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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24. 목요일

물뚝심송








어떤 커뮤니티이거나 상관없이 초창기에 그 시작은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올바른 명분을 가지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면, 혹은 충분히 재미가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커뮤니티의 규모는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법은 없다.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갈등 상황이 생긴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갈등이 유발되기도 하고 외적인 요인에 의해, 특히 권력의 탄압으로 인한 갈등도 생긴다. 또 조직이 커지면서 내부에 생겨난 파벌 간의 감정적 충돌도 보기 흔한 갈등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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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지 못하는 갈나무와 등나무, 갈등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역으로 커뮤니티 자체가 시험대에 서게 된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커뮤니티에 위기가 닥치면 분쟁이 생기고, 그런 분쟁은 쉽게 해결하기 힘들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장기적으로 생존할 가치가 있고, 사회에 필요한 커뮤니티이며 그 구성원들의 역량이 충분하다면 커뮤니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가 있다. 그렇게 고비를 여러 차례 겪어 가며, 파도를 겪어 내야지만 커뮤니티가 더욱 튼튼해지는 측면도 있다. 마치 병 같은 것인데, 병에 결려 죽을 수도 있지만, 병을 앓고 나서 면역력도 생기고 더욱 건강해질 수도 있다는 것과 흡사하다. 


그런 기본적인 배경을 깔아 놓고 지금 한참 진행 중인 사건을 하나 살펴보자. 


노파심에서 미리 얘기하면, 이 사건에는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다. 원래 좀 강하고 잔인하고 무서우면서 멋있는 악당이 등장해야 얘기가 재미있지만, 이번 얘기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중요한 구성원의 작은 실수가 빚어낸 갈등 상황이 주제이며, 그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커뮤니티 구성원 다수의 노력이 진행중인 사안이다. 


심지어 아직 결론이 나지도 않은 상황을 이렇게 미리 얘기해 버리는 것이 사태 해결에 어떤 악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취재에 응해준 많은 분들이 모두 한결같이 이 문제를 걱정했다. 그러나 충분히 지켜봤고, 충분히 취재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 상황이 어떤 상태에 있으며 이 커뮤니티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과연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 커뮤니티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 커뮤니티가 이런 정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분열되고 주저앉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역량은 퇴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고 넘어가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진보한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조금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사건을 분석해 보기로 하자. 



대표적인 소수자 집단, LGBT


우리 사회에서 약자, 혹은 소수집단으로 꼽히는 첫 번째는 단연코 여성이라고 생각을 한다. 여성이 왜 소수집단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 경제 규모에 비해 아주 손꼽힐 정도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제한된 사회다. 여성 인권에 대해서는 최소한 어디 가서 절대 큰소리 못 친다. 일베 친구들이나 맨날 김치녀 어쩌구 하면서 여성인권이 과잉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여성의 신분 상승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으며 이를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예 공식 명칭이 있을 정도이다. 물론 대통령이 여성이긴 하지만 그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여성보다 소수이며 훨씬 약자인 계층이 있다. 물론 그런 집단은 무척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있고, 각계각층의 반발과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집단이 바로 성 소수자 집단이다. 흔히 말하는 LGBT가 그것이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의 약자를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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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성 소수자, 그러니까 LGBT가 얼마나 될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프라이버시가 끼어 있는 문제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LGBT에 비해 지극히 적은 일부만 커밍아웃을 한 상황이기에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봤을 때 아주 보수적으로 잡으면 5%, 많게 잡으면 10% 정도는 성적 정체성이 소수자 집단에 포함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동성애 같은 것은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로마시대 같으면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는 전우애를 기르는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성 소수자 집단에 대해 우리 사회는 매우 보수적으로, 아니 원시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 일단은 혐오가 주종인 듯하다. 그건 이해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아직 혐오의 단계를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싫은데 어쩌라고. 하지만, 내가 혐오하는 대상은 성 소수자 말고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권력 추종형 정치인, 돈만 아는 천민자본주의자 모두 혐오한다. 그리고 이런 집단은 사회에 해를 끼친다. 그러나 성 소수자 집단은 사회에 전혀 해가 없다. 


