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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05. 금요일

요제프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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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사를 쓰고픈 의욕은 있었으나 쓸만한 마땅한 주제가 없어 방황하던 나에게 죽돌기자가 드디어 첫 번째 지령을 내려줬다. 약간은 유행이 지난듯한 '명량'과 인류 역사상 존재한 해전 관련 정보를 모두 긁어모아 의미를 찾아내라는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맞춰 뭔가 만들어 내라는) 것인데 처음으로 내려온 수뇌부의 지령인지라 굉장히 신이 났지만, 다음의 이유로 인하여 상당히 주저했더랬다.


-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명량' 떡밥

- 덕후에게 까이기 딱 좋은 주제

- 이순신 장군의 수백년된 까방권

- 나의 군사/역사 관련 지식 부족


그러나 난 쫄지 않는다. 나에겐 딴지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잉여력과 남아도는 시간이 있지 않은가!평소 대 딴지일보 필진이라 자신을 부르기엔 부끄러운 지식의 깊이와 필력, 그리고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서) 평균 이하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차고 넘치는 잉여 시간 하나로 버티던 본 필자, 이번에 수뇌부에서 내린 시련(aka 욕먹기 딱 좋은 떡밥)을 견뎌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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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뽤로 뽤로미~





한산도? 명량?


명량 해전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좀 의아했더랬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보건 바 '이순신 장군의 해전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해전은 한산도 대첩인데, 그리고 그것이 '세계 4대 해전'에 들어간다고 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데, 왜 한산도 대첩이 아니라 명량 해전인가?'하고 말이다.


한산도 대첩이 아닌 명량해전을 영화화 한데는 아마도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이 대사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다른 말론, 아무래도 소수의 아군으로 다수의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이 한산도 대첩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왜 한산도 대첩이 명량 해전보다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임진왜란의 전체적 흐름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각 전투의 의미는 '얼마나 소수의 아군으로 다수의 적군을 크게 무찌르느냐' 보다는 '이 전투가 전쟁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한산도 대첩에서 왜수군의 주력을 궤멸시킨 결과로 조선 수군은 남해안 일대의 재해권을 확보, 왜군의 수륙병진계획을 좌절시켜 전세를 유리하게 전환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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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아직...."





세계 4대 해전?


왜 명량 해전보다 한산도 대첩이 더 중요시 다루어 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보았다. 그러면 이번엔 세계의 해전사를 한번 살펴보자.


세계 해전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 해전사는 물론 전쟁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갖고 있던 본 필자, 우선 네임드 전투부터 살펴보기 위해 세계 4대 해전에 대해 검색했다. (영어로)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세계 10대 해전이 뭔지 투표하는 사이트만 뜰 뿐이었고, 아무 데도 세계 몇 대 해전이라 명확히 규정하는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 사이트의 도움을 받아 알게 된 사실.

 

'세계4대 해전에 한산도 대첩은 들어가지 않는다.'


엔하 위키에 의하면 세계 4대 해전은 살라미스 해전, 악티움 해전, 레판토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이다. 서양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 해전들을 얼핏 들어봤을 것이다.

왜 한산도 대첩이 4대 해전에 들어가지 않는지 알아보기 전에 위에 나온 해전들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전투는 그 결과가 전쟁에 끼친 영향에 따라 그 중요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살라미스 해전은 페르시아의 침략에서 그리스를 구한 해전이다. 만약 이 해전에서 그리스 아테네가 패배했다면 구라파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은 그 존립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악티움 해전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x클레오파트라 커플을 쳐부순 해전이다. 이 전투의 결과로 제2차 삼두정치가 마무리 되고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 로마 시대를 마무리하고 제정 로마 시대를 열었다.


레판토 해전은 승승장구하던 오스만 튀르크를 베네치아, 제노바, 스페인 함대가 까부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서진을 하던 오스만 튀르크를 저지한 것도 있지만,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유럽 역사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게 된다. (대항해시대의 시작)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라팔가르 해전에선 영국의 넬슨 제독이 집 밖의 쥐를 굶기기 위해 대문을 걸어 잠그는 전략을 택한 (그러다가 그 전략이 멍청한 전략이었음을 깨달은) 불란서 제국의 나뽈레옹의 침략을 저지함으로써 그의 유럽 꿀꺽 야망을 저지하였다.


이렇듯 세계 4대 해전은 한 전쟁의 흐름은 물론 서양사라는 큰 강의 흐름에도 변화를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한산도 대첩은 어디에 낄 것인가? 안타깝게도 한산도 대첩은 서양사나, 세계사(종종 서양사와 동의어처럼 쓰이곤 하는)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왜 굳이?


이러한 이야기가 여러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본 필자도 이 글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알던 진실이라 믿었던 그것이 사실은 거짓이라는데 큰 상실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전부 구라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앞서 살펴본 세계 4대 해전도 사실은 딱히 근거가 없다. 원래는 세계 3대 해전(트라팔가르 해전 빼고)이었는데 영국 해군에서 트라팔가르 해전을 넣어서 4대 해전이라 가르친 것이 그 원출처라고 하는데, 어찌 되었든 이 역시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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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굳이 우리는 세계 4대 해전에 한산도 대첩을 넣어야만 하는가? 


그냥 임진왜란 3대 대첩에 만족하면 안 되는 것인가?



한 인문계 교수의 IT제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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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aily.hankooki.com/lpage/column/201409/dh20140901131311141170.htm


최근 SNS에서 '한 인문계 교수의 IT 상품 제안서'라는 글이 이슈가 되었다. 중국기업 샤오미의 급성장으로 입지가 불안해진 삼성에 소니의 예를 들며 충고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다.



