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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3. 목요일

범우









며칠 전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 단원고 기사를 봤다.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을 철거하자는 변호사들의 성명서와 진도의 분향소 철거 탄원서가 기사 꼭지로 올라 올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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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연합뉴스


단원고 아이들에게 어학연수와 정신치료로 십억 원이 지급 된다는 기사였다. 기사 꼭지는 단원고 학생에 십억 원 지급 이라고 쓰여 있었다. 뉴스제공자는 연합 뉴스다. 뉴스가 바라는 반향을 얻지 못하자 슬그머니 포탈에서 기사가 내려졌다.


치밀어 오르는 기억이 있다. 가뜩이나 시간 여유가 생겨서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일이 많은데 이건 좋지 않은 느낌으로 소환된 기억이다. 잘 버텨왔다고 그 시절의 나를 다독 거려주고 싶지만 아직도 이 기억에서 느껴지는 쓴 맛은 어쩔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의 일이다. 형편상 여러 일들로 공부에 집중할 처지가 못 되었다. 친구를 몇 명 사귀었지만 가끔 기본적인 생각의 갭을 느끼고 거리감이 있었다. 고등학교도 이렇게 버거운데 대학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고민하다가 담임을 찾아갔다. 한참 만들어지고 있는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소문이 있는 선생님이었다. 솔직하게 고등학교도 버거운 처지를 이야기하고 차라리 실업계로 전학할 방도를 물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처럼 대학은 가야한다고 말했다. 지금 비록 힘들고 버거워도 하려고 하면 길이 난다고 했다. 학력으로 결정되는 진입장벽을 이야기 했다. 당장의 버거움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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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적당히 지나 잊은 줄 알았었는데 어느 날 담임이 불렀다. 어려운 형편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한 분이 있다고 했다. 다른 반 학생과 함께 둘을 추천했으니 연락처로 전화를 하고 인사를 드리라는 말을 했다. 


고민이 많던 나와 다르게 함께 추천되었다며 소개 받은 친구는 목표가 뚜렷했다. 고대 법학과가 목표라고 했다. 집안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단다. 얼마 전 형이 결혼을 했는데 형수도 마찬가지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라고 했다. 속에서 뭔가가 가끔 치밀어 오를 때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부른다고 했다. 친해지고 나서 어느 밤에 들어보니 노래가 아니라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악을 지르는 거였다. 목청과 가사만 좋았다.


그나마 활달한 녀석이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식사를 사주신다고 식당으로 갔다, 처음으로 한치 회를 먹었다. 닝닝하고 질긴 젤리 같은 회가 가뜩이나 서툰 젓가락질에 미끄러졌다. 초장 맛을 알았다.


학교 인근에서 약국을 하시는 약사 분이었다. 소갯말로 들은 것과 인상이 비슷하고 마음에 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등학교 동안 학비를 지원하고 대학을 가면 학자금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아들처럼 키우고 싶다며 종종 놀러 오라고 약국을 가르쳐 주었다. 


친구도 나도 약국을 찾아가지 못했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약사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경험이 짧고 전두엽이 여물지 않았었다. 고마운 마음이 처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되고 부끄러움이 사람에 대한 껄끄러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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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감사인사도 받아 버릇해야 자연스레 나온다.


지기 싫은 성질머리 때문에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하긴 했다. 한동안 라면으로 연명하거나 가끔 밥을 굶어야 했다. 구로동 쪽방에 살며 막노동을 하던 외삼촌에게 용돈을 얻는데도 눈치가 보였다. 주말에 공사장에서 잡부 일을 하고 방학에 수공업 공장에서 납땜 일을 하다 심한 몸살을 겪기도 했다. 답을 찾지 못해 고민은 깊어갔다.


인사를 가지 않아서인지 약사 분이 준다던 지원은 받지 못했다. 사노라면을 악을 쓰던 친구도 매한가지였다. 혹시나 면접에서 나만 탈락한 게 아닌지 하는 중에 친구로부터 확인이 들어왔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서로 어께를 두드리고 위로를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원대로 판사가 되었을 때 그 강한 신분상승욕구에 반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담임이 나름의 안타까움과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가는 중에 장학금을 신청해서 받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힘내라는 말을 했다. 어색하고 고마웠다. 뻣뻣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나온다는 장학금은 2학년이 되어서야 받게 되었다.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소환된 기억은 바로 이 장학금을 받는 날의 것이다.


