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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03. 수요일

Anonymous





 

 





 

 

 

프롤로그와 0편이 나오고 4개월이 지나서야 1편이 나왔다. 순서대로라면 이번엔 2편이 나와야 맞지만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벌써 10년도 지난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지금은 하늘 아래 알 수 없는 어느 곳에서 배 나온 아기 아빠가 되어 살고 있을 그 친구가 생각이 나 버렸다. 따라서 내 마음대로 목차를 뛰어넘어 본다.

 

 

이 이야기는 첫 키스와 첫 섹스 시도에 대한 이야기.


0. 로리타 콤플렉스


1. 안전지대와 멜빵


2. 오봉 배달부


3. 음성사서함과 러브레터, 그리고 스토커


4. 첫눈에 반한다는 것


5. 김짱과 노짱


6. 그에게 가는 막차


7. 첫 담배


8. 애기야


9. 감기


10. 벽


11. 수컷들


12.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3. 쓰리썸과 그리스


14. 고목나무의 다람쥐


15. 일본남자는 별로


16. 첫사랑이 돌아오다


17. 이탈리아 남자란


18. 영혼이 닮았다


19. 11살


20. 놓치고 보니 아까운 남자


21. 여행지의 불길


22. 와우폐인


23. 하늘에 별이 보여?


24. 손호영 닮은꼴


25. 청산리 벽계수


26. 자살금지


27. 그의 친구


28. 첫 프로포즈


29. 12년의 우정


30. 꽃돌이


31. 섹스도 사랑이라면


32. 에이즈의 기억


33. 상상인연


34. 부잣집 외동아들


35. 줘도 못 먹는 남자


36. 애 딸린 남자


39. 친구라며?


38. 진심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닌가 봐


39. 현재진행형?


40. 흑형



기억 속 그 아이는 잘 구워진 식빵맨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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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겠...


벌써 10년도 넘어 버린 이야기. 고3이었던 나는 평범한 수험생들이 그러하듯 앞에서는 수능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뒤에서는 할 거 다 하면서 나름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더랬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좋았다고 할 만한 점이 있기는 한 것이, 코앞에 보이는 목표가 자명했고, 좋든 싫든 따라 할 길잡이가 있었던 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말 그대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시간을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게 된 지금, 사실 가끔은 그 시절의 내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한 번쯤은 망설여 보게 될 듯한 고3 시절, 내 인생에 드디어 제대로 된, 바꾸어 말하면 어느 정도 이상의 스킨십이 진행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한 번 제대로 붙은 불은 고3이라는 소화기로도 진화되지 않은 채 내 존재 전체로 옮겨붙어 당시 내 생활을 전소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숙사에 살고 있던지라 한 달에 딱 한 번의 귀가와 일주일에 한 번의 외출만이 허락되었는데, 이 엄격한 규율이 무색하게도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기숙사를 빠져나가곤 했다. 네모진 얼굴과 구릿빛 피부에 유난히도 까만, 마치 서리태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던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가 사는 곳까지는 시외버스로 한 시간 남짓.


그에게 가는 길은 항상 어두운 밤길이었다


야자를 빠져나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3에게는 온갖 특권이 쥐어지는바, 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생리통은 좋은 핑계였다. 생리야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지만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자주 찾아오기도, 일주일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랫배 혹은 허리를 부여잡고 약간의 특수효과 처리로 식은땀을 연출해 내면 교실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가 사감 선생님의 조퇴 리스트에 도장을 받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긴다. 다음날 학교로 돌아오면 곧장 수업에 들어가야 하므로 가방에는 다음 날 입을 교복과 책 몇 권을 넣는다. 그리고선 야자 쉬는 시간, 기숙사를 오가는 인파가 몰리는 바로 그때를 틈타 쥐새끼마냥 학교를 유유히 빠져나온다. 당시 교문에 설치된 관리실은 그저 전시용에 불과했으므로 기숙사만 빠져 나오면 만사 오케이. 필자의 용의주도함으로 인하여 단 한 번도 중간에 걸린 적이 없었음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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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주변은 그저 논밭. 시골 길을 10분 남짓 걸어가다 보면 읍내 풍경 비스무리한 동네 길로 접어 든다. 그 황량한 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쿰쿰한 냄새의 시외버스터미널. 버스를 잡아타고 그 아이가 있는 도시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기다리는 그. 그리고 일상에서 탈출한 해방감과 해냈다는 묘한 성취감에 그를 보는 설렘이 더해진다. 우리의 데이트는 별게 없었는데, 수줍게 손을 잡고, 주황색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길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다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밤의 마력에도 우리는 꽤나 순진했던 것 같다. 아니, 그저 내가 순진했던 걸까? 만약 그저 나만 순진했던 거라면, 성적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임을 감안해 볼 때, 어쩌면 내가 그 아이를 고문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긴 하다.


