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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5.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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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5. 중력의 임무 (3)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6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7. 시간을 여행하는...안내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8. 소설 '20년 전후'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9. 시간과 평행우주..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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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2. 고대의 실험 (上)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3. 고대의 실험 (下)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4. 고대의 실험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5. 과학은 무엇을...있을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6. 무신론자를 위한 레퀴엠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7. 위기의 시대, 과학의 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8. 단편 소설 <30초>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9. 단편 소설 <30초>, 썰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0. 영구기관/무한동력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1. 인류의 과학...실상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22. 과학은 감동이다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겠지?”


청년이 대답했다.


“표준 프로시져에 따라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미개한 곳이라 고려할 것이 무척 많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뜻밖에 발전이 빠른 듯 해.”


노인은 뒷짐을 진 채 창 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특유의 위엄이 담긴 낮은 목소리가 유리창에 반사되어 더 굵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전쟁이 끝난 지 이제 10년을 넘겼을 뿐인데, 조금 성급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청년을 돌아보았다. 


“오랫동안 지켜 본 자네가 보기엔 아무래도 염려가 되겠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둘러야 하네. 저들이 더 큰 힘을 갖게 되기 전에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고 동참하도록 해야지 않겠나. 그, 이름이 뭐였지?”


“스푸트니크입니다.”


"그렇지, 스푸트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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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향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우리 역사를 생각해 보게. 처음 천상에 도착한 그 날 말일세.”


“ ‘통찰의 아침’ 말씀이군요.”


“그렇네. 그 때 만약 ‘다른 이들’이 찾아와 우리를 인도해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거대한 천상이 우리의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하지만 통찰의 아침이란 말은 그들이 오기 전에 이미 쓰이고 있지 않았던가요.”


“물론 그랬지. 허나 그건 어떤 기자가 적당히 붙인 그럴듯한 이름일 뿐이었어. 천상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의 세상은 단지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큰 각성을 주긴 했지만, 마침 그들이 나타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기에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이름은 금새 잊혀졌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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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망망대해 속에서 빛을 발하는 푸른 행성. 

지구인들은 그 경이로움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노인은 다시 창 아래의 파란 행성을 따듯한 눈빛으로 내려다봐았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천상에 오르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그 기술이 바다 건너 먼 땅을 공격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네. 만약 다른 이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의 감정은 사라지고 다시 욕망에 미쳐 그것을 사용했을 걸세. 그랬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나.”


청년이 살짝 실쭉거리며 대답했다.


“덕분에 저도 고향을 떠나 이 임무에 오랫동안 매달렸지요.”


노인은 가볍게 책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그날 이전의 우리 행성이 어땠는지 모르네. 무한한 에너지와 항구적인 평화, 기나긴 수명, 그리고 은하연방 회원국 자격의 댓가가 단지 몇 번의 계몽 임무라면 말할 수 없이 싼 것 아니겠나.”


“제겐 좀 힘든 일이었지만, 동의합니다.”


청년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짓고 고개를 가볍게 숙인 후 방을 나섰다. 오랫동안의 노력이 보상받고 갈등과 오해가 해소될 날이 온 만큼 개인적인 불평을 늘어놓을 이유는 없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는 저들의 경구도 떠 올랐다. 


그는 복도를 돌아 워크 워터에 몸을 싣고 실무 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실로 향했다. 이 자그마한 행성에는 비교적 자원이 풍부한 편이었지만 그만큼 인구도 많았다. 자연파괴는 이미 꽤나 진행 중이었고 전쟁의 위험도 상존하고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90%의 문명이 이 수준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거나 자멸한다. 그러나 이 행성은 핵분열의 힘을 살상에 쓰는 잔인함을 드러낸 지 10여 년 만에 인공적인 물체를 궤도에 쏘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일단 스스로의 힘으로 천상에 진출한 종족은 자동적으로 계몽 임무의 후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우연인 건지.”


청년이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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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발명하다니 대견하구만!


