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09. 22. 월요일

햄촤










지난 기사


[잉여일기 #1 - 10번 타자]

[잉여일기 #2 - 아이돌 이야기]

[잉여일기 #3 - 그녀들과 나와의 함수관계]

[잉여일기 #4 - 덕후맨]

[잉여일기 #5 - 제목을 디벼보자]

[잉여일기 #6 - 알폰소를 알고 있소?]

[잉여일기 #7 - 전자오락과 아빠와 나]

[잉여일기 #8 - 진짜, 혹은 가짜 사나이]

[잉여일기 #9 - 건들지 마라]

[잉여일기 #10 - 빌리 엘리어트 전지적 가카 시점으로 보기]

[잉여일기 #11 - 겨울왕국을 디벼보다]

[잉여일기 #12 - 레오의 기묘한 모험]

[잉여일기 #13 - 오렌지 캬라멜이라고 들어는 봤수?]

[잉여일기 #14 - 어벤져스2 시나리오 긴급 입수]

[잉여일기 #15 - 오, 로빈, 나의 윌리엄스]










 

얼마 전 가요계에 슬픈 사건이 있었다. 바로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의 두 멤버 고은비, 권리세 양이 지난 93일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일이다. 두 소녀의 나이 고작해야 23, 24세였다. 그녀들이 레이디스 코드라는 그룹으로 가요계에 데뷔한지 불과 1년 반 만에 일어난 비극이다.

 

아마 레이디스 코드라는 이름을 사고 소식 이후에야 처음 들어본 분들도 있으리라. 2007년 하반기 원더걸스의 <Tell Me>가 대 히트를 하고 소녀시대가 <Gee>로 그 기세를 이어가면서, 1년에도 수십 팀의 걸그룹이 데뷔를 하게 되며 가요계는 그야말로 걸그룹 붐을 넘어 대홍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2014년 현재까지 수많은 그룹들이 데뷔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데뷔하고 있다.


레이디스 코드.jpg

레이디스 코드 


레이디스 코드 역시 그 많은 걸그룹 중 한 팀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코리아>에 출연했던 이소정과 <위대한 탄생>에 출연해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던 권리세가 소속되어있다는 점에서 다른 걸그룹에 비해 화제성을 지닌 편이었고, 사고 전까지 꾸준한 활동으로 분명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시점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고인이 된 은비의 생전 소원은 레이디스 코드가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건 권리세 양을 포함한 다른 멤버들의 소원이자, 레이디스 코드 팬들의 소원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어느 아이돌 팬이든 안 그러겠는가.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가요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레이디스 코드의 팬들은 은비 양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다른 가수의 팬 게시판에 부탁의 글을 올린다. 그녀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은 다른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많은 팬들이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 데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은비 양이 세상을 떠난 지 하루가 지난 94일 오전, 그녀들의 노래 <I’m Fine Thank You>가 각종 주요 음원차트에서 급상승 곡선을 그리며 1위에 랭크되었다.


차트.jpg


어쩌면 평소 가요차트에 별 관심 없는 분들은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가수가 음원차트 1위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간단하게 말하자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가령 당신이 어떤 노래가 마음에 들어 멜론, 혹은 지니, 또는 네이버 뮤직 등과 같은 곳에서 음원을 구매해 다운로드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음악을 당신의 스마트폰에 넣어놓고 매일 같이 즐겨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그 노래를 열 번을 듣건 수백 번을 넘게 듣건 간에, 당신이 그 가수가 1위를 하는 데에 기여한 일은 음원 다운로드 1일 뿐이다. 물론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 노래를 찾아서 듣게 된다면 그보다 큰 도움이 되겠다. 아마도 이 정도가 팬이 아닌 일반인, 소위 머글로서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요즘엔 굳이 음원을 다운로드하지 않고 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실시간 재생,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보통 음원 사이트에서 실시간 차트 1라고 하면 이 스트리밍 횟수로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스트리밍이 그냥 재생 버튼만 반복해서 누른다고 올라가느냐, 그게 아니올시다.

