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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29. 화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1. 300만부


출판사가 신뢰하는 작가군, 있다. 그 신뢰는, 출판사 직원의 밥을 멕여주냐 안 멕여주냐에 달린 바, 판매부수에 비례한다. 사생활이 난잡하든, 인품이 개차반이든, 작가는 부수로 증명해내지 못하면 스러져갈 운명이다. 걍, 책 한번 내본 사람으로.

 

다만 세상 불공평하게시리 그 너절한 운명이 완전히 남의 일인 사람도 있다. 300만부, 이미 2012년 초에, 게다가 인문서, 그것도 한국에서. 

 


주인공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되겠다. 이 역대급 시리즈의 ‘일본편’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두말할 것 없이, 저자는 유홍준 교수(이하 걍 유홍준)다.

 

다 아는 찬양은, 여기까지. 

 


2. 이너뷰, 때려칠까 


그를 만나기 전, 조심하랜다. 매우, 심히, 꼬장꼬장하다고. 이너뷰 무지하게 싫어한댄다. 기자도, 딱 그만큼 싫어한댄다. 이너뷰 시작과 동시에 그가 던진 말.

 

"책에 쓴 걸 왜 또 얘기해야 돼. 피곤해. 인터뷰하기 싫어."

 

되겠다. 훅 오더라. 취재도 아니고 본인이 싫다는데 할 이유 없다. 본지 이너뷰 같았으면 오케이, 여기까지, 하고 갔을 텐데 이건 인터파크 북디비와의 계약, 에 더하여 아쉽게도 내가 그의 팬이다. 하여, 참고, 걍, 고했다. 


김: 일본문학사 전공인데 놀랐습니다. 책을 쓰는 흐름에. 문화, 사람, 역사, 그냥, 다 유려하게 연결이 되던데요. 일본에 관한 책 중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감탄하면서 봤는데 이 맥락이랑 연결해서 일본문화재를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유: 그건 거기 가서 물어봐. 나한테 할 질문을 해.

 

저릿 저릿 쏘아 붙인다. 맞는 말이니, 할 말 없다.

 

김: 좋습니다. 왜 일본인가요?

 

유: 일본, 중국, 다 쓰려고 했는데 일본 먼저 쓴 거지. 기회 되면 중국 먼저 했어. 아무래도 한국사람이 일본을 너무 잘 모르니 먼저 썼을 뿐이야.

 

김: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이 동경인데. 거리를 걷다 보면 동경에도 문화유산이 많잖아요. 현대 정치외교의 중심이고.

 

유: 난 안 써. 교토 편만 쓰고 끝낼 거야.

 

김: 딱히 이유가 있나요?

 

유: 미술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거기서 끝이지. 오사카나 동경은 안 쓸 거야. 내가 다 써야 할 이유도 없고. 모르는 걸 억지로 쓸 순 없는 거야. 난 문화유산을 미술사로 가지고 얘기하는 게 낫지, 정치외교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건방진 거지.

 

김: 책을 보면 문화재랑 연애한다는 느낌이 있는데.

 

유: 본인이 그렇게 느꼈으면 된 거고. 

 

 

이너뷰 초반 분위기는 극악, 되겠다. 게다가 일정이 매우 바쁘다고 1시간 후에 바로 나가봐야 한댄다. 내가 그의 팬이 아니었다면 걍 때려 치고 나왔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에게 친절할 의무, 단연코, 없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특히 쇼토쿠 태자의 브레인 역할을 한 진하승에 대해 묻자 책에 써있는 건 묻지 말랜다. 독자들은 궁금하면 그냥 책들 사서 알아서 읽으시라. 작가, 싫다 하고, 내가, 납득, 했으니 이번 이너뷰는 글케 간다.

  


3. 난, 타고나지, 않았다


김: 처음 문화유산 답사기를 쓸 때랑 지금이랑 비교해 보면 10년이 넘게 흘렀는데 글 쓰는 스타일도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유: 문화재를 보면서 나 자신도 성장하지. 처음에는 문화재 자체, 하나에 집중해서 디테일 하게 보던 것이 나이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폭넓게 보는 시각이 생겨. 똑같은 이야기도 나이 40대 하고 60대 하고 다를 수 밖에 없어. 어떤 사람이 처음엔 답사기를 샤프하게 썼다고도 하고 변질했다고도 하는데 내 기조가 바뀐 건 아니야. 아래서 위로 쳐다보던 것을 위에서 아래로 보는, 그런 차이는 있을 거야.