그런 식의 만남이 지속된 지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때였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 해가 지면 조금은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던 그런 때였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귀가 날,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그 아이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모처럼 밝은 날에 만난 그 아이의 얼굴은 햇살을 받아 더욱 빛이 났고,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바닷가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차 태양이 빨간빛을 잃어가며 그 색을 하늘에 나누어 주기 시작한 그 때, 우리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 각자의 집에서 왜 안 들어오냐며 귀가를 독촉하는 전화가 몇 통 온 이후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던 것 같다.


이런 노을을 배경 삼아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이나 선택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굳이 그 감정을 분석해 보자면 이런 걸까 싶다. 잠깐 잠깐의 만남 이후 이어지며 커져 버린 애잔함과 노을 빛깔에 물든 서로를 바라보는 설레임, 그리고 그에 더해 부모의 간섭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싶다는 10대의 마음. 이런 것들이 뒤섞여 일으킨 화학작용에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고, 곧이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와 닿았다. 첫 키스. 만약 그 때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우리가 그 날 그 장소에서 키스를 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지만 부모의 간섭이 없었다면 그 날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저지를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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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남 0편을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사실상 그 아이와의 키스가 내 인생의 첫 키스는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진정한 첫 키스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늦여름 저녁 무렵의 그 키스. 다만 그의 입술이 포개졌을 때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처럼 놀란 토끼 눈을 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바로 그때에 내게 닥친 것 같았다. 눈은 질끈 감은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지나가고 눈을 떠보니 이미 해는 바다 아래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태양의 잔상만이 힘겹게 하늘에 남아 점점 그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해 진 나는 아무 말 없이 까만 콩 같던 그 아이의 눈과 바닥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저... 너 첫 키스지?"


"으응?"


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에 어색한 침묵마저 더해져 참을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 걸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어떻게 알았어?"


"아~ 니가 너무 굶주려 있던 것처럼 마구 덤벼서 그런 것 같았어."


첫 키스. 그것도 내 인생의 첫 키스 직후, 뭔가 로맨틱한 말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었던지라 그저 머리가 '띵~' 했다. 굶주려 있었다니? 내가 덤볐다니? 나는 그저 내 입안으로 들어오는 혀의 감촉을 좀 더 느껴 보고자 내 혀로 맞대어 보고, 살짝 맛보고 흡입해 보고 그러다 강약조절도 한번 해보고 했을 뿐인데. 뭔가 억울했다. 서툴렀다면 그저 서툴렀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굶주렸다"느니 "덤볐다"느니 하는 어휘를 사용했던 걸까? 사실 아직도 본 필자는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시원하게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리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 심리상태 혹은 사고의 흐름이 이해가 되는 독자가 있다면 조언해 주시라. 어쩌면 문자 그대로 내가 정말로 굶주려서 덤볐을지도 모른다는 건 하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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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키스 이후에 입술에 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걸 키스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느 시점까지는 키스를 하고 나면 그 점의 색이 점점 진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헌데 지금은 오히려 그 색이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제대로 된 격렬한 키스를 못 해 본 지가 어언... 쩝, 노 코멘트.)


(여기 난 점은 어떻고 저기 난 점은 어떻고 하는데 입술에 난 점은 그럼 무슨 의미?)


여튼 다시 그때 시점으로 돌아가서. "너 첫 키스지?" 이딴 말을 하는 걸 보니 이 자식은 첫 키스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여성을 세 치 혀로 홀리는 스킬은 갖추지 못한 병아리이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병아리 주제에 위세를 떠는 것으로 보이는 그에게 "그럼 너는 아니냐?!"하는 간단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그게 뭐라고, 백만 번도 더 물어볼 수 있지만 그때 나는 호기심이 많든 혹은 발랑 까졌든 그래도 아직은 눈에 별을 달고 있던 십 대 후반의 소녀였을 뿐이니까. 그래도 대강 눈치로 이 새끼 유경험자구나 싶긴 했다. 왠지 모를 허무함도 밀려왔다.


