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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1. 목요일

춘심애비








 

 






어쩌다보니 일베 이슈 기사 담당자처럼 돼버린 바, 자초한 면이 없지 않으니 이번 추석 연휴 기간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일베 광화문 집회’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 뻔한 얘기는 빨리 털고 가자.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단식농성이 이어지던 중, 일부 자칭 애국보수 세력의 폭식 조롱이 간헐적으로 행해져왔다. 급기야 일간베스트 사용자들 및 자유대학생총연맹을 필두로 광화문에서 단체로 피자 등 음식물을 섭취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호하는 등의 단체행동을 골자로 하는 집회가 벌어졌다.


이 집회로 인해 ‘광화문’은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뉴스앵커, 연예인, 일반인들이 이에 대한 트윗을 하면서 이슈가 커져갔다. 주요 반응은 ‘이런 단체로 미친 새끼들’ 정도의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 부터, 일본 넷우익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진지한 분석 까지. 일본 넷우익과 관련된 분석은 대충 아래 짤방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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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주요 언론에서 다룰 수 있는 얘기다. 허나 지금 이 기사를 클릭해서 들어왔을 독자들이라면 일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거니와 각자 나름의 시각을 지니고 있을테고, 일베 전반에 대한 필자의 접근 방향은 몇 차례 밝힌 적이 있으므로(상단의 관련기사박스 링크 참조 -편집부 주), 이 글에서는 좀 더 깊숙한 곳의 얘기를 해보자. 아마도 편집부 분덜이 이 글의 맨 위나 맨 아래에 과거 관련기사 링크를 걸어주셨을테니, 잉여로운 분덜은 한 번씩 보시길 권장.


일베에 대한 가장 쿨하면서 일반적인 태도는 ‘그딴 관심병자들 관심 끊어주면 될 일’이라는 말로 정리되는, 무관심 무대응이다. 하지만 여론의 중심에 있는 광화문 단식 현장에서 수십 명이 오프라인 집회를 열었다는 사실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상, 이 무관심 무대응의 태도는 의미를 잃는다.


이 태도의 근간이 되는 논리가 실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일관적인 무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공중파 메인 뉴스 앵커가 언급을 하는 정도의 이슈가 된 이상, 사회 전체의 일관적인 무관심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앞으로 이러한 오프라인 집회가 또 발생하게 될 지, 혹시 그들의 행동이 더 과격해지거나 혹시라도 물리적 폭력 사태로 연결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를 인위적으로 중단시킬 방법은 없다. 혹시라도 관심을 끊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 맞다손 치더라도, 그 해결책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얘기. 더욱이 ‘괜찮아 이러다 말거야’라고 생각하기에도, 일본의 넷우익들이 특정 집단에 물리적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일베의 전력에 아동폭행, 성추행, 강간기도 등의 비상식적인 일탈행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혹여나 얘네가 집단으로 미친짓을 하진 않을까 싶은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일베의 오프라인 집단 행동이 '발생-성장-쇠퇴' 싸이클을 한 차례 타고 나서 자연소멸되기 전까지는, 무관심 무대응을 주장할 순 없다. 그 얘기는 어떤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고, 그 태도를 정하려면 앞으로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다. 예측을 하려면, 그 집단 스스로가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부터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면 앞으로 계속되거나 행동이 더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을테고, 부정적으로 자평하고 있다면 바로 쇠퇴하다가 자연소멸될 가능성이 높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평가가 어떤 가치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의 향후 방향을 예측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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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고 해야할지, 일베 게시판의 분위기를 보면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분위기다. 아니, 만족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러한 자기들끼리의 뿌듯함을 낳은 요소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 김대중 개새끼를 단체로 연호했을 때의 카타르시스

 

- 그 공간이 광화문이었다는 성취감

 

-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냈다는 존재감

 

- 집회 종료 후 깔끔한 뒷정리에서 증명한 시민의식

 

