 흩어져있는 밤하늘을 이고 숙소로 오는 길이 까맣고 또 평화롭다. 다만, 레게머리를 한 머리 노란 사람들이 밤마다 술을 마시고 또 몇몇은 약을 하며 흐느적거릴 이 곳은, 사실은 그냥 시골 마을이다.


어학원과 식당과 술집과 호스텔 뒤쪽으로 바로 사람들이 사는 집이 있다. 이곳에서 유난히 자주 보이는 뽀얀 얼굴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밤이면 누군가는 술에 누군가는 약에 취해 시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 텐데, 이 작은 마을도 함께 취할 텐데, 그 사이사이 벽이 얇은 작은 방에서 잠들 아이들은 어떤 꿈을 꿀까.


여기 머무는 며칠, 그 아이들의 이름을 많이 많이 물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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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두가 아티틀란 호수를 바로 앞에서 보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호숫가는 지척인데, 신기하게도 그곳엔 여행객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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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들이 몸을 호수에 담그고 호숫가 돌을 빨래판 삼아 빨래를 하고 있고 바로 옆에선 아이들이 팬티만 입고 수영을 하고 있다. 동네 개도 있었는데 애들이 자꾸 나뭇가지를 호수로 던져 개에게 물어오게 했다. 개는 그때마다 물에 뛰어들어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호숫가로 나와서는 온 몸을 시원하게 털었다. 털자마자 애들이 나뭇가지를 던지면 또 물에 뛰어 들고… ‘진짜 얘네가 똥개 훈련 시키네. 개 불쌍하다.’ 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멍하니 애들이 똥개 훈련 시키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호수를 보러 간 거였는데 호수는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계속 동네 개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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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저 아줌마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저기 앉아서 우리를 구경하나 할 것 같아서 말을 걸었다. “Quantos anos tienes? ? 너 몇살이야?” 안티구아에서 배운 스페인어를 써먹는 순간이다. 애들은 되게 쿨하게 “Ocho ? 여덟살” 모 이런 식으로 대답하고는 저들끼리 하던 놀이를 계속 한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들도 우리를 의식하기 시작한 거다.


해는 길고 우리는 천천히 친해졌다. 한명한명 다 이름을 외우느라 아유 혼났다. 한 아이가 나에게도 나이를 물어서 만 나이로 계산해서 말해줬는데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어쨌든 이름과 나이를 나누었으니 이제 "우리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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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들고 다니는 미니 포토 프린터기로 사진을 뽑아서 건넸다. 사진을 찍으며 그 호숫가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들과 애들과 한참을 같이 깔깔 웃었다. 실은 남편두가 사진을 찍고 또 뽑고 하느라 바쁜 동안 나는 애들이랑 놀았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애들도, 내가 손을 내밀면 작은 손을 등 뒤로 감추던 두 살짜리 프란시스코도, 어느새 마음을 열고 웃으며 나에게 안겼다. 날 좋은 오후의 호숫가, 그 공기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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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참 좋다. 햇살도 좋고, 나도 참 좋구나” 라고 어린 남동생 프란시스코를 챙기던 11살짜리 소녀 아나에게 속삭이고 싶었지만 내 스페인어가 너무 짧아서 그냥 눈을 마주치며 “아아 아아” 그랬다.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엄마들은 빨래를 하고 빨래가 다 끝나면 아이들과 엄마들은 그 자리서 목욕을 한다. 그때 즈음 아빠들이 와서 다 끝난 빨래를 이고 가족들은 같이 집으로 간다. 평범한 그네들의 오후에 우리가 잠깐 끼었다.


웃음이 참 많은 오후였다.


그날이 짧은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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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과테말라 산페드로를 떠났다. 그리고 멕시코를 쿠바를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를 여행했다. 대부분 과테말라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걷고, 페루 마추픽추를 오르고, 칠레 와인을 마시고,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먹는 동안 산페드로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


여행이 끝나는 날은 정해져 있었고 갈 길이 먼 우리의 여행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넓은 땅을 여행하며 특히나 빨라진 속도에 자꾸만 다리가 꼬였다. 여행의 막바지, 꼬인 다리가 풀려 그만 넘어질 뻔하다가 느닷없이 과테말라가 그리워졌다. 몸도 마음도 한없이 여유롭던 과테말라 산페드로에서의 날들.

 

그리움이 폭발한 어느 날, 남미 여행 마지막 나라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에서 일기를 썼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와서, 특히나 파타고니아 지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오롯이 '보는 여행' 중이어서 눈은 호강하고 있지만, 마음이 따뜻해 벅차게 잠이 들던 그 밤들은 더 이상 없다.

언제 그런 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루는 적당히 지나간다.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며 묻곤 했었던 아이들의 이름은 더 이상 쌓이지 않고,

볼리비아를 지날 때까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던 mp300 필름도 더 이상 줄지 않는다.

그저 이 남미 여행을 완주하기 위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남미 여행을 처음 시작한 곳. 그곳을 그리워 한다.

안티구아, 눈만 마주치면 꽃처럼 환하게 웃던 사람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말로 꽃이 빛처럼 쏟아지던 마당들. 처음으로 무릎위로 올라온 고양이 미샤.

산페드로, 골목 골목 방심한 여행자들. 반짝이던 아티틀란 호숫가에서 빨래를 하던 엄마들. 수영을 하던 아이들. 처음 아이들과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온기를 나눴던.

어쩌면 나, 따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던 곳.

매일 지나다니던 동네 골목에서 우연히 동양인 여행자를 만난 아이가, 집에 돌아가 자기 사진을 손에 쥐고 즐거운 눈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재잘재잘 털어놓는 장면을 처음으로 상상하게 해준 곳.

시간이 아주아주 많았던 곳.


사실은 그곳보다도, 그곳의 내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쓰다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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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콜롬비아에 대한 글을 쓸 때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며 웃고 있었다. 과테말라에 대한 글을 쓰면서는 자꾸만 울컥한다.


맨발로 거리를 걷던 히피들도 반짝이는 호수도 흐느적거리며 마셨던 맥주도 파리를 쫓으며 먹었던 타코도 모두 그립지만, 무엇보다 바다처럼 넓은 아티틀란 호수에서 빨래하던 유쾌한 엄마들과 수줍던 그 아이들이 그립다.


그리고 고맙다. 과테말라가 있어서 우리는 남은 여행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안티구아에서 배운 스페인어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산페드로에서 만났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용기를 얻었다. 볼리비아에서 오지의 도서관을 찾아가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콜롬비아에서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그곳의 그들 덕분이었다.


나는 우리의 여행이 꽤나 마음에 드는데 그건 모두 산페드로에서 첫 단추를 잘 꿰었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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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내내, 아나네 가족 사진을 찍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나, 마누엘, 프란시스코 삼남매와 엄마, 아빠. 빨래를 정리하던 엄마를 사진을 찍자고 부르자 여느 엄마들처럼 “난 괜찮아 너희들끼리 찍어” 라고 손을 내저었다. 여러 번 손을 흔들어 부르자 겨우 카메라 앞에 선 엄마는 틀어올렸던 머리를 풀었더랬다.


지구 반대편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코끝이 시큰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바보같이 웃던 나도 있다.

 

 

  

 




편집부 주



이 글은 딴지일보의 무규칙 이종매거진 

<더딴지> 15호에 실린 글의 전문입니다.


단&두의 여행 글은 지금까지 쭈~욱 

<더딴지>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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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 @nadaun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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