 

김: 아래, 위. 무슨 뜻입니까?

 

유: 그냥 이해해. 조선시대에 설산도라는 그림이 있는데 그 작품을 보면 그림 전체에 나오는 삼엄한 기상이라든지 어떻게 18세기에 저런 그림이 있었을까 하는 걸 느끼지. 박물관에서 그 작품을 봤을 때 감동적이었어. 아주 싱거운 것 같지만, 선비의 곧은 기상 같은 게 느껴지거든. 문화재를 보는 건 타고난 게 있다고 생각 안 하는데 자기자신의 관심, 경험의 축적,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 봐야겠다는 의지, 욕구가 결합하면서 안목이 넓어지는 거지.

 

김: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안다.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다. 라는 공자 말, 책에도 인용되어 있는데, 솔직히 교수님은 좀 타고난 거 아닙니까?

 

유: 내가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는 거고.

 

 

 

안 넘어간다, 라기보다 이 사람, 대놓고 자신을 높이는 모든 종류의 일을 남사스럽게 생각하는 타입이라, 내 맘대로 느꼈다. 칭찬하면 강도 높게 부정하는 사람들 있지 않은가. 마치 좋아하는 사람이 아파서 걱정되면 걱정하는 마음 올곧이 드러내기 보다 화내는 츤데레 타입이랄까. 뭐, 난 글케, 오더라.

 

김: 보통사람은 확 오는 느낌을 낚아채서 쓰는 게 힘들잖아요. 교수님은 그걸 낚아채서 쓰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교수님은 배워서 안다, 는 겁니까?

 

유: 당연하지. 공부해서 아는 거지. 경험의 축적.

 

김: 그럼 유명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책으로도 많이 내는데 그걸 보고 감동했다고 하는 경우는 뭡니까?

 

유: 사진을 본 거는 기억을 위해서 보는 자료일 뿐이고 감동을 위해 사진을 보는 경우는 없지. 어떤 천재도 그건 거짓말이야. 아니면 잘못 본 거지. 실 작품은 그 사진과 똑같지 않거든. 그걸로 같은 감동을 받는 건 있을 수가 없어. 우선 디테일한 맛을 알 수가 없고 스케일이 다르니까.

 

김: 아무리 많이 알고 똑똑해도 직접 가서 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거네요.

 

유: 문화재를 보지도 않았는데 뭘 얘기해? 일상 속에서 그걸 안고 사는 사람하고 무관심한 사람을 같이 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연예인 실물과 사진이 다른, 뭐, 그런 건 갑다, 생각했다. 하긴 우리가 언제 사진빨을 믿었던가.

  



4. 그들은 일본인이다, 그리고 유홍준의 종교


김: 일본 가서 문화재 관리 측면도 유심히 보셨을 것 같은데.

 

유: 일본은 문화재 수리를 끈질기게 해. 어느 기간 동안에는 완전히 수리를 하는데 갈고 닦고 보존하는데 선수야. 우리처럼 대충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수리를 한다든지 하는 게 아니고. 우리보다 문화재 보존관리에서는 차원이 훨씬 높지. 예산 높고 관심 많고 50년 걸리는 보수작업도 시작하고 있고. 그런 건 우리가 배워야지.

 

김: 문화재 청장 할 때 바꾸실 수 있지 않았나요?

 

유: 예이, 이 사람아. 그런 질문이 어딨어. 내 맘대로 바꾸나? 조건 속에서 일하는 거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나. 예산이 있어야 하고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문화재 청장 시절 얘기, 듣고 싶었으나 정치와 당시 얘기에 대해, 그는 매우, 기분 좋지 않아 보였다. 만나야지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 던져 보았으나, 나가리. 이후에 다시, 찌르자.

 

김: 일본어는 얼마나 하시나요? 제가 일본어 전공자긴 한데 이런 책을 쓰려면, 특히 자료만 찾으려 해도 일본어를 잘해야, 아니 엄청난 고수여야 하거든요.