뭐 딴지스들 입장에서야 코웃음이나 콧방귀는 커녕 코트름도 안 나올 얘기들이다만, 실제로 이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광화문에서 ‘김대중 개새끼’와 ‘노무현 개새끼’와 같은 식으로, 고인이 된 전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단체로 연호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인물에 대한 노골적인 욕설이 한 집회의 구호가 되는 일은 참으로 희소한 일이다.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농민들이 오바마 개새끼를 외친다던가, 광우병 시위때 이명박 개새끼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뭐 국지적으로 일어날 순 있겠다만) 매우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중요한 건 애초에 집회 목적 자체가 과거 정부에 대한 반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의 독도 망언에 대한 집회에서 오마바 개새끼를 연호하는 황당한 상황에 더 가깝겠다.


그렇다면, 애초의 일베 회원 광화문 집회 목적은 뭘까. 그것이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에 대한 조롱’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대중들이 알고 있겠고 그만큼 주요 언론들이 대부분의 보도에서 그렇게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앞서 말한 전대통령들에 대한 욕설 구호 및 ‘광화문’이라는 공간에서 비롯되는 그들의 성취감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 이면의 다른 목적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대부분의 대중들도 굳이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진 않는다.


하지만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단식에 대한 조롱 이외의 다른 목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들 내부적으로 이번 집회를 ‘9.6 광화문 수복’이라고 부른다. 구글에 ‘일베 광화문 수복’이라고만 써도 분위기를 금방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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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세월호 특별법 관련 단식투쟁에 대한 조롱 보다 ‘광화문을 되찾아오자’는 상징성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일베 내부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모두는 여러가지 뭥미 스러운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기 마련이다. 일단, 광화문을 누구로부터 되찾는다는 건지, 애초에 누군가에게 빼앗기긴 했다는 얘긴지, 광화문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쳐도 그 얘기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해야되는 말이지 않은지 등등.


이 말을 이해하려면 일베 내부에서 공유되고 있는, 왜곡될대로 왜곡된 역사관과 정치관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것까지 설명할 순 없으니 결론만 얘기하자. 그들이 ‘광화문 수복’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들의 용어를 사용하여 일반적 문장으로 풀자면 이런 의미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 이후 광화문과 시청은 좌좀들의 전유물이 됐고, 애국보수 세력이 광화문에 나서면 마치 남의 집에 무단침입했다는 듯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좌좀 선동꾼들과 한 패가 되어 광화문을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가 나서서 애국보수 세력도 광화문의 주인임을 보여주자.”


우리네 딴지스 입장에선 도대체가 말이 되는 문장이 단 하나도 없는 개소리지만, 일베 내부적으로는 대체로 저런 인식이 공유되어 있다. 당연히 저 궤변을 옹호할 의도는 0.000001ppm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전혀 없지만, 중요한 건 저 논리가 실제로 다수의 일베 사용자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지난 10여 년간 있어온 다양한 촛불집회들 모두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 아닌, 진보세력의 정치적 선동에 따른 조직적 참여에서 비롯됐다는 조중동 프레임을 그대로 전승한 채로, 이에 대해 ‘광화문을 빼앗겼다’는 인식을 지닌다. 그들의 인식체계 안에서 광화문의 소유주는 좌좀빨갱이들이고, 좌좀들의 수장은 김대중/노무현이기 때문에, 일베인들이 ‘광화문’에 모여 ‘김대중 노무현 개새끼’를 연호함으로써 사회적 집중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복합적 상징성을 한번에 성취한 쾌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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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자신들이 봐도 이념이나 가치관과 무관하게 집회 현장의 정리가 깔끔하게 돼 있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라는 점을 주지하고, 나름대로 자기들끼리는 음식물 흔적이나 담배 꽁초 하나도 괜시리 흘려서 욕먹지 말자는 암묵적 약속을 통해 나름대로 깨끗한 뒷정리에 성공했고,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하는 중이다.


