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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8. 화요일

홍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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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상수
주연: 류승범, 고준희, 류현경, 샘 오취리, 김형규, 양익준, 김응수, 정원중
촬영: 김영민
음악: 김홍집
18세 관람가 / Color / 110분





(저는 언제나 스포일러와 더불어 삽니다만, 중요 부분은 쇽쇽 뺐으니 안심하세요)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임상수 감독의 신작인 <나의 절친 악당들>은 지난달 25일에 개봉한 작품이다. 너무 오래 전에 개봉한 작품 같은데... 참 신기하다.


7월 2일에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도 그랬다. 그 때는 작품이 개봉한지 딱 1주일 째 됐던 날이었고, 상영관에는 나를 포함해 딱 네 사람의 관객만이 앉아 있었다. 되게 오래 전에 개봉하여 이제는 끝물인 작품을 보는 기분이었다. 상영시간에 맞춰 시간은 흘러갔다. 마침내 작품의 엔딩 시퀀스가 시작될 때, 한 관객이 자신의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내 뒤에서 감미롭게 말했다.


“이거 뭐고. 씨발.”


나는 이 말을 그 영화를 보기 몇 주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올해 개봉한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을 감상할 때였는데,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관객이 표준어로 저 말을 하고 극장을 나갔다. 심지어 저 말을 했던 타이밍마저 비슷했다. (결말부에서 했다는 얘기다)


여하튼 <나의 절친 악당들>을 보면서 나는 작품의 운명이 직감할 수 있었다. 잊힐 운명 말이다. 그때 쯤 확인했던 작품의 관객 동원 수는 10만 명 남짓이었고, 현재는 13만 명 정도다. 그리고 개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점에서 VOD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런 풍경은 이번 해 상반기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한국영화들이 처참하게 흥행실패를 겪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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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과 평단의 가혹한 반응과는 별개로, <나의 절친 악당들>에는 꽤나 야심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일단 헐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인 20세기 폭스사의 제작투자를 받은 세 번째 한국영화이기도 하고, 임상수 감독 본인이 재벌 회장(김주혁)의 부회장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임상수 감독은 김주혁에게 반감을 가진 듯 “개새끼” 몇 마디 한 채 순순히 돈을 옮기다 죽어버린다. 임상수 감독이 본인의 작품에서 몇 번 카메오로 직접 출연하긴 했지만, 이 작품에서만큼 상징적으로 퇴장한 적은 없었다. 


이 작품 속에서 감독은 잠깐 동안 이전 작품들의 인물들이 보여줬던 한 전형을 연기한다. (잠깐 등장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말이 부회장이지, 거의 다른 하수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감독은 그냥 쉬운 이름을 재활용한 것이라 얘기했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오래된 정원>, <돈의 맛>에 일관되게 등장한 인물인 ‘주영작’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부회장은 그냥 부회장으로만 등장하지 주영작이란 이름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독은 주영작을 연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창조자가 배우 김응수와 더불어 꾸준히 자신의 작품에 등장한 페르소나 중 하나를 직접 연기하고, 죽음으로 마무리 짓는 셈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의 임상수 영화는 이렇게 간다’는 선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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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악당들> 촬영현장에서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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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최후(?)


<나의 절친 악당들>은 저런 감독의 희생(...)으로 우연찮게 상류층의 돈 가방을 가지게 된 네 남녀의 소동극을 다루고 있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도 그렇고, 주인공들이 돈 가방을 챙긴다는 점에서 처음엔 인물들끼리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정체불명 조직의 인턴인 지누(류승범), 렉카차 기사 나미(고준희), 정숙과 불법체류자 야쿠부 부부(류현경, 샘 오취리)는 각자 가방을 나눈 다음에는 서로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이 돈을 이용해 환락을 즐기는 풍경도 그리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은 돈으로 인해서 네 주인공이 회장과 지누가 일하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쫓겨 다니는 등의 수난을 겪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속고 속이는 반전 등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낯설거나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으나 사실 이 영화는 이 점이 매력이다.


