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08. 13. 수요일

햄촤










지난 기사


[잉여일기 #1 - 10번 타자]

[잉여일기 #2 - 아이돌 이야기]

[잉여일기 #3 - 그녀들과 나와의 함수관계]

[잉여일기 #4 - 덕후맨]

[잉여일기 #5 - 제목을 디벼보자]

[잉여일기 #6 - 알폰소를 알고 있소?]

[잉여일기 #7 - 전자오락과 아빠와 나]

[잉여일기 #8 - 진짜, 혹은 가짜 사나이]

[잉여일기 #9 - 건들지 마라]

[잉여일기 #10 - 빌리 엘리어트 전지적 가카 시점으로 보기]

[잉여일기 #11 - 겨울왕국을 디벼보다]

[잉여일기 #12 - 레오의 기묘한 모험]

[잉여일기 #13 - 오렌지 캬라멜이라고 들어는 봤수?]

[잉여일기 #14 - 어벤져스2 시나리오 긴급 입수]








여느 때처럼 상쾌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트위터로 시작하다가 잠이 번쩍 하고 깼다. 한 유명 배우의 부고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름도 아닌 바로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이었다. 불과 향년 63세. 황망함과 슬픔을 감추기 어려운 하루였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만큼 최대한 밝고 재미난 잉여일기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삶이란 이렇게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로빈.jpg

로빈 윌리엄스(1951~2014)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그가 출연한 영화를 한 편 이상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미세스 다웃파이어>와 <후크>, <쥬만지>와 같은 그의 출연작들을 보며 성장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작품들도 90년대와는 성격이 많이 달라졌고,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영화를 보는 취향이 서서히 변했다. 최근까지도 그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연기하는 등 꽤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다지 주의 깊게 그의 출연작들을 살펴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의 연기는 내게 어느새 추억 속의 영화들로만 남아있었다.


그의 부고를 접한 후 문득 정작 로빈 윌리엄스라는 배우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 자리를 빌어 인간 로빈 윌리엄스의 삶은 어떠했는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며 그를 추모하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95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모델 출신의 어머니와 포드 자동차회사 중역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줄리아드 스쿨에 들어가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코미디에 재능을 발견한 그는 스탠딩 코미디 공연을 시작했다. 운 좋게 게리 마샬 감독의 눈에 띈 그는 TV시리즈에서 외계인 모크 역을 맡았고, 79년에는 골든 글로브를 수상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故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뽀빠이>영화에 주연으로 발탁되었지만, 영화도 그의 연기도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사실 필자조차 <뽀빠이>는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본 만화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영화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 건 87년, 다들 잘 알고 계실 작품 <굿모닝 베트남>을 통해서였다.


굿모닝.jpg

아마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도 이 이미지는 한번 쯤 보셨으리라...


이후 배우로서는 성공가도를 달린 그였지만, 현실에서의 삶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뽀빠이>로 영화 데뷔하기 전까지 코카인을 복용하기도 했던 그는, 친구이자 동료 코미디언이었던 존 벨루시가 코카인 중독으로 사망한 것을 지켜본 후 약물을 끊고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80년대에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면서 술을 끊었던 그는 배우로서 하향세였던 2000년대에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2006년에는 스스로 입원을 결심할 정도로 심각한 알콜 중독 증상을 겪었다. 2009년에는 부정맥으로 대수술을 받기도 했던 그는 결국 2014년 8월 11일, 우울증과 다시 찾아온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을 위해 다시 입원 치료를 받기로 결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인생에서 최악의 일은 혼자 남게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틀렸다. 최악의 일은 당신을 혼자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영화 <지상 최고의 아빠> 로빈 윌리엄스(랜스 役)의 대사 중.


