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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26. 수요일 

요제프K










전국 여기저기서 싱크홀이 생기고 있다. 사람들은 그 중 잠실에 연이어 생기는 싱크홀들에 대해 처음엔 제2롯데월드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지하철 9호선 때문이라고 했다가. 이젠 예전에 파다만 지하 공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엔 몇몇 이상한 아저씨들이 잠실 싱크홀들이 북괴가 만든 남침땅굴 이라는 의혹에 대한 조사를 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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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괴소문들은 열심히 뉴스를 읽고 각종 루머에 대한 노출이 심한 나 같은 잉여에게도 상당히 늦게 전달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에 대해 듣게 된 많은 사람은 나처럼 생경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대해 먼저 인지하고 있었던 몇몇 사람들은 "부모님이 단톡방에서 들었다더라"는 출처를 말하곤 했다.


최근엔 싱크홀 (aka 남침 땅굴) 이야기는 잠잠하고,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단식을 하던 김영오 씨에 대한 루머가 카톡으로 돌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김영오 씨에 대한 비방글들의 원출처는 국정원(최근 그의 뒤를 캐고 다녔다는)이나 보수언론(아버지가 되기 위해선 통장 잔액이 빵빵해야 하고 노조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혹은 보수단체(단식하면서 치킨을 먹는다는)로 추정되는데 이런 정보가 빠른 속도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진 데는 역시 단톡방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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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톡방에 이런 게 올라왔는디 뭔 소린지 알겠는감?


장년층과 노년층(이하 장/노년층)이 주로 정보를 얻는다고 알려진 단톡방들은 예상외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향후, 가까운 미래,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21세기는 장/노년층에게 혼란을 주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집단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아노미란 무엇인가? 잠깐 짚고 가자. 아노미란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난 뭐가 뭔지 몰라서 멘붕이 온 상태를 말한다.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군 제대 직후였는데, 하필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한국에 상륙시켜서 민간인이 된 후 몇 달간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더랬다. 몇 달 간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느 정도 적응에 성공하여 지금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지만, 그때의 극심한 혼돈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내가 경험한 이러한 혼란, 즉 기술진보로 인한 아노미는 특히 장년/노년층에게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집단 아노미로 인한 결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미디어와 그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보자. TV, 라디오, 신문 등 전통적 미디어(이하 올드 미디어)가 생긴 이래 우리는 세상사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이들이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정보에 의존해 왔다. 이들 올드 미디어의 특징은 전문성과 대중성이다. 즉 전문 언론인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보편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올드 미디어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들 올드 미디어가 권력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 역시 이 점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다. 괴벨스의 지휘 하에 나치 파쇼들은 라디오 등의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체제 선전에 힘썼고, 그로 인하여 국민들을 쉬이 통제했다. 이러한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 행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정부는 언론에 제공하는 정보를 제한함으로써 언론을 통제했다. 그리고 이 행위는 조져부셔의 아프간/이라크 전쟁 때도 반복되는 등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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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위대한 발명품,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이런 미디어 지형을 뒤흔들었다. IT 즉, 정보기술은 우리에게 올드 미디어가 주는 다듬어진(사전에 조율된) 정보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주기 시작했고, 대 딴지일보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이하 뉴 미디어)를 탄생시켰다. 이 뉴 미디어는 인터넷 언론과 SNS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올드 미디어와는 다르게 뉴 미디어의 특성은 비전문성과 선택성이다. 즉 비전문적인 사람이 특정한 대상에게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올드 미디어와는 다르게 누구나 뉴 미디어의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컨텐츠는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제공된다. 어딜 가나 달린 TV(올드 미디어)에서 모두에게 같은 뉴스를 전하는 것과는 달리 트위터(뉴 미디어)는 당신의 스마트폰 안에서 당신이 구독하는 정보만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뉴 미디어에도 전문인력은 있지만, 상당량의 정보가 메이저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은 비전문가에 의해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이 비전문성은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할 것이라 본다. 심지어 나도 비전문인력 아닌가?)


