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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추천9 비추천-2

2014. 08. 01. 금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끔 하는 쟁 이야기 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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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월 29일과 30일에 쓰여졌습니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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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에 영화 <명량>이 개봉한다. 영화 보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너도 이 영화 소식은 꽤 지겹게 들었을 거야.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명량> 개봉을 벼르고 있다. 아마 개봉하자마자 출동해서 볼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날짜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명량해전 얘기를 해 볼까 해. 영화 보기 전 예습이라고 해 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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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명량 이전을 보자. 7월 16일 칠천량 해전으로 세계 최강 조선 함대는 일순간에 붕괴됐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 불타 버린 건 아니고 경상 우수사 배설의 함대는 요령껏 빠져 나왔고 다른 배들도 꽤 탈출했지만 재조직되지 못했지. 이순신이 후일 함대를 신속하게 재건할 수 있었던 건 새로이 건조한 것들도 있겠지만 여기 저기 짱박혀 있던 배들을 찾아낸 이유가 클 거야. 그러나 둘러치건 메치건 조선 함대가 결딴난 건 맞았어.


7월 18일 이순신은 칠천량의 소식을 들어. 권율이 와서 “이 일을 어쩌면 좋소.”하고 하소연을 하거든. 어쩌긴 뭘 어째 당신이 원균 등을 곤장쳐서 떠밀었잖소! 하고 싶었겠지만 이순신은 이렇게 대꾸한다. “제가 바다로 나가 보지요. 일단 뭘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은 권율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지. “그래 주시오. 제발 그래 주시오.”


이순신은 경상도 삼가를 떠나서 단성 곤양으로, 후일 그가 죽는 노량 앞바다까지 나가 경상 우수영 함대를 만난다. 거제 현령 등 장수들은 이순신을 보고 엉엉 운다. 울음도 터져 나왔겠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거야. 수십 억 부자가 빚보증 때문에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하고 빨간 딱지가 온 집안에 나붙은 기분이랄까.


이순신도 기가 막혔을 거야. 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울지만 자신은 울음을 터뜨릴 여유조차 없었겠지. 경상 우수사 배설은 뒤늦게 찾아와서는 원균 욕을 실컷 한다. “원균의 패망한 일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난중일기)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얘기가 시험 본 뒤 틀린 문제를 두고 통분해 하기다. 지금은 원균이 어떻게 죽었는가보다는 당장 처참하게 흩어진 군대를 어떻게든 끌어 모으고 도망간 배들을 나오게 하고 생존 본능으로 눈에 핏발선 백성들을 묶어 세우는 일이 더 급했다고. 한산도의 조선 수군이 없어졌다면 남해안은 일본군의 연못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아무 벼슬도 없이 동분서주하던 이순신에게 어명이 떨어진다.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하라는. 이 교서에서만큼은 선조 임금은 바짝 엎드린 모습을 보인다. '하늘의 뜻' 같은 거 따지지 않고 통탄해. “지난번 그대의 지위를 바꾸어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게 한 것은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비롯한 일이었거니와 오늘 이처럼 패전의 욕됨을 당하게 되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래 다른 사람은 할 말이 많아도 선조 임금 당신은 감탄사 한 마디도 할 자격이 없지. 이순신은 불만을 터뜨릴 새도 없었어.


이미 일본군은 남해 바다를 휩쓸고 있었어. 심지어 한때 이순신의 본영인 전라 좌수영이 있던 여수와 순천 지역까지도 일본군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어. 전라도 병마 절도사는 무기와 식량을 불태우라는 청야작전 명령을 내렸고 이순신은 그 와중에 불태우려는 곡식을 빼앗고 무기를 회수하면서 전라우도 남해안 일대를 돌아다닌다. 난중일기를 보면 눈물겨울 지경.


“패잔병들에게 말 세 필, 그리고 활과 화살을 빼앗아 왔다.” “창고에 지키는 사람은 없고 곡식은 있어 군관을 시켜 지키게 했다.” “무기를 들고 오지 않은 우후 이몽구를 곤장을 쳤다.”