그의 고향 행성에서도 천상에의 도달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자부심과 정복감, 두려움과 경이감이 뒤섞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중 갑자기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다른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은하연방의 축하를 전하며 현실에 만연해 있던 온갖 문제와 부조리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전해 줬다.  


초기에는 외계의 개입에 반대와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수천 년이나 앞선 과학기술로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 확실해지자 반발은 이내 누그러들었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 자신도 예전에 같은 경험을 했다는 점, 그래서 누가 맨 처음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이 계몽의 임무가 수억 년 동안 은하계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 내일 실행입니다. 집행관.”


실무
책임자가 상념에 빠져있던 청년에게 일정을 보고했다.  


“흠, 흠. 그래 어떤가.”


“N-971-34 계몽 모델을 적용하면 이 행성의 생태계, 생물학적 특성, 지적 생명체들의 성향, 역사, 문명 발전도 등과 매치를 이룰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예상되는 과정과 결과는?”


“시작은 스푸트니크의 천상 도달 후 정확히 한 달 째인 내일, 지구력 1957년 11월 4일이고, 종합 이식은 지구 시간으로 43년이 지난 2000년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완료 후 예상되는 결과는 중력과 우주가속팽창 에너지를 활용한 무한한 동력원의 보유, 태양계  행성과 위성 일부의 거주 가능화, 평화와 안전의 항구적 정착, 다양한 생물군의 생존권 보장, 인류 수명의 무한 증가입니다."


“나쁘지 않군. 위험도는.”


“완료일 기준으로 0.03% 입니다.”


청년이 만족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좋아. 그 정도면 그 이후로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겠군.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라지겠어. 차질없이 실행 준비하게.”


말을 마친 그는 의장실로 향하는 워크 워터에 다시 몸을 실었다.


‘통찰의 아침’ 이후 다른 이들이 알려주고 전해준 것에는 수십억 년 은하계 역사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막상 접해보면 우리는 왜 이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 스스로의 힘으로는 수천 년이 지난들 실현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 점은 이 푸른 행성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만 은하연방이 은하계 속 모든 행성들을 모니터할 수는 없기에 여전히 많은 문명이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자멸의 길을 걷는다. 이 행성의 바로 옆 궤도에 있는 더 작은 행성이 수만 년 전에 바로 그런 일을 겪었다고 기록돼 있었다. 한때 녹색으로 빛나던 그 곳은 이제 붉은 죽음의 사막이 되어 있고, 생명과 문명의 자취는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운 좋게 계몽 임무의 시혜를 얻는 경우는 백에 하나에 불과하다.


‘안된 일이지만, 이게 다 우주가 너무 넓은 탓이지…


노인은 의장실의 너른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행 계획이 확정되었습니다. 내일 정오에 4분할된 본선이 워싱턴, 모스크바, 베이징, 뭄바이 상공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이어 공중에 저들의 외모로 필터링된 제 모습이 투영되고 평화의 메시지와 계몽 임무에 대한 설명이 모든 언어로 전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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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들이여, 평화의 메세지가 아닐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야.


“위험은 없겠지?”


“저들의 방어력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전혀 없습니다. 혹시 당장 스푸트니크에 핵탄두를 달아 쏠 수 있다면 모르지만요.”


“그런다면?”


“역시 위험도는 0입니다.”


노인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알았네. 저들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잘 준비하고.”


청년은 가볍게 인사하고 뒤돌아 나가려 했다. 그 때, 뜻밖에도 실무책임자가 헐레벌떡 의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이러나?”


청년이 물었다.


“죄송합니다. 계몽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전에 보고 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뭔가, 위험이라도 발생했나.”


“그건 아닙니다. 그저... 이걸 보시지요.”


책임자는 벽에 붙은 버튼을 눌러 창문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환시켰다. 확대되자 천상으로 오르고 있는 로켓이 보였다.


“저건?”


“지금 발사된 로켓입니다. 스푸트니크 2호로 파악됩니다.”


청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책망했다.


“지금까지 저것이 준비되는 걸 알지 못했단 말인가.”


