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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1.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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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잡록 3 - 진짜 '미생'의 세계

바둑 잡록 4 - 인터넷 바둑 작전세력을 알려주마









딴지 필진이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다. 3박 4일 잔치를 벌어야 마땅하나 나라 잃은 백성이 된 심경의 요즘이라 조용히 자축한다.

 

저번 미생이야기에서 프로지망생들이 결국 미생이 된 이유는 입단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로 결론내렸다. 그렇다면 입단제도가 뭔지 한 번 썰을 풀어보겠다.



입단제도의 역사


한국기원 이전에 조남철 국수가 한성기원을 세우며 입단제도와 프로제도를 만들었다. 당시 순장바둑을 두던 노국수들과 함께 프로제도를 정착시켰다. 그 숫자가 22명 정도로 기억한다.(자료 찾아보려는데 사실 이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약간의 틀린 부분이 있다면 좀 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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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바둑의 창시자, 故 조남철 선생

 

그 다음 해였나 노국수 대접을 못 받아 자동으로 입단을 못 하게 된 노국수들이 단체로 입단대회를 보이콧 했으나자신과 격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연락을 못 받은 한 명이 대회에 나왔다가 얼떨결에 자동으로 입단했고 그 다음부터 다들 입단대회에 나오게 되었다.

 

1954년에 이렇게 1명 입단하고 1955, 1956년에는 2명씩 입단했다. 1957년부터 1974년까지 매년 봄, 가을에 2명씩 4명이 입단했다. 1975년에 대한기원 기계파동이라는 사건으로 한국기원과 대한기원이 갈라졌다. 이때는 각각 입단대회를 하여 이 해만 8명의 입단자가 나왔고, 대한기원에서는 여성입단대회를 열었다. 1976년 두 단체는 다시 결합했고 1977년부터 1982년까지 2명씩만 뽑았다.(지루한 거 이해한다. 빨랑 쓰겠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다가 86년에 연구생만 입단대회로 뽑고, 일반인 대회는 폐지했다가 1988년에 다시 일반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이런식으로 하다가 서서히 입단문호가 넓혀졌다. 1990년도에는 여류입단대회가 생겨 여성기사가 2명 늘었다.

 

입단대회가 왔다리 갔다리 해서 일일이 설명하면 복잡하니 이만하겠다.

 

이렇게 입단제도는 변혁을 거치며 점점 복잡하게 변했다. 현재는 연구생 내신 입단대회, 포인트제 입단, 세계대회 우승자 입단, 영재입단대회, 지방연구생 입단대회 등 아주 복잡해졌다.

 

그럼 입단대회를 살짝 건드리고 프로제도를 건드리겠다.



지방연구생 입단제도

 

서울에만 연구생이 있으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애를 유학보내던가, 아니면 이사를 오던가 해야했다. 이에 따라 지방에도 연구생을 만들어서 육성하자는 취지로 지방 연구생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방에서는 체계적인 교육이 어렵고, 경쟁이 약해서 고수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그러니 지방연구생이 안 모이고 다들 서울로 간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바로 지방연구생들끼리 시합을 해서 입단자를 뽑는 '지방연구생 입단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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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타이젬>

 

지역 바둑단체 유력인사의 입김이 강하게 발휘되어 생긴 이 제도의 문제는 입단하고 성적을 못 낸다는 점이다. 본원 연구생 상위랭커에게 2점 깔고 두는 애들이 입단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요새도 2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차이가 난다. 이게 수능도 아니고 농어촌 전형마냥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실력이 약한데도 프로가 되는 이상한 제도가 지금도 있고, 심지어 지역 영재 입단대회라는 희한한 제도도 있다. 영재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것 같다. 야구나 축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지역에 티오를 줘서 프로자격을 주는 종목이 있는지를 모르겠다.


 

영재 입단제도

 

한 마디도 요약하면 모 세계 초일류 왈 


“입단대회 정도 경쟁도 못 뚫고 올라오는 게 무슨 영재야?” 