위험한 순간이었어, 이미 일본군은 마음대로 전라도 일대를 휘젓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일본군과 엇갈리기도 했으니까. 군관 몇 명에 기십 명 군대와 함께 무기와 병사 찾아 삼천리 하고 있던 이순신이 허무하게 죽어 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


그렇게 악전고투 끝에 12척의 함대를 수습하지만 이순신도 암담했을 거야. 그 역시 당황하고 있었어. 당포의 어부가 “적이 쳐들어온다.”고 소문을 내자 이순신은 당장 그 목을 베게 한다. 하지만 다음날 적의 출현 보고가 이순신에게 들어와. 당포의 어부는 사실을 말했던 거였지. 앞뒤 알아보지 않고 군심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정보 제공자를 죽여 버린 일은 전쟁 초기 공황 상태의 조선군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야. 근데 침착하고 신중하기로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샀던 이순신이 똑같은 일을 저지른 거야. 이순신은 어부를 죽인 뒤 “군심이 안정됐다.”고 썼지만 다음날 “왜군이 진짜로 옵니다.” 하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 그나마 남은 조선군의 ‘군심’은 크게 흔들렸을 거다. '맙소사. 진짜였구나'


이순신은 적의 선발대와 교전을 벌였고 대함대가 몰려오고 있음을 알고는 항상 하던 대로 그가 싸울 곳을 스스로 정한다. 명량 바다. 얼마전 세월호 사건 때 맹골수로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강한 곳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왔었지. 첫 번째로 강한 곳은 어디? 바로 명량이었어. 우리 말로 울돌목. 너무 빠른 조류 때문에 파도가 우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울돌목이라는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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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신에게는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상소를 올린 바 있는 이순신이었지. 그는 이런 말을 해. “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오만하기까지 한 문장이고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장계야. 더구나 왕조국가에서 '내가 누구? 내가 해결하으리' 식으로 결기를 부리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지. 하지만 이순신은 그렇게 장계를 보냈다.


자신감?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아. 나는 오히려 제발 이전처럼 나를 건들지 말고 맘대로나 한 번 싸울 수 있게 해 주시오! 하는 피맺힌 항변처럼 들려. 이 장계를 올리기 전에 “수군이 얼마 안 되니 육지 올라와 싸워라.”는 어명을 받은 참이었거든. 또 이걸 따르지 않았다고 '무군지죄'니 '부국지죄'니 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조정에 들어앉아 있었거든.


더해서 수군을 폐한다면 육전은 더욱 가망이 없었어. 알다시피 우리나라 큰 강은 죄다 서해 바다로 흘러들잖아. 금강 타면 공주는 그냥 가는 거고 한강으로 흘러들면 충청도 강원도까지 가고 대동강으로 가면 평양까지 뱃놀이하는 거거든, 그 지경에서 아무리 얼마 안 되지만 수군을 폐하라니. 이 명령은 이순신으로 보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지. 안되는 수군 떠맡아서 좋을 일이 뭐겠어. 하지만 이순신은 열 두척으로라도 막겠다고, 그게 내 책임이자 능력이라고 오금을 박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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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작전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이순신은 유명한 말을 남기지.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지금 우리다.” 침울하게 이순신을 쳐다보고 있었을 장수들에게 이순신은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들은 이제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영화 <명량> 예고편을 보면 "안됩니다!"하고 만류하는 부하에게 이순신이 “된다고 말하게!” 하고 강요(?)하는 장면이 나와. 어느 때인지 모르나 이 즈음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누구도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


마침내 9월 16일 일본군 대함대가 몰려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순신은 13척(장계 보낸 뒤에 한 척 추가해서)의 함대를 이끌고 명량 앞바다로 나간다. 함대 뒤에는 조선의 민간인들이 타고 함대로 위장한 돛단배들이 올망졸망 모였고 진도와 해남의 바다 보이는 산자락에는 백성들이 까맣게 올라가 가슴을 조이며 이 말도 안되는 싸움을 굽어보고 있었지. 그 사람들이 보기에도 가슴이 턱 막히는 장면. 우리 배는 열 세 척. 일본군의 수는 얼른 봐도 100척은 훨씬 넘고. 그야말로 우리가 흔히 무용담 삼아 말하는 10대 1도 더 되는 싸움,