 

외국에 관한 얘기를 전문가처럼 쓰면서 사실 그 나라 언어 하나 제대로 못하며 사기치는 사람, 많다. 하여 대놓고 물어봤다.

 

유: 내 일본어는 괴이한 일본어야. 학원을 다닌 일도 없고. 대학을 미학과에 들어갔는데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만한 책이 없었어. 대학 도서관 가니까 일본 책이 엄청 많더라고. 그때 선배들 중에 일본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지. 초중급 책이 있었는데 초급을 독학했어. 한자를 하다 보니까 읽게 되더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 일본 책이 엄청 많아졌지. 영어 책 아니면 일본어 책이지.

 

특히 일본은 그 당시 번역이 상당히 잘됐어. 일본어 책 신세를 많이 졌지. 난 만화책을 못 읽어. 일상생활어는 모르니까. 다른 책은 그냥 동시통역하듯이 읽는데 생활용어가 나오고 하니까 아주 듣기도 힘들고. 그래서 책을 읽기 위한 일본어 공부였고 불편 없이 읽어. 와카, 하이쿠 그런 해석은 일본어교수한테 물어봐서 하고 있지.

 

일본어 전공자라 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일본 관련 문화재 책, 제대로 뜻 캐치하지 못하는 이들, 많을 게다. 전문용어 투성이에 한자 난이도, 장난 아니니. 그의 서재에 있는 책 스윽 훑어본 본인이 일본어 전공자인지라, 글케 오더라. 

 

김: 도래인 중에 특별히 애착 가는 사람이 있나요?

 

유: 우리에게 알려진 게 하타씨(진씨, 일본의 한반도 도래 씨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성씨)의 역할이 가장 명확하게 알려졌지. 일본사람도 인정을 하고 있고. 한국인들은 하타씨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면서 일본에게 다 가르쳤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건 미안스러운 일이야.

 

케네디가 아일랜드 사람이었지만 그를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도래인도 일본인으로 살아간 거지.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것이 좋은데, 마치 가서 뭘 해준 걸, 정복한 것처럼 생각하면 이건 역사를 보는 시각도 아니고, 인생을 보는 시각도 아니고, 자기 편의적으로 수정하고 생각한 거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으로 살고 일본의 문화를 꽃피운 이들을 가지고 생색내는 것, 마치 어린 시절 입양 보낸 한국인 아이가 슈퍼스타가 되니 한국 핏줄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겠다.

 

김: 한국과 일본의 문화재를 이해할 때 불교에 대한 이해를 빼놓지 않을 수 없는데. 책을 보면 불교에 대한 깊이 또한 상당하잖아요. 이것도 따로 공부를 합니까. 종교도 궁금하고.

 

유: 기독교나 그리스 로마신화를 모르고 당시 조각을 설명 못하는 것처럼 불교를 모르고서 불교문화재를 설명 못하지. 최후의 만찬, 성당벽화, 그런 건 목사가 해석하는 게 아니라 미술사가가 해석하잖아. 목사 시각, 미술사가의 시각이 다른 것처럼 불상도 마찬가지야. 스님과 미술사가가 보는 게 다른 거고 그러기 위해선 교리는 어떻고 그 당시 신앙은 어땠는가, 공부 안하고는 방법이 없어. 그건 종교든 뭐든 관계가 없지. 2000년 동안 동아시아를 움직이게 한 이데올로긴데.

 

김: 한국은 종교가 문화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막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불상을 파괴하는 사례도 많고.

 

유: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에 유교로 이데올로기가 전환되면서 그 이전에 있었던 불교 문화재들이 어마어마하게 파괴됐지. 문화재 관점에서 봤을 땐 전쟁보다 더 심하게 했었어. 일본도 마찬가지고.

 

김: 일본에서도.