그럼 방법이 없을까?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다. 이 장점을 이용하면 CPU의 획기적인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컴퓨터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운영체제(OS)가 필요하고, OS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계어(Mechanical Language)가 필수적이며, 기계어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상용어(Commercial Language)가 필요하다. 컴퓨터의 다른 모든 프로그램 역시 상용어로 기계어를 불러내어 만들어진다. 만약 32bit CPU를 64bit CPU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기계어에 우리 언어의 단어들을 심어놓으면, 상용어는 거의 필요 없게 되어 컴퓨터의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질 것이고, 시간당 정보처리 용량이나 속도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실용성이 없는 얘기'라는 주장도 있지만, 혁신적 사고를 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런 CPU가 개발되면 인텔이나 퀄컴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까지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시동을 걸고 3분 후에 출발하는 자동차와 시동과 함께 출발할 수 있는 차가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더욱이 그 개발은 특허권 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높은 로열티를 받아낼 특허권들을 다수 확보할 수도 있다.



다수의 IT업계 종사자들이 이 부분을 읽고는 실소를 감추지 못하곤 조리돌림을 시전하여 여기저기서 놀림을 당했다. 난 사실 IT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의 문제는 바로 “한글”을 어떻게든 끼워 넣으려 한 필자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왜 문제(삼성의 부진)의 해결점이 굳이 “한글”이어야 했는가? 한글은 우수한 글자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왜 한글의 우수성을 설명하는데 “과학적이다.”라는 수식어를 섞어야 하며, 또 굳이 그것을 IT와 연관을 지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서


- 한글은 우수하다.

- 우수한 건 과학적이다. (과학 신봉적 사상이 깔렸다고 본다.)

- 그러니 첨단과학인 IT에 대입하자.


라는 간단한 삼단논법을 이용한 것인데, 이것은 그 교수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 비웃음만 샀을 뿐.


그리고 모두가 인지하듯, 한글을 이용한 세계 IT 시장 선도 및 삼성의 재도약은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 정복


현 정부가 '창조 창조' 하듯 YS 정부는 세계화를 부르짖었다. 현 정부 관계자 중 아무도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모르듯, YS 정부 당시에도 그 '세계화'가 무엇인지 몰랐다. 아! 최근 다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전 대우그룹 소유주 김우중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경영이니 뭐니 하면서 그 비슷한 말을 지껄이고 다녔으니 말이다. (쓸데없이 DJ 정부 까대지 말고 추징금이나 내라)


“우리나라는 왜놈이나 떼놈처럼 침략은 하지 않는 평화로운 민족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나라가 타국에 쳐들어갈 능력만 되었으면 언제든 그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함께 까방권 트로이카를 이루는 광개토대왕을 봐도 그렇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저 '영토를 넓혔다.' 라는 사실이 전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이루어지지 않은 '정복의 야망'은 뜬금없이 21세기에 들어 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K팝, K드라마, K컬쳐, 그리고 K2 소총까지 K 붙은 거는 죄다 수출해서 그걸로 세계 정복을 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식민지 시대 이후 타국을 정복하는 길은 그 국가를 경제 식민지화하는 방법이 최고란 걸 미 제국이 잘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러한 세계 정복의 야망이 수천 년간 이웃 나라의 깡패 짓에 억눌려 있던 범국민적 감정(트라우마) 표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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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know 강남스타일?"



눈치는 왜 봐?


이렇게 세계 정복의 꿈을 안고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나라는 한편으로는 눈치를 엄청 본다. 류현진이 승리라도 한 날엔 포털에 '류현진 현지 반응'이 상위권에 위치하고, 싸이가 신곡이라도 내면 '싸이 현지 반응'이 한동안 포털 실검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이렇게 전 국민이 궁금해하는 '해외 반응'은 정확히 말하면 '코쟁이 반응'이다. 즉 사대주의라는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우린 절대 아프리카 국가들같이 우리나라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 사람들이 싸이의 신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자본의 원리에 따라 시장이 큰 미국/유럽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틀린 말이다. 시장의 크기로 보자면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도 뒤지지 않는데, 중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은 그리 높게 쳐주지 않으면서, 북미에서 한인 마트나 돌며 팬 사인회를 하고 한인 타운에 콘서트 공짜표를 뿌려대던 자칭 월드스타는 금의환향하듯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비웃으면서도 한편 백인이 타 인종에 비해 우월하다는 그들의 우생학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21세기형 사대주의라 부르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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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의 올바른 방향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전투이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 4대 해전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한글을 뛰어난 글자이다.

그러나 그것이 IT산업을 선도할 필요는 없다.


류현진 선수는 훌륭한 선수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비빔밥은 훌륭한 음식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그것을 좋아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선순위를 다른 데 두자. 세계 정복의 꿈은 그만 접고, 백인들의 눈치는 조금만 적게 보자. 본 필자가 경험한바, 코쟁이들은 사실 한국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상당수의 코쟁이가 북한과 남한을 헷갈려 하고, 미디어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코리안은 싸이나 류현진이 아닌 노쓰 코리안인 김정은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외화를 벌어와 국가를 먹여 살리는 애국 기업'인 삼성, LG, 현기차는 일본이나 대만 기업으로 아는 사람이 많고, 그들도 굳이 그들이 한국 기업임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니 종교적 신념에 가까워 보이는 애국심 대신 우리의 이웃을 보살피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일에 힘을 쏟는다면 또 모른다. 먼 미래에 우리나라가 세계를 정복할지...? (일단 각하가 대박이라고 하는 통일부터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고...)


진정 위대한 대한민국은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명절 잘 보내시길.


끝.




요제프K

트위터 : @JosefK44


편집 :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