문제는 <나의 절친 악당들>이 ‘임상수’라는 이름보다 ‘장르적인 면모’를 먼저 부각해 홍보했다는 점이다.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작가적 관점을 딱히 포기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작품을 좀 더 편하게 감상하려면 장르적인 재미보다는 임상수의 작품을 볼 때 느끼는 재미를 먼저 떠올릴 필요가 있다. 홍보 차원에서 많이 거론되는 이 작품의 액션 시퀀스들은 우리가 다 보던 것들이다. 딱히 이 작품이 액션이나 재미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했다던가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빈번하게 나오는 고속과 저속 촬영을 교차하는 액션 신들만 해도 우린 이미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들에서 여러 번 봤었다. 아니면 외국인 폭력조직의 두목인 음부키 김(<똥파리>를 감독한 양익준이 연기한다)의 아지트에서 지누와 야쿠부가 위기에 처할 때, 카메라가 벽과 창문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며 아비규환의 상황을 보여주는 순간이 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나쁜 녀석들 2>의 총격전 시퀀스 중 하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분명 전에 헐리우드 제작 작품들에서 봤던 연출들인데, 작품의 관계자들은 여태껏 못 보던 거 아니냐며 호들갑이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삽입된 액션 연출들은 결국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작품들을 흉내낸 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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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 감독의 <나쁜 녀석들 2>에 등장하는 수많은 총격전 시퀀스 중 하나.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 음부키의 본거지에서 벌어지는 위의 액션 시퀀스가 작품과 닮았다.


평소 임상수 감독의 작품들에 대해 호감을 갖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새로운 척 오만하게 군다는 식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 흉내의 퀄리티가 꽤 괜찮아서 아깝다. 평상시에 이런 영화적 형식을 도입하지 않던 감독이 저것을 시도할 때는 흥미로워지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오히려 감탄을 했다. 작품의 액션 시퀀스를 비롯하여, 나미와 지누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순간들에서 보여지는 <트루 로맨스>스러움 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녹아있는 걸 보면서 말이다. 오, 임상수 봐라. 의외로 이 양반 헐리우드에서나 볼 법한 감성도 구현하는 감독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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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랑을 나누는 연인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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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욕설을 찰지게 하는 나미(고준희)


위에서 언급했듯, 감독의 이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연출이나 정서들도 비교적 매끄럽게 작품에 녹아있다. <나의 절친 악당들>의 주인공들은 너무나 극적이고 쉽게 돈과 조우한다. 그러나 나미와 지누는 엄청난 양의 돈을 ‘효율적’으로 소비하지 못한다. 거의 돈을 사방팔방에 뿌리고 다니는 수준이다. (작품 속에서 남주인공인 지누가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정말 돈을 뿌려대기도 한다) 작품은 평생 이만한 수준의 돈을 만져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젊은 남녀들에게 돈에 대한 쾌락에 가까운 판타지를 제공한다. 거기에 고무된 지누와 나미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정글도와 권총을 휘두르거나 쏘면서 마구 날뛴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절친 악당들>속의 주인공들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려고 들 때도 돈을 활용해야만 한다. 보통 이렇게 주인공들이 스포츠카 타고 도시를 오고 다니며 무기를 휘두르는 작품들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 바로 자신들이 원한을 가진 대상을 향해 당장이라도 심판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의 목숨을 거의 파리 목숨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이는 죽어가는 상대방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


어찌 보면 이런 특징들이 액션물의 큰 매력인데, 이 작품의 인물들은 정글도와 권총을 사용하기 이전에 돈의 힘을 먼저 빌려야만 한다. 동시에 일당백으로 작품 속에서 대립하고 있는 악역들과 맞서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감독의 특징이 이런 스타일의 작품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 여전히 취향을 탈 수도 있지만, 좋아한다면 재미는 있다.


임상수 감독은 2010년에 <하녀>를 리메이크하며 재벌이라는 사람들을 탐구하던 시점부터 확고하게 지켜온 것이 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들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안면은 거의 철가면 수준이고 인간적인 설득도 통하지 않을 것이며, 죄책감을 상쇄시켜 줄만한 막대한 돈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그래서 <나의 절친 악당들>은 조금 다른 지점에 집중하고 있다. 복수도 불가능한 막강한 재벌 곁에는 그들이 흘린 찌꺼기를 주워 먹고 사는 거머리 같은 하수인들이 붙기 마련이다. 이런 인물들의 특징은 약간의 힘을 가졌는데 남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이런 인물들은 회장을 제외하고 악역으로 등장하는 모두라고 보인다. 주인공들은 회장 대신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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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으로 나이 어린 회장에게 언제나 욕설을 들으며 사는 부회장(정원중)이 

지누가 일하고 있는 조직의 상관인 인수(김응수)를 대하는 방식이 그렇다. 

여기서 부회장은 회장에게 당한 비아냥거림을 인수에게 푸는 것 같다.

인수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회장이 하는 짓과 다를 바 없다.


