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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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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Essay) : [명사] [같은 말] 수필4(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隨筆). ‘수필’로 순화.


에세이(Essay) : 문화비평용어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 양식. 에세이는 통상 일기·편지·감상문·기행문·소평론 등 광범위한 산문양식을 포괄하며, 모든 문학형식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융통성있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에세이의 종류를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 혹은 공식적(formal) 에세이와 비공식적(informal) 에세이로 나누기도 하는데...(하략)



네이버에 ‘에세이’란 단어를 치면 나오는 말들이다. 이 ‘정의’가 나오기 전에 ‘관련광고’란 타이틀로 수십 개의 에세이 대행, 에세이 첨삭지도, 아이비리그 유학 관련 광고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 ‘에세이’란 단어를 듣고 피천득의 수필을 떠올리는 대신 SAT와 아이비리그를 말하는 것이 상식이 됐다.


“SAT(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2400점을 받아도 에세이가 후지면 아이비리그에 입학할 수 없다!”


“에세이만 잘 써도 대학을 갈 수 있다!”


교육이 모든 사회적 논의의 끝을 달리는 대한민국에서 ‘에세이’는 더 이상 수필의 이름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그 에세이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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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작가(Salonliterat)란 말이 있다. 그리고 이 살롱작가란 말에 꼭 따라붙는 말이 살롱예술(Salonkunst)이란 말이다. 19세기 살롱문화는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해 냈지만(살롱의 ‘여인’들에 불나방처럼 따라붙었지만), 김빠진 살롱문화에 반기를 든(‘철도’ 이야기가 빠지면 안되겠지만) 화가들이 뛰쳐나가 인상파로서 독립을 하게 된다(비록 배는 고팠지만, 그들은 예술을 선택했다).


이 살롱이 21세기 한국에도 건재하게 존재하고 있다.


“나중에 돌아보니, 내가 살롱이란 것에 들어간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술은 배고프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든... 예술을 선택했다는 자체는 일단 ‘돈’은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이런 ‘선택’은 곧 ‘생존’과의 치열한 전쟁을 의미한다. 사회안정망이 부실한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난망한 선택이다.


19세기 파리처럼 명시적으로 '살롱'이란 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모임은 존재한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이런 모임은 존재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포룸Forum’의 존재도 그러하지 않는가? 예술이란 걸 말하고 논할 정도의 지식과 사회적 성취가 있는 이들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후원을 하는 모임.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아닐까? 현재 ‘공공예술’이란 말로 일반 대중에게 접근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미미한 수준.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후원이 필요하다. 그 후원을 위해서는 재력가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재력가들과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움직인다. 그러지 못한 이들은? 배고플 수 밖에.


그 ‘소수’의 모임을 잠시잠깐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모두 한다하는 사람들이었고, 어쩌다 내가 거기에 끼었는지 모를 정도의 명망가들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살롱’이었다. 사람들은 살롱의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 찾아갔고, 살롱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해외여행에 초대했고, 별장에서 만찬을 즐겼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멋들어진 저택에서 거실 가득 촛불을 켜놓고 밤새 와인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선물 보따리 하나씩을 안겨주고...


내가 거기에 계속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했다. 태생적 한계, 거기에 더한 내 나름의 철학(?)


“나랑 맞지 않는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이다.”


한 작품 하고, 한 몇 개월 해외를 돌아다니며 재충전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루하루 생활비를 위해 원고의 무덤 속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들과의 그 좁힐 수 없는 거리감. 그건 생활적인 비교일 수도 있지만, 심리적인 무력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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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 이야기다.


A군은 후원인지, 후원이 아닌지 가늠할 수 없는 ‘살롱 아닌 살롱’ 두 군데와 연을 맺고 있었다. 편의상 1과 2라고 지칭하겠다. 1의 경우는 너무 하이 클래스라 엄두를 못 낼 정도였고, A군 스스로의 자격지심과 자괴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대신 2의 살롱은, 살롱이라기 보다 일종의 후원자 개념이었다. 언제나 격려해주고, 응원을 해주는 후원자는(편의상 B라고 하겠다) 문화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현금을 직접 주는 경우는 없어도 A군 입장에서는 꽤 호사스런 곳에서 식사를 하고, 여행을 하고, 가끔 일거리를 주기도 했다.


A군은 계속 받기만 해서 미안한 듯 이러저러한 소소한 일을 했고, B의 가정사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주로 자식교육이나 상담에 관한 것들). B의 자식들은 A를 따랐고, A도 형제처럼 이들을 대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 : 뭐가 문제였는데?


A : 자식 문제지.


나 : 자식이 뭐? 잘사는 집 자식들이라면서? 어지간하면 다 대학 보냈을 테고, 안 되면 외국이라도 보낼 기세 아니였어?


A : 대학이야 어떻게든 보내긴 했는데...