힘겨운 삶을 살아냄과 동시에 그는 한편으로 항상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삶을 바쳤던 사람이었다. 로빈 윌리엄스는 <슈퍼맨>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브와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 줄리아드 시절 룸메이트로 만난 이후 절친이 된 두 사람은 늘 서로를 격려하며 우정을 유지했는데, 크리스토퍼 리브가 낙마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끔찍한 사고를 겪은 직후 로빈 윌리엄스가 의사로 분장한 채 몰래 그의 병실로 찾아가 대장 내시경을 하는 척 장난을 친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유쾌한 장난은 사고로 침울해있던 크리스토퍼 리브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슈퍼맨뽀빠이.jpg


이후로도 그는 크리스토퍼 리브 재단의 일원으로서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며, 그의 임종을 지킨 몇 안되는 동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2004년 크리스토퍼 리브가 사망한 후에도 로빈 윌리엄스의 우정은 끝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내 대나 리브마저 세상을 떠나자 로빈 윌리엄스는 그들의 두 아이를 본인이 직접 법적 보호자가 되어 돌보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 골든 글로브에서 세실 B. 드밀 상을 수상한 그는 크리스토퍼 리브에게 ‘천사들과 함께 편히 쉬고 있길 바란’다며 헌사로 수상소감을 대신하기도 했다. ‘슈퍼맨과 뽀빠이’의 아름다운 우정이다.


그 외에도 우피 골드버그, 빌리 크리스탈과 함께 자선단체를 운영하기도 했고, 2010년 캔터베리 대지진 이후 뉴질랜드 시티를 돕기 위해 대대적인 자선공연을 주도하기도 했다. 수년 간 어린이 병원에 지원을 하는 등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도우려 노력한 삶이었다.


그는 성우로서의 재능 역시 탁월했다. 특히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지니’는 그의 목소리 연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 속 지니의 거의 모든 대사를 애드립으로 연기하여 <알라딘>의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노미네이트를 방해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니,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그는 또한 <알라딘>으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것을 스스로 거절했다고 한다. 목소리 연기만으로 수상 후보가 되는 것을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알라딘>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를 한창 촬영하고 있을 당시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를 자주 걸었다고 하는데, 배우들과 제작진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스피커폰에 확성기를 이용하면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이 연기했던 지니 목소리로 무거운 촬영장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한다.


스필버그.jpg


또한 로빈 윌리엄스는 알아주는 비디오게임 마니아였다고 한다. 그의 게임 사랑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그녀의 딸의 이름이 ‘젤다 윌리엄스’다. 알만한 분들은 예상하셨듯, 그녀의 이름은 비디오게임 <젤다의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젤다의 전설>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의 이름은 ‘링크’다. ‘젤다’는 링크가 구하러 가는 공주의 이름이다. 착오 없으시길). 덕분에 그와 딸 젤다는 함께 닌텐도DS용 <젤다의 전설> 게임 광고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젤다.jpg

“내 이름은 젤다가 아니라고 쌰아아아앙!”

 

 

그의 팬으로서 못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가 끝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악당 역할을 보여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배트맨 포에버>의 제작 전에도 리들러 역할을 제안 받았었지만 결국 그 역할은 짐 캐리에게 넘어갔다.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이후 그가 속편에서 리들러로 캐스팅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았었다. 그에 대해 그는 ‘기꺼이 출연할 용의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지만, 결국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리들러는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의 슈퍼히어로 영화 붐이 10년만 먼저 불기 시작했더라면 그가 등장하는 영화를 한 편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늘 영화를 통해 즐거움을 선사했던 로빈 윌리엄스지만, 우리는 이제 더는 그의 신작 영화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년 1월에 개봉할 <박물관이 살아있다 3>가 그의 유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가족영화지만, 막상 그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를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혹 어떤 이들에게는 <후크>에서 나이든 ‘피터 팬’으로 분한 모습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쥬만지>의 ‘앨런’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웃파이어 부인’으로, 어쩌면 <굿 윌 헌팅>의 ‘맥과이어 교수’, 또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로봇 ‘앤드류’로. 아마도 내게는 그 모든 모습으로 남을 것이다. 최대한 오랫동안 그를 추억하며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다.


<알라딘>에서 그가 연기한 지니는 램프에 갇힌 채 주인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강력한 요정이었다. 세상이라는 램프 속에 살며 모두에게 행복을 주려 노력하던 지니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트위터 계정의 추모 트윗으로 대신 이 모자란 추모를 마치려 한다.


지니.jpg








햄촤

트위터 : @hamchwa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