 

유: 일본은 나중에 스스로 반성해서 제도를 만들어 보호하긴 했지만 5년, 10년동안 파괴해 버린 양은 엄청난 거지. 신교와 불교가 결합돼있던 거를 불교를 배척하기 위해, 그러니까 국가주의로 나가기 위해 아주 잔인한 계절이 있었어. 일본엔 지금도 모든 사찰들이 폐불훼석 때의 흔적, 뭐, 10분의 9를 몰수 당해 섬처럼 남아있는 것도 많고. 지금처럼 문화재란 개념이 없던 시절엔 일본도 야만의 시절이 있었지.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전통 종교인 신도(神道)와 융합되어 천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신불습합(神佛習合)이 1867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자 신정부의 종교정책에 의해 신(神)·불(佛)이 분리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1867년 12월 왕정복고의 쿠데타로 성립된 메이지 정부는 제정일치의 천황제국의 확립을 목표로 하였던 만큼 신도(神道)에 의해 국민을 교화하고 국가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다. 즉,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제정일치의 사회가 전통신앙이며 천황가(天皇家)의 신앙이기도 한 신도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지향했다. 이를 위해 신정부는 그때까지의 신불습합을 거부하며 신도와 불교를 엄격히 구분하는 신불분리령을 포고하여 불교 사원에 속한 토지들이 몰수되었으며 황실 내에서의 불교행사가 폐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폐불훼석(廢佛毁釋)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1868년 4월1일 오전, 무장한 신관(神官) 출신의 신위대(神威隊) 50명, 인부 50명, 히에신사의 사사(社司)와 궁사 20명 정도로 구성된 한 무리가 히에신사[日枝神社] 경내로 들어가 불상, 불경, 불구 등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이때 불타버린 불상, 불경, 불구 등이 124점에 이르고, 귀금속 장식품 등 48점이 약탈당하였다고 전한다.



이상, 내가 정리한 건 아니고 두산백과 사전의 ‘폐불훼석’의 정의 , 되겠다.

   

김: 잠깐, 그래서 종교는 어떻게 되시나요?

 

유: 내가 믿는 건 한국미술사밖에 없어.

 

유홍준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한마디, 로 오더라.

 

  

5. 반환문화재, 필요 없다


김: 문화재 청장 시절 일도 많이 하고 욕도 엄청 드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게 뭡니까.

 

당시에 관한 질문, 싫어한다지만 던졌다. 자기를 만나서만 들을 수 있는 질문, 하라 했으니.

 

유: 시스템이 따라오지 못한 거지. 안되던 일이 많았어. 당시에는 문화재를 발견해도 아무런 보상이 없었어. 지금은 그렇겐 안되잖아. 옛날에는 뭘 보수하든가 만들어도 어떻게 싸게 만들지 연구하는 시스템이었지. 납품하는데 1억 예산이 있으면 누가 이걸 잘 만드냐, 퀄리티 조달이 있어야 하는데 개량된 수치가 아니라고 해서 기준이 없단 말야. 문화재 수리를 하거나 물건이 들어와도 잘 만든 걸 살 방법이 없는 거야. 제일 짜증스럽고 어렵지.

 

김: 지금은 어떤가요?

 

유: 지금도 그래.

 

지금도.

 

김: 문화재 청장 할 때, 욕 먹으면서까지 밀던 신념은 그대롭니까?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게 정말 국익을 위한 거라고.

 

청장 시절, 유홍준은 그야말로 집중포화의 대상, 되었다. 언론의 단어 선정 또한 절묘했다. 문화재에서 ‘술파티’ 벌이는 문화재 청장. 

  

  

유: 당연히 해야지. 세계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거고. 우리나라는 다 막아놓고 들어가질 못하게 하잖아. 국민도 잘못 계몽된 거야. 우리나라 국무총리가 베르사유에서 밥 먹고 오페라 봤다고 신문에 나잖아. 국제대회를 열면 온 사람들이 다 그 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야. 한국에 이런 전통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나라 위상이 오르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걸 허용할 줄 몰랐잖아.

 

세계 대회들을 보면 그 동안 열린 만찬장소가 고궁 아니면 그 나라 박물관 로비야. 우리나라처럼 호텔로비에서 하는 그런 나라는 없어. 그건 문화적 전통이 없는 신생국가나 그렇게 하는 거지. 우리가 아직도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세계 속, 전체 속 문화를 보지 않으면 안돼. 우리는 약탈문화재에 대해서도 반환문화재 얘기만 하잖아.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안 좋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돼.

 

데스크에서 뽑아 먹기 좋은 멘트, 나왔다. 하여 소제목 ‘반환문화재, 필요 없다’.

 

김: 이건 딱 잘라서 공격하기 좋은 멘트인데요. 유홍준 교수, 반환 문화재 필요 없다, 망언. 이런 식으로.