지누와 나미, 경숙과 야쿠부는 돈다발의 일부를 음부키에게 지불하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아마 주인공들이 처음으로 돈을 가장 정확하고 적절한 용도에 쓴 경우가 아닐까) 처단 과정에서도 지누와 나미가 회장의 하수인들과 대화를 할 때, 음부키는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고 야쿠부는 몰래 차에다 기름을 흘려보낸다. <나의 절친 악당들>의 세계에서는 복수를 할 때도 이렇게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현재 위치에서 ‘감히’ 복수를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이렇게 해야 재벌들에게 약간의 조롱이라도 할 여지가 주어진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권력자라고 착각하는 무리들에게는 비아냥거림에서 멈추지 않고 확실한 처단을 내린다. 그렇게 작품 속에서 가장 잔인하고 속 시원한 복수가 완성된다.
 
다만 딱 한 사람은 예외인데, 바로 지누와 함께 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는 창준(김형규)이다. 그는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악역’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상관이 명령하니까 별 수 없이 따르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때문에 자신이 권력을 가졌다고 착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누가 회장과 자신이 일하던 조직에게 붙잡혀 고문당한 것을 나미가 구하러 왔을 때, 두 사람이 일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회장의 패거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는 시퀀스가 있다. 여기서 창준은 유일하게 이 가운데 손가락을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3자처럼 상황을 이해하며 낄낄댄다. 그리고 자기 잘못을 깨닫기도 한다. 임상수 감독의 이전 작품 같았으면 창준 또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됐을 테지만, 이 작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창준을 주인공들에게 합류시키기에 이른다. 우리들은 작품 속 재벌처럼 ‘가진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착각하지 말고 오히려 더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은 절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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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하녀>부터 시작해서 <돈의 맛>, 그리고 <나의 절친 악당들>까지 돈과 재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세 작품은 가장 어두운 작품으로 시작해서 가장 경쾌한 작품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로 각각 형식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다만 <나의 절친 악당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면, 그건 이 작품이 ‘청춘들을 위한’을 운운하면서 청춘들을 타겟을 정했다는 것이다. 50대 중반을 향해가는 임상수 감독의 나이를 생각할 때, ‘청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거 보면 엄청나게 세련되거나 기존의 세계를 뒤엎는 수준의 변화를 추구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작품의 비평이나 흥행 성적을 보면 감독 자신이 여전히 청춘이라고 착각해서 변화하다가만 어설픈 노욕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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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은 노욕이 아니라 고민의 결과물이다.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인장이라 할 만한, 영영 바뀌지 않을 사회를 바라보는 절망과 냉소의 시선을 일관되게 담고 있다. 그러면서 특유의 시선을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경쾌함으로 결론내린 작품이기도 하다. 


염려와는 다르게 재밌었다. 다만 평론가들 혹은 기자들 사이에서 임상수 감독의 작품은 외부에 있는 현 사회적 문제와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 등에만 국한되어서 읽히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감독의 작품이 항상 그대로이거나 점점 나빠진다고 여기는 것 같다. 아니면 실제 사회의 문제점을 인용하면서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 주거나. 칭찬을 하건 비판을 하건 감독이 아니라 '투사'로서 평가받고 있달까.


임상수는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품들은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볼만하고 쾌감을 느낄만한 여지를 점점 늘려가고 있으며, <나의 절친 악당들>도 그렇다. <돈의 맛>이 15개국에서 팔렸지, 아마? 기왕 한국에서 망한 거 이 작품은 더 많은 국가에서 팔렸으면 한다. 그럴 자격 있다. ‘임상수 스타일’ 중에서 가장 재밌거든. 휴일에 어디 나갈 일 없으시면 VOD로라도 한 번 보시라.



P.S


1) 위에서 평론가·기자 얘기를 해서 말인데, 특히 이번 작품에 대해 네이버 영화 쪽에 올려진 <씨네21>기자와 평론가들이 매겨놓은 20자 별점 평을 읽으면서 느꼈던 게 있다. 이들은 같은 상수임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기를 쓰면서 ‘영화의 새로운 부분들'을 찾아내는데, 임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작품 자체를 가지고 쓰는 게 아니라 대부분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도구로만 쓴다.


<씨네 21>에서 <나의 절친 악당들>에 관한 글은 짧게 써진 리뷰를 제외하면 놀라울 정도로 찾기 힘들다. (<매거진 M>정도에서 글을 쓰기는 했더라. 읽어보지는 못했다) 아마 이 작품을 통해서 꼬집을만한 사회 현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쪽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작품을 이용해서 세월호를 이야기할 수도 없을 거고, 노조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없을 거고, 국정원 문제 정도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 하자니 이 작품이 지금은 화제의 중심에서 멀리 벗어나 버리지 않았는가. 암만 봐도 그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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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