날이 궂어서 실내조회를 했었다. 학생들은 교실 자기 책상에 앉아 스피커에서 나오는 대로 국민의례를 하고, 교장의 훈화를 들어야 했다. 장학금증서를 수여받으러 가란 말을 들었다. 교장실에서 가까운 1학년 교실에 방송장비를 갖추고 주임 급 선생들이 모여 있었다. 자기반인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있고 교실 뒤쪽으로 이런저런 상장을 받는 학생들이 섰다. 국민의례가 끝나니 상장과 장학증서를 지급하는 순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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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을 받고 교장 앞에 바른 자세로 섰다. 운동장에서 하는 조회가 아니라서 인지 교장은 격식을 지키지 않았다. 소방서에서 나온 장학금을 받기로 한 내 얼굴과 이름이 낯설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교장이 전교 1등이냐고 물었다. 보통 한 명, 많아야 세 명이 서울대를 가는 학교였다. 한다고 하는데 발가락까지 동원해야 꼽을 수 있는 순위에도 들기 버거웠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갸웃하더니 그럼 아버지가 소방관이시냐는 질문이 들어 왔다. 아니라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네가 여기 왜 나왔냐는 질문이 송곳처럼 찔러 왔다. 대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아마 가난해서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학생주임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전 결재가 기억이 안 났던 것 같다.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얼굴로 피가 쏠렸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꾸어둔 보릿자루가 되었다. 교장을 한 대 때리고 뛰쳐나갈까하는 고민을 잠깐 했다. 자리에 앉은 1학년들의 작은 웅성거림이 아팠다.


처지의 곤궁함이 감정을 눌렀다. 묵묵히 서서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수령했다. 봉투 안에 십 만원이 들어 있었다. 십 만원에 발가벗겨지고 몸을 판 것 같은 자괴감이 오래 남았다. 굴욕감을 두 번 겪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동생이 결핵으로 각혈을 해서 학업을 포기해야할 때 별 미련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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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이름 없이 연합이란 이름으로 올라온 기사 꼭지가 어떤 의도를 가진 것처럼 읽혀졌다. 학생에게 십억 지급이란 모호한 말을 썼다. 학생 개인이 십억의 혜택을 받아가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계층에게 분노하라는 수준 높은 선동질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고 오래 되어 지겹다는 말도 이해는 한다.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이 지속 되면 사는 데 불편하고 지장이 있다. 다들 행복하게 살길 원한다. 밥줄이 달린 높은 분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개 같은 일방향의 충성심도 이해는 한다.


이해와 용납은 다른 부분이다. 피해의식에 의한 기시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느 선은 넘지 않았으면 한다. 자라면 국방 노역도 하고, 월급 노예도 되고 ,세금 열매도 맺어, 받은 것 이상으로 갚아낼 아이들이다. 친구들을 잃고 살아남은 것은 그 아이들 죄가 아니다. 아이들이 모멸감과 분노로, 체념으로 수그러들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한다. 


글 기술을 팔아먹고 사는 처지에서는 오더를 주는 오너 입맛에 맞는 글을 써야한다. 자기 합리화를 하고 한도를 넘어가다보면 결집된 진영이 상대를 말살시켜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한 감정에 빠진다. 행여 증오를 부채질해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대도 별 죄책감은 없겠지만 당신이 원인이었다는 지적은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삶이란 치열한 전쟁터에서 상식적인 사람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정치를 한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전쟁으로 상대를 말살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 양편 모두의 도구로 언론이 사용된다. 다행히 기술의 발달로 없어질 직업순위에 언론사 기자가 들어간다.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타인에게 전달 할 수 있는 시대가 와서 글을 적는다. 연합이란 이름이 온갖 나쁜 놈들의 연합이라는 의미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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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