 

유: 그러니까 약탈당한 문화재를 돈 주고 사가지고 오면 우리나라 알릴 기회가 있겠어? 명백한 약탈은 찾아와야 하는데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사간 문화재를 가지고 박물관을 꾸며서 뭘 했을 적엔, 그건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나가서 문화의 대사로써 기능할 수 있는 걸 활용해야지.   

 

  

문화재청에서 재외문화재를 만들어서 노력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환수를 하고 있잖아. 그런 식으로 행정도 떠올라야 하고 국민의식도 바뀌어야 해. 아직까지 세계를 주도해본 경험이 없고 선진국들이 어떻게 세계 속에서 자기 위상을 유지했는가의 경험이 없어서 그래.

 

문화재청장 했을 적에 우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한류가 흘러간 나라 20개국에 우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연수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줬어. 3개월간 와가지고 견학할 사람 있으면 받아주겠다고 했지. 그런데 30개국이 다 오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 대전, 경주, 서울해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이런 데서 왔어. 이 사람들이 결국은 그 나라 문화재 전문가가 돼서 친한파가 되는 거야. 그 사람들이 유네스코에서 역할을 할 때가 되면 우리나라가 더 위상이 서는 거지.

 

난 받아본 일 없지만 장학재단이니 뭐니 받고 온 사람들 있잖아. 그 사람들이 한국사람 유학을 왜 시켰겠어. 그게 결국은 은혜를 베풀어 주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는 거야. 보스는 베풀어야 해. UN에서 분담금이 생긴 것도 그런 거고. 원조받던 시절도 지났고 원조하는 나라잖아. 그럼 그런 시스템답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의식은 아직 안 좋고 하니 멀었지.

 

내가 일본 답사기를 쓴 것 중에 하나도 이제는 우선, 알아야 해. 알아야 한다고.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그 나라에 배워야 할 게 뭐가 있고 어떻게 해야 과거 현재를 잘 알려줄 수 있는가.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힘은, k-pop, 한류가 흘러간 곳에서 우리나라에 멋있는 전시회를 하면 한국은 저런 문화적 정통성에서 저런 게 나왔구나 하고 존경하게 돼 있는 거야. 외국 가서 물어보면 남북 갈라진 나라에서 올림픽 했다, 월드컵 했다, 이런 거 밖에 기억 못하잖아.

 

싸이도 있으나, 여하튼, 타당하다. 흔히 일본 애니나 만화를 경이로울 정도로 좋아하는 이들을 덕후라 표현한다. 다만 깊어질수록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애들이 보는 만화라고 치부했던 작품 속에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는 게 그들이기도 하다.

 

나루토라는 만화가 인기 있으면 괴물들은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왜 그런 식으로 묘사가 됐을까, 아 이런 고대사랑 연결되어 있구나, 이런 일본의 정신문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구나 까지 파고들어가다 아예 일본문화의 팬이 되는 덕후들의 느낌이랄까. 역으로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나 음악에 열광하는 이들이 이런 식으로 한 층 깊은 한국 문화의 팬이 된 사례, 본인 지인들 중에 많다.

 

유: 그런 시각 속에서 일단은 자기자신의 시각을 넓혀야지. 내가 국내답사를 더 쓰는 것보다 일본,중국, 더 넓은 시각으로 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일본 답사기를 쓴 거고.

 

김: 좋은데요. 그런데 이쯤 되면 숭례문 얘기 안 할 수 없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던졌다. 무슨 일을 했든 어떤 업적을 남겼든 자신은 숭례문이 불타 사라졌을 당시의 문화재청장으로 역사에 남을 수 밖에 없다, 고 무릎팍 도사에 나와 말한 바 있었다.

 

유: 말 안 할래. 길어.

 

하지만 한번 더.

 

김: 노무현 대통령이 막았잖아요.

 

유: 사표 냈지.

 

김: 대통령이 보류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유:

 

김: 처음에 막았다고.

 

유: 노무현 대통령 끝날 때 같이 끝났지.

 

김: 문화재청장 하면 아무리 그래도 정치가 필요한 자리고 상처도 많이 받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유: 문화재 청장 하는데 정치랑 무슨 관련 있어. 아무것도 없지. 한나라당 사람들이 차기 정부에 대한 공격을 위해서 나를 물고 늘어졌을 뿐이야.

