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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9. 화요일

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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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레와 볼리비아의 국경에 위치한 사막도시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에서 발파라이소(Valpariso)행 버스를 탔다. 아타카마에서 발파라이소는 1,500km가 넘는 거리다. 차장은 28시간 정도 걸린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라는 표정을 잊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는 70시간짜리 버스도 있다고 하니 오직 그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았다.


버스는 길게 펼쳐진 칠레의 해안선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달렸다. 족히 24시간은 그렇게 직진만 한 것 같다. 오른쪽에는 바다가, 왼쪽에는 사막이 있었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밤에는 사막 위로 수많은 별들이 떠올랐다. 다만 눈은 호사스럽되 반쯤 묶인 신세와 다를 바 없는 다리와 엉덩이는 죽을 지경이었다. 몇 번인가 휴게소에 멈출 때마다 허리에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났다. 


아! 30대의 여행이여. 맛있는 음식으로라도 몸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직전 나라인 페루에 비해 물가가 몇 배나 올랐기 때문에 서너 끼를 연속해서 겨우 핫도그만 먹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은 황홀한 풍경이었지만 여행의 이면에는 떠나본 사람만이 아는, 그러나 흔히 엄살로 치부되고 마는 고됨이 있다.


발파라이소는 예정에 없던 도시였다. 보통의 루트라면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에 가야 했지만 몇 번의 경험상 수도는 우리에게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터라, 아타카마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추천에 따라 발파라이소를 목적지로 잡았다. 언제부턴가 가이드북은 거의 보지 않고 있었다.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한 식당이나 숙소에서 좋은 꼴을 본 적도 매우 드물었을 뿐더러, 최소 몇 개월의 시차가 존재하는 가이드북보다는 먼저 다녀온 여행자들의 조언이 훨씬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언에 따른 것은, 결국 남미여행을 통틀어 가장 잘한 결정 중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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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파라이소에서 우리를 처음 반겨준 것은 고양이였다. 숙소가 꽤 오르막에 위치해 있어서 한참을 헉헉대며 올라가고 있었는데 집집마다 문 앞에 고양이가 한 마리씩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다들 어찌나 곱고 예쁘던지 나와 아내단은 한 집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녀석들은 서울의 길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되려 냥냥 대며 먼저 다가와 발목께에 머리를 부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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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와 멕시코와 쿠바를 거쳐오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그 지역의 길 고양이들이 그 지역의 성향이나 특색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는 것이다. 과테말라 안티구아의 고양이들은 창살 안에서 보호 받고 있었고, 과테말라 산페드로의 고양이들은 히피처럼 유랑하고 있었고, 멕시코 와하카의 고양이들은 유독 식탐이 강했고, 쿠바 아바나의 고양이들은 굶주려 있었다. 발파라이소의 고양이들은 여유로웠다. 먹을 것으로부터 여유로웠고, 쉴 곳과 놀 곳으로부터도 자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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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라이소에는 다녀본 어느 도시보다도 길냥이의 개체수가 많기도 했거니와 아이들의 상태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유난히 중장모 고양이가 많았는데 털 끝의 윤기며 청결도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못지 않았다. 녀석들은 정말 여기저기 있었다. 지붕 위, 처마 아래, 창틀과 벽돌 틈,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과 골목길 어귀, 시장의 양파 포대 위 혹은 과일 상자 사이사이, 가끔은 노점상의 매대 위에 앉아 물건을 고르는 손님들을 능청스레 바라보고 있곤 했다. 쫓아내거나 구박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디에나 고양이가 있는 그 모습을 자연스러운 도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나 같은 고양이 성애자에게는 가히 성지와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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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단은 멕시코 즈음부터 거의 항상 고양이 사료를 챙겨 다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비쩍 곯아 있던 쿠바에서는 사료 한 줌에 동네 고양이들이 다 모이기도 했었는데, 발파라이소의 고양이들은 사료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기껏 사료를 내어주더라도 앞발로 툭툭 차버리거나 혹은 아예 엉덩이로 깔아뭉개고 도도한 눈빛을 쏘아대기 일수였다. 포구가 많으니 먹거리가 많기도 했겠지만, 마트에 가보니 다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얼핏 보아도 수십 종류의 사료가 있었고 특히 ‘칸초’나 ‘시리얼’처럼 두 가지 맛이 혼합된 사료가 대세였다. 치킨 맛이지만 깨물어보면 치즈가 나온다거나, 연어 맛이지만 안에 치킨도 들어있는, 그런 맛 좋고 질 좋은 사료를 먹던 아이들이 생존을 위한 영양분만 무식하게 때려 넣은 모래알 같은 사료를 좋아할 리 없었던 것이다. 고양이의 취향마저 존중하는, 이처럼 따뜻한 여유는 남미에서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3.