(부모의 정보, 조부모의 재력이 손자의 학벌을 결정한다는 말을 듣고 아무리 그래도 본인의 노력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었는데, 좀 ‘사는 집’, ‘가진 집’ 자식들이 대학을 가는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 일반인이 감히 엄두도 내보지 못할 ‘비용’ 때문에 포기하거나 간과한 루트로 이들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낸다. 그것도 ‘꽤’ 이름있는 대학에 말이다. 물론, ‘합법적’이다. 부모가 얼마나 노력하는 가에 따라, 집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학벌 카스트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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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뭐가 문젠데?


A : 그 집 둘째가 대학원을 가겠대.


나 : 가면 되잖아?


A : 갑자기 국제정치학을 전공으로 한다니까 그게 문제지.


나 : 걔가 무슨 과였지?


A : OO과 (국제정치와 하등 관련이 없는 예체능계였다)


나 : 아놔 걔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국제정치래?


A : 낸들 아나... 애는 착한데, 과가 좀...


나 : 뭐 그 정도 집안이면, 대학에 아는 사람 널렸을 테니 적당히 찾아보라고 그래.


A : 그게...아이비 리그 대학원을 원한대.


정적이 흘렀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이야길까? 물론, 그 학생을 본 적은 없다. 어떤 성향이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꿈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그 학생은 아이비리그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희망은 있지만, 거기에 걸맞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나 : 왜 국제정치고, 왜 아이비리그인거야?


A : 글쎄... 뜻한 게 있다는 데 자세히는 몰라. 그리고 아이비리그는. 원래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까... 학부는 한국에서 했지만, 대학원은 미국 가자는 거지. 나중에 커리어 말할 때도 아이비리그면 도움이 될 테고...


나 :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 랭귀지는 문제 없겠다.


A : (끄덕) 그런데, 국제정치에 대한 스키마가 있냐는 거지.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맨 바닥이야.


나 : 그런데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A : ... 내가 걔를 보내야 하거든.


그럴 줄 알았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돈도 받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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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리그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SAT 점수도 중요하지만, 에세이와 인터뷰, 결정적으로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원의 경우는 에세이와 추천서면 된다. A의 말을 빌자면,


“추천서가 아까워서...”


당시 A가 말한 추천서는, 그냥 들이밀면 바로 입학이 될 만한 파워의 추천서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 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이름이다(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말이다).


내가 알고 있기론 미국 대학교에는 일정 수준의 쿼터가 있는 걸로 안다. 한국 정도의 나라라면, 한국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의 추천서라면 통한다. 그들도 한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일정 수준의 관계유지와 협력을 위한 ‘투자’로 생각할 것이다. 학생에 대한 투자. 이는 당장의 관계와 미래의 관계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최고의 투자인 셈이다.


(미 국무부의 ‘노력’을 보면 상당히 치밀하단 생각이 든다. 예술인 초청행사를 보면, 국무부에서 세계 각국의 유망한 청년 예술가들을 데려와 미국 투어와 공연을 기획한다. 5성급 호텔에서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놀게 해주고 투어공연을 한다. 그리곤 ‘잊지말라’라고 한다.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무슨 말을 할까? 그리고 미국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질까?)


A는 변명하는 듯 보였다. 추천서가 아깝다란 말은 자신이 에세이를 발로 써줘도 어차피 들어갈 것이니 일종의 ‘요식행위’에 잠깐 손을 빌려주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자위였다. 아무리 요식행위라도 에세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다.


까놓고 말하자면, 당시 A가 쓴 에세이는 상당히 치밀했고, 당시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에세이였다. 지금 현재 미국이 국제정치학적으로 가장 신경쓰는 나라가 어디일까? 바로 중국이다. 그 중국을 타겟으로 한 에세이였다. 통과 조건은 꽤 까다로웠다.


당장 아이비리그의 대학원 입학사정은 1월 15일 부터였는데(대학교 전형이 끝나자 바로 시작됐다), 에세이 의뢰를 받은 게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그 사이에 A는 당시 가장 뜨거웠던 ‘책’을 읽고는 24시간 안에 에세이 한 편을 썼다.


나 : 그게 통할까?


A : 승산 있어. 미국서 ‘중국’이야기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


나 : 너 영어 문서 작성 가능해?