이럴 때는 지휘관이 선봉에 서야 해. 나폴레옹도 사령관 시절 여러 전투에서 죽음을 불사한 단신 돌격을 감행하고 때로는 생명의 위기를 맞은 일이 많았어. 그때 나폴레옹의 부하들은 “사령관님을 구하라!” 외치면서 나폴레옹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내던져 나폴레옹의 생명을 구했고 이를 본 다른 병사들은 또 다른 불덩이가 돼 적군을 향해 돌격해서 승리를 거두었지. 이순신도 자신이 선봉에서 싸워 부하들을 격동시키고 싶은 심경이었을 거야. 이순신은 출진 명령을 내리고 자신이 앞장을 선다. 133척 함대 앞으로 다짜고짜 나아가는 판옥선 하나. 그걸 보는 사람들 모두, 적이든 아군이든, 이쪽 백성들이든 입이 벌어지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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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조수는 조선군 쪽으로 강하게 흘러서 제자리에 서 있기도 어려운 조건이었어, 그 조수를 거슬러서 조류를 타고 신나게 돌진해 오는 일본 함대를 향해 달려나가던 이순신의 대장선. 이순신도 이순신이지만 그 배의 격군들, 노를 젓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지옥같은 시간이었을 거야. 유수 풀장보다도 더 센 물살, 세상에서 제일 빠른 물살을 거슬러 돌격하고 또 버틴다는 건 손바닥이 여러 번 벗겨질 일이었을 테니까. 뱃전의 병사들이라고 달랐을까. 연장든 100명의 조폭들에게 단 한 명이 달려드는데 그게 바로 너라고 생각해 봐.


아예 닻을 내려 버린 이순신의 배 한 척은 울돌목 한 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불사신처럼 싸운다.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일본군 함대도 기가 막혔을 거야. '한 척. 한 척이란 말이소까' 이순신은 자기가 이만큼 싸우면 뒤에 있는 아군들이 자~~앙군!을 외치면서 달려올 줄 알았을 거야. 그런 뜻에서 최선봉에 나선 거고. 하지만 전라 우수사 김억추(경상 우수사 배설은 초저녁에 도망갔다)는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물러서 있었고 다른 배들도 요지부동이었어. 다급해진 이순신의 배에서 깃발이 오른다. 초요기와 중군 영하기. 초요기는 장수들을 불러 모으는 기였고 중군영하기는 통제사를 호위하는 중군을 호출하는 깃발이었지.


그나마 미적거리면서 앞으로 나온 게 거제 현령 안위와 찍혀서 불린 중군장 김응함이었지. 먼저 도착한 건 안위. 이순신은 뱃전에서 안위에게 피를 토하듯 외친다. “안위야. 군법에 죽을 것이냐.” 안위도 얼이 나간 얼굴로 듣고 있었겠지. 그리고 이순신은 이렇게 외친다. 아마 울부짖었을 거야. “어디로 가면 살 수 있단 말이냐. 달아나면 살 것 같으냐.” 기록을 읽으면서도 울컥하는데 그 얘기를 직접 들은 안위야 오죽하려고. 안위는 더 들을 것도 없이 일본군을 향해 돌격해 들어간다. 뒤이어 도착한 중군장 김응함도 마찬가지. “너는 중군장이다. 대장이 위험할 때 돌보지 않았으니 당장 목을 칠 것이지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김응함 역시 서늘해진 목덜미를 감싸고 일본 함대를 향해 달려들어간다.


그들의 눈에 이순신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몰라. 7년 전쟁에 이미 하얗게 새어 버린 머리를 휘날리며 칼을 쿵쿵 땅에 찧으면서 자신들에게 호령을 떨어뜨리는 저 양반은 무슨 신선이 아닐까 싶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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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현령 안위의 배는 곧 일본군에게 둘러싸이고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왜군들이 기동성을 상실한 안위의 배를 갈고리로 잡아당겨 뱃전을 넘어갈 기회를 잡는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칼싸움이 시작되면 일본군의 일방적인 페이스. 안위의 배도 그럴 위기에 처한다. 그때 이순신이 다시 한 번 나서. 안위의 배를 둘러싼 일본군 배에 포탄을 퍼붓는데 그게 신묘하게 빗나가는 포탄 하나 없이 명중하고 일본 함선은 바다로 곤두박질쳐. .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어떤 전환점이라는 게 있다. 안된다 절망하다가도 '어라? 될 것 같은데' 하는 묘한 희망이 여름날 산들바람처럼 휘익 지나가는 순간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축구 경기에서 누군가가 시원스레 날린 중거리슛이 상대방 골대를 빵 맞히는 순간이. 뭔가 될 수 있다는 오묘한 예감이 전신을 휩싸는 순간이. 명량 해전은 안위의 배가 기사회생한 순간이 바로 그 전환점이었어.