 

글타고, 한다.

 

  


6. 물 건너, 더, 대우받는 남자의 방


김: 보통 이런 책의 가치는 국내 보다는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법인데 어떤 피드백이 있었나요?

 

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에서 계약서가 왔어. 일본 아사히 신문 인터뷰 코너인 ‘히토’에도 나왔고. 아사히 기자가 내 책을 보고 본사로 돌아갔는데 걔들이 취재를 하고 주목을 해.  

 

 

신문을 직접 보여주었다. 유교수 얼굴이 아사히 지면에 딱.

 

유: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서 언급하는 책이 몇 권이나 되겠어? 일본 소개하는 거 말고 지성인 입장에서 일본은 이렇더라는 책.

 

김: 저도 전공자지만 일본에 관한 책은 엄청나게 많은데 대부분 겉핥기죠.

 

유: 우리나라 실태야. 내 책도 다 번역을 하겠다고 하더라고. 관광과에서도 직원이 왔어. 고맙다고 인사하러.

 

일본의 공무원이 직접.

 

유: 난 국내 답사기를 그렇게 적어도 시청에서 오는 거 처음 봤어. 걔네들이 가지고 있는 성실성이랄까. 관광엑스포 시간 내 달래서 갔는데 어떻게 해서 내 책을 알았냐고 했더니 책에 나와있는, 유적지 분포가 표시된 한국어 지도 팜플렛을 만들겠대. 허락 맡으러 왔다고. 무서운 나라야.

 

그러하다.

 

유: 유럽, 미국 가서 보면 중국, 일본 말고 한국존재는 안보여. 그런 나라야. 일본을 단지 경제력만 가지고 얘기하는 건 자기위안이고. 그런 일본을 이해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가 손해야.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 그런 거.

 

현장에서 느꼈던 점, 그때 그때 인상을 얘기하며 책을 쓰는데, 힘든 건, 일본 역사를 배운 적이 없었잖아. 일본전공 했단 사람도 무로마치, 얘기하면 모르는 사람 엄청 많아.

 

무로마치 시대(1338~1573).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무로마치 막부를 연 이후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쓰러질 때까지의 시대, 되겠다. 뭐,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 간단하게. 

 

유: 걔네도 훌륭한 사람들 많이 나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 그런 상태 속에서 문화재를 설명하려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워. 어렵지 않게, 의미 있게 하려고 쓰니까 필자로써 고생스러운 면이 있지. 이런 걸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렵다고 할거야. 어렵단 건 몰라서 어려운 거지.

 

독자들이 가끔 가다가 저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해. 무슨 만능이야? 문화재와 역사를 같이 공부하면 잊혀지지 않는 이점이 있어. 좋은 거지. 무엇보다 일본은 배우기도 하고 알기도 해야 하지만 우선 즐겨야지. 외국여행보다 더 행복한 아이템은 없잖아. 돈 있고 시간 있으면 해외여행 아냐? 인근나라 일본에 가면 깨끗하고 먹을 거 좋고 친절하고 우리 흔적도 남아있고.

 

우린 공생하고 있고, 해외여행도 일본만 하루 1만명이 오가는데 일본에 대해 알고 가면 즐겁고 재미있고 의미 있지 않을까.

 

김: 아무래도 국내 편과 일본 편은 반응이 다를 테고 일단 모르는 부분에서 시작하니 독자층이 더 좁아지긴 할 텐데, 그만큼 다양한 층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유: 국내편처럼 많이 팔리진 않지만 내 책을 나이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 친구 장인이 80이 넘으셨는데 내 책 읽고선 일본을 갔다더라고. 거동도 편치 않으신데 가셨대. 나이 많은 분들, 일제시대 소학교 다녔던 분들은 그 책 읽고 일본 갔다 온 게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 갔다 온 것처럼 좋았다고 얘기해. 기본적으로 일본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길 하겠지.  

 

 

유홍준, 뿌듯해 했다. 몇 백만 권을 팔아 치우는 밀리언셀러에게도 그러한 경험은 여전히 즐거워 보인다.