 

발파라이소는 예술가의 도시이기도 하다. 칠레에서 만난 한국 교민 한 분은 "그곳은 빨갱이 도시이니 근처도 가지 말 것"이라며 엄포를 내렸지만, 실상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자유분방한 도시일 뿐이다. 덕분에 도시 전체가 그림으로 가득하다. 빈 벽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벽화가 많고, 문이나 계단 등 붓이 닿는 곳이라면 온통 바다와 풍경이 빼곡하다. 더욱이 대충 그린 그림이 없다. 섬세하면서도 밝고 경쾌한 그림들은 발파라이소의 정취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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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놓고 벽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발 밑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치켜들고 지나간다. 그 도도한 걸음을 좇다 보면 어느새 또 새로운, 그림 같은 풍경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다시 무한 반복.


투어 프로그램 따위에 참여할 일이 없었다. 지도를 한 장 펼쳐 들고 아무 곳이나 무작정 가보고 싶은 곳을 찍어도 실패할 일이 없었다. 대충 버스에 올라타고 왠지 내리고 싶을 때 내려도 후회할 일이 없었다. 몇 시간 정도 길을 잃고 헤매도, 모험을 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배가 고프면 진득한 해산물 수프를 한 그릇 때리고, 밤이면 밤마다 구워대고 마셔댔다. 일주일이 하루처럼 짧았다.




4.

언덕을 빼곡히 메운 색색의 집들과 담벼락마다 들어선 벽화들, 고양이들은 지붕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고, 골목의 끝에는 늘 바다가 차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도시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샀다. 그리고 ‘남미에 살게 된다면 발파라이소’라고 수줍게 선언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 도시에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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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얼마 전 큰 화재가 났다. 빼곡히 지어진 목조주택이 많다 보니 심각한 수준의 피해를 입은 모양이다. 트위터에서 전해지는 사진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사진을 찾아 보면 찾아 볼수록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걷던 그 포근한 도시가 잿더미가 되었다. 폐허에 남겨진 것들 그리고 남겨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생각에 아내단과 나는 며칠 동안 꼼짝 없이 후유증을 앓았다. 고작 일주일의 인연이었지만 나는 고향을 잃은 기분이었다.


재작년에는 토레스델파이네, 작년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불이 나더니 이게 참 뭔 일인가 싶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진다.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리운 곳이 있다면, 시간이 그리 충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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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레 발파라이소에 큰 불이 났다는 뉴스를 봤다. 그때부터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국내 언론사들 대부분은 이 뉴스를 다루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구글과 트위어에 짧은 영어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Valparaiso fire.'


불에 타 폐허가 된 발파라이소 사진을 보면서 다급하게 남편두를 불렀다 "여기 거기 아니야?" 남편두는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들고 뛰어왔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 그곳의 아름다운 벽화들, 그리고 유난히 많던 고양이들이 앞다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을 걷던 나도, 친구들도, 추억들도 하나씩 떠올랐다.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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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파라이소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1시간반쯤 가면 나오는, 바다를 끼고 자리잡은 작은 항구 도시이다. 해안을 따라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건너면 집과 상점들이 있는데, 그때부터 줄곧 오르막이다.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다. 집과 집이 같은 벽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고 단층 건물보다 이층 삼층짜리 건물이 대부분이다. 발파라이소에 큰 불이 났다고 했을 때 겁부터 덜컥 났던 건, 이런 도시 구조 때문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번질 수 있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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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웠던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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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었다니...



집들이 비탈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가난하건 돈이 많건 상관없이 대부분의 집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부산에서 자란 나는 바닷가 도시를 본능적으로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발파라이소는 도착하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해안가에서 올려다보는 발파라이소도, 도시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발파라이소도, 다 참 예뻤다. 어디를 걷든 마음이 즐거웠다.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콜롬비아 보고타가, 쿠바 아바나가 생각났고, 프랑스 파리라던가, 체코 프라하가, 한국의 부산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곳들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곳들의 가장 좋았던 부분들을 떠오르게 했을 뿐, 남미의 유럽의 아시아의 그 어느 곳과도 달랐던 칠레의 발파라이소.




3.


집들은 언뜻 비슷한 모습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은 제각각 다 다르다. 창의 크기, 창틀 모양, 대문의 형태, 벽과 지붕 색깔, 벽에 그려진 그림. 한 집 한 집 각자 개성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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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라이소는 벽화의 도시다.


대부분의 집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한 사람이 일관된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다 다른 사람이 그린 것 같다. 소재도 스타일도 다채롭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수준도 하나같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만난 한국인 교민 어르신이 "발파라이소? 그 좌파들이 사는 곳엘 왜 간거야?" 라고 언성을 높이셨는데, 과연 발파라이소에는 좌파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머무는 내내 무작정 마음이 편했던 건가! 어쨌든 발파라이소가 지금의 감각적인 모습을 갖게 된 데에 그들이 한 몫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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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그려진 벽화들에 홀려서 우리는 내내 목적없이 골목을 걸었다. 못보고 지나치는 그림이 있을까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골목골목을 샅샅이 훑었다.