 

당장 검색창에 스트리밍 방법이라고만 쳐도 초심자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마치 수학 공식 같은 지침서가 줄줄이 검색된다. 1 아이디 당 1시간에 1번만 반영되며 320k 음질로 들으면 안 되고, 음소거는 괜찮지만 일시정지나 재생 바 이동 없이 처음부터 한 번 완곡을 들어야 하며 자정이 지나면 플레이어를 종료하고 새로 실행해야 한다 등등... 사람들마다 말도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디 한 개당 하루에 스트리밍을 아무리 많이 해봤자 24번이 한계라는 것이다.


스트리밍.png

대체 뭐래는 거야...


그렇다면 팬들이 단결해서 하루에 24번 돌리면 금방 되겠네?’ 모르는 소리. 팬들은 걔네만 있나. 지금 이 순간 TV에 나와 활동 중인 아이돌 팬덤은 전부 그렇게 스트리밍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팬점이 어지간히 크지 않은 이상 이런 팬들의 스트리밍 공세만으로는 1위를 할 수 없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노래가 좋아야 한다. 팬이 아닌 대중들도 찾아 즐겨들어야 한다는 얘기. 즉, '머글'들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노래만 좋다고 인지도 없는 신인이 1위를 차지할 수 있나? 가끔 있긴 있다. JYP 소속, 지금은 수지가 속한 그룹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더 빨리 알아듣는 ‘Miss A’의 경우가 그랬다.


미스에이.jpg

 

데뷔곡 <Bad Girl Good Girl>로 그녀들은 데뷔 22일 만에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오히려 데뷔 때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 갈수록 하락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물론 Miss AJYP라는 인지도 높은 기획사 소속이며 <Bad Girl Good Girl>은 유명 프로듀서 박진영의 작곡이라는 점을 무시할 순 없지만, 데뷔 전 별다른 프로모션이나 대대적 홍보 없이도 데뷔하자마자 파죽지세로 가요차트 1위를 석권했던 그녀들의 행보는 돋보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형기획사 소속이 아닌 신인 아이돌의 경우엔 데뷔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1위는커녕 인지도 한 번 제대로 쌓아보지 못하고 해체, 은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슈퍼스타 K> 예선을 보다 보면 종종 그렇게 사라졌던 분들의 얼굴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단순히 음원차트 1위가 아닌 공중파 TV의 음악방송 1위에 오르고 싶다면 얘기가 한층 더 복잡해진다음반 판매량은 물론 음원 순위, 방송 횟수와 생방송 실시간 문자투표는 당연하고 여기에 요즘엔 사전 인기투표, SNS 점수라는 개념까지 생겼다. 사전 인기투표란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로그인하여 생방송 전까지 매일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게 하루 한 번씩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명이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중복투표로 득표율을 올리기도 한다(현실적으로 열성팬이 아니라면 이런 수고를 사서 할 턱이 없다. 그래서 팬덤의 규모가 중요한 것). 크게 잡아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횟수에 생방송 문자투표 정도만 더해서 집계해도 충분했을 90년대에 비하면 순위 집계방식이 매우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341351_184700_1719.jpg


그리고 SNS 점수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말 그대로 SNS 사이트에서 얼마나 해당 가수가 언급되는지를 매긴다는 거 같은데, 현실적으로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지 않나 싶으며 사실상 유튜브 조회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유튜브 조회수도 그냥 동영상을 재생하기만 한다고 올라가는 게 아니다. 유튜브 역시 여러 이유로 조회수 조작사건이 많았는지 집계방식이 꽤 까다롭게 변했다. 일단 동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시정지 없이 완전히 재생해야만 조회수가 상승한다는 얘기가 있으며 아이피 당 하루에 한 번만 집계된다고 한다. 인터넷 쿠키를 삭제하면 여러 번 집계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다...