“아직 계몽 임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상 한계가 있었습니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발사 했으면 했지 왜 이 호들갑인가. 핵탄두라도 붙어 있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청년이 말했다.


“그럼 보고를 하게. 왜 여기까지 달려와야만 했는지.”


책임자는 숨을 고르고 자세를 바로 잡은 후 입을 열었다.


“...생물이 탑승해 있습니다.”


뜻밖의 말에 노인과 청년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잠시 쳐다봤다. 노인이 말했다.


“한 달 만에 저 부실한 기계에 탑승해서 직접 천상에 올라왔단 말인가? 바보스럽지만 대단한 용기로군.”


“아닙니다. 인간이 아니라 개라는 이름의 다른 생물 종이 탑승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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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1월 3일 발사된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암컷 강아지 라이카.

라이카는 차가운 우주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고 물었다. 자신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노인의 판단을 위해서였다.


“우주선 조종이 가능한가.” 


“지적 생물이 아닌 감성적 생물이라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탑승한 것인가.”


“훈련을 받았지만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화를 들은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일단 그 생물의 귀환 일정에 맞춰서 임무의 시작을 며칠 연기하는 게 좋겠군.” 


책임자가 민망한 듯 머뭇거렸다.


“그게...”


“뭐지.”


“지상으로의 귀환 일정이 없습니다. 귀환 장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냉각장치 고장으로 내부 온도가 급속히 치솟는 중입니다.”


청년이 탄식하듯 내뱉았다.


“그럴 수가.”


노인이 웃음기 가신 얼굴로 말했다. 


“시간이 없군. 어서 그 생물부터 구하게. 가능한가.”


“셔틀을 준비해 발진시키면 4시간 후에 랑데뷰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보아 그 전에 사망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게. 어려운 구조 작업이겠지만 시신이라도 수습하는 예를 갖춰야 하네. 이 행성 46억 년 역사상 최초로 천상에 오른 생물일세.”


명령을 받은 책임자는 종종걸음으로 의장실을 나섰다. 노인이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것 참...”


청년이 황급히 변호했다.


“저들 나름대로 이유는 있지 않았겠습니까. 직접 탑승하기엔 너무 위험한 것은 사실인...”


노인이 그의 말을 막았다. 


“처음 천상으로의 비행이 위험한 건 당연하네. 우리를 비롯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지. 생명체가 목숨을 잃는 일도 벌어지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노기가 서렸다.


“천상에 오르려는 자들은 스스로 그 위험과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걸세. 판단력이 없는 다른 생물을, 그것도 감정과 믿음을 가진 생물을 속여 이용해서는 안 돼.”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귀환 장치가 갖춰져 있었다면 일이 잘못되더라도 내 재량으로 묵인하려 했네. 하지만 저 동물은 홀로 죽을 운명으로 잔인하고 차가운 천상에 내던져졌어. 자네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규정에 따라 계몽 임무는 취소하네. 이곳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잘 기록해서 은하 연방에 보고하도록.” 


청년의 얼굴이 급히 어두워졌다.


“그럼 이 행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인이 단호히 말했다.


“이제 핵과 로켓을 갖게 된 저 행성의 인간들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하고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행성들이 있네. 일단 돌아가서 어느 행성으로 가게 될지, 연방의 결정을 기다리도록 하세.”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청년이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야훼.”


예수는 의장실을 나오면서 큰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행성을, 그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그 곳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수천 년 간 기다려 온 구원을 방금 놓쳤다는 사실을 그들이 언젠가 알게 될까. 또 그것이 자신들이 믿는 조작된 역사와 비뚤어진 신념, 엉터리 율법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동물 한 마리의 목숨 때문이었다는 점은.


쓸쓸한 눈빛으로 들릴듯 말듯, 그가 속삭였다.


“부디 살아 남게, 지구인들이여.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내가 아닌 남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진리를 늦기 전에 깨닫길 바라네. 오래 전에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우주선의 엔진이 작동을 시작하는 소리가 나지막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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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해설편이 이어집니다.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독구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