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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01.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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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 신작 <MIX>속 의붓남매는 맺어질 수 있을까?

아다치 미츠루 <H2> - 'H2'의 의미

아다치 미츠루 최고의 걸작 -러프(ラフ, ROUGH)








중학교 2학년 때. 중간고사 기간이라 벼락치기 밤샘 공부를 위해 한 녀석의 집에 친구들과 함께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몰려갔었다. 


다음 날 치를 암기과목을 달달 외우고 있다가 하도 따분해져서 잠시 쉬려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더니 당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핸드북 크기의 만화책이 친구 녀석 침대 밑에 뒹굴고 있었다. 집어 들어 표지를 보았더니 '터치'라고 적혀있고, 몇 장을 넘겨보니 대충 고교야구만화인 듯 보여서 친구 녀석에게 "이거 재밌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낼 시험 보려면 아예 읽을 생각을 마라."며 씩 웃는 것이 아닌가. 그놈의 말에 피식 콧방귀를 한방 뀌어주고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채로 만화책을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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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에 몇 장 넘기면서는 '그림이 뭐 이래?'라며, 순정만화 같은 느낌의 그림체를 보면서 그저 그런 청춘 로맨스물이려니 하며 큰 기대를 않고 가볍게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턴지 한하늘, 한바다, 우시내, 이 세 아이들의 이야기에 흠뻑 빨려 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뜻밖의 반전에 한 방 먹고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거야'하며 눈에 불을 켜고 계속 달겨들었고 결국 다음 날의 시험도 잊은 채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이제는 20년을 훌쩍 넘긴 아다치 미츠루와의 첫 만남이었다.


일단 그림체나 그 소재가 마뜩지 않아 처음부터 아예 볼 생각이 없었다거나, 만화를 광속으로 보아내는 것이 무슨 대단한 능력인 양 여겨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고갱이를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만화는 읽어내는 이들의 마음을 시나브로 파고든다.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팬들은 그 기억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얼핏 보기에 그닥 성의 없어 보이는 인물 터치에 대해 탐탁지 않게 느끼다가, 이야기는 또 왜 이리 밋밋해라며 불평도 하다가, 어느 사이 거의 변화 없는 듯 보였던 인물들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를 찾는 재미에 빠져들고, 밋밋한 것만 같았던 이야기들이 자신의 마음에 진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무엇보다도 아다치의 만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의 만화 전체에서 감도는 뭔가 부족한 듯 간질간질한 아쉬움과 여운이다. 그러나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닌 아쉬움과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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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츠루를 일러 누군가는 오직 직구만으로 승부하면서도 독자들을 계속해서 삼진 시키는 투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다치의 만화에 대해 흔히들 쉽게 말들 한다. 스포츠를 약간 씌우고 남녀 주인공이 (그것도 맨날 고교생) 사랑하는 스토리라고. 맨날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와 무지막지한 능력을 가진 타자가 등장하는 스포츠물이라고. 다 맞는 말이다. 그는 정말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계속하여 스포츠 하는 고교생들의 청춘 러브스토리를 꾸준히 그려오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만화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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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아다치 미츠루 Best 5 (러프, 터치, H2, 쇼트프로그램, 진베)


아다치 미츠루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항상 같은 재료와 양념을 가지고 수십 년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리지 않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주는 그런 장인 요리사라고 하면 적당할까? 아다치의 무엇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만화를 꾸준히 찾게 하는 것일까?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과연 어떠한 것인지 이제부터 풀어가보기로 한다.​



1. 사춘기적 정서, 소년만화와 소녀만화(순정만화)가 융합된 정서


수십 년간 아다치 미츠루가 계속하여 그려오고 있는 것은 사춘기 소년 소녀의 순수한 감성과 뜨거운 열정을 주제로 한 청춘의 드라마이다. 물론 아다치의 주역들이 어른보다 더 사려가 깊은 것 같고 배려심 또한 대단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계인의 그 불안하고도 불완전한 정서를 지닌 사춘기 아이들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인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여러 작품들도 사실상 사춘기 혹은 소년기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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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소년> 제3화 '히어로'


이러한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틀은 분명히 소년만화이다. 그러나 주역들의 정서를 이루는 것은 소녀만화의 그것으로 아다치의 작품들은 소년만화라는 틀에 소녀만화적 정서가 융합되어 있다.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 드라마와 연애 드라마는 내용상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만화 속에서 보여주는 남녀 간의 정서적인 편중 또한 일반적인 소년만화에 비해 약화되어 있다.


