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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삼국유사

2014-08-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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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4. 목요일 

벨테브레










이 글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와 달리 아무런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지 않으며, 교훈은커녕 현대와 어떤 연관성도 찾을 길 없는 허접쓰레기이다.   


그럼에도 이 글의 내용을 오독함으로써 생기는 모든 문제는 독자의 탓이며, 이에 대해 정부와 새누리당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1.

박통 왕은 왕비 육 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그중 맏딸이 그네 공주이다. 


​공주는 어려서 울기를 잘하였으며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왕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눈물을 흘리는 버릇이 있어 왕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ULBOGH.jpg

그럴 때마다 왕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항상 울어서 국가기관이 전부 해체되게 생겼으니, 네년은 자라면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목사 태민에게나 시집을 가야 하겠다”

태민은 종교인이었는데 나이도 무척 많았고 이런저런 구설에 많이 올랐던 인물이다.


TAEMIN.jpg

딸의 나이 23세가 되어 왕이 딸을 본좌 허경영에게 시집보내고자 하니, 공주가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항상 ‘너는 반드시 태민의 아내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전날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께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왕 노릇 하는 이는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왕의 명이 잘못되었으니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이 노하여 말했다.

"상대등 정운찬이 말한 대로 너는 정말 잘못된 약속도 지키려는 여자로구나!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정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너는 네 갈 데로 가거라."

이에 공주는 비단옷 수십 벌과 수첩 한 권을 트렁크에 담아 청와대를 나서 혼자 길을 떠났다. 그네 공주는 길을 걷는 행인에게 태민의 집을 물었다. 그의 집에 이르러 눈먼 노모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인사하며 아들이 있는 곳을 여쭈었다.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내 아들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갸는 이름이 7개야. 괜찮겠음?"

공주는 개명을 한 자기 여동생을 떠올리며, 팔자도 고치는 판에 이름 여러 번 고치는 게 무슨 흠이 되겠느냐고 생각했다.

"글고 갸는... 총 44건의 범죄의혹에 연루되어 있어. 그런데도?"

공주는 이번엔 조금 열 받았지만, 전과 14범이라는 비난을 받고도 왕이 된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서 참기로 했다.


GAKA.jpg  

"근데 말이여. 다 좋은데 걔가 결혼을 6번 했지, 아마? 그거 말고도 여자가 좀 있는 거 같던데..."

공주는 크게 빡쳐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노모가 혀를 찼다.

"저그 아버지도 두 번 장가갔고, 밤마다 여자 끼고 술 먹는 걸 알랑가 몰라."

물론 공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공주는 남자가 바람피우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시월드는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

박통 왕이 승하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네 공주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주, 아니 여왕은 그때도 여전히 싱글이었다. 천조국 황제가 'poor' 운운하며 동정을 표하기도 했으나 립서비스일 뿐, 소개팅 한번을 주선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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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의 아베 역시 자위, 그것도 집단으로 하는 자위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그네 여왕은 아웃오브안중이었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할지 눈 딱 감고 본좌 허경영을 만나야 할지를 고민할 무렵, 여왕에 관심을 둔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비밀스럽기가 신선과도 같다 하여 비선(秘仙)이라 불렸을 뿐,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선은 '그네 여왕이 아름답기가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하다'는 종편 보도에 낚여, 마누라도 버리고 서울로 갔다.

동네 아이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좋아요'를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서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페북에 올린 뒤 여러 아이에게 공유하도록 하였는데, 그 노래에 '그네 여왕님은 호텔에서 남몰래 비선을 안고 가다.'라 하였다.

동요가 페북에 퍼져 백관이 여왕을 극딜하자 여왕이 대노했다. 그러나 비선은 이미 페북을 탈퇴한 뒤였기에 공유한 아이들만이라도 족치기로 했다.

젤 처음 공유한 것은 조선이라는 아이였지만 그에 대해서는 별말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그다음 공유한 산케이라는 왜국 아이는 관아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는 등 좋게 되었다. 억울해하는 산케이의 페북에 문창극이 댓글을 달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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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 속으로.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 왜인들은 수십 년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허송세월한 민족이다. 너희에겐 시련이 필요하다."


3.

여왕이 무언가를 하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에도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일과 중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은 서면 보고를 받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정을 잡지 않았다. 문무백관과 백성들은 7시간 동안 도대체 여왕이 무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마저 돌았다.

여왕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시중 기춘공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토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기춘공이 죽을 때가 되자 초원 복집 근처에 있는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도청장치 유무를 확인한 후 대나무숲을 향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은 7시간 동안... 했다!"


KICHOON.jpg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은 7시간 동안... 했다!"

도대체 무얼 했다는 것인지는 여왕과 기춘공을 빼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령이었던 기춘공의 발음이 좋지 않아 잘 들리지 않은 것뿐인지, 혹시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반박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는 '했다'고 주장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말마따나 사생활에 속하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내용일는지...

어쨌거나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대로 듣게 마련이다.

여왕은 그것을 싫어하여 고심 끝에 대나무숲을 해체하고는 남자한테 참 좋은 데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산수유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가 남이가!"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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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