간만에 사진찍는 재미가 있는 도시를 만난 남편두는 골목 이편 저편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셔터를 눌러댔다. 이 곳에서 남편두는 중남미 통틀어 가장 사진을 많이 찍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한블럭 한블럭 걸을 때마다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셔터를 누른 순간은 많지 않았지만, 손에서 카메라를 놓을 수는 없었다.


벽 하나 창문 하나가 꽃보다 예뻐서, 카메라를 들어올리면 집 대문을 열고 나오다가도 사진 마저 찍으라며 다시 문을 닫고 들어가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창 안을 들여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을 찍는 것에,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찍는 것에, 고민이 많은 나에게 "괜찮아 편하게 찍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사람들. "뭐가 그리 심각해" 라고 어깨를 툭툭 쳐주는 것 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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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와 그의 초상




4.


우리가 이 도시에 열광한 또 하나의 이유는 고양이. 집집마다 골목마다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에도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는데, 둘 다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고 숙소의 가장 편한 쇼파를 차지하고 졸고 있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주인장은 마당에 들락거리는 거리의 고양이들에게도 매일 사료를 조금씩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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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고양이들 (영화)대부 코스프레 샷


거리를 제 집인 양 슬렁슬렁 산책하는 고양이들은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우리가 나눠준 사료를 우리 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냠냠 맛있게 먹어치웠다. 한국의 길고양이들이 주변에 사람이 사라져야 비로소 안심하고 사료를 먹는 것과 매우 상반되는 풍경이라 우리는 매번 탄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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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쪽에 자리잡은 시장에도 상점마다 고양이가 쉬고 있었다. 쌓여있는 과일 더미에 꽃 상자 아래에 생선가게 구석에서도 고양이가 앉아있다.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앉아있는 풍경이 흔했다. 그리고 사료 가게를 찾는 일이 중남미 통틀어 가장 쉬웠다.


나는 종종 "다시 태어나면 고양이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거기에 덧붙여 기왕이면 발파라이소의 고양이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은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지루하니까.


지나다 만나는 사람들끼리 웃으며 눈 인사를 건네는 곳. 내 집 대문을 열고 나와 벽을 마주보고 서서 붓을 드는 곳. 그 옆에서 고양이가 평화롭게 졸고 있는 곳. 밤이면 맥주를 마실 아름다운 바가 골목마다 있고, 부둣가엔 얼큰한 해물 뚝배기를 파는 식당이 늘어서 있는 곳. 걸어도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곳. 가난하건 부자건 상관없이 모두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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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발견했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다. 'SE VENDE' (팔아요) 라고 쓰여있는 집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우리 여행을 멈추고 여기서 호스텔을 할까?"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발파라이소는 남미에서 거의 최고 수준으로 시설이 좋은 호스텔이 널려있다. 하나하나 개성이 강하고 아름답다. 거기에다 가격마저 저렴하다. 아주 잠깐 계산기를 두드려보다 이내 포기했다.


대신 더 많이 걸었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웃었다. 여행 중에 쇼핑을 잘 하지 않는 우리지만, 나는 치마를 하나 샀고, 남편 두는 목걸이와 티셔츠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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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자전거




5.


불은 사흘 만에 꺼졌다고 한다. 이천여 채의 가옥이 전소되었고 사망자는 스무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발파라이소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문화 유산은 안전하다고 하는 걸 보니 불행 중 다행히도 도시 중심부까지 불이 번지는 건 막은 모양이다.


우리가 보았던 발파라이소는 그곳에 잘 있을까. 잘 웃던 사람들도, 거리의 고양이들도, 아름답던 벽화도 모두 거기에 무사히 있을까. 몸은 이 곳에 있지만 마음은 자꾸 저 곳, 발파라이소로 간다.


발파라이소에 가보지 못한 채, 화재 소식을 들었다면, "진작 불이 나기 전에 저 곳을 다녀올걸"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을 것이다. 발파라이소에 다녀온 후 그곳의 화재 소식을 들으니 역설적이게도 "괜히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예쁜 곳을 괜히 봤다. 그 아까운 곳을 괜히 봤구나. 이건 마치 사랑이 끝나고 난 뒤, 괜히 사랑했다고 후회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이 시리다.




6.


발파라이소를 안타까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글을 쓰는 동안 우리나라에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속보를 보다가, 발파라이소 사진을 보다가, 글을 쓰다가, '정말로 발파라이소에 가서 살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백 번쯤 한 것 같다. 그러다 세월호에 갇힌 청춘들에게 미안해져서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다시 태어날 세상은 부디 좋은 곳, 좋은 나라이길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







[편집부 주]



이 글은 딴지일보의 무규칙 이종매거진 

<더딴지> 17호에 실린 글의 전문입니다.


단&두의 여행 글은 지금까지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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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 @nadaun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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