무서워.jpg

 

아무튼 그런 이유로 레이디스 코드의 <I’m Fine Thank You>는 모든 팬덤의 단결로 음원차트 1위까지는 성공했으나, 케이블TV를 포함한 가요프로그램의 순위차트에서 1위까지 차지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타이틀곡이 아닌 앨범 수록곡 중 하나라 뮤직비디오도 따로 없는 곡이었고, 방송점수 등이 부족했기에 음원 순위만으로 1위를 하는 건 무리였다. 비극적 사고였던 만큼 위로 차원에서라도 1위를 주면 어떠냐는 의견도 없진 않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면 방송의 공정성을 놓고 따지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대중들이 가요프로그램의 순위를 보며 그들만의 리그’, ‘아이돌 잔치운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지간히 국민가요라 할 만큼 노래가 대중적이지 않다면 팬덤의 화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활동을 하며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팬은 늘어나고, 팬이 늘어나서 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상승하기 전까지는 열성팬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한 번쯤 TV에서 가요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말을 해본 적 없는가? “쟤들은 누군데 처음 보는 애들이 1위를 해?” 그게 다 당신이 처음 보는 그 애들을 1위 시켜주기 위한 팬들의 수많은 음반구매와 스트리밍, 문자 투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때론 어떤 그룹은 과도한 노출이나 노이즈 마케팅을 선택한다. 단시간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극단적인 방책을 쓰는 것이다. SM-YG-JYP, 소위 대형기획사의 소속 가수가 아닌 다음에야 매일 같이 신인이 데뷔하는 가요계에서 대중의 이목을 끌 획기적인 기획과 노래를 발표한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걸그룹의 경우 섹시 콘셉트는 그래서 달콤한 유혹이다. 뮤직비디오가 19세 미만 시청금지 조치를 받고 안무가 공중파 방송 심의로 인해 수정됐다는 것만으로도 당장 기삿거리가 된다. 화제가 되어 인지도가 상승하면 행사가 하나라도 더 들어오게 되고, 행사 무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한때 공중파 가요프로그램들이 순위제를 폐지한 적이 있었다. 과도한 경쟁을 피하고 획일적인 형식을 탈피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순위제도는 부활했다. 이유야 뭐 뻔한 거 아니었을까. 순위제가 없어지면 팬들이 음반을 몇 장씩이나 중복 구매할 이유도 없고, 하루 종일 스트리밍을 돌릴 필요도 없다. , 돈이 돌지 않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모르긴 해도 현재 가요프로그램과 각종 음원 사이트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건당 100-200원 하는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보는 재미 역시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순위제도 자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가 1위하는 걸 보고 싶다는 팬들의 마음을 부추겨 결국 다수의 대중보다는 소수의 팬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지금의 구조는, 방송사와 각 관계자들이 노력한다면 개선해나갈 여지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누군가는 노래가 좋으면 당연히 뜨겠지하며 쉽게 말하겠지만, 정작 1위를 하지 않으면 노래는커녕 이름조차 들어보기도 힘든 가수들이 수두룩하다는 아이러니를 당신도 인정해야 한다. 


지오디.jpg

 

조금 다른 이야기. 얼마 전 god(지오디) 멤버들이 재결합하여 7년의 공백을 깨고 8집 앨범을 내놓았다. 2004년 연기자 전향을 이유로 탈퇴했던 멤버 윤계상까지 복귀한 완전체인 만큼 팬들이 느끼는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자신의 청춘시절 열렬히 좋아했던 그룹이 뒤늦게라도 완전체로 돌아온다면 탈덕 했던 팬들이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만큼 추억이란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딱히 지오디의 팬은 아니었지만 모 프로그램에서 노래하는 그들을 보며 옛날 히트곡들을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과연 그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이긴 했구나 새삼스레 깨달았다. 90년대 아이돌들의 복귀를 보며 '추억 팔이'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팬들에게 다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추억을 만드는 일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화.jpg