하지만 필자는 괜찮은 제도라고 본다. 중국에 밀리니 어린 애들 중에 뽑자는 것이 취지다. 그런데 이 제도를 결정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당시 한국기원의 실세가 상임이사 유 모 9단, 당시 기사회장 최 모 9단, 사무총장 양 모 9단 이렇게 3명이었다. 그런데 이 3명이 충암바둑도장이라는, 국내 최대의 바둑도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다. 영재입단대회가 말이 많은 이유는 최 9단의 아들이 이 제도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입단한 신진서, 신민준은 어차피 입단할 애들이었다. 


그래서 이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 아들 입단시킬려고 만든 제도 아니냐는 의문을 던졌고(공교롭게도 나이 제한이 최 9단의 아들 나이가 커트라인이었다), 이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제도를 만든 사람이)바둑계 전체를 위해 한 것이지, 그런 사적인 생각으로 일을 했겠냐'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깠다. 필자의 생각은 그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런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충암바둑도장 오너들이 한국기원 행정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충암도장도 문제가 많다. 한국바둑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가장 문제인 것은 충암도장을 들어가지 않고서는 바둑 명문인 충암학교에 가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정 학교에 특기생으로 들어가려면 특정 사교육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닌 것이다.(이거 불법인가?) 충암은 유창혁, 이창호 등 한국바둑계 쟁쟁한 프로들이 모두 모여 있는 카르텔이다. 당연히 바둑계 인맥 때문에라도 프로지망생들은 충암에 가고자 한다. 이것은 단순히 프로가 된 후 성적문제가 아니다. 지금 바둑리그 감독들 봐라. 또 바둑계 괜찮은 일자리는 충암 출신이 차지한다.(물론 충암 출신이면서 말 잘 듣는 사람들이다) 바둑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학부모는 어떻게든 자식을 충암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충암도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고 확신한다. 다시 말하지만, 충암도장의 오너들이 바둑계 행정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영재입단제도는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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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로제도를 한 번 보겠다.



프로 단위 제도

 

프로는 1단부터 9단까지 있다. 단이 높을수록 고단자다. 현재 한국의 프로 단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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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 프로기사 단수 구성

 

1단: 38명, 2단 28명, 3단: 39명, 4단: 30명, 5단: 34명, 6단: 24명, 7단: 27명, 8단 18명 9단: 68명 


완전 가분수다. 입신(신의 경지)이라는 9단이 제일 많다. 반면 우리의 라이벌로 생각되는 중국의 단수 구성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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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바둑 프로기사 단수 구성

 

1단: 81명. 2단: 86명, 3단: 63명, 4단: 47명, 5단: 44명, 6단: 23명, 7단: 16명 8단: 11명 9단: 36명


1단, 2단이 많고 위가 적은 좋은 구조다. 우리는 9단이 많고, 저단진이 적은 반면 중국은 반대다. 앞으로 한국이 중국을 이기기는 점점 힘들 것 같다. 참고로 일본은 우리보다 더 심한 구조다.


 

한국 프로의 문제를 지금부터 살펴보겠다. 파일 찾다가 201x년도 성적자료가 있어 참고했다.

 

1년 간 한 판도 못 이긴 프로가 28명이다. 아예 안 둔 사람은 14명이고 나머지는 전패를 한 사람이다. 0승 13패, 0승 15패, 0승 16패 등 단 한 판도 못 이긴 기사들이 많다. 다음은 한 판 이긴 기사들이다. 약 20명 정도 된다. 승률이 10% 이하다.


이런 사람들이 프로로 계속 있으니 문제다. 연간 4승 이하 프로가 80여명이다. 참고로 이때 박정환이 70승 이상 했다. 상위랭커들은 대부분 50~60승 사이를 했다. 그런데 10분의 1인 5승도 못 하는 프로들이 80명이나 있다는 거다. 이들은 대부분 지면서도 프로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연금제도 때문이다.