 

유: 일본역사, 문화 공부한 사람들이 일본이 어떤 나란가, 있다, 없다, 그런 거 말고 기본상식을 위해서의 가이드가 나와줘야 해. 독자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지. 인터파크 가서, 일본을 알고 싶다고 권해보라고 해봐. 전문가들이 보는 어려운 책 말고. 내가 책 쓰면서, 입에 붙지도 않는 거 쓰면 독자들 읽지도 않는다고. 최대한 그 점을 고려해서 썼어.

 

일본답사 해보면 우리자신이 더 넓게 보이고 우리 역사가 자랑스럽게 보이고 안타까움도 생기지.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

 

김: 바쁘신데 포인트를 알아서 다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정치 쪽 얘기가 더 궁금하긴 한데(웃음)

 

유: 정치얘긴 안 해.

 

김: 알겠습니다. 유홍준 교수에게 책이란 뭡니까? 

 

유: 웬수지 뭐. 내 인생의 목표가 내방에 책을 하나도 안 두는 거야. 농사짓고 살다 죽는 게 꿈이야, 내방 볼래?

 

김: 으아, 좋죠.  

 

 

유홍준, 본인의 소장 도서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한다. 일본 관련 책들, 어마어마하다. 정말로, 어마어마하다. 인터뷰를 싫어하고 기자를 싫어한다는 유홍준. 처음엔 왜 책에 있는 걸 자신이 또 설명해야 하는지, 왜 책보면 되는 걸 자신한테 묻는지 화 냈다. 중간에 몇 번이나 담배를 피며 인터뷰 파토날 위기, 있었으나 지금의 그는 마냥 책을 좋아하는, 순수한 학문적 열정을 가진 아홉 살 아이와 같다.

 

기분 좋아진 김에 이것 저것 막 손대면서 물어보니 캐비넷 전체가 사진집이다. 물론 이 캐비닛 하나가 전부는 아니다. 이게 도대체 몇만 장인가.

 







   

하나 하나의 모든 사진이 그가 직접 찍은 것이다. 그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발로 쓴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수천 권의 책을 일본에서 주문한다. 수만 장의 사진을 찍는다. 아, 그래서 그가 한사코 ‘배워서 안다’라 했나부다.

 

자신의 배움과 노력, 타인이 마음대로 타고났다 재단하는 것에 불쾌한 이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과정을 즐겁게 말한다. 아이처럼 말한다. 꼬장꼬장한 학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이 사람 매력이구나. 꼬장꼬장함과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첫 대면의 이면에 이런 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 든다. 그가 한 권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발품은 기자 한 명이 서평 보도자료를 인용해 대충 날려 평가해 버려선 안될 성질의 것이구나, 하는 생각, 든다.

 

이 사람, 진짜구나, 이 정도 쏟아내서 부어 버리면 정말 부끄럽지 않겠구나.

 

 


7. 유홍준이 원하는 것

 

유: 김기자. 내가 문화재청장 그만두고 숭례문 때문에 나왔을 때 누가 그러더라고.

 

처음에 바쁘다 했던 그, 즐겁게 그의 방을 보고 이제 슬 정리하고 가려는데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입을 연다. 난, 들을 뿐.

 

유: 고위직에 있던 사람이 자기 원래 직업으로 백하기 힘들다고 하대. 관록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나는 관록 물 버리는데 1년 걸렸어.

 

다시 평교수로 돌아오고 그 담에 저술활동하고 강의하는데 5년. 지금까지 5년동안 책을 10권 썼어. 말이 안되지. 국보순례, 명작순례, 누가 써줬냐고도 물어봐. 생에 원래 창조적 열정이 강한데 사람이 40대 들어가면 그 동안 쌓았던 거를 자기목소리로 내고 싶어서 뭔가를 해. 사업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 그때가 세상으로부터 배울 거 배우고 사회적 나이도 그렇고, 인생의 나이도 그렇고 쏟아내는 때지. 스스로 돌아봤을 때 창조적 열정이 최고조로 달한 게 언제인가 하면 나는 40대인 거 같아. 답사기 쓴 게 그때니까.

 

이제부터는 마무리를 해야 한단 말야. 마무리를 하려면, 한 권 더 써야 돼.

 

유홍준, 1949년생. 올해 만 65세. 지금까지 내 인생을 한번 더 살면, 이 남자의 나이가 된다.