장수돌이라는 호칭까지 붙은 신화는 또 어떤가. 올해로 16주년을 맞이한 그들은 현재까지 11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개인 활동과 신화로서의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물론 모든 가수들이 그러하듯 신화 역시도 순탄한 길만을 걸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년이나 꾸준히 함께 할 수 있는 가수와 팬덤은 꽤 행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지금도 당장 그룹의 존속을 점칠 수 없는 가수를 응원하는 팬들이나 한 번도 음악방송 1위를 해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팬들, 또 꾸준히 응원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을 두 번 다시 TV에서 볼 수 없게 되는 팬덤도 있으며, 많은 아이돌들이 신화의 행보를 닮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조금 더 사적인 얘기. 본인이 좋아하는 걸그룹 카라는 올해로 데뷔 8년차를 맞이했다. 아이돌, 그것도 걸그룹으로서 8년차면 중견 이상에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카라는 두 번의 멤버교체를 겪었다. 4인조였던 팀이 5인조가 되었다가 전성기를 누리고 이제 다시 4인조가 되었다. 카라의 팬질도 꽤 험난했다. 나는 지금 일종의 내가 있던 부대가 제일 힘들었어따위의 부심을 부리고 싶은 게 아니다(아 맞다 난 면제였지...). 뭐 팬이라고 해봤자 음반이 발매되면 구입하는 정도 이상도 아니지만... 


카라.jpg


소녀시대, 원더걸스와 같은 해에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세돌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카라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취향 참 특이하다며 별종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사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팬덤이 작다는 이유로, 어떨 땐 신인그룹에게 순위가 밀린다며 놀림 당하기도 했다. 다른 걸그룹들이 요정돌이니 여신돌이니 하는 칭호를 얻을 때 카라는 생계형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녀들이 첫 1위를 달성한 노래는 두 번째 미니앨범에 실렸던 <Honey>였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Gee><Nobody>같은 곡으로 이미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난 뒤, 그러니까 데뷔 후 2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대세 걸그룹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려하지 못한 1위였지만, 멤버들의 긴 고생 끝에 얻은 자리였던 만큼 팬들에게는 당연히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남는다. 1위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녀들은 어떻게 울어야 TV에 예쁘게 나올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1위.jpg 


국내에서 인지도를 어느 정도 쌓아서 이제 전성기가 오나 싶을 무렵, 뜬금없이 일본진출을 하더라. 정규 2집에 실렸던 <미스터> 안무가 화제가 되더니 일본에서 러브콜이 온 것. 갑자기 이게 왠일. 어느새 카라는 일본에서 인기스타가 되어버렸고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소녀시대 등의 그룹과 함께 이후 국내 아이돌 그룹이 활발하게 일본으로 진출하는 물꼬를 트는 선봉 역할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는 면에선 내심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진출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국내활동이 뜸해졌다는 점에선 또 그리 달갑지만도 않았던 게 사실이다(일단 일본 활동 영상은 일일이 찾아서 다운로드 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잖아...).

 

이후 일본활동에서 정점을 찍을 때쯤 멤버들과 회사 간의 소송(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건이 생겼다. 비록 사태가 해결되고 재기하기는 했지만 이후로 팬으로서 '언제까지나 카라가 활동하지는 않겠구나'하는 깨달음과 더불어 불안감이 생겼다. 한 때는 여기까지구나하며 체념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두 명의 멤버는 탈퇴하고  세 명의 멤버는 남았다. 그리고 또 다른 멤버가 새롭게 선발되어 카라가 되었다. 그렇게 카라는 현재 자체적으로 3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팬덤이 크게 분열되기도 했고, 탈퇴한 두 멤버의 개인 팬들이 탈덕하여 원래부터 그리 크지 않았던 팬덤이 더 줄어들기까지 했다. 하여간에 팬질 하기쉬운 그룹이 절대 아니라니깐.