스스로에 대한 이 ‘대견함’을 통해, 진보세력에 대한 그들의 ‘경쟁심’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일베라는 집단이, 단순하게 반사회적 성향을 바탕으로 모인 미치광이들이기만 하다면, 이런 시민의식 벤치마킹보다는 공공기물을 마구 파손하는 행위가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마치 그들은, 질투심이 많은 초딩이 친구가 칭찬 받은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려하듯, 자신들이 부정하는 집단이 보이는 모습 중 사회 전반적으로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은 그대로 수용하는 면모를 보이며, ‘우리가 그들보다 더 깨끗하게 정리했다’는 식의 자화자찬을 하는 등, 그 ‘경쟁심’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 ‘경쟁심’이란 건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보다 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거나 더 열등한 존재가 더 나은 평가나 대우를 받고 있을 때 발생하기 마련이다. 즉 그들은, 광화문으로 상징되는 시민여론에 대해 진보세력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판단은 조중동 및 정부의 언론장악에 따라 정확한 정보와 합리적인 의견이 시민여론 전반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진보세력의 현상판단과 대치된다. 즉, 진보세력에서는 일베를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파렴치한 사이코패스들’로 보지만, 일베는 같은 상황을 ‘강자에게 도전하는 올바른 약자들’로 판단한다는 얘기다.


사실 일베를 통해 드러나는 극단적 우경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방법은, 바로 이 현상판단의 괴리에 대해 일베와 진보가 끝장토론을 하는 것이겠다. 이렇게 전혀 다른 출발선이 각자 서로에게 전혀 공감이 안되기 때문에 그 이후의 모든 행동들 하나하나가 다 어긋나게 되며, 이런 상황에선 대화나 타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술했듯,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양측 모두 그래야겠다는 동기도 없고,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혐오는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계속 무시를 하기에는 일본의 넷우익이 너무나도 유사한 양상을 그리며 이미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법적 처벌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의견들도 있지만, 그건 대안이나 대책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거다. 일베의 가치관과 인식론이 어떠한지와는 무관하게 법률위반은 처벌을 받는 거고, 실제로 일베의 위법 행위는 처벌을 계속 받고 있는 중이다. 일베라고 같은 잘못에 대해 더 큰 벌을 내려서도 안되겠고, 더 작은 벌을 받고 있다고 우려할 상황도 아니다.


결국 저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방법을, 어떻게든 부분적으로나마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형태로 대화를 추구해나가는 수 밖에는 없겠다. 얘기가 다시 이렇게 되면 ‘우리가 왜 미친놈들이랑 얘기를 해야되나’든가, ‘미친개는 쥐어 패야한다’거나, 다시금 무관심 무대응을 주장한다든가 하는 반응이 나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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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자. 다음 번에 또 다시 일베가 집단행동을 한다고 쳐보자. 이번 집회의 그 유치하고 잔인한 조롱에서 엿볼 수 있듯, 그들이 상대방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능력 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그 얘긴 그들이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어떻게 우리를 빡치게 하든,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거라는 얘기다. 이번 집회는 일베의 행동 대상이, 연령대로 보나 사회적 연륜으로 보나 훨씬 손 위에 있는 어른들이었지만, 후에 언제라도 20대들이 다수 모여있는 시민운동현장에서 일베들이 집단으로 나타나 기상천외하게 잔인한 짓을 한다면, 분명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딩시절 싸워본 기억이 있거나, 혹은 초딩 자식이 다른 초딩과 싸운 것을 뒷처리 해본 분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감정적으로도 심하게 대립돼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을 때, 그 충돌에 대한 뒤처리가 양측 모두에게 공정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양측 모두에서 부상자라도 발생 한다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지니는 감정적 혐오감은 지금과는 또 다른 수준으로 치솟을테고, 이후 더 교묘하고 위험한 충돌이 지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무관심, 무대응, 미친놈 취급이 이러한 연쇄 충돌과 갈등 고조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늘 말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라지만,


씨발 똥이 있으면 치울 생각들을 해야지 다들 피하기만 하면 그 똥은 계속 거기에 있다.


아니, 그냥 있기만 한 게 아니고 점점 썩겠지.


끝.






춘심애비

트위터: @miiruu


편집: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