아다치 미츠루가 그려내었던 소녀만화의 경우엔 일반적인 소녀만화와 그다지 큰 차이점은 없다. 다만 정서적인 편중이 일반적인 소녀만화에 비하자면 다소 중화되어 있으며 간혹 판타지의 주체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역전되어 버리기도 한다. 물론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타지·액션·스릴러를 가장한 정체불명의 소년만화 <미소라>는 논외이다. (<Q 앤드 A>도 당연히)



2. 캐릭터의 성격, 이야기 소재와 구조 등에서의 꾸준한 자기복제


<터치>라는 초대박 히트작으로 자신의 만화 세계를 확립한 이후 아다치의 작품들은 ​고교 스포츠(특히 야구), 소꿉친구, 삼각관계(혹은 확장된 삼각관계), (유사) 근친관계, 비슷한 사건들과 전형적 캐릭터(인물 터치 포함) 등을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그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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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 2권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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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게임>의 핵심소재인 

'소꼽친구와 형제간 삼각관계, 형제의 죽음과 그 트라우마'는 

<터치>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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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재 중인 <믹스>는 

애초에 자기복제를 대놓고 천명한 작품이니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런 점들은 아다치 미츠루가 늘상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우려먹는다는 비난을 듣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아다치의 뛰어난 작가적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런 비판을 가하는 독자들의 상당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팬이며 그의 만화들을 계속 보아도 재미를 느끼고 감동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고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에서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꾸준히 새로운 팬층을 형성해가고 있기도 하다.



3. 중심주제가 아닌 스포츠


아다치가 제일 많이 그려내었고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들의 장르를 일반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스포츠 소년만화'이다. 그래서 그의 만화를 보는 독자들 중엔 아다치의 만화에 대해 일반적인 스포츠물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적잖이 있는데 이는 가장 일차원적인 오해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읽어낸다면 아다치의 대작들로 일컬어지는 <터치>, <러프>, <H2>는 모두 미완성의 작품이 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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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의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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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의 엔딩


<터치>에선 고시엔에서의 경기는 몽땅 없어져 버렸고, <러프>에선 전일본수영선수권 대회 결승전의 결과를 알 수 없으며, <H2>는 고시엔 결승전을 치르러 가면서 끝나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다치의 만화에서 스포츠는 그 자체가 주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이끌어가는 소재이자 담고 있는 틀이며 주역들의 성장기제란 점이 중요한 체크 포인트이다.



4.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절묘한 조화


크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것도 아닌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독자들에게 강한 흡입력을 가지게 하는 이유는 그 내용물이 판타지를 꿈꾸게는 하되 허무맹랑할 정도는 아니며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상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판타지와 리얼리티 모두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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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중학시절 회상장면


아다치의 작품들에서 그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단순한 생김새를 가진 주역들의 평범한 생활들이며 주역들이 추구하는 로망 또한 결코 조급하거나 과장시키지 않고 긴 호흡과 일상의 언어로 표현해 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어가는 독자들은 어느 사이에 마치 자신이나 자기 주위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고 그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동화되어 버린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아다치가 들려주는 고교생들의 이야기 역시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고교 생활의 판타지라는 점이다.


분명히 <터치>의 주인공 타츠야처럼 자기 팀의 마운드를 혼자서 짊어지고 고시엔의 예선부터 본 무대까지 모든 경기를 치러낸 고교 투수도 있었고, <H2>의 주인공 히로처럼 괴물같은 능력으로 고시엔 역사의 몇 페이지나 장식해 버린 고교 투수도 있었다. 그러나 타츠야처럼 정식 야구 입문 불과 2년 만에 불꽃같은 광속구 하나로 고시엔 우승을 일궈낸 고교 야구 선수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으며, 히로같이 무지막지한 만능의 능력을 갖춘 투수는 고시엔은 커녕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흔치 않다. 아다치는 사실적 토대 위에 만화적 판타지를 능란한 솜씨로 가미하여 뛰어난 재미와 감동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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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 첫연재 표지


독자들은 아다치 만화의 이 현실적인 듯한 비현실을 기본적으로 그의 작화 기법을 통해서도 맛볼 수 있다.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정교한 배경묘사와 깔끔하고 단순화한, 그야말로 만화적인 인물 터치가 조화된 아다치의 작화는 마치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만화 캐릭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5. 최강의 연출력과 구성력 


탁월한 장면 묘사와 능수능란한 컷 구성, 적확한 완급조절의 스토리텔링. 아다치의 만화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다치의 작품들이 재미가 있고 흥미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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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25권 중 메이세이 고교 고시엔 진출이 걸려있는 타츠야의 마지막 투구 장면.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은 이 장면 연출에 대해 굳이 뭐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보는 그대로다. 그런데 이 연출에서 더욱 대단한 것은 그 장면들이 그대로 연결되는 페이지가 아니란 사실이다. 19p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도의 긴장감은 그대로 달려나가 터뜨려지는 것이 아니라 20p에 경기와는 전혀 무관한 장면을 삽입하여 한 호흡 멈추었다가 21p에서 완벽하게 폭발된다. 아다치는 그야말로 만화가 가지는 힘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 해낼 수 있는지를 통달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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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25권 20p에 나오는 히로따의 홈런 장면은 두 페이지에 결쳐 정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바로 앞 페이지를 보면 매우 동적인 히로의 투구 장면이 다섯 분할의 급박한 컷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다 갑자기 멈춰버린 느낌. 아다치의 만화를 정통 스포츠물이라 부를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단순히 스포츠를 덧칠한 만화 따위로 폄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뛰어난 컷 구성력이다. 그의 작품들은 여느 스포츠 만화들과 비교하더라도 차라리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결코 모자라지 않는 넘치는 박진감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아다치 미츠루가 그려내는 최강의 연출력에 대해선 <러프>의 엔딩 장면으로 조금만 더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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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일본수영선수권의 결승전의 출발신호가 울리고 선수들은 풀 속으로 뛰어든다.​

갑자기 멈춰있던 카세트가 작동되고...