 

유: 명품순례라는 걸 하나 더 써야 해. 도자기, 공예품 그런 거. 일본은 하나 더 쓰면 되고. 국내는 앞으로 3권 더 써야지. 1년에 하나씩 쓴다고 하니까, 끔찍해. 나에게 책이란 웬수야. 애증이 교차하는 웬수지. 원수가 아니라 웬수.

 

거기다가 대중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강연 요청자가 엄청나. 안 한다, 가 답인데, 그래도 국내 걸 쉬고 일본 다녀오면서 쓴 걸 많은 사람들이 칭찬 해주더라고. 책이 국내처럼 많이 팔리진 않지만 누구든지 일본을 알고자 할 때, 여행할 때 이 책을 읽고 좋은 가이드라인이 됐으면 좋겠어.

 

이 말, 일개 일본문학사 전공자인 본인이, 보장하는 바이다.

 

유: 내가 원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자기가 보는 시야에서 더 넓히는 거야.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만이 아니라. 당시 한반도 사람들이, 2300년 전에 집단 쌀농사하고 청동기 문화 가지고 일본에서 야요이 문화 일으켰다는데, 왜 집단적으로 일본으로 갔는가에 대해선 생각을 잘 안 하잖아. 우린 역사 속에서 이런 얘기 안 하잖아.

 

김: 네.

 

유: 그땐 우리 고조선이 서서히 멸망해 가고 있을 때야. 연나라 침입을 받아서. 외국지배를 받아야 되니 도망가야지. 보트피플이 돼가지고 말이야. 가야 망하니까 가야사람들이 거기로 가서 철기 만들어주고 백제 사람들이 가서 또 기술 전수해주고.

 

아메리칸 교도들도 쫓겨서 간 거잖아. 미국의 뿌리가 영국에 있단 걸 인정해주듯 일본사람들은 일본 뿌리는 한국에 있단 걸 인정해줘야지. 내가 직설적으로 얘긴 안 했지만 읽고 나면 그 얘기야. 그게 이상할 게 없어.

 

한민족이 자칭 기마민족이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서 말 타고 왔어? 이 땅에서 씨가 뿌려져서 나온 게 한민족이 아니잖아. 인류가 이동하면서 정착한 게 여기고 그게 우리조상이잖아. 그게 또 일본인이 된 거고. 그렇게 느끼면서 살아오면 아주 관계가 편해지는 건데, 그들은 그걸 인정하기 꺼려하고 역사적 왜곡을 일찍부터 해왔고 한국은 또 일본의 입장을 생각 안하고 우월감을 느끼려 하지.

 

우리가 통일신라, 발해 얘기할 때 한민족이라고 하잖아. 발해 입장에서 통일신라는 자기를 없앤 웬수의 나라 아냐. 반면에 발해하고 일본은 외교사절이 20~30번 오갔는데 신라하곤 없었지. 그걸 다 잘라서, 발해, 한국, 통일신라, 일본 나쁜 놈, 왜적, 이렇게 다 자르고 구분 지어서 세계사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일본 공부 하다 보면 우리역사를 더 이해하고 휘어져 들어가면서 아는 게 있어. 느끼는 바가 있지. 난 그걸 사람들이 다 알았으면 좋겠어. 김기자, 이 정도면 충분하지?

 

김: 네.(웃음)  

 

 

그의 팬으로 찾아간 나는 그를 만나고 5분 만에 안티, 되었다. 두 시간 이후, 골수 팬, 되었다. 종교가 뭐냐 묻는 질문에 ‘내가 믿는 건 한국미술사 밖에 없어’라고 말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남자.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수백, 수천 권의 관련 도서를 섭렵하고 직접 수 백리 길 걸으며 수 만장의 사진을 찍어대는 남자.

 

300만부의 전설에 이유, 있었다. 휘지 않는 자존심, 이유 있는 꼬장꼬장함, 줄기차게 유지하시라. 예술하는 학자라면 기자들에게 버럭버럭하며, 이 정도 존심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유홍준, 옳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편집부 주



본 이너뷰는 

인터파크 북디비(링크) 작가 이너뷰어

본지 부편집장이 용병으로 뛰게 된 겸사겸사 

인터파크 북디비 측과 협의하에

본지 동시 게재한다.


최근 신간을 낸 저자라면

다짜고짜 찾아가니 

딴지스도 추천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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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어 및 정리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