A : 일단은 한글로 작성해서 영어로 번역하고, 내가 초벌을 감수하려고. 그게 빨라.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A는 한글로 에세이를 썼다. 그리고 그걸 다른 이에게 부탁해서 영어로 번역했다(속도로 따지자면, 이게 훨씬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영한 사전, 한영 사전 끼고 에세이를 쓰느니 아예 영어 전공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초벌 번역본에서 전문용어나 기타 오탈자를 검수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란 것이다. 솔직히 A의 말이 맞았다). 에세이 쓰는데, 하루, 영어로 번역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그 사이에 A는 미국에 있는 기자(후배가 미국 현지에 특파원으로 가 있었다)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원의 입학전형일자를 확인했다. 그리곤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 끝까지 입학전형 일정대로 차례차례 응시를 하는 것으로 낙찰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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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차근차근 아이비리그 대학원의 입학정보를 취합하는 사이에 영어 번역본이 1차로 A의 손에 떨어졌다. A는 눈에 불을 켜고 검수를 했고, 몇 개의 오탈자를 확인해서 통보했다. 그리고. 이 에세이를 자신의 후원자(?)에게 넘겼다.


얼마 뒤 그 ‘아이’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원 중 한 군데에 합격 했다.


A에게 물었다.


나 : 기분이 어때?


A : 뭐가?


나 : 심플하게 말하자면, 네가 아이비리그 대학원에 입학한 게 되잖아.


A : (피식) 그렇게 따지면, 난 이미 박사 몇 개 딴 놈이야.


나 : 그래도 국제적으로 네 글이 통했다는 거잖아. 느낌이 남다르지 않아?


A : (심드렁) 미주 한인 신문 광고 봐라. 요즘은 아예 리포트, 에세이 대행이 기본이더라. 국내에서 SAT 준비하는 애들도 에세이 학원 다닌다지만. 모르지 걔들은 이런 유혹 안 받는지.


(미국 뿐만이 아니다. 국내 포털만 뒤져도 ‘에세이’를 쓰기 위한 강좌들부터 시작해서 대행까지 에세이 관련 정보나 광고들이 넘쳐난다. 대한민국에선 ‘교육’ 타이틀이 붙는다면, 뭐든 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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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결국은 가진 애들만 좋은 데 가고, 가지지 못 한 애들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밑에서 구르는 거구만.


A : (웃음) 아마추어 같이 왜 그래? 이 세상이란 게 결국은 ‘운’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 애들은 운 좋게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서 그렇게 된 거고, 너랑 난 약간 운이 부족하게 태어난 거잖아.


나 : 그래도 최소한의 도덕이란 게 있잖아. 에세이 대필은 반칙 아냐?


A : 반칙? 반칙일까? 내가 쓴 에세이를 번역해서 올린다면 살롱(www.salon.com : 살롱 미디어 그룹이 만든 온라인 매체. 딴지일보랑 오마이뉴스를 믹스해 놓았다고 보면 될 듯. 시사정치부터 시작해 음악, 책, 영화 비평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깔끔하고, 양놈 특유의 위트도 간간히 보인다. 한때 자주 찾았는데... 요즘은 어떤지) 같은 데서 ‘아 이런 의견도 있구나.’라고 주의를 끌 순 있을거야. 아주 운이 좋다면. 근데 걔가 이걸 가져가면, 한국 오피니언 리더의 자식들은 이런 생각들을 하는구나라며 반길 수도 있겠지. 다 떠나서 난 추천서를 받을 인맥도, 미국에 갈 돈도 학비도 없어. 그러니 내 손을 떠난 그 글은 제대로 주인을 찾아 갔다고 봐. 나도 그 동안 가졌던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었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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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그 뒤로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이 에세이를 들고 가 합격한 그 친구가 학습에 어려움을 겪어 과외 요청을 받았지만, 책 읽는 팁 정도만 제공하고는 빠졌다고 한다.


A는 지금도 ‘추천서’의 힘을 말하며, 자신의 에세이는 ‘덤’이었을 뿐이라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내리누르는 어떤 ‘죄의식’을 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듯 했다.



A가 써준 에세이로(A의 말대로 추천서의 힘이 90%라지만, 어쨌든) 대학원을 간 A는 그 뒤로 약간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사히 졸업을 한 걸로 안다(A의 말로는 사필귀정이란다. A가 비꼰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나중에 A의 말을 확인해 볼 겸 해서 인터넷에 에세이 관련으로 검색을 해 봤다. 넘쳐났다. A는 어쩌면 이 거대한 시장에 얼떨결에 끼어들어 잠시잠깐 ‘맛’만 보고 떠난건지도 모른다. 진짜는 아직 다 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A와 내가 만나면 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인생은 운이다.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아파하지 말자.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노력해야 얻을까 말까한 걸 태어나자마자 다 손에 쥐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인생은 비포장길이고, 누군가의 인생은 고속도로가 깔려있다. 우리가 ‘쓴 글’이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고속도로를 수월하게 달릴 수 있게 하는 하이패스일 수도 있다. 거기에 자괴감을 느끼진 말자. 어차피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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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글 쓰는 재주 하나로 이런 사람들의 삶을 살짝 훔쳐볼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라고 자위하는 A.


나는 A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를 먹고 나니 이 사회에서 어디까지가 허용가능한 도덕의 범주 안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받아쓰기를 하는 필경사(筆耕 師)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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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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