그렇다면 사회에 전혀 해가 없는 이 소수자 집단에 대해 내가 혐오를 표출할 권리가 있을까? 문명인이라면 최소한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냥 그 존재를 인정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덕목이다. 나는 최소한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특히 종교인들, 그중에서도 개독 개신교 집단에서 동성애자들에게 광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거 매우 원시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교황까지 나서서 동성애자들도 사람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개신교 집단은 이 문제에서만큼은 조선시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 전반적으로 혐오의 감정, 혹은 좀 나아도 무시의 감정을 보이는 수준이고, 개신교 집단에서는 증오의 수준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 소수자 집단 본인들은 어떤 심정이 들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그게 문명인의 자세다. 그리고 그 성 소수자 집단 역시 소수 집단이며 약자의 집단이다. 그들 또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 이 점을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가더라도 머리로라도 이해해 주고 지켜주려고 노력을 할 의무까지 있다는 것이다. 


성적 정체성 말고는 우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집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우리의 인권도 안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자들은 언제나 연대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게 기본이다. 



그들의 목소리, 퀴어문화축제


이런 성 소수자 집단이 자신들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고, 자신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꽤 오래된 일이다. 그나마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작이라면 2000년대 들어오면서부터인 것 같다.


최근에도 홍대 앞이나 신촌에서 퀴어문화축제라고 해서 성 소수자들이 모여서 축제를 벌이고 행진을 하고 각종 행사를 기획, 개최하기도 했지만 이게 역사가 은근히 깊다. 물론 지금 같은 규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년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가 개최되려면 그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 주체가 바로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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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수의 성 소수자들이 이 조직위를 지원하고 행사에 참여하고 또는 그렇게 나서서 활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심적으로 지지하면서 응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성 소수자가 5% 아니라 1%만 잡아도 우리 사회에 50만, 2%만 잡으면 백만이라는 단순 산술이 나오지 않는가. 이 정도면 결코 작은 커뮤니티가 아니다.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서는 매년 개최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무지개 영화제'를 열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접하기 힘든 성 소수자를 다룬 영화들을 골라 상영회를 개최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관람하는 그런 행사다. 이 영화제는 항상 축제와 연동되어 같이 열리고 같이 폐막된다. 이게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 무지개 영화제는 2007년 1월 13일을 기점으로 '서울 LGBT 영화제, Seoul LGBT Film Festival, SeLFF'라고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영화제의 위상을 더욱 확대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또 한두 해가 흐른 뒤, 2009년 11월 27일에 이 영화제 조직이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게 된다. 이유는 영화진흥위원회 등 각종 단체의 지원을 받는 등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좀 더 공식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적인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SeLFF 는 공식적인 조직이 되었으며, 여전히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와 함께 매년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런 행사는 영리성은 없다. 있을 수가 없는 것이 그게 무슨 돈이 되겠는가? 사람들이 참여만 해 줘도 고마운 일인데, 거기다가 축제 참가비를 받거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행사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결국 지자체나 각종 정부기관, 무슨 무슨 위원회, 이런 데의 지원을 받아서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위 참가자들이 돈 걷어서 때우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희생과 봉사로 이런 대형 축제가 기획되고 영화제가 기획되고 어렵게 어렵게 대관해서 상영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이들은 그런 대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일에서도 차별받기 일쑤다. 극장 주인이 성 소수자라면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경우가 태반이니까. 홍대 앞에서 시장 상인들이 지지해 주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물론 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이익이 되는 일이지만, 아직은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선이 혐오라는 점을 기억하자. 


그렇게 어렵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을 하게 되면 무슨 무슨 교회 소속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막 행진을 방해하고 길을 막고 시비를 걸고 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현실이다. 



아군인가, 적군인가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 조력자가 합류하게 된다. 최근에 게이 결혼식으로 꽤나 유명했던 김조광수 감독이다. 영화계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네임드이며, 사회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나는 꼼수다'의 등장 이후 속출했던 나는 뭐뭐다 시리즈 중의 하나인 '나는 딴따라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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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조감독이 2011년 1월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와 만나게 된다. 이 부분에서부터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는데, 조직위 쪽에서는 김조감독이 먼저 찾아왔다고 얘기하고 있고, 김조감독 측에서는 지속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누가 먼저 접촉을 했는가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게 논의가 되어 김조광수 감독이 아무래도 영화감독인 만큼 영화제에 합류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조직위 측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을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을 의결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이지 발단이 된 사안은 의결하지 못한다. 즉, 영화제를 완전히 축제 조직위에서 분리해서 별도의 조직으로 가져가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논의만 진행이 되고 의결을 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고 말게 된다. 즉 재논의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의결된 사항과는 별도로 일은 막 진행이 된다. 