미국의 언론 통제 상황보다 한국의 상황도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조중동의 꼬꼬마 종편은 물론 지상파 TV들도 북조선 TV와 다를 바 없는 '수령동지(각하) 만세' 뉴스를 지껄이기 시작했고, 한반도에 몇 마리 남지도 않은 동물 이야기를 뉴스로 만들어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신문들은 마치 누군가의 지령이라 받은 듯 똑같은 타이틀을 뽑아 대고 있다. 이렇게 똑같은 기사만 써내는 종이신문 중 종이의 질이 가장 좋고 분량이 많은 조선일보는 그 쓰임새(창문도 닦고 삼겹살 구울 때 바닥에도 깔고) 때문에 여전히 우리나라 영향력 1위의 신문의 자리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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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 신문을 고기구이에 쓰는 사람들을 배려해

식감을 돋구기 위한 색감으로 보정까지 해준다.


이런 한심한 상황이 이어지자 올드 미디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한국에도 뉴 미디어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국민들, 그중 특히 젊은 층들은 민족 정론지 대 딴지일보를 필두로 한 인터넷 언론, 그리고 트위터 같은 SNS를 통해 정보를 얻기 시작했고, 세상사를 접했으며, 여론을 형성해 갔다. 이러한 급격한 언론의 흐름 변화 속에 남겨진 것은 장/노년층이었다. 소수의 젊은이에게만 보급 되었던 PC보다는 훨씬 사용하기 편리한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뉴 미디어에 노출된 사람은 증가하였으나 장/노년층은 여전히 기존 매체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흐름에 뒤처져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이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테레비나 뉴스에서 하는 이야기랑 영 다른 이야기를 해대는데, 왠지 이 이야기도 솔깃하단 말이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곤 혼란에 빠졌다. 집단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장/노년층의 멘붕을 극복시키기 위해 전임 각하와 그 졸개들은 조중동 꼬꼬마 종편을 만들었고, 이후 상당수의 장/노년층은 종편이 제공하는 재미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종편 역시 정보의 일방통행일 뿐, 뉴 미디어의 장점 중 하나인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이 문제점은 몇 년 전부터 돈에 눈이 먼 통신사와 핸드폰 제조 회사들이 퓨전 + 콜라보를 해서 장/노년층을 스마트폰의 세계로 끌어들이며 해결되기 시작했다. (읽느라 수고했다. 이제 드디어 단톡방 이야기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스마트폰의 주 용도는 인터넷 검색과 SNS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스마트폰의 세계로 끌려들어 온 장/노년층은 자연스레 SNS 대마왕 카카오톡 메신저를 접하게 되었고, 지인들과 카카오톡 단체방. 즉 단톡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보다 덜 복잡하고, 또 전화번호만 알면 쉽게 지인들과 연결되는 특징들도 이들을 타 SNS가 아닌 단톡방에 더 끌리도록 했을 것이다. 솔직히 카톡이 더 사용하기 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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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단톡방 역시 예로부터 이어진 저잣거리 담소와 그리 다르지 않다. 동네 노인정에서 하던 "요새 경제가..." 혹은 "요즘 나라가..."로 시작하는 정치/세상 이야기와 그 근본적인 성격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누구든 믿을만한 지인이 신기한 세상 이야기(주로 믿기 힘들지만 그럴듯한 뒷이야기)를 해주면 솔깃하기 마련이고 결국 매체에서 해 주는 '오피셜'한 이야기보다 더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톡방에선 친절히 설명해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단톡방 문화가 애초에 대안 미디어의 역할을 고려하고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종편의 부족한 '소통'이라는 것을 해결하며 정보 확산에 큰 영향력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종편에서도 나오지 않는 어딘가에서 발생한 괴소문들은 여기저기 퍼져가며 장/노년층 여론 형성의 열쇠가 되어갔다.