지금이라면, 만약 한 남자와 키스를 했는데 그가 곧이어 첫 키스였노라 고백하면 '이 거 병신 아닐까', 혹은 '그냥 도망가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지만 당시에는 달랐던 게다. 내게 이미 특별해진 그 사람에게 나 역시 특별한 사람임을 '처음'이라는 것으로 증명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났던 그 많은 사람 중 나와의 키스가 첫 키스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정말 별것도 아닌데 왠지 가슴 속이 아련하달까 혹은 배 속이 허하달까. 배가 고픈가.


하지만 그 아이도 별수 없이 고작(?!) 키스 경험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 날의 키스 이후 우리의 관계가 확실히 보다 육체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 그 아이 역시 나를 뭐 제대로 리드할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성에 대한 호기심은 내가 그 아이보다 앞섰던 것인지 내가 오히려 더 과감한 시도와 요구를 했던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손만 잡던 관계와 키스를 한 관계 사이에는 참으로 많은 간극이 존재하는 듯 하며, 키스란 마치 어떤 문을 과감히 열어 제낀 것 마냥 보다 많은 진전(!)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기능하는 것 같다.


앙드레 프레보(Andre Prevost), 

"정신적 사랑은 분출 없는 화산과 같다"

 

키스 이전의 스킨십이란 손을 잡고 팔짱 혹은 어깨를 감싸는 등 주로 일상생활에서 의복으로 굳이 가리지 않아도 되는 부위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키스 이후의 스킨십은 그 범위가 점차, 또한 비교적 급속도로 넓어진달까. 이를테면 우선은 가슴을 비롯한 신체 여러 부위에 대한 터치, 그 이후에는 살끼리의 부대낌. 처음에는 손을 상대의 옷 속에 넣어 만지는 정도의 부대낌이었다면 점차 그 부대끼는 면적이 보다 넓어지고, 동시에 세분화되는 것. 그리고 삽입, 여러 각도와 여러 위치, 여러 장소에서의 삽입. 뭐, 물론 모두가 이 단계를 거치는 것도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나의 첫 경험들은 대강 이런 단계를 차근히 밟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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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 이후 우리는 점차 서로의 몸을 탐하였다. 키스 이전의 데이트가 밤거리를 거닐며 복음성가(!)를 부르고 수다를 떠는 게 다였다면, 키스 이후의 데이트는 말보다는 행동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 아이는 내 가슴을 움켜  쥐기에 이르렀고, 그 아이의 거친 숨과 내 가슴이 지닌 그 능력에 나는 놀라면서도 일종의 흥분감과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났나? 그날도 야자를 제쳐 두고 시외버스에 몸을 맡겼던 그런 밤이었다.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풍경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라 소도시 밤 풍경의 그 황량함도 나는 마냥 좋았다. 어쩌면 내 현실, 그러니까 기숙사에 갇혀 수능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가치 없어 보이는 그 현실을 잠시 잊기에 그만한 유희도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술을 하고 있던 그 아이는 그날따라 나를 불 꺼진 학교로 데려 갔다. 미술실 안 널찍한 책상에는 그 아이가 작업을 하는 여러 도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갇혀 있던 물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콸콸 흘러내리듯 우리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작업대 위에 누워 서로를 탐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쓰다듬다 결국 서로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순간, 미술실 밖에서 수위 아저씨의 걸음 소리인 듯한 소리가 들려 왔고 정신이 퍼뜩 든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조용히 학교 밖을 빠져나왔다. 완전 흥분 상태에서, 아직 완수되지 못한 금지된 장난을 계속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그 아이의 집으로 향했다. 꽤 오랜 기간을 만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 집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아이의 방에 들어간 우리는 잠시 포즈되었던 욕망에 다시 재생버튼을 눌렀다. 이미 금지라는 빗장은 풀어진 지 오래였으므로 그 아이는 이번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 옷을 벗겼고, 나는 그에 별다른 거부는 하지 않았다. 단,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슬쩍 상체나 하체를 일으켜 티셔츠와 바지를 벗기기에 조금 더 수월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곧 우리 둘은 모두 알몸이 되었다. 빛은 그리 밝지 않았기에 그의 몸 구석구석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들뜬 두 남녀의 알몸이 서로 닿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그 감각에 몸의 모든 촉각 세포가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여 곤두서는 그런 순간이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기에 그의 손길 한 번에도 온몸이 떨려 왔다. 그의 몸은 내 몸을 덮었고 본능이 명하는 대로 내 몸은 그의 몸에 반응하였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기에 두려웠고, 두려움은 더욱 나를 흥분시켰으며 이미 나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일이 이대로 계속 진행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나의 첫 섹스는 그저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발목을 잡은 것은 한국의 성교육...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77남 32편 '에이즈의 기억'에서 이미 풀어놓은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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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링크 타고 가기가 귀찮은 독자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내 무지로 인하여 두 다리를 벌리지 않았고, 그 아이 역시 그 이상의 시도를 감행하지 않았기에 우리의 금지된 장난은 애무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욕망을 바라는 만큼 분출하지 못해서였는지 다음 날 아침 무언가 상당히 어색해진 상태로 나는 학교에 돌아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고3의 일상 속으로 안착했지만 그 아이와의 관계에는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 양 끝에서 같은 힘으로 당겨 팽팽해진 상태의 고무줄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그 탄성을 잃어버리듯. 물론 그 이유 중에는 그 아이와 나 모두 고3이었고, 수능을 이제는 한 달 반여 정도밖에 남겨두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을 테다. 하지만 이제껏 정신 못 차리고 그 아이와의 관계에 푹 빠져 있던 내가 급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데에는 더이상 그와의 관계가 이전만큼의 감흥과 자극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후 별다를 것 없는 만남이 몇 번 이어졌고, 곧 우리는 서로 수능 끝나고 나면 만나자는, 아주 합리적이면서도 쿨한, 사회의 시선에서는 아주 바람직해 마지않는 약속을 하고선 기다렸다는 듯 점점 멀어져 갔다. 수능이 끝난 후, 약속대로 우리는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지만, 이제는 제대로 현실로 닥친 미래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 이를테면 어떤 대학에 가야 하나 등과 같은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해 보이던 그런 문제들에 묻혀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만약 그 날 우리의 첫 시도가 미수에 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오래 만났을까? 만약 그랬다면 나는 수능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아주 쓸모 없는 의문을 지금 시점에서 한 번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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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마지막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내 머리에 자리하고 있던 생각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대학에 가면 핑크빛 로맨스가 펼쳐질 텐데 꼭 이 아이랑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지만 얘는 지방에 남아 있을텐데 내가 왜 얘랑 같이 있어야 하지?' 등과 같은 알량하고 유치하면서도 속물 같은 생각들을 그 꽃같은 나이에 나는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내게 더 이상의 자극을 제공해 주지 못했고, 어디에선가 유입되어 체화된 병신같은 생각은 점점 나를 설득시켜 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사무치던 그리움, 미친 듯이 솟구치던 욕망이 무색하게 아주 흐지부지하게 우리 관계는 끝이 났다. 그러면서도 당시 나는 대학에 가면 내게 다가올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그저 설렘에 행복해 했던 것 같다. 물론 대학은 절대로 장밋빛 인생을 공짜로 내어주는 마법상자는 아니었다만.