서울 LGBT 영화제라는 조직이 사업자 등록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명의가 김조광수 감독의 이름으로 변경된 것이다. 아니, 조직위 쪽에서는 여러 가지 실무적인 이유(통장관리 등)로 명의를 변경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김조감독 측에서는 기존의 사업자 등록증을 명의 변경한 것이 아니라 김조광수 감독의 이름으로 새로 사업자 등록증을 내버린 것이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될 소지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 측에서는 별거 아닌 일로, 단지 실무적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실무적인 행위로 인지하고 넘어간 것 같다. 그러나 김조광수 감독 측에서는 이 시점부터 영화제는 축제 조직위와 완전히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되었다고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조직위 쪽에서는 그런 인식이 전혀 없던 걸로 보인다. 영화제는 축제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인식을 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실무적인 일이 공유되고 있었던 점을 보면 정말 아무 문제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제 사무국장이 그만두게 되자 조직위 사무국장이 영화제 사무국장 일도 같이 하고 하는 식으로 그냥 내부적으로는 같은 조직이라고 인식하고 일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표면적으로 문제가 드러난 것이 2013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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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홍보 포스터 시안이 나왔는데, 그 포스터에 축제 조직위 이름이 아예 안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조직위 측에서는 상황을 인식하게 된 걸로 보인다. 영화제의 김조광수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조직위로부터 분리된 상황이며, 실무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일도 차츰 더 분리해서 완벽히 분리독립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조직위는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김조광수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렇게 2013년 축제도 마감이 되고 폐막식에서조차 해오던 대로 축제와 영화제의 동시 폐막을 알리게 되고, 상황은 진행되었지만, 이미 양측의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확인된 상황인 것이다. 


이 이후로 여러 가지 디테일한 사안들이 발생하지만 요약하면, 조직위는 왜 영화제를 분리하려고 하는가, 조직위 측과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이렇게 해도 되는가 하는 항의를 하는 분위기였다면, 영화제 측은 이미 사업자 등록증 낼 때부터 분리된 문제인데 이걸 가지고 왜 자꾸 조직위가 뭐라 하는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대응이 나오게 된다. 


이후 조직위는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고, 영화제 측은 SelFF로 시작하는 도메인을 모두 구매하는 등, 독자적인 길을 계속 가게 되고, 하다가 결국은 문제가 이름과 회차로 넘어가게 된다. 


조직위는 이 영화제를 분리시킨다는 의결을 한 적이 없고 인정할 수 없으니, 김조광수 감독이 하고 있는 영화제는 퀴어문화축제와 함께 하던 영화제의 회차와 SeLFF 라는 이름을 쓰지 말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퀴어문화축제 산하에 퀴어 영화제 KQFF 라는 것을 새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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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조감독의 SeLFF 측에서는 독자적인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유일의 성 소수자 영화제'라는 문구를 사용하면서 또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거기다가 2014년 5월 29일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제14회 서울 LGBT 영화제'라는 문구가 나가고 이를 영화제 측에서 수정 없이 인용 보도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 회차나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조직위의 요구가 영화제 측에 의해 완전히 무시된 것이다. 이후 사소한 일들이 계속 오가면서 양측의 감정적인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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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지 말고 해결하라


조직위 측 구성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이 보통 이상으로 '조심하고 있다'라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 성 소수자라는 집단 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그런 조심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든 외부에 흠 잡힐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갈등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 자체를 꺼려하기도 했다. 


이 사안에 있어서도 초기에 문제가 인식되었을 때에도 강력하게 항의에 나서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쉬쉬하면서 대처한 것도 그런 조심성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되었거나 김조광수 감독은 사회적으로 영화계에서의 네임드이다. 그가 한마디 하면 씨네21 등의 잡지에 바로 인용 보도되기도 한다. 인터뷰도 많이 한다. 나름의 스피커를 가진 네임드인 것이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당신이 왜 우리 영화제를 빼앗아갔냐고 정면으로 항의하는 것 자체가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심각한 갈등 상황으로 비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서든 합의를 하고 조용히 처리를 하고 양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김조광수 감독 측은 취재에 응하질 않았다. 물론 취재 따위 필요 없다는 오만한 태도는 절대 아니고 마찬가지로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는데, 자신들의 입장을 자꾸 설명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면서 표현을 지극히 아끼는 태도를 보였다. 앞서 언급된 김조감독의 입장은 대부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서 제공한 회의록 녹취본에서 확인한 것들이었을 뿐이다. 