아마 이를 지켜본 진도와 해남의 조선 백성들의 환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고 물러서 있던 배들에서는 아마도 병사들이 사또들에게 다가가 아우성을 쳤을 거야. “사또 언제까지 여 있어야 됩니꺼. 이기 작전입니꺼 아니면 겁묵고 있는 깁니꺼.” “가더라고요! 우리가 칵 죽어불든 저 작것들을 죽여불든 일단 가자고요.” 성미 급한 백성들은 해안가로 내려와 우리 함대에 앞으로 나가라고 팔뚝질을 해 댔을 것이고 멀찌감치 떨어진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배에도 노 잡은 격군들도 갑판 위로 올라와 군관을 향해 악을 썼을 거야. “우리 편 다 죽은 뒤에 노를 저으란 말이요?”


그때 배들에게 뜻밖의 신호가 전해진다. 덜커덩. 조류가 바뀐 거야. 지금까지는 서 있기 위해서만도 노를 힘들여 저어야 했지만 이제 정신없이 빠른 조류가 우리로부터 일본군을 향해 흐르고 가만히 있어도 배가 나아가기 시작한 거야. 지금껏 기가 질려 있던 장수들도 입을 한 일자로 다물고 눈에 힘을 줬다. 드디어 몇 몇 배에서 돌격 명령이 떨어진다. “가자!!!!!” 그리고 그 명령은 누가 전하지 않아도 각 배로 전파된다. “우리도 가자!!!!!!” 평산포대장 정응두, 녹도만호 송여종, 해남현감 류형 등등의 판옥선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지. 밑도 끝도 없는 함성이 터져 나왔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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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함대가 돌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뒤에 있던 위장함대, 즉 조선군이 무너지면 그대로 일본군의 밥이 될 것이었지만 그를 각오하고 조선 함대 뒤에 섰던 백성들은 눈물을 흘렸을 거야. 제발 이기시오. 제발 살아남으시오. 그들 역시 도망가지 않고 명량의 조류를 온몸으로 버틴다.


갑자기 바뀐 조류에 당황하던 일본군 함대에 마치 한 덩이가 된 것 같은 조선함대 10척이 마저 돌진해 온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 조류에 밀린 일본군이 서로 부딪치고 깨지는 가운데 좁은 수로에서 일본군은 처참하게 깨져 나갔다. 조선 함대가 10척이라지만 그 좁은 수로에서 조선군에 맞설 수 있는 것도 10척 이상이 될 수 없었지. 밀집 대형의 일본군 함대에는 겨냥도 필요 없었고 쏘면 맞고 부딪치면 자빠졌어. 죽을 힘을 다해 저항을 해 봤지만 뻔히 보이는 열 세 척의 배는 마치 거인처럼 일본군을 짓밟고 돌아갔지.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돛대에 목이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그 몸뚱이는 토막이 나고.


상상을 넘어서는 승리. 세계 해전사를 뒤져도 이 정도 열세를 극복한 승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순신 자신이 천행이라고 일기에 쓸 만큼의 감동이었지. 하늘이 도왔다는 표현 외엔 형용이 불가능한 승리. 지켜보던 백성들은 데굴데굴 구르며 울고 웃으며 만세를 불렀지. 이제 살았다....... 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았어. 명량의 승리에 기뻐하던 백성들 중 많은 수는 일본군에 학살당한다. 명량 해전 이후 진도까지도 일본군에 의해 점령돼 버렸거든. 이순신이 함대를 물려서 오늘날의 전라북도 앞바다까지 후퇴했던 거야.


슬픈 일이지만 이순신의 이 행동 또한 이순신다운 일이었어. 이순신은 승리했다고 해서 일본군 올테면 오라고 자만하지 않았고 또 다시 승리하리라는 요행을 바라지 않았던 거지.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다음이라면 대개 보통 사람들은 기고만장하게 마련이지만 이순신은 그 함정에도 빠지지 않았다.


명량 해전은 한산 대첩보다도 아니 우리 역사상 외국 군대와의 어떤 전투보다도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전투였어. 이순신 혼자 한 일은 물론 아니지만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전투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영웅은 그 자신이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 위대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데에서 그 광휘가 배가되는 법이지. 이순신은 그날 휘하 장수부터 궁수들, 포수들, 노 젓는 격군에 이르기까지 죄다 이순신으로 만들었어. 그것이 어떻게 그려질까. <명량>이 기대되는 이유다. 완벽한 인간 이순신이 아니라 당황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도 사람들을 묶어 세우고 다독이고 격동시켜야 했던 인간 이순신을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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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