 

연금제도의 기원은 단수당이다. 조남철 국수가 현대바둑을 한국에 들여놓을 때 본인도 일본 유학을 했으니 일본시스템에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을 것 이다. 당시 연구수당으로 단에 따라 일정의 비용을 지급했다. 그 비용은 한국기원의 기전 주관료에서 책정된 것이다.


그런데 이 단수당이 시간이 지나고, 프로가 많아지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 40세 이하의 기사들의 수당을 걷어서 만 40세 이상의 기사들에게 주자고 하는 해괴한 제도가 나온 것이다. 대신 만 40세 이하만 참가하는 기전을 만들기로 해서 1회에 남자부는 박정상 여자부는 김선미가 우승하였다. 그런데 대회는 사라지고 만 40세 이상 기사들이 연금만 가져가는 제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연금제도인가? 연금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자기가 번 돈에서 내고, 나중에 은퇴하면 받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 연금은 젊고 성적내는 기사가 낸 돈과 한국기원 주관료로 운영된다. 연금산출방식은 아래와 같다.

 

기사의 나이 + 기사입단연수 + 기사의 단위 = 연금금액 (요거 약간 헷갈리긴 하는데 거의 이런 식이다)


요것도 상한선이 있긴 하다. 현재 가장 많은 금액을 받는 기사는 김인 9단이다.

 

국내기전 우승하면 상금에서 일정 %(퍼센트)를 떼인다. 세계기전에서 우승해도 일정 % 떼인다(아마 30%인 걸로 기억한다). 지금 연금받는 만 40세 이상 기사들은 젊은 기사들의 상금 일부와 한국기원의 주관료 수입의 일부를 받는 것이다. 자신이 낸 돈으로 연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러니 당연히 죽을 때까지 프로를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하면 5,000만 원의 퇴직금도 받는다. 당신 같으면 은퇴하겠는가? 이러니 물이 고이는 것이다. 프로기사의 성적으로만은 생활유지가 안 되니 다른 일 하면서도 프로직을 놓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세상에 어느 조직이 만 40세에 연금을 받는가? 그것도 은퇴도 안 하고 현직에 있으면서.

 

이게 무엇이 문제냐면 앉아 있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니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들의 연금비용(사실은 날로 먹는 비용)이 결국은 바둑대회를 주최하는 스폰서들의 비용이라는 것이다. 바둑대회의 비용에는 이들의 연금비용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기업은 홍보를 위해 대회를 하는데 아무런 홍보효과도 없는 곳에서 돈이 새니 홍보가 되겠는가? 바둑대회가 줄어드는 원인 중에 하나도 연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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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입단문호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순환이다. 매년 30명씩만 프로 하위와 입단대회 서열 30위를 교체시키면 된다. 탈락한 사람은 다음 해에 도전하면 되지 않는가? 어느 스포츠나 1군과 2군이 있다. 연구생 제도를 만들 때도 무한경쟁을 강요하며, 연구생 리그를 돌리지 않았는가. 10명 리그에 4명 승조, 2명 잔류, 4명 탈락하고 10조에서 떨어지면 연구생에서 탈락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대로 프로에도 적용시키면 된다. 5년만 돌려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프로들도 탈락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프로들 탈락하면 어떡하냐구? 어차피 성적으로는 생계가 유지 안 되지 않는가. 지금 하던 것처럼 보급하면 된다. 탈락했다는 자존심이 문제지만, 자존심 지켜주기 위해 실력도 없는데 프로직을 유지시켜 줄 수는 없지 않는가.


1997년에 바둑이 살 길은 스포츠화뿐이라고 하며 '바둑은 스포츠다'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기원에서 밀어붙이지 않았는가. 스포츠로 정부 돈 탈 때는 바둑이 스포츠라고 하고, 바둑을 스포츠처럼 시스템화하고 은퇴제도를 만들자고 하면 바둑은 다르다고 한다. 한국바둑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는 아마 이런 태도에 있는 것 같다. 현직 프로가 심판을 보는 스포츠는 바둑이 유일할 것 같다. 하긴 감독도 하고 코치도 하고 해설도 한다. 다음에는 이 문제를 건드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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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