결국 이 문제는 그저 물밑에서 어찌어찌 합의 보고 마무리될 수도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SNS 상에 제기하게 되는 바람에 이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지만, 그만큼 이 문제에 관련된 사람들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올해 들어 슬슬 이 갈등이 이슈화되면서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이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 조직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복잡한 논의과정을 거쳐 '성 소수자 인권운동 공동회의(줄여서 성공회)' 라는 중재를 위한 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중재 조직을 만드는 과정도 김조광수 감독 측에서 앞장 섰던 걸로 보인다. 즉, 문제 해결의 의지는 양측 모두에게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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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인권연대, 언니 네트워크,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등의 조직들이 모두 모였다. 이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사안에 접근하고 있으며 양측으로부터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의견서와 각종 자료들을 제출 받아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원래는 이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에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했으나, 생각보다 이 사람들이 일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더 이상 기다리기도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은 상황을 모두 전달하고, 이 논의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를 같이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여기에 관련된 많은 분들은 무척이나 걱정을 많이 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최초에 김조광수 감독이 영화제를 조직위에서 분리해서 자신이 직접 운영하고 싶었더라면, 그냥 조직위에서 분리에 대한 의결을 더 진행시켜서 확실하게 분리를 약속받고 일을 진행했더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최소한 외부에서 접근해 취재를 한 시선으로는 그렇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 보고, 회의록들을 모두 살펴보고, 사태의 진전을 확인한 결과가 그렇다. 


감정이 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이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십 년의 전통을 가진 LGBT 영화제를 집어삼키려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보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직위를 호구로 보고 그냥 십 년 전통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영화제를 하나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면 영화제가 꼭 축제 조직위의 산하 조직일 필요도 없다. 영화는 축제에 비해 상업성도 강한 아이템이고, 잘 키우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생력 있는 조직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영화제를 완전 독립시키고, 축제 조직위와 협력해서 매년 벌어지는 퀴어문화축제에 영화제가 협력해서 참여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영화제는 별도로 활동을 하는 방안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조직위에서 고생해왔던, 무지개 영화제 시절부터 영화제를 키워온 사람들을 설득했어야 한다. 설득하고 정상적인 논의구조 하에서 의결을 하고, 받은 의결이 보장해주는 권위를 가지고 실무를 집행했어야 한다. 이런 의도와 계획, 좋게 말하면 비전이 공유되지 않고, 심지어 영화제 스태프들도 이 내막을 잘 모르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이 되어 버린 것은 '네임드의 독단'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축제 조직위 측도 이런 문제를 좀 더 빨리 인식해서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 동안이나 끌어온 무신경함에 대해 비판을 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실제로 무신경한 것이 아니고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공론화시켜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었을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너무 많이 흘렀다. 


양비론으로 흐르는 것을 제일 싫어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런 측면이 있다. 완벽한 선인도 없고 완벽한 악당도 없다. 그저 찌질함만이 있을 뿐이다. 의결되지도 않은 일을 그저 내 혼자 마음으로 열심히 밀고 나가는 것, 이것도 찌질함이고, 분명히 갈등이 존재하고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나서서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찌질함이다. 


어찌 되었거나, 앞에서 얘기한 대로 이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갈등이 발생했다. 김조광수라는 중요한 한 인물의 실수로 인해 갈등이 발생했고,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 묵히는 사이 문제가 좀 커졌다. 그리고 커뮤니티는 이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 중재가 양측 모두 만족할 수준으로 무사히 성공한다면 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커뮤니티는 한 번의 파도를 무사히 넘는 셈이 되고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중재 과정에서조차 양측의 찌질함이 마구 발휘되면서 말싸움만 하다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되어 버린다면, 커뮤니티는 후퇴한다. 


서울 LGBT 영화제는 나름대로 근본 없는 듣보 영화제라는 오명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김조광수 감독 역시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일을 그르친 네임드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축제 조직위는 10년이 넘게 키워온 영화제를 빼앗기고 말도 못하는 찌질이들의 모임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게 될 것이고, 축제의 위상마저도 후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잘 해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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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건 쉽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반드시 싸움이 나고, 목소리 큰 놈이 그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조망을 해 보면 이런 분쟁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커뮤니티 전체에 해가 된다. 


중재는 어렵다. 양측의 의견을 모두 이해해야 하고 조율까지 해야 하며 양측을 모두 이해시키고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길고 지루한 설득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해야 한다. 


부디 이 사건을 중재하기 위해 모여든 성공회, 성소수자 인권운동 공동회의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는 것에 '성공'하시길 기대해 본다. 


이 사건에 관해 뭔가 추가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아니 알려드리기 이전에 독자 여러분이 직접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나 '서울 LGBT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사건의 진행을 살펴보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그게 우리가 이 사회의 한구석에서 존중받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약자들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일 것이다. 나서서 응원까지 해 준다면 더 좋고. 

성 소수자 여러분들의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가 오기를 기원하며 마친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