... 듣고 있나요? ... 

...


그리고 장면은 청명한 하늘과 고교생활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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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 고교생이 펼쳐내는 로맨스의 최절정인 순간에서 비추어 주는 장면은 뜬금없게도 청명한 하늘과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고교생들의 모습이다. 과연 이 연출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누구는 그토록 뜨겁든 말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상관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들의 생활을 해내가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말해주려는 걸까? 물론 당연히 아니다.


아다치는 세파엔 전혀 무심한듯한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수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어느 곳에선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그 극명한 대비를 보여줌으로써 흡수할 수 있는 감동을 최고조로 증폭시켜내고 있다. 전혀 무관한 듯 생각되는 모습들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읽는 독자들은 청명한 하늘 안에 녹아있는 아미의 달콤한 고백이 자신의 가슴으로 그대로 스며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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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터치>의 26권에서 타츠야의 뜨거운 고백 후 하체의 모습만으로 두 사람의 키스를 유추하게 하고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닌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과 풀밭, 하늘과 뭉게구름을 비추어 주는 것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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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H2>의 32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전철역 커피숍의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있는 TV 브라운관을 줌인시켜 키네의 고시엔 완투승의 감동을 점층적으로 표현해 내는 거라든지. 말해보려 하면 너무나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지만 이 정도만 하자.


독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비단 장면 연출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발군이다.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무게감이, 진중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뛰어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더해 삶의 묘미를 짚어내는 정제된 대사들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큰 울림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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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19권 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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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1권 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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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12권 106p



6. 절제된 정서와 생략의 표현기법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내용과 주제의 주된 전달 방법이기도 한 절제와 생략의 수법은 주역들의 심리에 대한 작가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사춘기 소년 소녀의 순수한 마음에 독자들을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아울러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채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생기게 해서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을 보다 용이하게 하며 더욱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게 한다. 물론 독자들의 동참에 길잡이가 되는 것은 아다치 특유의 암시와 복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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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방향을 암시하는 <진베> 첫 연재분의 마지막 장면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묘미 중 하나인 미확정적 결말이 가지는 완결성 또한 이러한 수법의 연장선상이다. 아다치는 자신의 작품을 늘 불확실한, 소위 '여운 가득한' 엔딩으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충분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결말에 이르기 전에 그 미확정적 결말이 뜻하는 의미를 이미 작품 속에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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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스텝> 결말부의 미래 암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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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빛깔 무지개> 결말부의 미래 암시 장면


그러나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가와는 상관없이 독자의 각자 취향에 따라 어떠한 완결을 만들어 내더라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어차피 인생이란 항상 정해진 대로만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아다치가 만든 결말이 미확정적인 것임은 틀림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아다치가 진정으로 의도하는 바(독자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열린 결말)일 수도 있다. 다만 아다치의 그 '열린 결말'이 그저 무책임한 결말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로서 찬사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이 '절제된 정서와 생략의 표현기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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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12권 163p


아다치의 만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읽어내는 시간의 차이가 상당하다. 어떤 이는 코믹스 한 권을 보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리지만, 다른 어떤 이에겐 5분도 안 걸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만화는 똑같은 장면을 몇 번씩 반복해서 사용한다거나 대사가 없이 배경 표현과 인물의 표정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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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 12권 146p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은 바로 그런 배경 표현과 인물의 표정에서 작가가 함축해 놓은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려 하고 장면장면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독자이다. 아울러 아다치의 작품 속에 적극 참여하여 비워져 있는듯한 부분들을 스스로 채워가는 독자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반대인 사람은 그저 빠른 속도로 페이지만 넘겼을 따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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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게임> 17권 161p 


나는 아다치의 작품이라면 모두 기본적으로 십 회 이상씩 보았다. 물론 그렇게 많이 보아야만 아다치의 만화를 제대로 감상하고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많이 보았던 이유는 그저 옛 추억이 떠올라서, 전에 느꼈던 감동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서, 단순히 또 보아도 재미나서였다. 그렇게나 많이 보았건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나는 아다치 미츠루 만화의 깊은 여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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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프로그램> 1권 중 '근황'의 여운 가득한 결말부분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처음 접한 독자들의 대부분 혹은 오랜 팬 중에도 일부는 아다치의 만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계속되는 여운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그 이후에 대해 좀 더 들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바로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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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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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