만약 그 아이와 그날 밤 거사를 제대로 치렀다면? 분명 그와의 열정적인 관계가 조금 더 오래 유지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같은 이유, 그러니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그 친구는 지방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헤어짐을 고하지 않았을까. 이제 바로 맛볼 수 있는 '대학생활'이라는 탐스러워 보이는 케이크를 이미 식어빠진 인스턴트 커피와 먹고 싶지는 않다는 허영 혹은 솔직함이 내게 있었다. 직전까지 내 척박한 현실에 즐거움을 안겨주는 도피처로 기능하던 그가 내 발목을 잡을 밧줄이 되어 버릴 기미가 보이자 나는 참으로 현실적이고 과감하게 그의 효용가치 상실을 선언하고 떠나 버렸다.


이제 그 친구의 점수를 매겨 보자. 이번만큼은 정말 이 표가 별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데, 당시 내게는 이런저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 100점 만점에 71.5점이 나오기는 했으나, 내가 필요할 때 항상 있어 주었으니 100점. 게다가 로맨틱한 첫 키스 100점 추가. 성적 에너지 발산의 계기를 만들어 준 점 또 100점 추가. 합이 300점. 그러면 뭐하나, 그에 대한 내 흥미가 떨어지고, 내 즐거운 미래를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별 망설임 없이 핑크빛 대학생활을 위해 과감히 떠나 버릴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결국 그를 그렇게 어제의 밤에 내버려 두고 내일의 아침을 찾아 혼자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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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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