단톡방의 특이점 중 하나는 그 구조이다. 인터넷과 IT를 기반으로 새롭게 생겨난 것인 만큼 뉴 미디어 일부로 간주하여야 하지만 사실 이와는 약간 다르다. 마치 90년대 유행했던 인터넷의 전 단계인 PC 통신과 비슷하게 '인트라넷'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트라넷은 다른 말론 내부망. 즉 외부와 격리된 고인 물이라는 뜻이다. 단톡방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단톡방에 참가한 사람들만 읽을 수 있고, 외부인들은 읽을 수 없다. 즉 어떠한 정보에 대한 검증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가 쉬이 형성된다. 단톡방에 누군가가 어떤 그럴듯한 정보를 그럴듯한 근거자료와 함께 퍼오면 그 단톡방에 있는 소수의 사람은 그에 대에 다른 정보가 없는 한 그것을 여과 없이 믿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단톡방에 있는 것이지 정보를 검증하기 위해 단톡방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톡방은 악용되기 쉽다. 예를 들어 국정원이 믿기 힘들지만, 왠지 그럴듯한 어떤 정보를 흘리면 그것을 본 '오지라퍼' 혹은 자칭 '애국 보수'들이 그 자료를 퍼다가 자신이 속한 단톡방에 뿌리고, 그 정보를 획득한 사람들이 또 다른 단톡방에 뿌리는 식으로 '전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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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단톡방은 장/노년층이 열망하던 -심지어 젊은이들도 모르는, 그리고 티비 뉴스나 정부 발표와 너무 달라 뭔가 빨갱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 정보의 제공과 소통을 한 번에 해결한 존재이다. 평소 뭐가 뭔지 혼란스러워하던 그들은 단톡방에서 지인들이 알려주는 '세상 이야기'와 그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상호보완적이기도 한) 종편들을 보며 세상을 알아가고, 여론을 형성해 간다. 이는 단순 정치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닌 사회 변화로 인한 혼돈과 그 혼돈에서 그들을 구해주는 존재, 즉 사용하기 쉽고 자주 재미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단톡방의 역할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 덕분에 보수세력이나 민간인 사찰, 역정보 유출 등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국가기관이 이 단톡방을 조직적으로 활용할 가능성 앞에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최근 김영오 씨에 대한 비난 글 같은 것을 이러한 경로로 퍼뜨린다면? 정치적인 목적이 한가득 담긴 정보를 아주 빠른 속도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일베에 들어가 본다. 그러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장/노년층이 단톡방에서 접하는 정보와 일베에 있는 정보가 상당수 일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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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지만원이 쓴 것이지만 일베와 단톡방 모두에서 김지하가 쓴 것이라며 확산되었다. 

(일베 글은 후에 지적 받고 제목만 수정됨)


그리고 그것이 '베스트'에 오르고 주로 야권 지지자가 많이 있는 트위터 등에 소문이 날 즈음 조중동과 종편, 그리고 인터넷 언론에서 깔끔하게 정리를 해서 확인 사살을 해준다.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결국 원출처는 같고, 유포과정과 대상만 다르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는 뉴 미디어의 등장으로 여론 형성능력을 날로 잃어가는 올드 미디어를 대신하여 정치권력이 직접 뉴 미디어에 개입하여 여론형성을 좌지우지하려 든다는 말이 된다. 사실 나도 단톡방에 떠도는 괴소문과 이에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노출된 장/노년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가 인지하고 견제 해야 할 대상이다. 오히려 난 이 단톡방들이 일베보다 위험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일베는 우리도 들어가 볼 수 있지만 단톡방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국가 기관이 이를 이용할 것이라는 추정을 졸라 해야만 생기는 염려이다. 어쩌면 나는 그저 조바심이 날 뿐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국가 기관이 이런 짓을 하다 걸렸을 때 가카께서 다음카카오를 고심 끝에 해체하겠다고 발표하시지나 않을까 하는.


끝.







요제프K

트위터 : @JosefK44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