 

나 역시 지금 카라가 처한 상황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새 맴버의 기대이상의 활약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떠난 두 멤버가 여전히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는다. 최근엔 오히려 그래서 카라를 더 열심히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요즘 생긴다. 어쩌면 이제는 정말 끝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활동을 시작하며 카라는 이제는 1위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팬들에게 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는 말이다. 팬으로서 그리고 가수로서 최고의 순간을 이미 경험했다면, 이제는 남은 순간들을 최대한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게 최선 아닐까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습관적으로 '우리는 영원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모든 아이돌 그룹이 지오디나 신화와 같은 행보를 걸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팬질이란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끝나게 마련이다. 언젠가 그녀들이 다시 모여 무대에 서는 일이 있다면 무척 기쁜 일이겠지만, 그건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할 일이다. 그래서 힘든 순간도, 최고의 순간도 지켜봐왔던 만큼 앞으로 음악방송 1위를 못한다 하더라도, 대세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언젠가 카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순간이 끝날 때까지는 응원하고 싶다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래서 괜히 나는 한 번 여러분들에게도 묻고 싶어졌다. ‘당신의 팬질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라고.

 

지금도 여러 아이돌의 극성팬들은 서로의 누구의 팬덤이 더 크냐, 누구의 음반판매량이 더 많냐 따위의 줄 세우기를 하며 인터넷에서 매일 같은 논쟁을 끝없이 반복한다(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사실 이런 팬덤 간의 싸움은 H.O.T와 신화, 지오디 등이 활동하던 90년대에도 세이클럽 채팅방 같은 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전통의식 같은 행위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결국 이런 과도한 경쟁의식이 가요프로그램의 순위제도를 유지시키고 결국 팬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쳇바퀴를 계속 돌게 만든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가수란 팬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어느 정도 지갑을 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1차적으로 가수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건 팬이 아니라 회사의 의무 아닐까.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게끔 좋은 기획과 좋은 곡을 만드는 것 말이다. 가수의 미래를 볼모로 팬들이 자신의 경제력과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과연 가수를 위한 길일지 조금 의문이 든다. 여기서 잠시 신화의 멤버 김동완이 남겼던 명언을 되새겨보자.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한 마디다. 이 말은 반대로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팬 역시 가수의 인생을 책임져줄 순 없다. 생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팬질이란 쉽게 지치게 마련이다. 본인이야 그저 한 떨기 잉여일 뿐 뭣도 아니지만, 감히 조언을 하자면 열심히 팬질을 하되, 가수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팬질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당신의 돈과 시간을 얼마를 쏟아 부었든 나중에 가수가 연애를 했다고 분노하며 씨디를 부숴버린다거나, 시간이 흘러 뒤늦게 그때 썼던 돈과 시간이 아깝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거라면 애초에 때려치우시라는 얘기다.

 

그런 게 아니라면 바로 지금, 그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 한창 열심히 할 때 한 번이라도 더 그들의 무대를 지켜봐주고, 한 번이라도 그들의 노래를 더 들어주고, 한 마디라도 더 응원의 말을 전해라. 그 모든 순간을 당신의 추억으로 남겨라.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이 더는 그들의 무대를 볼 수 없게 되는 때,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팬질이라는 거 안 해도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지장은 없지만, 기왕 한다면 스스로에게 아쉬움을 남기지는 말자. 부디 안녕할 수 있을 때 안녕하시라. 

 

은비리세.jpg 



글을 맺으며 : 아직도 믿기 어려울 만큼 슬픈 사고를 겪은 레이디스 코드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놓고 팬질에 대해서 논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혹시라도 글에 미흡한 점이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팬들에게 사과드리며 즉시 수정할 것을 약속드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은비와 리세 두 소녀의 명복을 빈다. 남은 세 멤버들과 팬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햄촤

트위터 : @hamchwa


편집 : 꾸물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